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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6801

    모년에 정순권(鄭淳權)이 동암 최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85세로 일생을 마감한 최공은 학문뿐만 아니라 언행도 다른 사람의 모범을 보였으며 그러한 품성은 후손에게까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802

    모년에 정채호(鄭采鎬)가 동암 최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그는 선군(先君:최공)과 오랫동안 교유를 맺으면서 돈독히 가르침과 은혜를 입었는데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듣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803

    모년에 정채호(鄭采鎬)가 동암 최공(東庵 崔公)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장(輓章)이다. 그는 최공과 60여년을 교유를 맺으면서 돈독히 가르침과 은혜를 입었는데 갑자기 죽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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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04

    "모년에 이교엽(李敎曄)이 죽은이를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망인(亡人)은 알 수 없다. 망인과 이교엽 간의 관계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평소에 그를 존경했거나 흠모하였던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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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05

    모년에 이종환(李琮桓)이 동암 최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85세로 인생을 마감한 공의 죽음에 대해 영전에 통곡하며 눈물 흘리고 그의 발자취나 모습은 가슴에 보배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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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06

    모년에 이국원(李國源)이 동암 최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최공은 학문에 늘 힘쓰고 성정이 맑고 깨끗해서 허물이 없었다고 하면서 공의 인품에 대해 칭송하였다. 하루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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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07

    모년에 박병규(朴昞圭)가 동암 최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최공은 타고난 품성이 자혜롭고 온순하며 90세를 사는 동안 늘 다른 사람의 추앙을 받았다고 하면서 그가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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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08

    모년에 신창(新昌)의 표정준(表正埈)이 어른의 죽음에 통곡하면서 애도를 표한 만사이다. 고인의 평소 행적과 집안의 화목과 복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또 그의 예기치 못한 죽음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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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09

    모년 전영구가 쓴 만장 / 全永玖 / NULL
    "모년에 완산(完山)의 전영구(全永玖)가 죽음을 애도하며 쓴 만사이다. 그는 세상의 어려움과 고생의 바다를 수많은 사람이 겪으면서 편안하고 복 있는 날이 얼마나 되는지 묻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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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10

    "모년에 족질(族姪) 돈영(墩永)이 족숙의 죽음에 통곡하면서 바친 만사이다. 그는 족숙이 옛 기색을 갖추고 세상의 추이를 좇지 않았던 것과 근검으로 가업을 이어가고 순박함과 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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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11

    "1825년(순조 25) 2월 18일에 김성갑이 작성한 여각매매문서이다. 그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陽山 9庫, 泰安 17庫, 龍川 등지의 여각에 대한 권리를 400냥을 받고 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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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12

    모년 척종제(戚從弟) 성산(星山) 배헌(裵?)이 척형(戚兄) 이교관(李敎官) 영전에 통곡하면서 바친 만사이다. 그는 고인이 순후하게 마음을 가지고 몸을 신칙하여 일생동안 인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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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13

    "모년에 풍천(豊川) 노원식(盧源植)이 돌아가신 춘강(春江) 안공(安公)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고인이 혼탁한 세상에 버젓함을 회복시켜 오랜 바람으로 한 고을을 장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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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14

    모년에 이동은(李東恩)이 동암 최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공은 효성스럽고 우애로운 성품을 지녔음은 물로 학문적으로도 뛰어나 모든 유생들의 추앙을 받았다고 하면서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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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15

    모년에 이종호(李從鎬)가 동암 최공의 영전에 바친 만사이다. 남주(南州)의 선비들 중에 단연 으뜸인 공은 80여 세로 일생을 마감하였으며 이미 선조들 때부터 가문의 명성이 자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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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16

    모년에 형으로 칭하는 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보낸 별고(別告)이다. 팔순에 이르기까지 건강하게 살던 형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자 이를 슬퍼하며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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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17

    모년에 유장우(柳長佑)가 동암 최공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쓴 만사이다. 그는 80세 동안 생을 살면서 옥설(玉雪)과 같이 고결한 모습으로 세속에 물들지 않고 남주(南州)의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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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18

    모년에 권옥현(權玉鉉)이 동암 최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85세로 일생을 마감한 최공의 인품에 대해 칭송하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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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19

    모년에 곽상문(郭祥汶)이 동암 최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최공은 풍채부터 보통 사람과는 달리 비범하며 학식과 언변이 당대 최고였으며 또 늘 교유를 하거나 담소를 나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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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20

    을해년 12월 26일에 배문철(裵文喆)이 죽은 이를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망인은 동암 최공으로 추정된다. 망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그는 작(爵)·치(齒)·덕(德)을 모두 갖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821

    모년에 한동석(韓東錫)이 성암(誠菴)을 애도하며 쓴 만사이다. 한동석이 성암(誠菴) 이공(이공)의 영전아래에서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그를 추모하면서 쓴 만사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822

    1884년(고종 21) 정월에 山人 哲鑑이 어느 절에 논 2마지기와 돈 35냥을 헌납하면서 작성한 명문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823

    모년에 족질(族姪) 조영(祚永)이 두 번 절하고 통곡하면서 바친 만사이다. 그는 먼저 시례(詩禮) 동호댁(東湖宅)이 덕인(德人)을 낳으니 대대로 전해온 부조(父祖)의 업을 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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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24

    모년에 족질(族姪) 조영(祚永)이 두 번 절하고 통곡하면서 바친 만사이다. 그는 시례(詩禮) 동호댁(東湖宅)이 덕인(德人)을 낳아 풍류가 뛰어났고 행동과 의리가 마을에 저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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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25

    모년에 윤두식(尹枓植)이 동암 최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만사이다. 최공의 학덕과 문장의 훌륭함을 칭송하고 아울러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인생의 쓸쓸함을 노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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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26

    모년에 거창(居昌)의 신정구(愼定九)가 어른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만사이다. 고인이 평생 어질고 장수하여 고을을 빛나게 하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정황을 이야기하고 고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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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27

    모년에 최명중(崔明重)이 주산(住汕) 이선생(李先生)을 애도하며 작성한 만사(輓詞)이다. 고인이 살던 옛터에서 생전에 흰 수염에 선풍(仙風)이 그윽했던 지난 날의 모습을 회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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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28

    "모년에 김헌수(金憲洙)가 동암 최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그는 최공이 죽은 것이 마치 남주(南州)가 텅 빈 듯 하다고하면서 빈자리에 대한 허전함과 후학들에게 끼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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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29

    모년에 이헌주(李憲柱)가 동암 최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공은 80여세의 장수를 누렸고 자손들도 번창하여 살아생전에 많은 복을 누리고 떠났다고 하면서 그의 영결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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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30

    계미년 10월 8일에 강진(康津)의 안진수(安鎭守)가 벽진(碧珍) 이공(李公)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가사이다. 그는 처사 이공이 죽은 날이 돌아오자 그의 영전에 재배하고 통곡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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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31

    모년에 이윤덕(李潤德)이 동암 최공의 죽음을 애도하기위해 쓴 만사이다. 그는 최공과 부친이 서로 막역한 사이로 지냈기 때문에 최공을 늘 아버지처럼 모셨으며 또 좋은 가르침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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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32

    모년에 서산(瑞山)의 정환봉(鄭煥琫)이 이교관(李敎官) 영전에 올린 만사로 고인의 출신과 행적 등을 이야기한 뒤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즉 그는 고인이 시와 예의 가문에서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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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33

    "1840년(헌종 6) 12월 20일에 이주영이 흥덕현 난물리 후양 길음창에 있는 어전과 간수선 1척, 抹木 5結을 모두 100냥을 받고 김봉왕에게 팔았다. 이주영은 이 어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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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34

    모년에 윤근식(尹覲植)이 동암 최공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쓴 만사이다. 그는 경제(經濟)와 문사(文詞) 양쪽을 모두 겸비하였다고 하면서 그의 학덕에 대해 칭송하고 지금 이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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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35

    모년에 김상정(金相晶)이 동암 최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그는 덕망 높은 노인이 저 세상으로 갔다고 하면서 최공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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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36

    "모년에 조종관(趙鍾瓘)이 이사석(李師錫, 1765-1834)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장이다. 이사석은 전라도(全羅道) 남원(南原)에 살았던 전주이씨로 학자로 널리 이름을 떨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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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37

    정유년 6월에 1일에 배명수(裵明洙)가 황씨부인(黃氏夫人)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조사(吊辭)이다. 효부(孝婦)이자 열녀(烈女)로 향리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고인을 추모하면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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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38

    모년에 정기연(鄭璣淵)이 성암(誠?)을 애도하며 쓴 만장이다. 정기연이 동문수학한 성암을 애도하며 만사(軌詞)를 지어서 그를 추모하였다. 성암은 위에 나온 바 있는 성암(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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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39

    "모년에 장재식(蔣在植)이 이교관(李敎官)의 영좌(靈座)에 올린 만사이다. 주로 이교관의 집안에 대한 칭송과 교관의 평소의 덕과 업적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교관은 이름과 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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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40

    모년에 김규익(金奎翼)이 동암 최공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그의 영전에 바친 만사이다. 최공은 선대 탁죽옹(卓竹翁)의 은택으로 태어나서 천성이 효성스럽고 우애로우며 족친은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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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41

    모년 준도가 쓴 만장 / 埈道 / NULL
    모년에 족종(族從) 준도(埈道)가 죽음을 애도하며 쓴 만사이다. 그는 고인이 일생 동안 검약으로 처신하고 하늘로부터 받은 품부가 풍부하였던 것을 이야기하고 또 선조의 음덕으로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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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42

    모년 이규철이 쓴 만장 / 李圭澈 / NULL
    "모년에 성주(星州) 후인(後人) 이규철(李圭澈)이 뒤늦게 죽음을 애도하며 쓴 만사이다. 그는 고인의 장수(長壽)와 일이 생길 때마다 드러나는 경륜과 맹렬한 형세로 분출되는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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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43

    정축년 10월에 족종제(族從弟) 병휘(秉輝)가 족형님 춘강(春江) 영전에 통곡을 하면서 바친 만사이다. 그는 족형님이 80세로 장수하면서 남쪽 지방에서 일대 호걸이셨고 풍류가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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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44

    흥덕현 난호리 후양 길음창에 있는 漁箭은 본래 사용하지 않고 묵히던 것을 현덕일과 박여일 등 10명이 돈을 모으고 일을 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고 편의상 현덕일을 漁箭主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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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45

    "병인년 12월에 權益相이 찬술한 南平文公夫婦孝烈碑閣記 幷銘이다. 嘉善大夫 宮內府 特進官 江原道 觀察使인 安東 권익상이 撰하고 通訓大夫 軍部員外郞 平山 申鉉台가 쓴 沃溝의 澮縣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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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46

    통정공 묘표 / NULL / NULL
    "통정공의 묘표이다. 통정공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의병을 일으키어 최경회 등과 함께 적병을 공격하여 수많은 왜적을 베기도 하였다. 적병의 기세가 누그러졌을 때, 귀가하였다가 老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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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47

    "학송 맹렬공의 실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문에 박기청이 찬한 글이다. 맹공은 之丞의 후손으로, 부친은 樂燮이다. 학송은 그의 자호이다. 행실이 아름답고 학식이 높아 문하에서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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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48

    1862년(철종 13) 5월에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承政院) 좌부승지(左副承旨) 겸(兼) 경연참찬관(慶宴參贊官) 춘추관(春秋館) 수찬관(修撰官) 조석원(曺錫元)이 짓고 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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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49

    "경오년 3월에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의정부찬정(議政府贊政) 시강원일강관(侍講院日講官) 규장각직제학(奎章閣直提學) 판돈령원사(判敦寧院事) 민병석(閔丙奭)이 청은공(淸隱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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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850

    "1915년에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이 작성한 오세첨(吳世瞻)의 묘갈명이다. 오세첨의 자는 수행(秀行), 호는 야촌(也村)이며 배우자로 흥성장씨(興城張氏)와 야로송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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