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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에 사는 박해창이 백일장에 참여하여 제출한 시권 / 朴海昌 / NULL"전라도 남원부 수지면에 살던 朴海昌이 白日場에 참여하여 제출한 답안지이다. 조선시대에는 각 지방 관청의 수령(守令) 주재 하에 관할구역의 유생을 대상으로 시제(試題)를 내걸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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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에 사는 김석규가 작성한 시권 / 金錫奎 / 1883정산면에 사는 유학 김석규가 그의 나이 39세 되던 해에 과거에 응시하여 제출한 시권이다. 본 시권에 의하면 김석규의 부는 통사랑전선공감역 벼슬을 하였던 김기풍이다. 당시 시권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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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흠이 작성하여 제출한 백일장 시권 / 文明欽 / NULL文明欽이 작성하에 제출한 백일장 답안지이다. 문명흠은 ‘人影在地仰見’라는 제목의 시를 지어 제출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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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에 사는 목천 장씨 가문에 소장된 시권 / 官 / NULL"순천에 사는 목천 장씨 가문에 소장된 科紙 가운데 하나이다. 어느 해에 어떤 과거에 응시하여 작성한 답안인가는 전혀 알 수 없다. 답안 작성자의 인적사항을 적은 부분도 훼손되었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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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에 일에게 발급된 공명첩 / 國王 / 1905"1905년(고종 42)에 발급된 공명첩(空名帖)이다. 이름이 적혀 있는 부분이 다른 부분의 필체와 다른 점, 조잡하게 새겨진 인장이 찍혀 있는 점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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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고종 14)에 이치삼이 작성한 가옥 매매문서 / 李致三 / 1877"1877년(고종 14) 2월 20일에 이치삼(李致三)이 작성한 가옥 매매문서이다. 이치삼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몸채 3칸, 행랑 4칸, 측간 1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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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에 사는 심진표의 시권 / 沈鎭杓 / NULL임실에 사는 沈鎭杓가 백일장에 참여하여 제출한 답안지이다. 그는 “爲此春酒以介眉壽”이라는 詩를 지어 제출하여 ‘三下’의 점수를 받았다. 조선후기에는 학문의 진작을 위해 백일장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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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학준이 작성하여 백일장 대회에 제출한 시권 / 王學準 / NULL왕학준이 백일장(白日場)에 참여하여 제출한 답안지이다. 그는 이때 시를 지어 제출하였는제 제목은 ‘안식장노전문조지 유약수서왕모 이미상견(安息長老傳聞條支 有弱水西王母 而未嘗見)’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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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전라도 남원에 사는 유학 노형제가 제출한 과지 / 盧亨濟 / NULL모년에 전라도(全羅道) 남원(南原)에 사는 유학 노형제(盧亨濟)가 제출한 과지이다. 이 문서는 그가 43세 때 사마시에 응시하여 제출한 과지이다. 참고로 그는 45세 때도 과거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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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책 형식의 시권 / 未詳 / NULL"임금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책(對策) 형식의 시권(試券)이다. 녹명(錄名) 부분이 없기 때문에 응시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시험점수는 차하(次下)며, 다만 문서의 오른쪽 중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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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형식으로 지은 시권 / 未詳 / NULL"부(賦) 형식으로 지은 시권(試券)이다. 시험과목은 부이고 시제(試題)는 일하주오색운(日下奏五色雲)이며, 시험점수는 차상(次上)이다. 그런데 시험점수를 검은색으로 썼다는 점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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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덕면 도월리에 거주하는 손병식이 작성한 백일장답안지 / 孫秉湜 / NULL모년에 전라도(全羅道) 광양현(光陽縣) 인덕면(仁德面) 도월리(道月里)에 거주하는 손병식(孫秉湜)이 작성한 백일장답안지이다. 시제는 ‘촌음을 아끼라(惜寸陰)’이며 형식은 장문(長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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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에 거주하는 오세첨의 시명지 / 吳世瞻 / NULL이것은 시권(試券)의 일부인 시명지(試銘紙)이다. 남원에 거주하는 오세첨(吳世瞻)이 23세 때에 과거에 응시하면서 작성된 것으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다. 하단에는 시험성적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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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에 정교환이 작성한 시권 / 鄭敎煥 / 1798"1798년(정조 22)에 실시한 식년진사시(式年進士試)에 정교환(鄭敎煥)이 작성한 부(賦)의 시권(試券)이다. 부는 특정한 제목을 제시하여 이에 관한 운문을 짓게 하는 시험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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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왕사각이 과거시험에 응시하였을 때 작성하여 제출했던 시권 / 王師覺 / 18841884년(고종 21) 왕사각(王師覺)이 과거시험에 응시하였을 때 작성하여 제출했던 답안지이다. 당시 왕사각은 49세의 나이로 남원에 살고있었다. 이때 시험제목은 ‘계명조우사방(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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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에 작성된 시권 / 未詳 / 1891"1891년(고종 28) 봄에 실시한 식년문과(式年文科) 전시(殿試)에 작자 미상의 인물이 작성한 송(頌)의 시권(試券)이다. 송의 시제(試題)는 윤문문왕극개궐후(允文文王克開厥後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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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에 한용진이 작성한 가옥 및 선주인 매매문서 / 韓龍鎭 / 1861"1861년(철종 12) 한용진(韓龍鎭)이 태어나 살던 초가(草家)집 사간(四間)을 비롯하여 집터, 대전(垈田), 산록(山麓) 그리고 선주인까지 등을 호조차인(戶曹差人) 장유여(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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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에 정공원이 작성한 시권 / 鄭公源 / 1892"1892년(고종 29) 8월 6일에 실시한 별시문과(別試文科) 초시(初試)에 정공원(鄭公源)이 작성한 책문(策問)의 시권(試券)이다. 이해의 별시는 신정왕후(神定王后)를 태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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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책 형식의 시권 / 未詳 / NULL"임금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책(對策) 형식의 시권(試券)이다. 녹명(錄名) 부분이 없기 때문에 응시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다만 문서의 오른쪽 하단 부분에 검은색으로 ‘삼황(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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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학준이 작성하여 백일장 대회에 제출한 시권 / 王學準 / NULL왕학준이 백일장(白日場)에 참여하여 제출한 답안지이다. 그는 이때 시를 지어 제출하였는데 제목은 ‘태사공문장 여상영지고슬추강상곡 종인불견(太史公文章如湘靈之鼓瑟秋江上曲終人不見)’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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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에 정류가 작성한 시권 / 鄭? / 1831"1831년(순조 31) 봄에 용담(龍潭)에서 실시한 식년문과(式年文科) 초시(初試)에 정류(鄭?)가 작성한 책문(策問)의 시권(試券)이다. 책문은 정치, 학문, 사회관습 등 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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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 청암에 거주하는 손동주가 작성한 백일장답안지 / 孫東注 / NULL모년에 경상도(慶尙道) 하동부(河東府) 청암(靑巖)에 거주하는 손동주(孫東注)가 작성한 백일장 답안지이다. 주제는 ‘석촌음(惜寸陰)’으로 장문을 지었는데 채점을 받은 흔적이 없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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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에 정교환이 작성한 시권 / 鄭敎煥 / 1791"1791년(정조 15)에 전라도(全羅道) 화순현(和順縣)에서 실시한 식년진사시(式年進士試) 초시(初試)에 정교환(鄭敎煥)이 작성한 부(賦)의 시권(試券)이다. 부는 특정한 제목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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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전라도 남원에 사는 노위가 제출한 과지 / 盧? / NULL"모년에 전라도(全羅道) 남원(南原)에 사는 노위(盧?)가 제출한 과지이다. 그는 본관이 풍천(豊川)이며, 학생 형제(亨濟)의 아들이고 할아버지는 조봉대부행 기린도찰방 등(?),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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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왕학준이 작성하여 관에게 발급한 시권 / 王學準 / 1913"왕학준(王學準)이 남원에서 개최된 백일장에 참석하여 제출한 답안지이다. 그는 이때 시를 지어 제출하였는데 시의 제목은 ‘지모야월명승소주지절벽하(至暮夜 月明 乘小舟 至絶壁下)’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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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책 형식의 시권 / 未詳 / NULL"임금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책(對策) 형식의 시권(試券이다. 생원시(生員試)에서 3등 제47인으로 급제했다는 소편지가 문서의 오른쪽 가운데 붙어 있다. 명지(名紙) 부분이 없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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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년에 정교환이 작성한 시권 / 鄭敎煥 / 1803"1803년(순조 3)에 전라도(全羅道) 구례현(求禮縣)에서 실시한 식년진사시(式年進士試) 초시(初試)에 정교환(鄭敎煥)이 작성한 부(賦)의 시권(試券)이다. 부는 특정한 제목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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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에 노 사복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 / 奴 士卜 / 18901890년(고종 27)에 노(奴) 사복(士卜)이 상전을 대신하여 충청도(忠淸道) 서천군(舒川郡) 서부면(西部面) 마동(馬洞)에 소재한 6칸 초가(草家)와 텃밭 3마지기를 방매하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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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 / 未詳 / NULL"이 시권은 언제 누구에 의해 작성된 시권인지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시명지(試名紙) 부분에는 작성자 본인의 직역·성명·본관·거주지와 사조(四祖)를 쓰도록 되어 있으나 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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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의 한 구절에 대해 시험을 치른 시권 / 未詳 / NULL"시경(詩經)의 한 구절에 대해 시험을 치른 시권(試券)이다. 즉, 시경의 불문역식불간역입(不聞亦式不諫亦入)에 대한 구절에 대해서 응시자가 답한 글이다. 녹명(錄名) 부분이 없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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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보성군에 사는 이병묵이 제출한 과지 / 李秉? / NULL전라도(全羅道) 보성군(寶城郡)에 살던 유학 이병묵(李秉?)이 생원시 초시(初試)에 응시하여 제출한 과지이다. 그는 ‘차중(次中)’의 점수를 받고 3인 38인으로 합격하였는데 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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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형식으로 지은 시권 / 未詳 / NULL"부(賦) 형식으로 지은 시권(試券)이다. 시험과목은 부이고 시제(試題)는 구유지(龜有知)이며, 응시자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시제 아래에는 ‘三之五十九’라는 등수가 적혀 있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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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유학 노등이 제출한 과지 / 盧? / NULL"모년에 유학 노등(盧?)이 사마시에 응시하여 제출한 과지이다. 그의 본관은 풍천(豊川)이며, 부는 사심(士?), 조는 진(?), 외조는 부안인(扶安人) 김효사(金孝思)이다. 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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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책형식의 시권 / 未詳 / NULL"임금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책(對策) 형식의 시권(試券)이다. 명지(名紙) 부분이 없기 때문에 응시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시험점수는 삼하(三下)이며, 다만 문서의 오른쪽 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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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년에 작성된 시권 / 未詳 / NULL"무신년 8월에 전라도(全羅道) 구례현(求禮縣)에서 실시한 식년생원시(式年生員試) 초시(初試)에 작자 미상의 인물이 작성한 오경의(五經疑)의 시권(試券)이다. 오경의는 오경, 곧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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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황지순이 81세에 부 형식으로 지은 시권 / 未詳 / NULL"유학(幼學) 황지순(黃至淳)이 81세에 부(賦) 형식으로 지은 시권(試券)이다. 명지(名紙) 부분이 남아 있는데, 이에 따르면 본관은 장수(長水)이고 거주지는 영동(永同)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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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전라도 남원에 사는 유학 노위가 제출한 과지 / 盧? / NULL모년에 전라도(全羅道) 남원(南原)에 사는 유학 노위(盧?)가 사마시에 응시하여 제출한 과지이다. 이 문서는 그가 32세 때 과거에 응시하여 제출한 과지이며 3년 전에도 응시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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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의 한 구절에 대해 시험을 치른 시권 / 未詳 / NULL"예기(禮記)의 한 구절에 대해 시험을 치른 시권(試券)이다. 예기의 ‘일유원양만국이정(一有元良萬國以貞)이란 구절에 대해서 응시자가 지은 글이다. 시험점수는 차하(次下)이고, 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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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고종 24)에 김영삼이 작성한 가옥 매매문서 / 金永三 / 1887"1887년(고종 24) 12월에 김영삼(金永三)이 작성한 가옥 매매문서이다. 김영삼은 어려워진 형편으로 인하여 지금 거주하고 있는 전라도(全羅道) 임실현(任實縣) 상북면(上北面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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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에 정공원이 작성한 시권 / 鄭公源 / 1881"1881년(고종 18)에 광주(光州)에서 실시한 감시(監試)에 정공원(鄭公源)이 작성한 부(賦)의 시권(試券)이다. 부는 특정한 제목을 제시하여 이에 관한 운문을 짓게 하는 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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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에 정교환이 작성한 시권 / 鄭敎煥 / 1804"1804년(순조 4)에 실시한 식년진사시(式年進士試) 회시(會試)에 정교환(鄭敎煥)이 작성한 부(賦)의 시권(試券)이다. 부는 특정한 제목을 제시하여 이에 관한 운문을 짓게 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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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형식으로 지은 시권 / 未詳 / NULL"시(詩) 형식으로 지은 시권(試券)이다. 시제(詩題)는 봉상재배상천만세수(奉觴再拜上千萬歲壽)이고, 시제 아래의 여백부분에 검은색으로 ‘육지(六地)’라고 기재되어 있다. 명지(名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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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아무개가 제출한 과지 / 未詳 / NULL모년에 생원시 초시(初試)에 합격한 자의 과지이다. 이 문서는 생원 3등 63인으로 합격한 자의 답안지인데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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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명향이란 구절에 대해 답한 시권 / 未詳 / NULL"유사명향(有斯明享)이란 구절에 대해 답한 시권(試券)이다. 명지(名紙) 부분이 없기 때문에 응시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시험점수는 차하(次下)이다. 문서의 오른쪽 하단 여백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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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년에 정직환이 작성한 시권 / 鄭稷煥 / 1783"1783년(정조 7)에 장수(長水)에서 실시한 식년생원시(式年生員試) 초시(初試)에 정직환(鄭稷煥)이 작성한 오경의(五經疑)의 시권(試券)이다. 오경의는 오경, 곧 역경, 시경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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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형식으로 지은 시권 / 未詳 / NULL"부(賦) 형식으로 지은 시권(試券)이다. 명지(名紙) 부분이 없기 때문에 응시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부제(賦題)는 편자노우견(便子路友見)이며 시험점수는 차하(次下)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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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면 도월리에 거주하는 손병원이 작성한 백일장답안지 / 孫秉元 / NULL광양면(光陽面) 도월리(道月里)에 거주하는 손병원(孫秉元)이 작성한 백일장답안지로 시(詩)이다. 조선시대 각 지방관청의 수령 주재 하에 유생을 대상으로 시제(試題)를 내걸고 즉석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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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윤욱호가 작성한 과지 / 尹旭浩 / NULL모년(某年) 전라도(全羅道) 임실현(任實縣) 강진면(江津面)에 사는 유학(幼學) 윤욱호(尹旭浩)가 64세 때 작성한 책문(策問)의 시권(試券)이다. 그는 문과방목이나 사마방목 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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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전라도 보성군에 살던 이병묵이 작성한 책문 답안지 / 李秉? / NULL모년에 전라도(全羅道) 보성군(寶城郡)에 살던 유학(幼學) 이병묵(李秉?)이 문과에 응시하여 작성한 책문(策問) 답안지이다. 응시자의 이름이 적힌 오른쪽 부분이 절단되지 않았으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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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에 윤생원댁 노 섬이가 작성한 가옥매매문서 / 尹生員宅 奴 暹伊 / 1893"1893년(고종 30) 윤생원댁(尹生員宅) 노(奴) 섬이(暹伊)가 윤생원댁 노(奴) 춘금(春金)에게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섬이나 춘금이 모두 윤생원 댁의 노복으로 되어 있는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