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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에 백동석이 작성한 다짐 / 白東錫 / NULL을유년에 한량(閑良) 백동석(白東錫)이 30량을 차용하면서 작성해 준 다짐문서이다. 이자는 매월 5부로 정하였으며 12월까지는 이 돈을 갚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백동석이 돈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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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유영인이 작성한 다짐 / 劉永仁 / NULL모년에 유영인(劉永仁)이 작성하여 준 다짐문서이다. 유영인은 세미(稅米)를 개인적으로 사용한 뒤 이를 갚을 길이 없자 정조(正租) 3석에 해당하는 8량을 빌리면서 이 문서를 작성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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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에 정재규 등이 작성한 다짐 / 鄭在圭 等 / 19061906년(고종 43)에 유학(幼學) 정재규(鄭在圭) 등이 작성한 수기(手記)이다. 문장(門長) 정재규(鄭在圭) 등 3명은 전라도(全羅道) 나주목(羅州牧) 도림면(道林面) 상추동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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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 3월에 이주경이 관에 제출한 다짐 / 李周京 / NULL신사년 3월 17일에 이주경(李周京)이 관에 제출한 다짐(?音)이다. 이주경은 종손인 이홍재(李鴻在)가 출타한 틈을 타 위답(位畓) 문권과 고조부의 신주(神主)와 백패(白牌)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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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에 한경석이 작성한 다짐 / 韓景錫 / NULL정묘년에 한경석(韓景錫)이 시장(柴場) 12부를 5년 동안 시초(柴草)하도록 허락한다는 다짐문서이다. 한경석이 그 대가로 받은 돈은 7량이었다. 한편 이 문서를 작성할 때 한경석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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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에 한도섭이 작성한 다짐 / 韓道燮 / NULL"을축년에 한도섭(韓道燮)이 20량을 빌리면서 작성한 다짐문서이다. 긴히 돈이 필요했던 한도섭은 매달 5부의 이자를 지급하기로 하면서 20량을 빌렸으며, 이 돈은 오는 4월 말까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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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에 승려 정묵에게 작성해 준 다짐 / 官 / NULL"신묘년에 승려(僧侶) 정묵(正?)에게 써 준 문서이다. 문서의 처음을 보면 백등(白等)으로 시작하고 있어 마치 발괄 같은 느낌을 주나 내용은 다짐하는 것을 담고 있으므로 수표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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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에 김방호가 작성한 다짐 / 金邦鎬 / NULL정해년에 김방호(金邦鎬)가 빌린 돈 8량(兩) 7잔(?) 5복(卜) 가운데 이자와 원금을 합한 5량 5잔을 상환하면서 쓴 다짐문서이다. 나머지 돈은 이번 달 말까지 갚기로 한다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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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에 김춘흥이 작성한 다짐 / NULL / NULL을묘년 11월에 김춘흥이 손생원댁에 작성해 준 다짐(?音)이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묘를 내년 12월까지 이장하겠다고 다짐하였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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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년에 주봉채가 관에 제출한 다짐 / 朱鳳采 / NULL병진년 11월 초3일에 주봉채(朱象采)가 작성한 다짐이다. 당시 주봉채는 19세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장씨 집안의 선산에 무덤을 만들었다. 하지만 소송 결과 패소하였다. 이에 1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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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에 김성대가 작성한 마전 매매문서 / 金成大 / 19111911년 김성대(金成大)가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마전(麻田)을 9냥에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다. 문두(文頭)에는 전당문기(典當文記)로 되어 있으나 매매문서이다. 한편 문서 작성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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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에 이성천이 관에 올린 다짐 / 李性天 / NULL경자년 3월 초7일 이성천(李性天)이 작성하여 관에 올린 고음(?音)으로 일명 다짐문서이자 각서이기도 하다. 이성천이 손제목(孫濟穆)의 친산 부근에 장사를 치른 뒤 손제목이 소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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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김도근이 작성한 다짐 / 金道根 / NULL"모년에 김도근(金道根)이 돈 19량을 빌리면서 써 준 다짐문서이다. 이자는 매 월마다 5부씩 지급하기로 하였으며, 다음 해 8월까지는 갚기를 약속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수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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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에 남정칠이 작성한 다짐 / 南正七 / NULL"정묘년에 남정칠(南正七)이 시장문서(柴場文書)와 태종전(太種田) 사두락문서(四斗落文書)를 저당(抵當)하고 20량을 차용하면서 작성해 준 다짐문서이다. 이자는 월 5부였으며, 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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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김량석이 작성한 다짐 / 金良碩 / NULL"모년에 김량석(金良碩)이 돈 7량을 빌리면서 작성해 준 다짐문서이다. 김량석이 이 돈을 빌린 이유는 급히 쓸 데가 있어서이다. 이 돈에 대한 이자는 매달 5부로 하였으며, 다음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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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심자관이 작성한 다짐 / 沈自寬 / NULL"모년에 심자관(沈自寬)이 자신이 사는 집과 대지를 담보(擔保)로 잡고 3량을 빌리면서 작성해 준 다짐문서이다. 심자관이 빌린 이 돈의 이자는 매달 5부로 정하였으며, 다음해 4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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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에 김추득이 윤관세에게 작성해 준 다짐 / 金秋得 / 18111811년(순조 11)에 김추득(金秋得)이 윤관세(尹寬世)에게 써 준 수표이다. 수표는 다짐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다짐문서라고도 한다. 이 문서는 김추득이 윤관세(尹寬世)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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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년에 김권이 작성한 다짐 / 金權 / NULL"정축년에 김권(金權)이 45량을 빌리면서 작성하여 준 다짐문서이다. 이 돈은 2년 뒤, 그러니까 무인년(戊寅年) 10월까지 갚기로 하였다. 김권이 빌린 45량에 대한 이자는 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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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에 정재규가 작성한 다짐 / 鄭在圭 / 1906"1906년(고종 43)에 유학(幼學) 정재규(鄭在圭)가 작성한 수기(手記)이다. 관련 문서에 따르면 같은 일족인 정도여(鄭道汝)가 고조(高祖)를 선산(先山)에 부장(付葬)하면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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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에 김시옥이 작성한 다짐 / 金時鈺 / NULL"무자년에 김시옥(金時鈺)이 45량을 차용(借用)하면서 작성하여 준 다짐문서이다. 45량에 대한 이자는 매달 3부씩, 그러니까 1량 35잔(?)씩 하기로 하였으며, 같은 해 12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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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3월에 권치삼과 이명실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다짐 / 權致三 等 / NULL"을미년 3월 12일에 권치삼(權致三)과 동장(洞長) 이명실(李明實)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다짐이다. 첫 번째는 권치삼이 관에 미납한 133냥 5전5푼을 다음달 10일까지 납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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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에 최춘건의 증조비에게 발급된 공명첩 / 國王 / 18821882년(고종19) 정월에 경상도(慶尙道) 기장현(機張縣) 동면(東面) 이서리(伊西里)에 사는 최춘건(崔春健)의 증조비를 숙인(淑人)으로 봉하면서 발급한 공명첩으로 증조비의 성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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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년에 이수원 등이 작성한 선주인 매매문서 / 李水元 / 18231823년(순조 23)에 이수원(李水元) 등이 37냥을 받고 선주인(船主人)의 권한을 30년 동안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문기이다. 이수원이 살던 마을에서는 나이 순으로 선주인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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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년에 이희문이 작성한 다짐 / 李布文 / NULL"기사년에 이포문(李布文)이 자신이 살고 있는 초가집의 문서를 전당(典當)하고 돈 12량과 정조(正租) 1석을 빌리면서 작성하여 준 다짐문서이다. 이희문이 빌린 돈은 이자가 매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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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년에 박경준이 작성한 다짐 / 朴景俊 / NULL무진년(戊辰年)에 박경준(朴景俊)이 돈 25량을 빌리면서 써 준 다짐문서이다. 이 돈은 박경준이 급하게 사용할 데가 있어 빌린 것으로 이자와 원금은 다음 해 9월까지 갚기로 하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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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년에 박경준이 작성한 다짐 / 朴景俊 / NULL기사년에 박경준(朴景俊)이 돈 70량을 빌리면서 써 준 다짐문서이다. 박경준(朴景俊)이 급히 사용할 데가 있어 빌린 이 돈은 다음 해 10월까지 이자와 본전을 함께 갚기로 하였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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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에 박근유가 작성한 다짐 / 朴近裕 / NULL"정묘년에 박근유(朴近裕)가 6량을 차용(借用)하면서 작성해 준 다짐문서이다. 이자는 월 5부로 하였으며, 오는 7월까지 본전과 이자를 다 갚기로 약속하고 있다. 박근유가 이 돈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128
무진년에 서관옥이 작성한 다짐 / 徐寬玉 / NULL"무진년에 서관옥(徐寬玉)이 돈을 빌리면서 작성해 준 다짐문서이다. 급하게 돈이 필요했던 서관옥(徐寬玉)은 월 5부 이자를 주기로 하고 14량을 빌렸는데, 이 돈은 다음해 12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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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에 노기준이 작성한 다짐 / 魯基俊 / NULL"신미년에 노기준(魯基俊)이 돈 18량을 빌리면서 작성한 다짐문서이다. 이 돈은 노기준이 장사의 밑천으로 사용하기 위해 빌린 것으로, 이자는 월 5부를 지급하기로 하였다. 그리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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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에 박세유가 작성한 다짐 / 朴世裕 / NULL"기축년에 박세유(朴世裕)가 15량을 차용하면서 써 준 다짐문서이다. 이자는 매월 5부로 정하였으며, 7개월 뒤 즉, 오는 11월까지는 돈을 갚겠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그러나 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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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년에 송광익이 관에 올린 다짐 / 宋光益 / NULL기사년 11월 14일에 28세의 송광익(宋光益)이 작성한 고음이다. 송광익은 손가 양반(孫哥兩班) 선산에 투장하였는데 11월10까지 굴거하기로 약속하고 수기를 써 준적이 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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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에 한규홍이 주식에게 작성해 준 다짐 / 韓圭洪 / NULL경인년 7월 초 족인 한규홍(韓圭洪)이 족장(族丈) 주식(柱植)에게 써준 수표로 한규홍의 어머니의 묘를 족장 주식의 선산 백호에 묻었는데 8월내에 이장할 것을 다짐하는 수기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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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6월에 임준항과 전용안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다짐 / 林俊恒 等 / NULL을미년 6월 13일에 38세의 임준항(林俊恒)과 23세의 전용안(田龍安)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다짐이다. 이 둘은 민고전(民庫錢)을 미납하였는데 관에 금월(今月) 15일까지 납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7134
1903년에 이영오가 작성한 기타매매문서 / 李永五 / 1903"1903년(고종 40)에 이영오(李永五)가 작성한 가옥 및 마전 매매문서이다. 그는 진안군(鎭安郡) 일서면(一西面) 좌산리(佐山里)에 있는 2칸 짜리 가옥과 마전(麻田) 2두락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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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에 박경준이 작성한 다짐 / 朴景俊 / NULL"임술년에 박경준(朴景俊)이 담자답(淡字畓) 2마지기와 그곳에 심은 화곡(禾穀)을 전당(典當)하고 1석 1두를 빌리면서 작성하여 준 다짐문서이다. 박경준(朴景俊)이 이 밭을 전당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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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에 김흥제와 김흥제 형제가 작성하여 도윤에게 제출한 다짐 / 金興才 等 / NULL계묘년 4월에 김흥재(金興才) 형제가 동약(洞約)의 임원인 도윤(都尹)에게 제출한 다짐이다. 이들 형제는 마을에서 방자하게 행동하다가 도윤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고 다시는 이와 같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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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에 옥구현감 권부가 최상화의 후손에게 발급한 등급 / 沃溝縣監 權賦 / 1804"1804년(순조 4)에 全羅道 春秋記事官, 즉 外史官을 겸임하던 沃溝縣監 權賦가 남원 사는 崔尙和의 후손에게 발급해 준 등급이다. 권부는 최상화의 효행을 전해 듣고 이를 춘추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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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1년에 남원부에서 동면에 사는 안재도에게 발급한 준호구 / 南原府 / 1681"경술년에 남원부에서 동면 백파 3리에 사는 유학 안재도(45)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그의 두 번째 아내 박씨는 올해 20세이다. 박씨의 4조도 기재되어 있으며, 함께 동거하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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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에 나주목에서 정언희에게 발급한 준호구 / 羅州牧 / 1795"1795년(정조 19)에 羅州牧 東部面 左?里(현 나주시 남내동)에 사는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 鄭彦禧에게 官에서 발급한 준호구이다. 당시 鄭彦禧는 69세였고, 妻 貞夫人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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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9년에 광양현에서 우장면에 사는 정욱에게 발급한 준호구 / 光陽縣 / 17291729년(영조 5)에 광양현에서 우장면에 사는 정욱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정욱은 72세 된 홀어머니를 모시고 아내 이씨(42) 및 두 아들과 함께 살았다. 천구질에 기재된 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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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8년에 진주목에서 이동면에 사는 허영에게 발급해준 준호구 / 晋州牧 / 1768"1768년(영조 44)에 晋州牧에서 二東面 龍奉里 제 24통 제 1호에 거주하던 許泳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허영은 당시 나이 38세였으며, 본관은 김해였다. 부인은 全義 李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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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에 금구현에서 낙양면에 사는 허영에게 발급한 준호구 / 金溝縣 / 18851885년(고종 22)에 전라도 금구현에서 그 고을 낙양면 장평에 사는 유학 허영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당시 허영은 아내 김씨와 함께 늙으신 홀어머니를 모시고 동생 부부와 함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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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에 전주부에서 회포면에 사는 이영정에게 발급한 준호구 / 全州府 / 18341834년(순조 34)에 전라도 전주부에서 회포면 진기리에 사는 유학 이영정(49)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이영정은 아내 정씨(40)와 함께 살았다. 노비가 3명 있었으나 둘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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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에 담양부에서 마입곡면에 사는 노석창에게 발급한 준호구 / 潭陽府 / 1846"1846년(헌종 12)에 潭陽府 ?入谷面 四巖里에 사는 幼學 盧錫昌 앞으로 官에서 발급한 준호구이다. 당시 36세였던 盧錫昌은 2세 연상인 처와 함께 살았으며, 今山이라는 逃亡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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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에 문장 유강원이 작성한 재실매매문서 / 門長 柳綱源 / 18931893년(고종 30) 문장(門長) 유강원(柳綱源)이 작성한 재실(齋室) 매매문서이다. 유강원은 육대조(六代祖) 재실 사간(四間)이 퇴락(頹落)하여 관리할 수 없게 되자 이를 1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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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에 전주부에서 북일면에 사는 임광적에게 발급한 준호구 / 全州府 / 18401840년(헌종 6)에 전주부에서 북일면 송정리에 사는 유학 임광적(83)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그는 아내 전씨(81)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노가 1명 있었으나 도망갔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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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에 광양현에서 인덕면에 사는 정현우에게 발급한 준호구 / 光陽縣 / 17981798년(정조 22)에 광양현에서 관내 인덕면 무선정촌에 사는 유학 정현우(28)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그는 49세의 홀어머니와 아내 박씨(27) 그리고 두명의 동생과 함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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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부에서 발급한 준호구 / 南原府 / NULL남원부에서 을유년 호구단자에 기재된 노비의 인적사항을 대조한 후에 작성해서 아무개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문서의 앞부분이 떨어져 나가 언제 누구에게 발급한 준호구인지 알 수 없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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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에 전주부에서 구이동면에 사는 김진규에게 발급한 준호구 / 全州府 / 1855"1855년(철종 6)에 전주부에서 전주부 구이동면에 사는 유학 김진규(25)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당시 김진규는 23세의 아내 정씨와 함께 살고 있었다. 해남으로 도망간 와복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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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에 무주부에서 부내면에 사는 박경록에게 발급한 준호구 / 茂朱府 / 1825"1825년(순조 25)에 무주부에서 부내면에 사는 업무 박경록(59)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당시 박경록은 42세의 아내 강씨와 함께 살고 있었다. 3년 전인 을유년의 호구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