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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6601

    金永晦가 海南 林氏女의 효열에 관하여 7언 절구로 지은 글이다. 임씨는 진도에서 성장하여 해남 서민인 김씨 집안에 출가한 후 일찍 남편을 잃고 실명한 시아버지를 지성으로 모셨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02

    "무자년에 全景民이 오랫동안 경작해 오던 논 5두락지를 宗家에 바치면서 宗孫에게 작성해 준 成票이다. 이에 따르면, 전경민의 집안은 그의 증조모가 後娶로 들어오면서 종실 집안에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03

    "천안 이동훈 등과 안악 홍재명 등의 찬성명단이다. 아마도 1921년의 扶正? 설립이나 1922년의 제향 폐지 반대와 관련하여 동조한다는 내용 같은데, 천안군에서는 천안향교, 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04

    왕비(王妃)의 병이 나았을 때 쓰는 표현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05

    "병인년 4월 20일에 이상영(李商永)이 작성한 영락정기(永樂亭記)이다. 순천부(順天府) 쌍암면(雙岩面) 평지리(平地里)에 있는 영락정을 보수하면서 그 내력을 적은 기문이다. 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06

    "1864년(고종 1)에 양운필(梁雲弼)의 증손인 양영진(梁永鎭)이 작성한 양운필의 가장(家狀)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양운필(1765~1845)의 자는 만보(萬甫), 호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07

    구례 사립호양학교(求禮 私立壺陽學敎) 1학년생의 2학기 한문시험성적과 3학년 수신과(修身科) 학생들의 성적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08

    "경신년에 어떤 사람이 소작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소작 준 토지와 이들로부터 받은 소작료 등의 내용을 기록해 놓은 문서이다. 위에 이름을 써 놓고 그 아래에 분량을 기록해 놓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09

    "상량문(上樑文)이란 향교·서원·강당·누정·서재·서당 등 건물을 신축하거나 중수할 때 작성한 문건이다. 사량문의 내용은 건립배경, 건립시기, 연혁, 관련 인물, 건물의 기능, 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10

    1883년 박해창의 필적 / 朴海昌 / 1883
    1883년(고종 20년) 박해창의 필적이다. 대명 일월(大明 日月)이라고 썼으며 ‘8세에 쓴 글씨’라는 작은 종이가 붙어 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11

    "1867년(고종 4) 11월 24일에 황생원댁 奴 貴金이 상전을 대신해서 全羅道 興德縣 石湖村 포구의 수세공물권을 국서방댁에 200냥을 받고 팔았다. 포구권을 비롯한 관련문기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12

    "두보(杜甫)의 고백행(古栢行)이라는 시를 적어 놓은 문서이다. 이 시는 두보가 촉한(蜀漢)의 고국(사천성)에 다니러 가서 제갈공명(諸葛孔明)의 묘(廟)에 참례했다. 묘 앞에 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13

    "1820년(순조 20)에 평헌옹(萍軒翁)이 김태화(金太和)에게 보낸 시 두 수다. 앞의 시는 자기를 방문한 김태화에게 고마움을 표한 시이고, 뒤의 시에서는 시를 좋아하는 김태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14

    무신년 봄에 회문산인(回文山人) 조수민(趙壽民)이 지인의 회갑을 축하하면서 지은 시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15

    박해창이 지은 한시 / 朴海昌 / NULL
    박해창(朴海昌)이 쓴 한시이다. 7언으로 된 한시로 2수이다. 첫 번째 시는 가을 경치를 읊은 것으로 지난 삼년을 돌아보니 문득 수염은 서리 맞은 것 같으나 은거의 즐거움을 세상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16

    "임술년 3월에 이병수(李炳壽)가 지은 상량문이다. 풍산(楓山)에 있던 진양정씨(晉陽鄭氏)의 시조 향북당공(向北堂公)을 모신 사당이 낡아, 그 자리에 중건하며 지은 상량문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17

    정조대의 도목정사(都目政事)의 내용을 담은 문건이다. 이성원(李性源)이 병조판서(兵曺判書)로 있었던 시기는 정조 4년에서 10년 사이의 일이나 이 도목정이 언제 있었는가는 확실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18

    "강진미(康津米) 3만50석, 해남미(海南米) 1만60석 등, 전라도내 각 지역과 미곡량을 연이어 적고 중간에 ‘영납(營納)’으로 기재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도내 조미(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19

    "제사(祭祀)는 조상숭배를 위한 의례의 하나로, 망자(亡者)를 추모하는 의식이다. 조선시대에 주자의 『가례(家禮)』를 기본으로 삼아 제사를 지냈다. 제사의 유형은 대종(大宗)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20

    "1800년(정조 24)에 치준(穉準)과 김태화가 주고받은 시이다. 경신(1800)년 늦여름 서오릉에 있는 숙종의 능인 명릉(明陵)의 재실(齋室)에서 숙직하며 치준이 김태화와 각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21

    모년에 하정(荷亭)이 친구 김태화(金太和)를 생각하는 마음을 김태화의 시를 차운하여 표현한 것이다. “글도 필요하지 않고 시도 필요하지 않네. 생각하는 그 사람 단지 글의 밖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22

    "1817년(순조 17) 9월 16일에 李春發이 官役, 坊役, 軍役 등 각종 역을 長子와 長孫에 이르기까지 면제해주는 대가로 논 4두락지를 자원하여 상납하고, 大坊掌議인 河世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23

    1803년(순조 3)에 지인이 친구에게 보낸 시이다. 자연을 사랑하여 자연 속에 묻혀 사는 친구의 생활에 관하여 읊은 시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24

    작자 미상의 수연시 / 未詳 / NULL
    작자 미상의 회갑을 축하하는 수연시(壽宴詩) 두수이다. 각각 칠언이며 작자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첫수는 봄바람이 집에 가득하고 꽃이 피니 어린 시절이 어제와 같은데 회갑을 맞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25

    경오년 5월 22일 향교이장의(鄕校二掌議)가 110량을 장의(掌議)가 향중에 110냥을 예전(禮錢)으로 봉상한 후 작성한 문기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26

    박해창이 지은 한시 / 朴海昌 / NULL
    "박해창(朴海昌)의 한시이다. 칠언이며 봄의 풍광을 읊은 시이다. ‘낯익은 나뭇꾼과 고기잡이가 다시 만나니 정이 자라고, 산에 나막신을 신고 구름을 찾아 험한 길을 가니 저자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27

    무진년 2월에 해수(海秀) 등 5인에 의해 작성된 덕양재(德陽齋) 창건실기이다. 덕양재를 창건하기 위하여 병진년부터 10여 년간 기금을 모으기 시작하였으며 병인년에 서쪽 산에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28

    "이기설(理氣說)을 적은 글로 작성자와 작성년대를 알 수 없다. 내용 가운데 상대방을 노형(老兄)으로 부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거의 같은 동년배의 인물과 이기설에 관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29

    "1891년(고종 28)에 실시된 생원진사시의 방목(榜目), 즉 합격자 명단이다. 그런데 여기에 기재된 합격자의 명단을 보면 1891년에 실시된 식년생원진사시의 합격자도 포함되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30

    "작성연대와 작성자를 알 수 없는 잡기장(雜記帳)이다. 당시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있던 다양한 내용들이 적혀 있다. 예컨대 풍증에 침을 뜨는 방법, 축문을 쓰는 방법, 삼합(三合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31

    운서와 운와가 지은 시 / 雲棲 等 / NULL
    "모년에 운서(雲棲)와 운와(雲臥)가 지은 시이다. 운서와 운와가 심(深), 임(林), 심(尋), 음(吟) 네 자의 압운을 정하여 각각 칠언 절구 한 수씩을 지었다. 모두 속세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32

    모년에 대동계(大同?)를 조직하면서 작성한 서문과 절목(節目)이다. 해당 지역은 알 수 없다. 이 대동계는 조선후기 향촌사회에서 각종의 세금이 마을 공동납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33

    "1860년(철종 11) 6월 12일에 한용진이 전라도 흥덕현 석호촌의 포구권을 한양덕에게 300냥에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관련문기인 포구문권 1장과 절목, 완문, 풍헌문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34

    "모년에 연세수택을 제작하게 된 배경과 내역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연세수택에는 이 필첩을 만든 사람의 고조(高祖)부터 부친(父親)까지 4대의 간찰이 모아져 있다. 고조는 세대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35

    "기안(忌案)은 각 가문의 종손이나 종가며느리가 조상들의 기일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 문서이다. 이 문서는 왕씨가에서 조상들의 제사기일과 묘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작성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36

    모년에 물재(勿齋)가 두류귀로(頭流歸路)라는 시를 차운하여 지은 시이다. 내용은 주로 김태화(金太和)의 지리산 유람에 관한 것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37

    모년에 친구(親舊)가 김태화(金太和)의 방문을 받고 지은 시이다. 태화의 방문을 받고 도가풍의 오언 을시 두 수를 지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38

    모년에 관역(官役)을 담당할 자들의 이름과 관청 소속의 전답(田畓)을 적은 문서인 듯하나 정확한 내용을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승보(升保)니 정병(正兵)하는 표현으로 보아 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39

    "모년에 경상도(慶尙道) 하동부(河東府)의 정봉현(鄭鳳鉉)이 지은 천운재(川雲齋)의 기문(記文)이다. 서두에서 빈주(賓主)의 뜻을 말하고, 당(唐)나라 문인 한유(韓愈)의 “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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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40

    1860년과 1861년에 일어난 2가지 사건을 기록한 문기(文記)이다. ①1860년 윤3월 13일 충의공(忠毅公)의 시호(諡號)를 받은 통훈대부 진주목사 진주진병마첨절제사 증(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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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41

    "모년에 어떤 사람이 택일법을 기록해 놓은 문서이다. 여기에는 천지가 공(空)을 맞는 날이니 무슨 일을 하든지 좋지만 굿을 하거나 제사지내는 날로는 좋지 않은 천지대공망일(天地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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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42

    모년에 수양(首陽) 오정근(吳正根)이 금화선생(金華先生)을 사당에 봉안하면서 스승을 추모하며 작성한 봉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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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43

    "모년에 묵옹(?翁)이 쓴 운와암기(雲臥庵記)이다. 김태화의 운와암의 기문을 묵옹(?翁)이 썼다. 백운산 꼭대기에는 늘 구름이 있는데, 밝은 아침이나 해질녘 이면 더욱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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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44

    1885년(고종 22) 8월 10일에 정병호가 작성한 물방앗간 매매문서이다. 그는 순천 주암면 중도에 있는 물방앗간을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세를 놓았으나 중간에 사람이 떠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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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45

    모년에 어떤 사람이 형(刑)과 병(兵)에 관련된 내용을 기록해 놓은 문서이다. 이때의 형과 병은 경국대전에 기록되어 있는 형전과 병전에 관련된 내용을 필사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46

    박해창의 필적 / 朴海昌 / NULL
    박해창(朴海昌)의 필적이다. “불세(不世)의 공을 세우기는 쉬워도 지극히 은미한 본심을 보존하기는 어려우며 중원의 오랑캐를 물리치기는 쉬워도 자기 한 몸의 사의(私意)를 제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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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47

    "모년에 송오(松塢)가 김태화(金太和)에게 보낸 시이다. 김태화의 편지를 받고 동기(東耆)가 답장을 쓰고, 송오(松塢)가 태화에게 주는 시를 동봉하여 보낸 것이다. 시의 결연(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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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48

    개국(開國)506년 정유(丁酉)년에 민병석(閔丙奭)이 지은 휘릉(徽陵) 정자각(丁字閣) 중건상량문(重建上樑文)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49

    "고종 연간에 작성된 영기(營奇)이다. 영기는 각 도의 감영(監營)과 병영(兵營) 및 수영(水營)에서 일어났거나 처결된 사항 및 그곳들에 보고된 소식을 영저리(營邸吏)가 취사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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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50

    갑진년 11월 순찰사에 의하여 관인이 찍혀 있는 문서인데 용도를 알 수가 없다. 조병응(趙秉膺) 외 계 26매라는 문구도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전체 내용을 알 수 없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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