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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작성된 최상찬과 최창린 부자의 가장 / 未詳 / NULL"모년에 작성된 전라도(全羅道) 고부군(古阜郡) 성포면(聲浦面) 승동(昇洞)에 살았던 최상찬(崔尙纘)과 최창린(崔昌麟) 부자의 가장(家狀)이다. 고종 말년에 작성되었으나 찬자(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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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황원이 작성한 주모안명가 / 黃瑗 / NULL"황원(黃瑗)이 지은《강호여인고(江湖旅人稿)》에서 좋은 구절을 베껴 써놓은 것이다. 크게 세 부분을 베껴 놓았는데 첫 번째는 별책(別冊) 39면(面)에 나오는 ""화익산김매하근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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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에 김황이 작성한 귀계재상량문 / 金榥 / NULL"기축년에 김황(金榥)이 작성한 귀계재상량문(龜溪齋上樑文)이다. 김황은 영남의 대유학자로 조선의 마지막 유학자로 불리우는 인물이다. 호는 중재(重齋)이다. 그러나 귀계재(龜溪齋)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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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자가 집을 짓고 지은 시 / 荷亭子 / NULL"모년에 하정자(荷亭子)가 서운동(棲雲洞)에 집을 짓고, 그 집 이름을 운서(雲棲)라고 붙이고 지은 기문이다. 나무 의자, 차 화로, 책상, 필가 등과 벼루, 거문고, 바둑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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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년에 김봉립이 작성한 어전 매매문서 / 金奉立 / 18471847년(헌종 13) 10월 10일에 김봉립이 작성한 어전 매매문서이다. 이 어전은 그의 형이 생전에 매입하여 사용하다가 형이 죽은 후 수년간 묵혀 두었던 곳인데 김대일에게 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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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에 작성된 이건환안시도기 / 未詳 / NULL"병자년 11월 24일에 작성된 이건환안시도기(移建還安時到記)이다. 87명의 이름만 적혀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다. 추측컨대, 어떤 위패를 새로 지어진 봉환장소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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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 배명수가 작성하여 황씨부인의 죽음에 조의를 표명한? 기문 / 裵明洙 / NULL"타인의 상사(喪事)에 조의를 표명하는 글이다. 본서에 수록된 문서는 정유년(丁酉年) 6월 1일에 배명수(裵明洙)가 작성한 조사이다. 망자(亡者)는 열녀 황씨부인이다. 황씨부인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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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창이 지은 한시 / 朴海昌 / NULL박해창(朴海昌)이 지은 한시이다. 7언 1수로 가을 날 매미소리에 대한 단상을 읊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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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가 홍역을 무사히 치렀을 때 쓰는 표현 / 未詳 / NULL세자(世子)가 홍역(紅疫)을 무사히 치렀을 때 쓰는 표현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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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선공감역 이승의가 오대영의 문집발간을 위하여 작성한 발문 / 李升儀 / NULL모년에 선공감역(繕工監役) 이승의(李升儀)가 작성한 묵은공(?隱公) 오대영(吳大英)의 문집에 실은 발문이다. 오대영의 자서(自序) 1편과 약간의 시들을 모아서 문집을 발간하는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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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능산이 쓴 운와암기와 고시 / 菱山 / NULL모년에 능산(菱山)이 쓴 운와암기(雲臥庵記)와 고시(古詩) 한 수다.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영남의 백운산 중에 있다고 한 운와암의 주인은 김태화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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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에 박건중이 독송 충헌공 시연을 차운한 시 / 朴建中 / 1825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198년 을유년(乙酉年)에 박건중(朴建中)이 독송(獨松) 충헌공(忠憲公) 시연(諡宴)을 차운한 시(詩)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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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친구가 김태화에게 보낸 시 / 親舊 / NULL모년에 친구(親舊)가 김태화(金太和)에게 보낸 시이다. 김태화의 상춘시(賞春詩)에 화답하여 김태화를 생각하는 마음을 나타낸 시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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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창이 지은 한시 / 朴海昌 / NULL박해창(朴海昌)이 지은 한시이다. 칠언으로 앞부분 일부 내용이 따로 있는 것으로 보이며 배면의 시는 다른 내용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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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초가 지은 한시 / 玉蕉 / NULL옥초(玉蕉)가 지은 한시이다. 칠언시로 봄 경치에 대한 감상이다. 붉은 복숭아는 봄물에 신선을 찾고 개와 닭의 편한 잠은 한낮이 길다. 흉년에 오히려 번다한 주례(酒禮)지만 차마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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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에 조희엽이 작성한 창고매매문서 / 趙羲曄 / 1853"1853년(철종 4) 6월 4일에 조희엽이 박인직에게 작성해 준 창고매매문서이다. 조희엽은 자기가 사두었던 경기도와 충청도, 그리고 전라도 등지의 창고를 880냥에 박인직에게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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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김태화에게 보낸 시 / 親舊 / NULL"모년에 친구(親舊)가 김태화(金太和)에게 보낸 詩이다. 자기가 사는 곳을 태화가 방문할 경우를 가정하여 쓴 글이다. 어떤 사람이 골짜기에 왔다. “선생은 무슨 일로 골짜기에 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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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에 박건중이 독송 충헌공 시운을 차운한 시 / 朴建中 / 1825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198년 을유년(乙酉年)에 박건중(朴建中)이 독송(獨松) 충헌공(忠憲公) 시운(諡韻)을 차운한 시(詩)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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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년에 작성된 기문 / 未詳 / NULL"기사년 11월 19일에 작성된 기문(記文)이다. 작성자는 알 수 없으며 다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전라도(全羅道) 순창(淳昌), 복흥(福興), 충청도(忠淸道) 옥천(玉川)지역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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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황현이 작성한 만옹해 / 黃玹 / NULL"황현(黃玹)이 만옹(晩翁)이 자신의 호를 만옹이라고 한 것에 대하여 의견을 설명한 글이다. 여기서 해(解)는 의혹을 푸는데 쓰는 글의 한 방식이다. 만옹(晩翁)은 나이 40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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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에 홍순주가 귀향하는 진주탁에게 써준 서문 / 洪淳柱 / NULL병술년 11월 20일경 홍순주(洪淳柱)가 진주탁(晉柱鐸)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면서 써준 서문(序文)이다. 주탁은 남원(南原) 사람인데 태어나서 한 달이 못되어 어머니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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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께 존호를 올렸을 때 쓰는 표현 / 未詳 / NULL임금께 존호(尊號)를 올렸을 때 쓰는 표현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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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택이 박해창에게 보낸 한시 / 沈星澤 / NULL"심성택(沈星澤)이 박해창에게 보낸 한시이다. 심성택은 정와대인(靖窩大人:박해창)을 여러 날 생각하였으나 볼 수 없다가 꿈속에서 만나 말을 하고, 같이 금강산의 유암(楡菴)을 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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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백락륜이 작성하여 황현에게 발급한 기문 / 白樂倫 / NULL"백낙윤(白樂倫)이 매천(梅泉)을 생각하면서 지은 글이다. 백낙윤(白樂倫)의 호는 겸산(兼山)으로 순천부사(順天府使)와 남원관찰사(南原觀察使)를 지냈고, 시문(詩文)으로 매천 황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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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왕씨가문이 작성하여 미상에게 발급한 기문 / 王氏家門 / NULL"누가 언제 작성하였는지가 명시되어 있지 않아 알 수 없으나 구례에 세거(世居)하던 개성 왕씨댁에서 출가하는 딸에게 주기 위해 작성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은 조선시대에 널리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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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관례를 올릴 때 쓰는 표현 / 父 / NULL아들이 관례(冠禮)를 올릴 때 하는 표현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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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에 김병연이 작성한 상석 매매문서 / 金丙聯 / NULL임인년 8월 20일에 山主인 김병연이 작성한 床石 매매문서이다. 그가 이동면 서우동 아래 산 증외가 房氏山의 상석 하나를 5냥을 받고 판다는 내용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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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어떤 사람이 이름을 박준엽으로 바꾸면서 작성한 작명서 / 未詳 / NULL"모년에 어떤 사람이 이름을 박준엽(朴俊燁)으로 바꾸면서 작성한 작명서이다. 박준엽은 계축년 12월 3일 술시에 태어났으며 자(字)는 준명(俊明)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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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연대 및 작성자 미상의 소지 / 未詳 / NULL"작성연대와 작성자를 알 수 없는 소지(小紙)이다. 소지는 글자 그대로 조그마한 쪽지에 쓴 일종의 메모를 뜻한다. 이 문서는 향집사(鄕執事)를 자원하는 사람이 없으니, 월령(月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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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에 기성전을 이건하고 작성한 목록 / 未詳 / NULL임진년에 기성전(箕聖殿)을 이건(移建)하고 그 내력을 작성한 목록(目錄)이다. 이에 따르면 기축년에 함흥(咸興)에 거주하는 한석규(韓錫奎)가 꿈에 기자(箕子)의 영혼을 접(接)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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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고종 25)에 적간형리 양남극이 작성하여 남원부에 제출한 적간기 / 摘奸刑吏 梁南極 / 1888"1888년(고종 25) 정월 18일에 적간형리(摘奸刑吏) 양남극(梁南極)이 작성한 적간기(摘奸記)이다. 적간형리 양남극이 남원 둔덕방(屯德坊) 대야촌(大也村)의 이기백(李起白)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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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7년 6월의 도목정사의 내용을 담은 문건 / 未詳 / 1767"1767년(영조 43) 6월에 있었던 도목정사(都目政事)의 내용을 담은 문건이다. 문서에는 연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홍락성(洪樂性)이 이조판서로 재직하였던 실록의 기사로 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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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손 용식이 족대부 석헌의 수연을 축하하면서 작성한 글 / 族孫 龍植 / NULL"모년에 족손(族孫) 용식(龍植)이 족대부(族大父) 석헌(石軒)의 수연을 축하하면서 작성한 글이다. 평생을 인(仁)과 선(善)으로 살아오신 할아버지께서 육순의 행복을 누리는 것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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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 3월에 어떤 사람이 기록한 방곡기 / 未詳 / NULL경신년 3월에 어떤 사람이 기록한 방곡기(放穀記)이다. 그는 증조부가 만든 계에 이석 16두와 안산 문중에 1석 등을 내 놓았다가 안산문중에서 다시 받아 들인 것까지 기록하고 있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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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께 존호를 올렸을 때 축하하는 표현 / 未詳 / NULL대비(大妃)께 존호를 올렸을 때 축하하는 표현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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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모가 작성한 신상사석헌함벽정운 / 禹模 / NULL"우모(禹模)가 작성한 신상사석헌함벽정운(申上舍石軒涵碧亭韻)이다. 석헌은 운(韻)에 이어 소개된 함벽정 창건의 내력으로 미루어 신창휴(申昌休)로 추정된다. 아마 석헌이 그 부모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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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황평이 광한루와 내장산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 / 黃坪 / 1900"1900년(고종 37)에 황평(黃坪)이 지은 시이다. 이 시는 두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시의 내용은 다음과. 첫째 시는 광한루에서 광한루의 현판에 있는 시를 차운하여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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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에 발급된 추증공명첩 / 國王 / 18931893년(고종 30)에 발급된 공명첩(空名帖)이다. 이는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임명된 자의 어머니에게 정부인의 작호를 추증(追贈)하는 교지(敎旨)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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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4년에 김만추가 오진사댁 노 돌지에게 작성한 기타매매문서 / 金萬秋 / 1664"1664년(현종 5) 3월 13일에 김만추가 오진사댁 노 돌지에게 柴場과 밭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김만추는 영광군 홍농면 덕림산에 있는 시장 70마지기를 木 52疋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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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황평이 광한루의 현판에 있는 시를 차운하여 지은 시 / 黃坪 / 1900"1900년(고종 37)에 황평(責坪)이 지은 시이다. 황평이 지은 칠언 율시 세 수다. 첫째 시는 광한루에서 광한루의 현판에 있는 시를 차운하여 지은 것이고, 둘째 시는 190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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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에 신좌모가 작성한 송두신문 / 申佐模 / NULL"신사년에 신좌모(申佐模)가 작성한 송두신문(送痘神文)이다. 이 문서에는 저자가 밝혀져 있지 않지만, 본 문서가 소장된 고령신씨가문의 일원인 신좌모의 문집인 ??담인집(澹人集)?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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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에 신좌모가 작성한 가학루중수상량문 / 申佐模 / 1858"1858년(철종 9)에 부사(府使) 신좌모(申佐模)가 작성한 가학루 중수상량문(駕鶴樓重修上樑文)이다. 문서에는 ‘府使 申OO’라고만 적혀 있으나, 신좌모의 문집인 ??담인집(澹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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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좌모가 작성한 동대문상량문 / 申佐模 / NULL"신좌모(申佐模)가 작성한 동대문상량문(東大門上樑文)이다. 이 문서에는 저자가 밝혀져 있지 않지만, 본 문서가 소장된 고령신씨가문의 일원인 신좌모의 문집인 ??담인집(澹人集)??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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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좌모가 작성한 눌리문상량문 / 申佐模 / NULL"신좌모(申佐模)가 작성한 눌리문상량문(訥里門上樑文)이다. 눌리문은 고려의 수도 개성에 있던 내성(內城)의 문으로, 조선조에 들어와서 다시 축조되었다. 이 문서에는 저자가 밝혀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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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 나오는 내용을 풀이한 문서 / 未詳 / NULL"<논어(論語)>를 비롯한 사서(四書)에 나오는 군자(君子)의 모습에 대한 논의와 어떤 공부를 행해야 하는 지를 설명한 문서이다. 군자는 존성(存省)공부에 힘써야 하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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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에 신좌모가 작성한 경주김씨족보서 / 申佐模 / 1873"1873년(고종 10)에 가의대부(嘉義大夫) 전 행이조참판(前行吏曹?判) 겸 동지경연춘추관성균관의금부사(兼同知經筵春秋館成均館義禁府事)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 신좌모(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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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섭이 지은 만장 / 宋璟燮 / NULL宋璟燮이 죽은 이를 애도하며 지은 輓章이다. 송영섭은 망자와 특별한 친분을 맺고 이 글을 작성하여 영전에 바쳤다. 망자의 업적과 지난 날을 회고하고 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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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산후예 이시용이 쓴 만장 / 李時溶 / NULL"이시용이 쓴 만사이다. 누구를 위해 쓴 것인지 알 수 없으나 ‘龜山’이 지명이라면, 순창군 동계면 귀미리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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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 김성수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장 / NULL / NULL"인촌 김성수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지은 만장이다. 3편의 7언절구가 쓰여 있다. 내용인즉 김성수가 나라를 위해 세운 공적을 칭송하면서, 그의 죽음을 하늘과 인간세상의 희비 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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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에 진관성이 작성한 어전 매매문서 / 陳寬性 / 1839"1839년(헌종 5) 6월에 진관성이 흥덕현 심원면 난물리에 있는 漁箭과 看水船 1척, 抹木 5結을 150냥을 받고 이영중에게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진관성은 이 어전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