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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7001

    "鄭?가 쓴 守分 金湍先生의 行狀이다. 선생의 본관은 扶寧으로 부친은 성균생원을 지낸 泰福이며 모친은 武靈丁氏 參奉 希參의 딸이며, 1596년(선조 29) 7월 17일에 扶安 甕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02

    "임오년에 蔣時穆이 新亭朴公의 성명·자호·貫鄕·官爵·世系 및 행적에 관해 서술한 행장이다. 朴公은 諱는 在璣, 字는 汝賢, 號는 新亭이며, 본관은 密城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03

    "愼炳佑가 작성한 松齋 李榮?(1641-1704)의 行狀이다. 송재는 通德郞 李?의 아들로, 이 문서에는 현종 신미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현종대에 신미년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04

    "효열장이다. 부인의 정열에 대하여 기술한 것이다. 남편이 죽자 코를 베고서 결코 재가하지 않은 부인. 장차 결혼할 남자가 병이 들어 곧 죽을 줄 알면서도 시집가서, 3년만에 남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05

    "고려말의 문신 安裕의 7세손 祖同의 曾孫인 白山公 安貴行에 관하여 그의 후손 安相七이 쓴 遺事이다. 백산공 안귀행은 세종조 갑자년의 서거정·유성원 등과 同年으로, 성삼문 · 박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06

    李商永이 지은 유후근의 전기이다. 유후근은 고흥 사람으로 忠正公 柳濯과 柳淳의 후손으로 그의 아버지가 병이 들었을 때 지극정성으로 간호하고 돌아가신 후에는 3년 시묘살이를 하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07

    김홍원의 행장 / NULL / NULL
    "金弘遠의 행장이다. 字는 而重, 號는 海翁이며, 曾祖는 錫弼, 祖는 漑, 父는 景順이며, 母는 晋州姜氏이다. 선조 4년(1571)에 태어나 18세 때 진사를 합격했다. 임진왜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08

    崔永祚가 작성한 遺逸과 烈婦에 대해서 쓴 글이다. 유일은 號가 一湖齋인 崔洙의 학행과 열부로는 豊川盧氏인 崔聖錄의 처와 安東金氏인 崔文求의 처에 대해서 열행을 소개하고 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09

    효행으로 이름난 사람의 가계와 행적을 기록한 문서이다. 효행부분은 松齋 ○昌來의 가계와 어떤 형태의 효행을 하였는지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효열부분은 朴炳鶴의 貞夫人 林氏의 효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10

    "김택영(金澤榮)은조선 말기의 학자로 자는 우림(于霖), 호는 창강(滄江), 당호는 소호당주인(韶濩堂主人), 본관은 화개(花開)이다. 개성에서 태어난 그는 17세에 성균초시에 합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11

    "1892년(고종 29)에 김형식(金亨植)에게 발급한 공명첩(空名帖)이다. 김형식을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겸(兼) 오위장(五衛將)에 봉한다는 내용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12

    경술년 8월 20일에 최상익이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최상익은 진주 말문면 해창고의 24촌 船主人에 대한 권리를 70냥을 받고 팔았다. 그러나 매입자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13

    묵암 신영구 행장 / 未詳 / NULL
    "묵암(?庵) 신공영구(申公榮求)의 행장(行狀)이다. 회헌공(晦軒公)은 이름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로, 박학독행(博學篤行)하여 일찍이 문과에 올랐다. 벼슬을 즐기지 않아 관직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14

    "1926年 2月에 대성교회(大成敎會) 숭포부(崇褒部) 심사장 참판 조형하(趙衡夏) 등이 전주지회로 보낸 포장(褒狀)이다. 전주군(全州郡) 전 참서관(參書官) 김용규(金容奎)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15

    "갑자년에 오준선(吳駿善)이 배병의(裵炳儀)의 효행(孝行)을 정리한 글이다. 전라도(全羅道) 무안현(務安縣)에 살던 배병의는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16

    "1855년(철종 6) 음력9월에 진사 유종근(柳宗根)이 오종하(吳宗河)의 부탁을 받고 작성한 오대영(吳大英,1729~1815)의 행장이다. 유종근은 호서(湖西)로부터 잠시 삼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17

    "조선조 광해군 때의 유학자 이산립(李山立)의 실기략(實紀略)이다. 작성자와 작성년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이산립의 자는 자진(子鎭), 호는 농수(聾?)이며, 대사헌을 지낸 이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18

    담헌 신규모의 행장 / 未詳 / NULL
    "작성자와 작성연대를 알 수 없는 담헌(澹軒) 신규모(申奎模)의 행장(行狀)이다. 그러나 문서의 앞 부분에 제목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이 글이 문집에 실릴 행장으로 작성되었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19

    "1897년(고종 34) 11월 22일 황태자가 쓴 명성황후의 행록 일부이다. 임오년(1882) 6월에 군졸들이 변란을 일으켜 창황한 가운데 행차가 길을 잃어 8월 1일에 환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20

    "갑오년 8월 29일 중도리(中道里)에 거주하는 배명수(裵明洙)가 작성한 축사이다. 이 자료는 완도군의 부속도서인 고금도 황씨부인의 효행사실을 포상할 때 작성한 축하식사(祝賀式辭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21

    "1934년(소화 9) 5월에 황원(黃瑗)이 쓴 김기술(金箕述)의 행장이다. 황원은 1933년 가을에 임경당(林警堂)의 오봉정사(五鳳精舍)를 찾았다가, 그때 행장을 지어달라는 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22

    "1897년 11월 22일 고종황제가 쓴 명성황후의 행록 일부이다. 황후는 9살 때 순간공의 초상(初喪)을 당하자 어른처럼 슬퍼했고 부부인(府夫人)의 초상과 오빠인 민승호(閔升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23

    "1825년(순조 25) 12월 28일에 유강경이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그는 조상 때부터 내려오던 경상도 12읍의 船旅閣 권리를 350냥을 받고 정인규에게 팔았다. 12읍은 동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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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24

    "1806(순조 6) 10월에 은진(恩津) 송환기(宋煥箕)가 지은 칠원(漆原) 윤동교(尹東郊)의 행장(行狀)이다. 서두에서 윤동교의 비조(鼻祖)는 신라의 태자대사(太子大師)인 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25

    "정해년에 산양(山陽, 현 보성군) 신월촌(新月村)에 거주하는 안종남(安鍾南)이 작성하였다. 3명의 효행사실이 일렬로 기술되어 있다. 이 삼효전은 보성에 전해오는 3명의 효자(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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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26

    "1897년(고종 34) 11월 22일 황태자가 쓴 명성황후의 행록 일부이다. 슬프고 슬프다. 사람으로서 누군들 부모가 없으며 부모로서 누군들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는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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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27

    "모년에 아무개가 김아무개를 위해서 작성한 행장이다. 그의 본관은 의성이고, 자(字)는 자익(子翼)으로 보이고, 호는 반계(盤溪)이다. 그의 증조는 효행으로 정려를 받은 김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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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28

    "1897년 11월 22일 고종황제가 쓴 명성황후의 행록 일부이다. 황후는 온 나라에 수재(水災)와 한재(旱災)의 재변이 있을 때, 무더운 여름과 혹한(酷寒)의 겨울에도 백성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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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29

    신좌모 전기 / 未詳 / NULL
    "신좌모(申佐模)에 대한 전기이다. 신좌모(1799(정조 23)∼1877(고종 14))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좌인(左人), 호는 담인(澹人)이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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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30

    "安會淳(안회순), 박우숙(朴佑淑), 정의현(鄭毅鉉) 등 세 명의 효자에 관한 이야기(三孝傳)이다. 안회순(安會淳)은 문강공(문강공)의 넷째 아들이다. 아버지 상을 치르고 시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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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31

    "문정공(文正公) 하서(河西) 김선생(金先生 麟厚) 사손입후실기(祀孫立后實記)이다. 문정공(文正公) 하서(河西) 김선생(金先生) 사손입후실기(祀孫立后實記)는 김인후의 후손인 장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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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32

    "1930년에 호남지의 간행소에서 유림과 전주향교의 유림들에게 발송한 행장이다. 이에 따르면 호천거사(護川居士) 이범호(李範浩)는 본관이 전주이다. 그는 학문에 힘써 주변사람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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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33

    "1897년 11월 22일 고종황제가 쓴 명성황후의 행록 일부이다. 황후의 성은 민씨(閔氏)이고 본향(本鄕)은 여흥(驪興)이다. 시조는 칭도(稱道)이며 유중(維重)에 이르러 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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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34

    "1828년(순조 28) 4월 17일에 이정각이 흥덕현 난호리에 있던 漁箭과 ?木, 그리고 작은 배 한척을 진관성에게 230냥에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이정각은 빚이 너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35

    "임술년에 무안향교(務安鄕校) 직원(直員) 오회근(吳晦根)등이 배병의(裵炳儀)의 효행을 찬양하고 널리 세상에 알리기 위해 전라도 내의 장보(章甫)들에게 올린 것이다. 배병의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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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36

    1892년(고종 29) 정월에 이병의가 작성한 栗川鄕約洞宗中立約이다. 이 문서에 의하면 이병의의 종중에서는 원수평에 있던 4마지기의 종답을 방매하여 거기서 얻은 400냥중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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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37

    병인년 10월에 전라도 장수현 천천면 주민들이 모여서 정한 完約이다. 조선말기에 도적이 들끓자 주민들은 자구책으로 각자 무기를 갖추고 있다가 도적이 나타나면 달려와 서로 구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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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38

    "裵氏 契中에서 공동출자하여 원금을 마련한 후 이를 계원에게 빌려주어 이자를 받아 목돈을 마련하는 계회문서이다. 임오년에서 을미년 까지 해마다의 원금과 이자, 총액과 분급인(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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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39

    "신사년 정월에 安載道, 韓致相, 盧?, 張?, 崔是翁, 盧世錫, 李夏衡, 金著, 盧? 등 9인이 九老?를 만들면서 작성한 ?案이다. 이 계안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철에 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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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40

    병술년 3월 초 2일에 도내향유사(道內鄕有司)가 작성한 통지문이다. 유학 김낙진(金樂辰)과 김방환(金邦煥)이 사상 처음으로 유사들의 만장일치의 동의아래 유사로 선출되었음을 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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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41

    "어느 고을에서 작성한 향약(鄕約)이다. 어느 위급한 때를 만나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내용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각 동별로 주먹돌 1개, 그물과 횃불 5 자루,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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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42

    이 문서는 향교 혹은 서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내용은 유사(有司)별로 각각 관리하도록 되어 있는 전답(田畓)에 대한 최종보고를 한 것이다. 소작료는 받은 것 등이 정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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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43

    모년 9월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만든 홀기이다. 이 홀기는 9월이라 된 것으로 보아 어느 문중에서 시제를 지내기 위해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시제는 어느 한 분을 모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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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44

    기제홀기 / 臼山 / NULL
    "모년에 구산(臼山)이 지은 것으로 보이는 기제홀기(忌祭笏記)이다. 총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홀기(笏記)는 의식의 순서를 적은 글이다. 내용은 산재(散齋) 2일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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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45

    "1873년(고종 10) 10월 3일에 소규영(蘇奎永) 외 3인이 이헌표(李憲杓)에게 작성해준 명문이다. 동동(東洞) 뒷산에 있는 소규영의 산에 이헌표가 허락 없이 입장(入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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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46

    수진홀기 / 未詳 / NULL
    "홀기(笏記)는 의식의 순서를 적은 글이다. 수진홀기는 제사를 지내는 행위를 기록한 글이다. 1) 모든 사람은 성복(盛服)을 하고 제 자리에 선다. 2) 모두 재배, 3) 자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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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47

    관례홀기 / 未詳 / NULL
    "모년에 작성된 관례홀기(冠禮笏記)이다. 주인이하 모든 사람은 성복을 하고 자리에 나아가 선다. 주인은 계단 아래 동쪽에 서서 서쪽을 향해 서면, 자제친척들은 그 뒤에 줄서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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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48

    "1730년(영조 6) 9월에 김수종이 9월부터 동지까지의 자신과 집안운세에 대한 점을 치고 작성한 문복록으로 문서의 말미가 결손되었다. 자신의 운세는 내년 봄에 사람이 올때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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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049

    경술년 2월 14일에 長城에 사는 卜者인 韓國鳴이 방문하여 이 집안의 점을 쳐주면서 작성한 問卜錄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050

    1730년(영조 6)에 全羅右道 扶安縣 立下面 愚磻里에 사는 金守宗이 天地日月星辰之靈에게 자신의 금년 상반기의 身數와 집안 식구들의 운수가 어떠한지를 묻고 점친 문서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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