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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6701

    "모년에 친구(親舊)가 김태화(金太和)에게 보낸 시이다. 장편 한 수, 오언 을시와 칠언 을시 각 한 수로, 모두 김태화의 시에 화답한 것들이다. “김군 태화는 옛날 추매(鄒枚)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02

    1767년(영조 43) 6월에 있었던 도목정사(都目政事)의 내용을 담은 문건이다. 문서에는 연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홍락성(洪樂性)이 이조판서로 재직하였던 실록의 기사로 미루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03

    "작성년대와 작성자를 알 수 없는 통도사사적(通度寺事蹟)이다. 통도사에 대한 간단한 사적을 적은 글이다. 통도사는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영축산(靈鷲山)에 있는 사찰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04

    1904년(고종 41)에 한영석(韓榮錫)이 황평(黃坪)에게 보낸 기문이다. 한영석이 황평을 위하여 소재기(素齋記)를 썼다. 소재는 황평의 호(號)다. 위의 소호기(素湖記)와 같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05

    "1779년(정조 3) 서림산인(西林散人)이 칠언 절구로 화답한 시이다. 누구의 시에 화답한 것인지 밝히지 않았으나, 이 시들은 1779년 무렵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06

    "1858년(철종 9)에 부백(府伯) 신좌모(申佐模)가 작성한 가학루 중수기(駕鶴樓重修記)이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신좌모(申佐模)가 작성한 ‘가학루중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07

    황현(黃玹)이 스스로를 위해 쓴 글이다. 자고로 성현 및 명장들의 기질은 총명하고 탁월하기가 남들보다 몇 배이며 어려서부터 경학 무술 공부를 했다하여도 신통한 경지까지는 못가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08

    "작성연대와 작성자를 알 수 없는 조선시대 국기일(國忌日) 일람이다. 즉 임금이나 왕후의 제삿날을 정월부터 12월까지 차례로 적어놓은 것이다. 명종비(明宗妃)였던 인순왕후(仁順王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09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으나 서원이나 사우를 건축(建築)하기 위해 만든 위원회(委員會)의 구성인들을 직책과 함께 적은 문서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10

    "을유년에 작성된 인리각방장원정차례전건기(人吏各房掌元定差例錢件記)이다. 글자 그대로 아전의 육방(六房) 중 분장(分掌)들이 서로 차등을 두어 돈을 갹출할 것을 정해놓은 것으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11

    1814년(순조 14) 12월 27일에 이완동이 작성한 여각권 매매문서이다. 그는 조상 때부터 내려오던 船旅閣 중에서 홍주(현 홍성) 관내의 소소양도를 김수흥에게 13냥을 받고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12

    "선비들이 일상생활에서 입는 여러 의복들을 나열하고 이를 활용하는 방법을 설명한 글이다. 먼저 겹옷(?衣), 홑옷(單衣), 여름옷(暑衣), 두루마기(周衣), 토시(吐手) 등 일상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13

    우전이 지은 한시 / 雨田 / NULL
    우전(雨田)이 지은 한시이다. 가을 저녁 친구와 이별하는 소회를 읊은 것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14

    모년에 지인(知人)이 파직되었다가 다시 서용(敍用)된 사람을 축하하는 글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15

    "작성연대와 작성자를 알 수 없는 제사진설도(祭祀陳設圖)이다. 조부 한 분과 조모 두 분을 모시는 제사의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을 표시한 것이다. 문서의 상단에 이 집안에서 도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16

    "작성연대와 작성자를 알 수 없는 속오군병부(束伍軍兵簿)의 일부로 추정된다. 문서 MOK_386과 동일한 문서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 문서에는 초관(哨官) 1명과 그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17

    "모년 정월 23일에 한용익(韓用翊)이 김태화(金太和)에게 보낸 기문이다. 한용익(韓用翊)이 김태화에게 써 준 칠언 배율, 오언 율시, 칠언 율시 각 한 수씩이다. 칠언 배율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18

    "▒자년 4월, 송명회(宋明會)가 지은 한시이다. 송명회는 전남 보성군 복내면 용전리(全南寶城郡福內面龍田里) 사람이며 호는 소파(小波)인데 평양의 연광정(練光亭) 풍경을 7언으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19

    "청금계(靑襟契)를 만들게 된 연유에 대해서 쓰여있는데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다. 구례향교는 한 때 공자의 제향을 받들지 못할 정도로 퇴락했는데, 이에 분개한 구례지역 유림들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20

    우전이 지은 한시 / 雨田 / NULL
    우전(雨田)이 지은 시이다. 7언으로 된 가을에 대한 단상이며 배면의 시는 다른 내용의 시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21

    "모년에 연강(蓮江)이라는 호를 가진 사람이 지은 칠언율시(七言律詩) 두 시이다. 위 시는 회혼례(回婚禮)를 축하한 것이고, 아래 시는 어떤 인물의 화상을 보고 찬미한 시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22

    "1866년(고종 3) 9월 6일에 정참판댁 奴 通伊가 상전을 대신해서 전라도 흥덕현 석호촌의 포구권을 3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이 포구권의 구문기를 비롯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23

    정미년 9월 11일에 최우섭(崔遇燮)이 천상(川上) 초려(草廬)의 시에 차운(次韻)하여 지은 칠언율시(七言律詩) 다섯 수와 선유(船遊) 시에 차운한 칠언율시 두 수를 적은 초고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24

    1823년(순조 23) 3월에 전라도(全羅道) 고부군(古阜郡)에 사는 이원형(李元亨)이 작성한 산송기록이다. 20여년 전인 1799년(정조 23)에 고창(高敞) 산내면(山內面)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25

    박해창(朴海昌)의 필적이다. 1889년 봄에 소화건곤(小華乾坤)이라 쓴 것으로 당시 박해창의 나이는 14살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26

    "임인년에 어떤 사람이 금전의 입출상황을 기록해 놓은 문서이다. 앞부분에 임인 8월 21일이라고 날자를 적어 놓은 다음에 김성여(金性汝)라는 사람 이름을 적어 놓은 것으로 보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27

    원자(元子)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 축하하는 표현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28

    모년에 친구(親舊)가 김태화(金太和)에게 보낸 시이다. 시를 써 보내며 상대방의 시를 요구하고 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29

    갑오년 12월 초1일에 작성된 남원고(南原庫) 수직번기(守直番記)이다. 6일부터 11일까지 하루에 5명씩 수직을 서야 할 사람의 명단을 적었고 각각 통수(統首)를 두었다. 각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30

    "을미년 5월 15일에 작성된 순사행차차비기(巡使行次差備記)이다. 순사가 행차하는데 대비하여 작성된 것이다. 임준항(林俊恒)이 전참탐리(前站探吏)와 경삼탐리(境上探吏) 역할을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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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731

    세자(世子)가 관례(冠禮)를 올렸을 때 축하하는 표현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32

    석하선생의 시와 시평 / 錦此先生 / NULL
    금차선생(錦此先生)이라는 필명의 인물이 석하선생(石荷先生)의 시(詩)를 별지에 모사한 다음에 이에 대한 자신의 평을 또다른 별지에 적어놓은 것이다. 시의 내용은 가을이 다가오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33

    1865년(고종 2) 1월 3일에 김관영이 작성한 어전매매문서이다. 김관영은 전라도 흥덕현 난물리 후양 길음창에 있던 어전과 抹木을 130냥을 받고 유응심에게 팔았다. 매매사유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34

    "작성연대와 작성자를 알 수 없는 목판본개각교정일람(木版本改刻校正一覽)이다. 어느 목판본인 지는 알 수 없으나, 각 목판의 誤字를 하나하나 들면서 이를 특정한 글자로 고칠 것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35

    "정축년에 전라도겸순찰사가 진산(珍山)과 능주(綾州), 임실(任實)의 수령에게 보낸 감결(甘結)이다. 감결은 상급관청에서 하급관청으로 발송하는 문서 중의 하나로, 주로 관찰사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36

    "某年에 유연(悠然), 유수관(流水觀), 운와(雲臥), 홍원(弘遠) 등 네 사람이 쓰러져 가는 절에서 자며 느낀 감상을 각각 한 수씩 읊었다. 운와는 김태화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37

    "어떤 사람의 운수를 주역을 이용하여 풀이한 글이다. 이 문서의 왼쪽 부분을 보면 책으로 묶을 때 뚫었던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책에서 찢겨 나온 일부분으로 보인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38

    "모년에 조미(租米)의 봉류(捧留) 현황을 기록한 문서이다. 봉류는 바친 물건을 거두어 보관해 두는 것을 가리킨다. 문서 작성 연대와 작성 장소, 그리고 작성자가 밝혀져 있지 않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39

    모년에 서림산인(西林散人)이 김태화(金太和)에게 화답한 칠언 절구의 시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740

    "4월에 석정(石亭)과 매천(梅泉)이 구안실(苟安室)에 모여 지은 글이다. 석정과 매천은 4월에 전라도(全羅道) 구례현(求禮縣) 청산면(靑山面) 만수동(萬壽洞)에 있던 대강(大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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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741

    "이 규칙은 전라도 구례현 문척면(文尺面)에 있던 마을 서당 즉 이재(里齋)의 규칙 또는 규약을 기록한 것이다. 내용은 학생들이 알아야 할 도리와 학생들의 수학 내용을 기록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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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742

    1779년(정조 3)에 서림산인(西林散人)이 김태화(金太和)에게 보낸 시이다. 태화의 시에 서림산인이 칠언 절구로 화답한 시이다. 도가(遵家)의 관조적이고 은둔적인 정서를 표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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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743

    "모년에 작성된 조지세의 시이다. “하늘이 나에게 너무 정이 없어 종일토록 개이지 않고 부슬부슬 비가 내리네. 게으른 말을 타고 진흙길에 먼 들판을 내달리니 벽 사이 아름다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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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744

    "1836년(헌종 2) 12월 12일에 서윤정이 작성한 여각권 매매문서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매입하여 收稅해 오던 강경 포구 소재 다섯 마을에 대한 여각의 권리를 원기용에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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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745

    세자(世子)가 혼례(婚禮)를 올렸을 때 축하하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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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746

    "작성연대 및 작성자 미상의 전라도산천안내문(全羅道山川案內文)이다. 도내 전주, 나주, 김제, 남원, 옥구, 함평, 태인 등 각 지역에 대하여 한 두 행으로 그 특징을 간략히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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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747

    "수년간 지속되어온 계에서 계원들에게 받았던 금액을 기록한 책이다. 무술년, 기미년, 경신년까지 계원들에게 받은 금액을 기록하였다. 박한종(朴漢鍾)은 30냥을 완납했고, 이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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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748

    모년에 하정자(荷亭子)가 집을 짓고 지은 시이다. 하정자가 서운조흥(棲雲釣興)이라는 제목으로 칠언 절구 12수를 지어 속세를 등지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유유자적하는 김태화(金太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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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749

    모년에 권봉진(權鳳鎭)이 황평(黃坪)에게 보낸 시이다. 황평(黃坪)의 회갑을 축하하는 시를 방호(方壺) 권봉진(權鳳鎭)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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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750

    "전문표(全文杓)가 작성한 석헌상사선생함벽정운(石軒上舍先生涵碧亭韻)이다. 석헌은 관련문서에 따르면 신창휴(申昌休)로 추정된다. 아마 석헌이 함벽정을 지은 것을 축하하며 운(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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