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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에 서시영이 작성한 여각권 매매문서 / 徐時英 / 1885"1885년(고종 22) 8월 22일에 서시영이 작성한 여각권 매매문서이다. 그는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일대의 지역에 있는 여각의 권리를 아무개에게 1,500냥을 받고 팔았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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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에 사는 목천장씨가의 장사택일지 / NULL / NULL"장사택일지는 지관이 장례날자와 시간을 선택하고 작성하여 준 문서이다. 이 문서는 순천에 사는 木天 張氏家의 장사택일지로 상주와 망자의 사주와 입장할 곳의 산세를 살펴 開土에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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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에 사는 목천 장씨가의 장사택일지 / NULL / NULL"장사택일지는 지관이 장례날자와 시간을 선택하고 작성하여 준 문서이다. 이 문서는 순천에 사는 木天張氏家의 장사택일지로 상주와 망자의 사주와 입장할 곳의 산세를 살펴 開土에서 取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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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3년에 이인제가 작성한 장사택일지 / 李仁濟 / 16931693년(숙종 19) 8월에 이인제가 그의 父 이문주 산소의 이장을 위해 묘자리의 좋고 나쁨과 父보다 먼저 사망한 母 나주박씨의 ?葬 여부를 問卜하고서 그 결과를 기록한 문서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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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에 장례절차를 적은 장사택일지 / 地官 / NULL"정묘년에 부친상을 당한 자식들이 장례를 치르면서 地官으로부터 받은 葬事擇日紙로 安葬하는 날은 11월 13일이고, 下棺하는 시간은 亥時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이 장례날짜와 시간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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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이 작성한 장사택일지 / NULL / NULL"지관이 작성한 葬事擇日紙이다. 누군가 큰 아들 내외의 장례를 치루면서 지관으로부터 받은 장사택일지로 장례 날짜와 시간 및 입장처, 장례시 피하거나 유의해야할 사항이 적혀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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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에 작성한 묘지 이장과 관련한 택일지 / NULL / NULL"경자년 1월 25일 묘지 이장에 관한 절차와 방향, 시간 등을 기록해 놓은 택일지이다. 이장하는 하루 전날인 24일 오시에 옛 묘를 파도록 하고 있으며, 새로 옮길 묘자리는 2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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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에 장례절차를 적은 장사택일지 / 地官 / NULL"신축년 12월 23일 안장하기 위해 작성된 문서이다. 장사택일지는 음양오행에 따라 장례 날의 일진을 살펴 방위와 살(煞)을 가리는데 그 내용을 적은 문서이다. 대개 장지의 형국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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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절차를 적은 장사택일지 / NULL / NULL"장사택일지이다. 장사택일지는 장례에 관한 제반 사항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에는 묘지의 위치와 방향을 비롯해서 葬禮日, 下棺時, 開土日, 取土의 방향, 穴深의 깊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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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에 관한 제반 절차의 시각 방위 등을 정한 장사택일지 / 地官 / NULL"장사택일지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이 장례를 치르는 시간과 묘의 방향, 하관 시간 등을 정해준 것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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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절차를 적은 장사택일지 / NULL / NULL"아내의 상을 당한 남편이 장례를 치르면서 地官으로부터 받은 葬事擇日紙로 安葬하는 날은 3월 8일이고, 下棺하는 시간은 巳時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이 장례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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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에 임석린이 작성한 여각권 매매문서 / 林錫? / 1862"1862년(철종 13) 4월 초2일에 임석린이 서춘옥에게 작성해 준 여각매매문서이다. 철종 13년 4월 2일에 임석린이 쓸 때가 있어서 경기도 남양, 죽산, 인천, 안산 등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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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상을 치루면서 받은 장사택일지 / 地官 / NULL부친상을 당한 아들이 葬禮를 치루면서 地官으로부터 받은 장사택일지이다. 장례 날짜와 안장 시간 등이 자세하게 적혀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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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작성한 장사택일지 / 未詳 / NULL"모년에 남편이 죽은 아내의 장례를 치루면서 지관으로부터 받은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이다. 장례시 음양오행에 따라 그달의 일진을 보아 방위와 살(煞)을 가리는데 그 내용을 적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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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작성한 장사택일지 / 未詳 / NULL"모년에 작성된 장례에 관한 제반 절차의 시각 방위 등을 정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로 묘지의 위치와 방향 을 비롯해서 개토(開土), 혈심(穴深), 하관(下官), 취토(取土),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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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작성한 장사택일지 / 未詳 / NULL"장례에 관한 제반 절차의 시각 방위 등을 정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로 묘지의 위치와 방향 을 비롯해서 개토(開土), 혈심(穴深), 하관(下官), 취토(取土), 정상(停喪) 등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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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군 하북면에서 지관이 작성한 장사택일지 / 地官 / NULL임실군(任實郡) 하북면(下北面) 상귀리(上歸里)에서 지관이 작성한 장사택일지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서 작성해 준 문서이다. 이 문서에는 망자가 여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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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작성한 장사택일지 / 未詳 / NULL"장례에 관한 제반 절차의 시각 방위 등을 정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로 묘지의 위치와 방향 을 비롯해서 개토(開土), 혈심(穴深), 하관(下官), 취토(取土), 정상(停喪) 등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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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작성한 장사택일지 / 未詳 / NULL"모년에 작성된 장례에 관한 제반 절차의 시각 방위 등을 정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로 묘지의 위치와 방향 을 비롯해서 개토(開土), 혈심(穴深), 하관(下官), 취토(取土),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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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작성한 장사택일지 / 未詳 / NULL모년에 부모의 상(喪)을 당한 아들이 장례를 치루면서 지관(地官)으로부터 받은 장사택일지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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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작성한 장사택일지 / 未詳 / NULL"모년에 작성된 장례에 관한 제반 절차의 시각 방위 등을 정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로 묘지의 위치와 방향 을 비롯해서 개토(開土), 혈심(穴深), 하관(下官), 취토(取土),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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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작성한 장사택일지 / 未詳 / NULL"장례에 관한 제반 절차의 시각 방위 등을 정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로 묘지의 위치와 방향 을 비롯해서 개토(開土), 혈심(穴深), 하관(下官), 취토(取土), 정상(停喪) 등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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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에 이광국이 작성한 여각권 매매문서 / 李光國 / 1832"1832년(순조 32) 8월 24일에 이광국이 서윤정에게 작성해 준 여각권 매매문서이다. 순조 31년 8월 24일에 이광국이 형편이 매우 안 좋아 부득이하게 은진현 경내 려산구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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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에 어떤 사람이 장례를 치루기 위한 날을 잡기 위해서 작성한 문서 / 未詳 / NULL을미년에 어떤 사람이 장사를 지내기 위한 날을 잡기 위해서 작성한 문서이다. 상주(喪主)가 장손(長孫)으로 되어 있어 조부나 조모의 상을 치루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부친의 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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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작성한 장사택일지 / 未詳 / NULL"장례에 관한 제반 절차의 시각 방위 등을 정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로 묘지의 위치와 방향 을 비롯해서 개토(開土), 혈심(穴深), 하관(下官), 취토(取土), 정상(停喪) 등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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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작성한 장사택일지 / 未詳 / NULL모년(某年)에 어느 지관(地官)이 작성한 장사택일지이다. 장례(葬禮)시 피하거나 유의해야 할 사항과 함께 망자(亡者)와 상주의 사주 및 입장(入葬)할 시간과 입장할 곳의 산세 등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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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이 죽은 남편 김중수에게 올리는 제문 / NULL / NULL"부인이 죽은 남편 김중수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김중수에게는 위로 90세의 아버지가 살아계시고, 아래로는 45의 아들이 있으며, 아직 시집보내지 못한 딸이 있다. 김수중은 효우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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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에 오영훈이 그의 종형의 영전에 바친 제문 / NULL / NULL계묘년에 吳永勳이 그의 從兄의 영전에 바친 제문이다. 부인과 2남 1녀를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난 종형을 추도하면서 지은 애도문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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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에 고모부 유명이 김여질의 제사 때 올린 제문 / 柳溟 / NULL"무자년에 고모부 유명이 김여질의 제사 때 올린 제문이다. 김여질은 나이 30을 갓 넘겨서 병으로 죽었다. 집에는 나이든 어버이가 계셨고, 자식이 있었다. 이에 나이든 고모부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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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에 성열이 중형의 영전에 바친 제문 / 吳星說 / NULL임인년 2월 28일에 星說이 그의 仲兄의 영전에 바친 제문이다. 동생으로서 형에 대한 극진한 사모의 정을 토로하면서 형의 죽음에 대한 애통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茂長의 咸陽吳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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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에 남관엽이 쓴 제문 / 南觀燁 / 17901790년(정조 14) 10월에 南觀燁이 그의 장인인 吳星老의 영전에 바친 제문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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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에 동생 현이 지은 백촌 선생의 축문 / 峴 / NULL동생 峴이 임인년 음력 10월 23일에 염의원장이 백촌 신조도 선생의 기일에 올릴 제문을 지어 보낸 것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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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에 변진원이 작성한 제문 / 邊鎭遠 / NULL갑술년 7월 20일에 邊鎭遠이 그의 생질 安性汝의 영전에 예를 갖추어 애통해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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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에 진봉연이 작성한 수침 매매문서 / 陳琫淵 / NULL"정미년 11월 13일에 진봉연이 작성한 水砧매매문서이다. 진봉연은 박여량으로부터 水砧과 店家를 500냥을 주고 잠시 사두었는데 형편이 어렵게 되어 다시 서치홍에게 팔게 되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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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에 송석휴가 처남의 죽음을 애도하면 쓴 제문 / 宋碩休 / NULL기미년에 宋碩休가 처남 吳모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제문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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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에 노학수가 작성한 제문 / 盧鶴壽 / NULL"임신년 7월 28일에 盧鶴壽가 지은 제문으로 “內從兄主竹山朴公”으로 표현된 망자는 앞의 WON07454-2에 나오는 朴奎璨과 동일인으로 보인다. 盧鶴壽는 본관이 풍천이며 망자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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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년에 노직현이 작성한 제문 / 盧直鉉 / NULL"계유년에 盧直鉉이 작성한 祭文으로“處士朴公”으로 표현된 망자는 앞의 WON07454-2에 나오는 朴奎璨과 동일인으로 보이며 “琴祥之日”은 망자가 세상을 떠난지 만 2년이 되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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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에 조카가 백부의 초기일에 올린 제문 / NULL / NULL"乙亥年 5월 18일에 조카가 백부님의 初朞日을 맞이하여 제사를 지내면서 올린 축문이다. 초기일은 망자가 죽은 지 1년째 되는 날을 말한다. 이날 지내는 제사를 흔히 소상, 기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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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에 남원에 사는 박규형이 작성한 제문 / 朴奎瑩 / NULL임신년 7월 28일에 南原에 사는 朴奎瑩이 종제 朴奎璨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朴奎瑩은 竹山朴氏로 연관문서가 없어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앞의 WON00001의 박해창의 증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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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에 안명시가 작성한 제문 / 安命時 / NULL을해년 5월 18일에 安命時가 順興安公의 첫 번째 제사에 형 명래가 병이 들어 참석할 수가 없자 형 대신 예를 갖추어 안공의 영연아래에서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이다. 安公의 이름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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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에 달성 배공의 소상일에 이진태가 쓴 제문 / 李鎭兌 / NULL壬申年 1月 27일에 學生 達成 裵公의 小祥日에 외손자 李鎭兌가 쓴 祭文이다. 진위에 사는 이진태가 외할아버지의 초상(初喪)을 치른 이듬해 기일(小祥) 전날에 쓴 것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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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에 허영이 작성한 제문 / 許永 / NULL신사년 11월에 허씨가의 후손인 영(泳)이 쓴 제문이다. 서두에 허씨의 연원을 서술하고 자신의 5대조인 동입(東?)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동입은 인조조에 평안도병마수군절도사겸안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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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에 명갑이 작성한 제문 / 命甲 / NULL"병자년 오월 18일 맏형 (명천)의 기일날이다. 동생 命甲이가 제사 하루전날 지은 제문이다. 형의 자녀가 아직 성혼하지도 않은 딸도 있고, 또 아들은 너무 어려서 집안일이 너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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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에 숙부 모씨가 작성한 제문 / 叔父 某氏 / NULL병자년 5월 18일은 이름이 命天이라고 불리는 자의 두 번째 기일이다. 이 글은 그의 숙부가 하루 전날 조카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이다. 숙부에게는 세 명의 형과 한 명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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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에 정봉철이 작성한 수침 매매문서 / 鄭鳳喆 / 18971897년(광무 1) 10월 12일에 정봉철이 작성한 水砧매매문서이다. 정봉철은 남원 중방방 도암촌에 있는 ?字 水砧을 230냥을 받고 팔았다. 매수인의 이름은 적혀있지 않아 알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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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에 안상정의 영전에 올린 제문 / NULL / NULL"신사년 5월 12일에 安相鼎의 靈前에 제사할 때 올린 祭文으로, 안상정의 행적을 읊음과 동시에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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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에 명홍이가 작성한 제문 / 命弘 / NULL"갑술년 7월 21일 종제 命弘이 종형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이다. 종형은 평생 성품이 순박하고 기질 또한 부드러우며 강하였고, 의리와 덕으로 주변과 사물을 대하였다고 회상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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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익현선생에게 올리는 제문 / NULL / NULL"면암 최익현 선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면암선생의 행적을 기술하고 공적을 찬양하고 있다. 면암 최익현은 벽계 이항로의 문하에서 애국와 호국 정신을 배웠으며 1873년 올린 상소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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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에 안방설이 작성한 제문 / 安邦卨 / NULL병자년 5월 18일 安邦卨이 종숙부 安公의 영전에 바친 제문이다. 안공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아 누구인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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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6년에 김우참이 오선징의 영전에 바친 제문 / 金友? / 1646"1646년(인조 24)에 金友?이 그의 벗 吳善徵의 영전에 바친 제문이다. 제문은 죽은 사람을 추도하여 지은 애도문으로, 제사를 지낼 때 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이 때 김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