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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8301

    "전라도 태인군 사곡면 상평리에 사는 吳敬春의 물목기이다. 體舍 4칸, 垈田 5승락, 솥정 2개, 황 3개, 덕석 2개 등의 물목이 쓰여져 있으나 작성한 이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02

    "1914 음력 11월 12일에 지주 백선명의 마름 문수형이 全州郡 伊西面 盤橋里에 소재한 토지에서 소작료를 거두고 지주에게 제출한 소작료 보관증이다. 伊西面 昇地坪의 갑인년 소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03

    1929년에 경기도 부천군에 사는 이명재 등이 칠산군 13대손인 이용의에게 써준 토지보관증서이다. 부천군 오정면 도당리에 있는 1352평의 논은 누대로 칠산군과 좌찬성 양대의 향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04

    1915년 음력 12월 14일에 李順五가 白善明에게 작성하여 준 기름 보관증이다. 이순오는 동백기름 대두 1두 2승용 1동아리를 보관하고 이를 증빙하기 위해 백선명에게 문서를 작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05

    "지번별로 소작을 내어 준 토지의 정보를 본지번, 가지번, 지목, 면적, 옛 동명, 옛 字番, 옛 斗落, 結數, 소작인 등의 순으로 일괄 정리한 대장이다. 논과 밭으로 지목을 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06

    "1928년 11월 11일 전주 동면 4정목에 사는 松本淸一이 작성하여 백선명에게 준 소작인취입장이다. 전주군 조촌면 오송시 천조리에서 벼 486石 2斗 1升, 大豆 1섬 8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07

    "1933년에 음력 정월 14일에 심종택(沈鍾澤)이 경상남도(慶尙南道) 하동군(河東郡) 적량면(赤良面) 동리(東里) 하삼동(下三東) 독산원(獨山員) 1382번지에 있는 밭 276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08

    1911년 9월 초3일에 白樂驥가 작성한 계약서이다. 그는 급하세 사용할 곳이 있어 45냥을 빌리면서 10월30일까지 본전과 이자 모두를 갚겠다고 약속하였다. 그가 기한 내에 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09

    1911년 2월 초 9일에 標主인 許榮源이 작성한 手標이다. 허영원은 米價중 남은 돈 90냥을 매 10냥씩 시중의 이자로 갚기로 약속하며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수급자에게 이 표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10

    "1913년에 송성언이 백선명에게 79량을 빌리면서 작성한 표문이다. 이자는 시장에서 통용되는 예로 정하고, 돈을 빌리는 기한은 같은 해 10월말까지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11

    "1782년(정조 6) 11월 27일에 서대윤이 김용재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서대윤은 동생인 하봉이 환자를 받아쓰고 도망한 후에 환자를 갚을길이 막막해졌다. 그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12

    1911년 음 3월 27일 전주군 초촌면 신풍리에 사는 金京守가 白善明에게 채무변재를 약속하며 작성하여 준 約束手形이다. 김경수는 1911년 음력 윤 6월 29일까지 2원 50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13

    "1913년에 구장원이 긴요하게 돈이 필요하여 발행한 표문이다. 구장원은 紙貨 四円을 빌려 쓰면서, 다음 해인 계축년 정월 이십일까지 갚기로 약조하였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백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14

    1912년 음력7월에 白樂驥가 작성한 계약서이다. 그는 급한 용처가 있어 15원을 빌리면서 음력 8월30일까지 본전과 이자 모두를 갚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는 한해 전에도 45냥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15

    1912년 8월에 우림곡면에 사는 강덕홍이 작성해 준 계약표이다. 문서의 수급자는 적혀 있지 않다. 강덕홍은 긴히 쓸 곳이 생겨 10냥을 빌리고 10월 말까지 갚기로 약속하면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16

    1913년 음력 12월 29일에 金在興이 작성한 手標이다. 大正 2년은 1913년이고 임자년은 1912년이므로 돈을 빌린 임자년 음력 12월은 1913년 1-2월경이다. 음력12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17

    신해년 음력8월에 金逢業이 작성한 手標이다. 그는 策字畓 4마지기의 금년 結都稅로 大斗 16斗를 음력 9월30일까지 주겠다고 약정하고 수표를 작성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18

    1912년 음력 4월 7일에 全州郡 伊西面에 사는 임문수가 작성한 手標이다. 그는 37냥을 빌리면서 10월 말까지 본전과 이자 모두를 갚겠다고 약속하였다. 본 문기에는 채권자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19

    1912년 음력3월에 이응필이 작성한 수표이다. 그는 15냥을 빌리면서 보름 후에 본전과 이자 모두를 갚겠다고 약속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20

    신해년 7월 12일에 金致道가 긴급히 사용할 곳이 있어서 150냥을 빌리면서 작성한 표이다. 다음달 30일까지 갚겠다고 약속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21

    1911년에 임실군에 사는 崔承雨가 安克淳에게 작성하여 준 표이다. 최승우이 곡성군 석곡면 덕흥리에 사는 李錫魯로부터 산 순창군 풍남면 현경치의 선산을 안국순에게 팔면서 작성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22

    1868년(고종 5) 4월 10일에 김준이가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김준이는 형편이 어려워 그동안 경작해오던 문척면 죽연리 내동평에 있는 場字畓 1두락지의 논을 25냥을 받고 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23

    신해년 6월 초9일에 金致道가 급히 사용할 곳이 있어서 20냥을 이자 6리로 빌리면서 작성한 표이다. 그는 이 돈을 9월 30일까지 본전과 이자 모두를 갚겠다고 약속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24

    1912년 음력5월에 김재흥이 金在興이 작성한 手標이다.5원을 빌리면서 그는 6월30일까지 갚겠다고 약속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25

    1920년 2월 29일에 崔一煥이 高濟五에게 작성하여 준 手票이다. 최일환은 畓 가격으로 102냥을 납부하겠다는 약속의 뜻으로 이 수표를 작성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26

    "1914년 12월 27일에 구장원이 돈 20엔을 白善明에게 빌리면서 작성한 수표이다. 빌린 돈은 대정이년 음력 2월 20일까지 갚기로 하고, 이자는 시장의 예에 따라 지급하기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27

    1914년 음력 6월 보성면 장면리에 사는 金京洪이 林準明에게 써 준 증서이다. 동면 구계리에 있는 산판을 매도할 때 측량도형과 본전을 실지 않고 표로서 용산을 전에 적어 실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28

    신해년 음력11월 4일에 태인 사곡면 도평리 1통 9호에 사는 오경춘이 100량을 빌리면서 작성한 표이다. 그는 이듬해 3월 30일까지 갚겠다고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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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329

    "1912년 음력 6월 11일에 전주군 이동면 두현리에 사는 채보경이 작성해 준 계약표이다. 채보경은 양식이 부족해 15냥을 시중이자로 빌리면서, 금년 10월 20일까지 원금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30

    1912년에 李光玉이 작성한 手票이다. 이광옥은 사십 엔을 빌리는 대신 정재리에 있는 전답을 저당 잡혔다. 빌린 기간은 금년 시월 그믐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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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331

    1912년에 백남선이 긴히 쓸 곳이 있어 2원을 빌리면서 작성한 수표이다. 4월17일까지 빌린 돈을 당시의 시중이자로 계산하여 갚기로 약속하였다. 김재흥이 증인을 섰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32

    임자년 6월 6일에 兪贊仲이 농사지을 때 먹을 곡식을 댈 방법이 없어 4원을 빌리면서 작성해 준 표이다. 10월 20일까지 본전과 이자 모두를 갚겠다고 약속하였다. 이름을 개명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33

    "1814년(순종 14) 8월 27일 李雲瑞가 사서 경작해 오던 남일면 朝字 논 8두락을 金用渙에게 20냥에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元理가 증인을 섰으며, 李浚坤이 문서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34

    1912년 음력2월 3일에 李應必이 작성한 수표이다. 그는 100냥을 빌리면서 이 돈을 8개월 뒤인 10월 30일까지 갚겠다고 약속하고 수표를 작성하여 주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35

    "1911년 음력 11월 7일에 文昌浩가 작성한 手標이다. 전주부 남면 색장리에 사는 문창호는 50냥을 빌리면서 이자는 매월 초하루에 4분리로 하고, 본전은 내년 3월 그믐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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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336

    1912년 음력12월에 전주군 이서면 갈동에 사는 柳聖善이 30냥을 5리 이자로 빌리면서 작성한 표이다. 그는 이 돈을 다음해 10월 30일까지 갚겠다고 약속하였다. 같은 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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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337

    1912년 음력3월28일에 全州郡 伊西面에 사는 林文秀가 白善明에게 돈을 빌리면서 작성한 手標이다. 그는 30냥을 시중이자로 계산해서 원금과 이자를 보름후인 음력 4월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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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338

    "1912년 12월 12일에 이광옥은 정재리에 있는 석침을 저당으로 사십엔을 빌렸다. 이 돈은 금년 10월 그믐까지 이자 및 원금을 갚기로 약조하고, 이자는 매월 초 5리의 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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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339

    "1911년 6월에 류덕오가 전주 이동면에 있는 자신의 ?舍 3칸과 행랑 2칸과 채소밭 1마지기를 전당하여 100냥을 빌리면서 작성해 준 수표이다. 3년 동안 5리의 이자로 갚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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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340

    1912년에 김재흥이 작성한 手標이다. 그는 음력 5월5일에 20원을 빌리면서 12월30일까지 갚겠다고 약속하였으나 20여일 뒤에 다시 5원을 빌리고 12월 29일에도 또다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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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341

    "1913년 9월 23일에 계약주인 이경구가 작성한 수표이다. 이경구는 2圓을 빌리면서 10월10일까지 갚기로 하고 이 수표를 작성하였다. 9월24일에 빌리고, 10월10일에 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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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342

    1912년 음력5월에 全州郡 伊西面에 사는 林文秀가 작성한 手標이다.그는 380냥을 10월 20일까지 원금과 이자를 갚기로 하고 돈을 빌렸는데 그는 이미 3월과 4월에도 각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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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343

    신해년 음력 11월에 鄭寅壽가 50냥을 빌리면서 작성하여 준 수표이다. 그는 이 돈을 내년 4월 30일까지 갚겠다고 약속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8344

    "1655년(효종 6) 3월에 왕이 김명열을 朝散大夫 行 奉常寺?奉 兼 校書館著作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이다. 문서의 말미에 ‘乙三別加’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乙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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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345

    1843년(헌종 9) 12월 26일에 서정관이 노광오에게 작성해 준 논매매문서이다. 서정관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여러 해 동안 경작해오던 수지방 마륜촌에 있는 人字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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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346

    1913년 9월 19일에 金積成이 토지를 20원에 전당하면서 써준 영수증이다. 받은 자는 나와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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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347

    "1918년 11월에 보성군 웅치면에 사는 崔亨集이 李容禹에게 써 준 영수증이다. 동면 大山里에 있는 논 3두락을 50원에 매도하고, 매도대금을 잘 받았다고 써 준 영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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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348

    "임자년(1912년) 음 10월 20일 白낙기가 백선명에게 작성하여 준 영수증이다. 박공선과 정춘삼, 고덕삼이 가져간 조의 양과 날자, 그 밖의 본전과 조봉일이 가져간 돈의 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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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349

    계해년 3월 10일에 光州鄕校의 掌財인 李敎喆과 掌議인 鄭淳衡이 李敎銓에게 光州鄕校 西齋를 건축할 때 드는 비용의 일부인 12円을 지불했음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영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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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350

    임술년 7월 21일에 高彦柱가 朴魯柱에게 光州鄕校를 수리할 때 드는 비용으로 朴魯柱가 5円을 지불하였음을 증명해주기 위해 발급한 영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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