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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6651

    "소가(小家)와 종손가(宗孫家)에서 제전(祭田)의 도조(賭租)로 들어온 수입과, 제사로 지출된 내역을 상세히 적어놓은 것이다. 소가에서는 조고비(祖考?) 3위(位), 고조고비(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52

    "전라도 영암(靈巖) 주변 고을의 전최(殿最) 제목(題目)이다. 지은이는 명시하지 않았지만 필체로 보아 조재승(趙載升)이 쓴 글로 짐작된다. 전최(殿最)는 지방관(地方官)의 성적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53

    남원세음 / 未詳 / NULL
    "작성연대나 작성자, 수급자 등을 알 수 없다. 1행에 남원세음(南原細音)이라고 되어 있는데 ‘세음’은 우리말의 ‘셈’을 한자로 빌려 쓴 표기이다. 그러므로 이는 남원지역의 금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54

    "1801년 정월 초 4일에 태화가 보낸 시에 화답한 오언 배율이다. 작자 고은(高隱)이 명릉(明陵)에 재직 할 때 지었다고 했는데, 명릉(明陵)은 서오릉에 있는 숙종릉이다. 신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55

    "1826년(순조 26) 4월 30일에 현덕일이 흥덕현 난호리 후양 길음창에 있던 어전과 看水船 1척, ?木 4結을 이정각에게 23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56

    "광사(曠士)가 화초(華樵)의 시를 차운하여 지은 한시이다. 평범한 아침에 친구와 이별하고 나귀를 타고 가다 하황(夏黃) 농막에 이르러 잠을 자는데 동리구족 작은 정원의 남은 향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57

    을미년 6월 16일에 어느 진(鎭)의 북통(北統) 작통기(作統記)이다. 임학조(林學祚)를 통수로 하여 45호(戶)를 5호씩 묶은 다음 하단에 연장(連長)의 이름을 적었다. 연장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58

    "작성연대와 작성자를 알 수 없는 가학루 상량문(駕鶴樓上樑文)이다. 이 문서가 고령신씨가문의 소장문서의 하나이고, 소장문서 가운데 신좌모(申佐模)가 작성한 가학루중수상량문(駕鶴樓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59

    "기해년 화포전(火?錢)을 구별하는 문기로 총 1,120냔 5전 중 144냥 8푼은 봄의 포세전(?稅錢)으로, 150냥은 군기감의 관료(官料)로, 6냥 7전은 부서진 군고(軍庫)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60

    서림산인이 보낸 시 / 西林散人 / NULL
    모년에 서림산인(西林散人)이 보낸 시이나 누구에게 보낸 시인지는 알 수가 없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61

    모년에 윤효식(尹孝植)이 김태화(金太和0에게 보낸 詩이다. 윤효식이 고체시(古體詩) 16수를 써서 김태화에게 준 것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62

    "이 글은 후손이 연세수택을 제작하면서 이 필첩을 만들게 된 목적과 경위를 기록해 놓은 발문이다. 연세수택은 선조들이 자손들에게 보낸 간찰을 모은 것이다. 고조부터 부친까지 4세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63

    갑자년에 송낙헌(宋洛憲)이 친구를 위하여 지은 시이다. 앞에 붙인 이 시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사문 김국언(金國彦)이 ‘계은(溪隱)’ 두 자를 심석(心石)선생께 받아서 사는 당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64

    "신사년 12월에 백천(白泉) 신태휴(申泰休)가 이우헌(李愚軒)의 수연(壽筵)을 축하하면서 작성한 글이다. 그는 61세를 맞이한 이우헌이 90세의 건강한 모친을 모시고 있고, 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65

    "작성연대와 작성자를 알 수 없는 객사개건상세요목(客舍改建詳細要目)이다. 객사를 개건하는데 어느 부분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적어놓은 것이다. 예컨대 동서의 협문은 새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66

    1838년(헌종 4) 4월 11일에 김필련이 전라도 흥덕현 난물리에 있는 漁箭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김필련은 생계가 어려워지자 이 어전을 25냥과 石魚 25束을 받고 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67

    1889년 4월 그믐에 매천(梅泉) 황현(黃玹)이 지은 중준백운거기(重濬白雲渠記)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68

    "한창우(韓昌愚)가 청우령(靑愚令)의 수연(壽筵)을 축하하면서 작성한 글이다. 자신은 마음은 늙지 않았지만 이미 귀가 어두운 반면, 이제 61세를 맞이한 청우령은 눈도 밝고 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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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69

    "모년에 전주 이씨의 어떤 사람이 시류(詩流)의 제목과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의 가승을 기록해 놓은 문서이다. 한쪽 면에는 시류의 제목을 기록하였으며, 반대면에는 시류의 제목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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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70

    정은교가 지은 한시 / 鄭誾敎 / NULL
    "정은교(鄭誾敎)가 지은 한시이다. 7언 2수로 몽인유거(夢人幽居), 몽인우거(夢人寓居)란 제목의 시를 각각 차운하여 지은 것이다. 정은교는 해주 사람이며 호는 죽성재(竹醒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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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71

    임금의 병이 나았을 때 쓰는 표현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72

    "모년에 보소(譜所)에서 족보 편찬의 업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작성한 범례(凡例)이다. 보소의 위치, 단자(單子)의 납부 절차, 교정원(校正員)과 장재원(掌財員)의 임명 등의 사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73

    "표지에 ‘韓人’이라고 적어 성책(成冊)한 것으로, 옛 선현들의 명문(名文)을 한데 모은 것이다. 예컨대, 한 무제(漢武帝), 조보(趙普), 한신(韓信), 소동파(蘇東坡),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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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74

    "작자 미상의 산송(山訟) 소지(所志) 관련 문서이다. 7건의 서로 다른 산송 소지에 대한 작자 나름의 소회를 각기 짧은 글로 적은 것인데, 구체적인 연대나 작성자는 알 수 없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75

    "모년에 연세수택(聯世手澤)을 엮은 내력을 적은 기문이다. 고조는 세대가 오래되어서 간찰이 많지 않으며, 증조와 조부는 간찰이 70여 통, 부친은 겨우 10통이 전한다. 오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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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76

    "모년에 쓴 고은(高隱)의 시와 태화(太和)의 발문(跋文)이다. 역시 명릉의 재실에서 시는 고은이 쓰고, 발문은 태화가 썼다. 시는 세상을 외면하고 시에 몰두하는 김태화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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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77

    "1854년(철종 5)에 발급된 공명첩(空名帖)으로 장언권(張彦權)의 할아버지 장영도(張英都)를 통정대부(通政大夫)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임명한 것이다. 통정대부는 문신 정3품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78

    "1862년(철종 13) 8월 24일에 韓陽德댁의 奴 一福이 상전을 대신하여 전라도 흥덕현 석호촌의 포구권을 정참판댁에 3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이 포구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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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79

    신미년 8월에 석포(石圃) 이만시(李晩蓍)가 작성한 회룡당(會龍堂) 중수기(重修記)이다. 이만시는 경상도 산청(山淸)의 장위촌(長位村)에 우뚝 솟아있는 회룡당을 보고 많은 유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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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80

    1779년(정조 3)에 서림산인(西林散人)이 칠언 절구로 화답한 시이다. 누구의 시에 화답한 것인지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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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81

    "모년에 조정(朝廷) 밖에 있는 대신(大臣)이 조정에 있는 대신에게 편지를 보내며, 아울러 손자를 얻은 것을 축하할 때 쓰는 편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82

    "모년에 친구(親舊)가 김태화(金太和)에게 보낸 詩이다. 삼복더위가 다 가도록 소식이 없는 김태화가 그리워 홀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태화의 편지를 받고 기뻐서 지은 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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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83

    "1646년(인조 24)에 실시된 식년(式年) 생원진사시의 방목(榜目), 즉 합격자 명단이다. 원래 식년은 한 해 전인 1645년 을유년이며, 문서에도 ‘乙酉式年’으로 기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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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84

    "1569년(선조 2) 음력 5월(仲夏)에 작성된 발원문(發願文)이다. 김종조(金宗祖), 박광충(朴光忠), 나석(羅石) 등의 대시주(大施主)가 적은 발원문(發願文)으로 나라의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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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85

    "작성연대와 작성자를 알 수 없는 도산단소향례시파록(道山壇所享禮時爬錄)이다. 도산단에서 거행된 제향(祭享)에 참여하였던 제관(祭官)들의 명단을 적은 문서이다. 초헌관(初獻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86

    "모년에 어떤 사람이 이기화 등 소유의 산 면적을 기록해 놓은 문서이다. 이에 따르면 이기화는 임실군 둔덕면 대촌리 동쪽에 2,2754평을 비롯해서 3,8375평의 산을 소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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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87

    "1889년에 쓴 박해창의 필적이다. ‘大明日月, 小華乾坤(대명일월, 소화건곤)’이라 하여 앞 문서와 댓구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88

    모년에 묵옹(默翁)이 자기가 사는 마을을 시로 읊은 것이다. 묵옹은 김태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89

    1897년(광무 1) 2월 24일에 박준귀가 작성한 水砧매매문서이다. 박준귀는 남원 중방방 송정리에 있는 水砧을 150냥을 받고 팔았다. 매수인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아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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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90

    "작성연대와 작성자를 알 수 없는 속오군병부(束伍軍兵簿)의 일부로 추정된다. 이 문서에는 초관(哨官) 1명과 그에 소속된 속오군(束伍軍)의 이름들이 실려 있는데, 이들 노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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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91

    "작성연대와 작성자를 알 수 없는 문서이다. 성씨는 미상이며 이름이 단(檀)이며, 자가 자형(子馨)인 어느 인물의 생애를 간략히 요약한 글이다. 단은 1592년생으로 27세에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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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92

    "계묘년 8월에 작성된 남전서원사실(藍田書院事實)이다. 남전서원은 남원부 백파에 있었던 사우로, 죽헌(竹軒) 송현수(宋玹壽)를 주벽(主壁)으로 하여 백산(白山) 안귀행(安貴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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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93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198년 을유년(乙酉年)에 박건중(朴建中)이 외가의 독송(獨松) 충헌공(忠憲公) 시연(諡宴)을 차운한 시(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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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94

    "고은(高隱)윤효식(尹孝植)이 영남으로 내려가는 김태화에게 써 준 송별시와 거기에 김태화가 쓴 발문이다. 윤효식이 명릉 참봉을 할 때 만나 시를 주고받았던 김태화는 15년 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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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95

    모년에 운간노인(雲澗老人)이 지인에게 보낸 기문이다. 운간노인이 친구에게 부채와 시를 선물 받고 고마움을 나타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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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96

    1779년(정조 3)에 서림산인(西林散人)이 김태화(金太和)에게 보낸 시이다. 태화의 시에 서림산인이 칠언 절구로 화답한 시이다. 도가(道家)의 관조적이고 은둔적인 정서를 표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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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97

    "모년에 서림산인(西林散人)이 김태화(金太和)에게 화답한 시와 발문이다. 발문에 “어제 온 시는 읽으니 가슴이 시원하여 기쁩니다. 그러나 술술 나오는 시로써 어렵게 짜내는 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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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698

    모년에 치준(穉準)이 지은 시이다. 무심한 두 친구의 마음과 자연을 읊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699

    "1804년(순조 4)에 운간노인(雲澗老人)이 김태화에게 보낸 기문이다. 서울을 버리고 영남의 원학동(猿鶴洞)으로 내려가는 김태화를 송별하는 서(序)와 시를 운간노인이 썼다. 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00

    "1862년(철종 13) 3월에 박만형이 경기, 충청, 전라도 일대의 船旅閣 등의 권리를 넘기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박민형이 1,500냥을 받고 선려각 등을 넘긴 넘긴 지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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