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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에 안상규가 읽은 제문 / 安相奎 / NULL신사년 오월에 安相奎가 族兄인 安卽遠의 기일에 읽은 祭文이다. 일찍이 족보 편찬과 祠宇의 건설에 참여하였던 그의 공적과 순박한 품성을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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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에 홍직보가 오경이의 영전에 바친 제문 / 洪直輔 / NULL정유년에 洪直輔가 그의 妻男 吳敬而의 영전에 바친 제문이다. 홍직보는 1699년의 문과 급제자 洪重泰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그의 妻는 吳永勳의 딸이었다. 이 豊山洪氏 가문은 茂長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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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들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 / NULL / NULL"죽은 아들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이다. 늘그막에 얻은 아들이 27살에 갑자기 죽어버렸다. 성격이 차분하고 심성이 고우며, 늘 곁에서 떠나지 않던 아들이 돌연 죽자 그 슬픔은 하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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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에 안방설이 작성한 제문 / 安邦卨 / NULL"갑술년에 安邦卨이 叔父의 기일에 작성하여 올린 祭文이다. 제문은 숙부의 생전모습과 행동거지, 주변사람들과의 관계, 안방설과 숙부와의 추억 등 주로 돌아가신 분의 행적을 추모하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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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에 박사훈이 작성한 제문 / 朴師勛 / NULL갑술년 7월 17일에 朴師勛이 順興安公成汝의 영전에 예를 갖추어 애도하며 지은 제문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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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에 동수 정우룡 등이 작성한 송추 매매문서 / 洞首 鄭禹龍 / 1875"1875년(고종 12) 12월 2일에 洞首인 유학 정우룡과 두민 김종석, 그리고 이재화와 박일주가 연명으로 작성한 송추매매문서이다. 이들은 현내면 도롱촌에 있는 산지의 일부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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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에 김재홍이 지은 백촌신선생의 축문 / 金在洪 / NULL임인년 10월 23일에 지내는 백촌 신조도 선생의 기일에 유림장의원장 김재홍이 올린 축문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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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에 변해진이 작성한 제문 / 邊海晋 / NULL병자년 5월 18일 邊海晋이 외종형 安公의 영전에 자신은 몸이 병들어 문상하지 못하고 대신 자기의 둘째아들을 보내 예를 다하게 하고 지은 제문이다. 안공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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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에 안방량이 작성한 제문 / 安邦亮 / NULL갑술년 7월 22일은 安邦亮의 종숙부 安公의 제삿날이다. 안방량이 제사 하루전날에 예를 갖추어 통곡하면서 지은 제문이다. 안방량은 종숙부가 생전에 조카인 자기를 자식같이 사랑하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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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의 함양 오씨 문중에 소장된 제문 / NULL / NULL"茂長의 咸陽 吳氏 가문에 소장된 祭文의 하나로, 앞 부분이 절단되어 제문의 지은이나 그 대상이 된 고인이 누구인가는 알 수 없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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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이복원이 동엄 최공에게 올린 제문 / 李福源 / NULL임술년 5월 23일에 이복원(李福源)이 동암(東菴) 최공(崔公)의 영전에 바치는 제문이다. 공께서는 인자하신 인품과 영특한 기운을 가지고 계셨고 모든 행동과 마음 씀씀이에 있어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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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지영이 초계 정씨에게 올린 제문 / 志永 / NULL"경오년 10월 초4일에 조카 지영(志永)이 백모(伯母) 초계(草溪) 정씨(鄭氏)의 종상(終祥)을 맞이하여 지은 제문이다. 조카 된 입장에서 백모의 제사에 함묵(含默)하며 인정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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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이헌주가 동암 최공에게 올린 제문 / 李憲柱 / NULL임술년 5월 24일에 이헌주가 동암 최공의 종상을 맞이해서 지은 제문이다. 최공은 용모가 맑고 빼어나며 기세와 언변이 좋으며 일을 처리하는 재간이 탁월하였다. 또한 의지가 강건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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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보가 처 조부에게 올린 제문 / 洪益補 / 16411641(인조 19)년 3월4일에 홍익보(洪益補)가 최근에 죽은 처 할아버지 선성(宣城) 이(李) 아무개의 제문을 지어서 제사를 지낸 것이다. 글씨는 명길(鳴吉)이 쓴 것으로 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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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에 용석이 지은 제문 / 容錫 / NULL"무오년에 증손(曾孫) 용석(容錫)이 그의 증조모(曾祖母) 진주(晋州) 강씨(姜氏)의 묘(墓)에 제물을 올리면서 바친 제문(祭文)이다. 문구 마지막에 있는 ‘상향(尙饗)’은 제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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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 허갑수가 동엄 최공에게 올린 제문 / 許甲秀 / NULL"경신년 5월 24일에 외생(外甥) 허갑수(許甲秀)가 외할아버지 동암(東庵) 최공(崔公)의 중상(中祥)이 임박하여 그에게 바치기 위해 쓴 제문이다. 외할아버지 집안은 영남의 문벌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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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3년에 사노 김개금이 김만추에게 작성한 기타매매문서 / 金介金 / 16631663년(현종 4) 12월 8일에 私奴 김개금이 김만추에게 柴場과 밭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김개금은 홍농면 덕림산에 있는 柴場 70負와 澄字田 3마지기를 합해서 正租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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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양기환이 작성하여 왕사각에게 발급한 제문 / 梁箕煥 / 18961896년(고종 33) 정월 2일에 이웃에 살던 양기환(梁箕煥)이 봉주 왕사각(鳳洲 王師覺 1836-1895) 선생 영전(靈前)에 올린 것이다. 말미에 왕사각선생을 추모하며 만사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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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 한용식이 작성하여 왕득인 등에게 발급한 제문 / 韓用植 / NULL"임신년(壬申年) 9월 16일에 유학(幼學) 한용식(韓用植)이 작성한 제문이다. 한용식은 이 제문에서 남전사(藍田祠)에 배향된 이원춘(李元春)을 비롯한 석주관(石柱關) 7의사(7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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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년 현경이 족형에게 바친 제문 / 鉉景 / NULL"정축년 9월 1일에 족제(族弟) 현경(鉉景)이 집안 형님의 영전에 바치기 위해 지은 제문이다. 80여세로 생을 마감한 형님에 대해 애통해하며 생전에 효성스럽고 돈독한 가정을 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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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연대 및 작성자 미상의 진향문 / 未詳 / NULL"작성연대와 작성자를 알 수 없는 진향문(進香文)이다. 진향은 왕이나 왕세자 또는 그 배우자가 죽었을 때 종척(宗戚)이 빈전(殯殿) 또는 빈궁(殯宮)에 향을 올리며 제사를 올리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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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정범호가 동암 최공에게 올린 제문 / 鄭範鎬 / NULL임술년 5월 23일에 정범호(鄭範鎬)가 동암(東庵) 최공(崔公)의 영전에 바치기 위해 지은 제문이다. 공의 집안은 대대로 이름이 높은 가문으로 뛰어난 인재들이 계속적으로 배출되었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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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4년 왕학성이 재종숙의 영전에 바치는 제문 / 王學聖 / 1794"1794년(정조 18)년 3월 24일에 왕학성(王學聖)이 이미 작고한 재종숙(再從叔)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왕학성은 재종숙의 평소 인덕과 학식을 높이 기리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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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왕수환이 작성하여 왕사천에게 발급한 제문 / 王粹煥 / 19081908(순종 1)년 6월 16일에 왕수환(王粹煥)이 이미 작고한 중부(仲父) 왕사천(素琴 王師天 1842-1906)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왕수환은 살아생전 자신을 친자식처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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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정온용이 동엄 최공에게 올린 제문 / 鄭瑥容 / NULL"임술년 5월 24일에 정씨(鄭氏) 문목공파(文穆公派) 종중의 온용(瑥容) 등이 동암(東菴) 최공(崔公)의 종상(終祥)을 맞이하여 그의 영전에 바친 제문이다. 최공께서는 성품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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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왕수환이 작성하여 송병선에게 발급한 제문 / 王粹煥 / 1906"1906년(고종 43) 2월에 개성인 왕수환(王粹煥)이 연재선생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이다. 여기서 연재선생은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을 이른 것이다. 송병선은 을사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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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 손석기가 동엄 최공에게 올린 제문 / 孫錫琦 / NULL"신해년 5월 24일에 외생(外甥) 손석기(孫錫琦)가 외할아버지 동암(東奄) 최공(崔公)의 중상(中祥)을 맞이하여 그의 영전에 바친 제문이다. 외할아버지 집안은 영양(永陽)의 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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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년에 정재국이 작성한 증서 / 鄭在國 / NULL갑인년 음력 1월 11일에 鄭在國이 曺昇煥에게 작성해 준 증서이다. 백야면 입석리에 있는 조승환의 논 5두락을 임자년 음력 7월에 방매하며 옥암면 예동리 이정래에게 800냥을 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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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 장재영이 동엄 최공에게 바친 제문 / 張在泳 / NULL신유년 5월 23일에 척질(戚姪) 장재영(張在泳)이 동암(東菴) 최공(崔公)이 돌아가신지 일년이 되는 해 영 전에 바치기 위해 지은 제문이다. 공께서는 하악(河嶽)의 맑은 기운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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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에 한룡화가 작성한 제문 / 韓龍和 / 1924"1924년에 한룡화(韓龍和)가 작성한 제문(祭文)이다. 포덕육십오년(布德六十五年)은 최제우(崔濟愚)가 동학(東學)을 창건한 1860년부터 65년째되는 해, 즉 1924년에 해당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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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왕수환이 작성하여 왕사찬에게 발급한 제문 / 王粹煥 / 1913"1913년(대정 2) 10월 25일에 조카 왕수환(王粹煥) 이 이미 작고한 숙부(叔父) 왕사찬(王師瓚 1846-1912)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왕수환은 숙부의 인덕과 학식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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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임병찬이 황현이 순국하자 그의 자결을 안타까와하며 지은 제문 / 林炳瓚 / 1910"1910년(순종 4) 임병찬(林炳瓚)이 매천 황현(黃玹, 1855-1910)이 순국하자, 그의 자결을 안타까와하며 지은 것이다. 매천의 덕행과 의로운 행적을 칭송하고 구체적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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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 이국원이 동암 최공에게 바친 제문 / 李國源 / NULL경신년 6월 6일에 이국원(李國源)이 동암최공(東庵 崔公)의 영전에 바친 제문이다. 최공은 성품이 인자하고 간결하며 행실은 단정하고 선인들의 훌륭한 발자취를 따라하여 많은 선비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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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 6월에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난 죽은 아들를 위해 작성한 제문 / 父 / NULL"제문(祭文)이란 천지신명(天地神明)이나 망자(亡者)를 위해 제사지낼 때 작성하는 글이다. 이와 유사한 문서로 축문(祝文)이 있다. 축문은 신(神)에게 축원을 드리는 글이다. 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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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이준규가 작성하여 매천집 간행소에게 발급한 제문 / 李駿圭 / 1910"1910년 10월 19일에 이준규(李駿圭)가 매천(梅泉) 황현(黃玹) 선생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이준규는 제문에서 슬프다고 하면서, 내일 선생의 영결날이므로, 자신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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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에 사위 박광원이 장인 순흥안씨의 제삿날에 올린 축문 / 朴光源 / NULL갑술년 7월 16일에 사위인 潘南人 朴光源이 장인 順興安氏의 제삿날에 올린 축문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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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에 안정신이 작성한 축문 / 廷臣 / NULL"갑술년 7월 22일에 안정신이 자신의 伯父의 忌日을 맞이하여 제물을 갖추어 놓고 쓴 축문이다. 정신은 백부의 하나뿐인 아들과 함께 학문을 익혔으며, 伯父로부터 貴愛를 받았다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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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창명회관 낙성식에서 이기영이 지은 축문 / 李基永 / NULL儒道彰明會館 落成式에 參席하여 康津郡 城田面 月南里에 사는 李基永이 지은 祝文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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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년에 임준명이 작성한 증서 / 林準明 / NULL갑인년 6월 23일에 林準明이 굴치리 山坂價 150냥과 짐꾼 짐삯 2냥을 받고 작성한 증서이다. 증서 주인 임준명의 내종사촌 崔益之가 지장을 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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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에 전남유도창명회관 낙성식에서 오기영이 지은 축문 / 吳基泳 / NULL乙丑年 9월에 全南儒道彰明會館落成式에 參席하여 谷城郡 梧谷面 德山里에 사는 吳基泳이 光山(光州)에 회관이 준공 된 것을 축하하며 지은 祝文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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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 8월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홍인이 작성한 축문 / ▒弘仁 / NULL경인년 8월 26일에 있을 제사를 지내기 위해 10대손인 ▒홍인(▒弘仁)에 의해 작성된 축문이다. 축문은 제주가 초헌(初獻)을 행하며 술을 잔에 부어 올리고 나서 읽는다. 축문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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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년에 백부가 작성한 축문 / 未詳 / NULL병진년 4월에 11일에 백부 아무개가 그의 조카 만구(晩求)의 기일을 맞이하여 그를 애도하면서 작성한 축문(祝文)이다. 고인의 형제애와 독서에 대한 끝없는 열정에 대하여 추모하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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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에 종형이 작성한 축문 / 未詳 / NULL신묘년 5월에 종형(從兄) 아무개가 그의 사촌 동생 순관(舜寬)이 죽은 지 1년이 되어 그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작성한 축문(祝文)이다. 고인의 덕성과 학문에 대한 생전의 열정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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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년에 이봉기가 작성한 축문 / 李鳳基 / NULL"기묘년에 이기봉(李鳳基)이 담인(澹人) 신공(申公)의 기일을 맞이하여 고인을 애도하면서 지은 축문(祝文)이다. 지은이가 자신을 시생(侍生)으로 표현하고 있는 데서 그가 고인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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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최후곤이 지은 축문 / 崔厚坤 / NULL모년에 최후곤(崔厚坤)이 수연(쓱宴)을 운(韻)으로 하여 지은 시로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쓴 것이다. 생일을 맞은 이의 충성스러움과 문채의 훌륭함을 찬양하고 그가 쌓은 부귀와 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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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에 이상우가 작성한 축문 / 李相雨 / NULL무자년 10월 20일에 유학(幼學) 이상우(李相雨)가 김정렬(金正烈)의 5대조부모의 산제(山祭)에 100원(圓)의 부의를 올리면서 작성한 축문(祝文)이다. 문서의 앞 부분은 축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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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이소응이 작성하여 이직신에게 발급한 축문 / 李昭應 / 1925"1925년(대정 13) 이소응(李昭應)이 문화사 만구 봉황성 동대보 서산리(文華社 彎溝 鳳凰城 東大堡 西山里)에 거주할 때 지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인 이직신(李直愼)의 이름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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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에 윤시영이 작성한 축문 / 尹始榮 / 1879"1879년(고종 16) 8월 24일에 윤시영(尹始榮)이 작성하여 담인(澹人) 신좌모(申佐模)의 영전에 올린 축문(祝文)이다. 문서에는 기묘년으로만 나오지만, 신좌모(申佐模)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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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함평에 살던 유승준의 효행 행장 / NULL / NULL全南 咸平에 살던 兪承濬의 孝行 事實을 기록한 문서이다. 유승준은 본관이 杞溪이다. 그는 집안이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병에 온갖 약을 구해서 치료하고자 하였으나 끝내 사망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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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에 서경보가 작성한 창고매매문서 / 徐警輔 / 1816"1816년(순조 16) 5월 10일에 서경보가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서경보는 태안읍과 남면의 15庫를 李完同에게 매득하였다. 그런데 그 중 倉基 1庫의 경우 매매 당사자인 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