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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92351

    "병인년 남원부(南原府) 둔덕방(屯德坊)에 사는 오석순(吳錫淳)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작성 당시 오석순의 나이 64세이며, 처 채씨(蔡氏)는 작고하여 오석순의 직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52

    1861년(철종 12)에 유학 김종순(金鐘淳)이 작성하여 전라도(全羅道) 태인현(泰仁縣)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당시 김종순(33)은 아내 김씨(24) 및 아들 오영(五榮)과 함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53

    1846년(헌종 12)에 경상도(慶尙道) 성주목(星州牧) 서면(西面) 금파곡(琴琶谷) 후포리(後浦里)에 사는 61세의 유학 배경(裵?)이 작성한 호구단자로 처 이씨는 죽었으며 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54

    "신유년 경상도(慶尙道) 산청현(山?縣)에 살던 이맹익(李孟翊)의 호구단자이다. 작성 당시 이맹익의 나이는 76세였으며 아들 익배(益培)와, 복배(復培), 며느리 김씨(金氏)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55

    "1858년(철종 9)에 충청도(忠淸道) 청산현(靑山縣) 서면(西面) 대화동(大和洞)에 사는 유학(幼學) 서달종(徐達鍾, 58세)이 작성하여 청산현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그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56

    1843년(헌종 9) 3월 18일에 황연옥이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황연옥은 장흥방 가방평에 있는 來字畓 6마지기를 140냥을 받고 팔았다. 그는 매수인에게 이 논의 본문기 1장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57

    "1869년(고종 6) 경상도(慶尙道) 거창부(居昌府) 지산면(芝山面) 자하동(紫霞洞)에 사는 유학(幼學) 유치원(劉致源)이 24세 되던 해에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로 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58

    "모년에 유학(幼學) 서극상(徐克祥)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서극상(54세)은 아내 손씨(孫氏, 50세)와 함께 살았으며 계집종 둘을 데리고 있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59

    "1861년(철종 12)에 전라도(全羅道) 순천부(順天府) 여수면(呂水面) 동토려(東土閭)에 사는 한량(閑良) 김재욱(金在郁, 36)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그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60

    1849년(헌종 15)에 경상도(慶尙道) 진주목(晋州牧) 창선리(昌善里) 수산동(水山洞)에 살던 황경눌(黃璟訥)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이 집의 호주(戶主)는 원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61

    "1870년(고종 7) 경상도(慶尙道) 곤양군(昆陽郡) 금양면(金陽面) 용호동(龍湖洞)에 사는 유학(幼學) 이기철(李基哲)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유학 이기철은 당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62

    "1854년에 충청도 황간현 매하면 둔덕리에 사는 유학 박춘진(42)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홀아비인 그는 두아들 순민(17),순직(13)과 함께 살았으며 앙역노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63

    "계유년에 파며면(巴?面) 지동리(池洞里)에 사는 유학(幼學) 정흠로(鄭欽魯, 27)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그는 동갑내기 처(妻) 장씨(張氏)와 함께 살았는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64

    "갑오년에 전라도(全羅道) 고부군(古阜郡) 거마면(巨麻面) 덕신리(德新里)에 사는 정홍조(鄭弘朝)가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그는 당시 49세로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41세의 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65

    1846년(헌종 12) 경상도(慶尙道) 하동부(河東府) 서량곡면(西良谷面) 세곡촌(細谷村)에 사는 60세의 유학 정규(鄭?)가 작성하여 관에 올린 호구단자이다. 54세의 처 강씨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66

    "1806년(순조 6)에 남원부 백파방에 사는 유학 안상정(59)이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안상정의 초명은 상검이며 당시 아내 전주 이씨(58세), 동생 상지(46세), 과부 박씨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67

    1847년(헌종 13) 1월 22일에 정동석이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그는 자신이 사서 여러 해 동안 경작해오던 남원 소의방 원앙평에 있는 師字畓 4두락지를 錢文 150냥을 받고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68

    "1841년(헌종 7) 좌승지 김아무게가 경기관찰사 서모에게 보낸 노문이다. 좌승지 김모는 새로 제수된 승정원도승지 趙冀永이 여주지방을 지나가거든, 경기 관찰사가 그에게 말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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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69

    "을묘년 2월 13일과 을묘년 3월 5일자로 각각 발급된 路文이다. 이 낱장의 문서는 아마도 여러 건의 노문을 한데 모아 놓은 것 가운데 일부로 추정된다. 문서 WON07517-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70

    2월 10일과 2월 12일자로 각각 발급된 路文이다. 이 낱장의 문서는 아마도 여러 건의 노문을 한데 모아 놓은 것 가운데 일부로 추정된다. 아마도 문서 WON07517-1의 앞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71

    1849년(헌종 15) 2월 11일에 韓順甲이 전라도 남원부 수지방 갈촌 후평에 있는 의자(衣字) 논 4두락과 내자(乃字) 논 3두락을 105냥에 盧光午에게 매매하면서 작성하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372

    1810년(순조10) 9월에 金甲龍 등이 전주이씨에게 작성해 준 수기이다. 金甲龍이라는 사람과 그의 아들 金彭孫 및 조카 金彭雲은 둔덕에 대대로 살던 전주이씨 소유의 산소 둘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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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73

    1645년(인조 23) 6월에 李令監 소유의 노 奉伊가 이유형 소유의 노 후산과 허농대에게 작성해 준 일종의 覺書이다. 노 奉伊는 그의 상전인 李令監의 명령을 받아 돈을 벌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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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74

    정유년 11월 초1일에 柳軫七이 모친의 장지를 잘못하여 김일규의 산소 가까운 곳에 선정하였으므로 金鎰圭에게 15일 이내 무덤을 이장할 것을 약속하면서 작성한 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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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75

    1859년(철종 10) 10월 19일에 幼學 吳匡翼과 幼學 吳炳柱가 종중 앞으로 작성한 수표이다. 이들은 종중 선산에 있는 표송(標松)과 어린 나무를 몰래 베어 팔았다. 이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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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76

    "경오년에 申爲洪이 어떤 사람에게 작성해 준 수표이다. 山祭洞位畓 2두락을 李乭文이라는 사람이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돌문은 이 논을 신유년에 어떤 사람에게 몰래 팔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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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77

    "1814년(순조 14)에 최진효가 安璥烈에게 작성하여 준 수기이다. 당시 최진효의 親山이 묘동에 있었으며, 안경열의 선산도 같은 곳에 있었다. 그러나 양쪽지방의 오랜 호의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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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78

    "1878년(고종 15) 2월 13일에 이호기가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그는 동복현 읍내면 금각동에 있는 ?字畓 3두락지를 80냥에 팔았으며, 매수인에게 신문기와 구문기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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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79

    1892년(고종 29)에 徐相大가 작성한 표이다. 서상대는 金洛鍾의 監役帖과 관련하여 全羅道 求禮縣 절골에 살고 있는 김씨들과 여러 번 소송을 벌였다. 하지만 매번 패소하여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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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80

    기유년 11월 17일에 票主인 金箕豊이 긴히 쓸 곳이 생겨서 아무개에게 東沙涯와 道昌坪에 있는 전답 5斗落只에서 소출되는 麥穀을 저당 잡히고 錢文 7兩 2?을 빌렸다. 이 문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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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81

    1894년(고종 31)에 어느 사찰에서 김사과 댁에 작성해 준 수표이다. 그 사찰에서는 김사과 집안에서 논 4두락을 기증받아 여기에서 나오는 돈으로 조상인 김판서의 영정을 수 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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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82

    1839년(헌종 5) 10월 12일에 전라도 남원부에 거주하던 張鈿이 성남방의 방회원에게 작성해 준 수표이다. 그는 자신의 형이 방회에게 진 빚 27냥을 대신 갚았는데 5냥은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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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83

    "1839년(헌종 5)에 능주목 장면에 거주하던 崔好得이 朴光殷에게 써준 手記이다. 생원 朴光殷이 최호득의 어머니의 무덤 근처에 죽은 동생을 묻었는데, 그 형편이 어쩔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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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84

    "1810년(순조 10) 12월 초3일에 宗末 一煥이 빌린 先族契錢을 갚기 위해 문중에 작성해 준 수기이다. 일환은 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때 2량 3전을, 죽은 동생의 명의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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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85

    "병신년 10월에 朴同知가 작성하여 喜慶에게 써 준 수표이다. 박동지는 定倫이란 자를 믿고 희경에게 송아지를 매매하는데 정윤이 말을 바꾸어 나쁘게 행동할 수도 있고 또 자신과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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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86

    경신년 11월 29일에 金아무개가 작성해 준 납기표이다. 수급자는 나와 있지 않은데 김아무개가 125냥 중에 28냥을 갚지 못하자 부득이 논 4두락과 8냥으로써 갚게 되었다는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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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87

    "을축년에 유왈개가 안생원댁에 작성해 준 수표이다. 안생원댁에서 시신을 안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묘소 근처의 송추 약간을 벨 수 있기를 요청하자, 유왈개가 안생원댁으로부터 송추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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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88

    임인년 4월 초 9일에 鄭基仁이 作成한 手標이다. 정기인의 선친이 10년 전인 임진년에 鄭希汝에게 500냥을 빌려주고 10여년에 걸쳐 받았다. 그런데 빌려줄 때 받은 표를 중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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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89

    1751년(영조 27)에 朴根厚가 金世聲에게 작성해 준 논 매매문기이다. 박근후는 가진 땅을 팔아서 다른 땅을 사려고 부인의 친정에서 받은 토지 부남의 者자답 2마지기를 돈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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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90

    이봉규가 작성한 수표 / 李奉奎 / NULL
    "장수현에 사는 이봉규가 洞畓錢에서 150냥을 차용하면서 작성한 수표이다. 그는 다음 해 10월 말까지 돈을 갚기로 하고, 오리평에 소재한 자신 소유의 토지 5마지기를 전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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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91

    "1876년(고종 13)에 장수현 계남면 곡리에 사는 粱璟宅이 작성한 수표로, 산지기인 김정민으로부터 미납된 14냥을 추봉하는 일을 자신이 맡아서 하기로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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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92

    1889년(고종 26)년에 서병남이 작성한 수기이다. 감역첩과 관련하여 김락종 측과 서상대 측이 사화하면서 작성한 수기이다. 서병남은 서상대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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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93

    1832년(순조 32) 4월 21일에 李集春이 林仁玉에게 써 준 수기이다. 이집춘은 임인옥의 선산 가까이에 묘를 쓴 일 때문에 임인옥으로부터 관에 피소를 당한 바 있다. 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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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94

    1863년(철종 14) 5월 3일에 양병렬이 이승원과 매매 후에 주고 받은 證書인 手標이다. 양병렬은 용담 남일면 망덕평에 있는 ?字畓 5마지기를 긴히 쓸 곳이 있어서 이승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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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95

    1865년(고종 2) 남원 말천방에 사는 沈麒宅 등이 전주 이씨들에게 작성해 준 수기이다. 남원부 말천방 뇌천에 살던 풍산 심씨들은 1865년 2월에 선산 산지기의 곳간을 지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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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96

    1864년(고종 1)에 이조이가 張進士에게 작성해 준 수기이다.李召史는 친정 祖母의 묘를 張進士의 선산에 썼다가 투장혐의로 고소를 당하였다. 본 문서는 소송에서 落科하자 移葬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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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97

    1867년(고종 4) 1월 18일에 任春瑞가 族兄 任君瑞에게 써준 수표이다. 임춘서가 士彦의 말을 잘못 듣고 5두락의 땅을 몰래 샀었는데 지금 산 논의 본 주인이 도망하여 돌아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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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98

    1879년(고종 16) 윤3월에 金得瑞가 鞠暻珣에게 작성해 준 수기이다. 水營門 小錄錢 등 250냥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尺文 대신 작성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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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399

    "정유년에 장수현에 사는 宋秉厦이 작성한 手記이다. 위 수기는 지난 갑오년에 계남면민들이 올린 等狀과 관련된 것으로, 당시 현감은 무덤 주인으로 하여금 파내도록 하고 그렇게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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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00

    1774년(영조 50) 1월 27일에 임득룡이 김상적에게 작성해 준 논매매문서이다. 임득룡은 수년동안 경작해오던 팔등면 구룡리에 있는 宿字畓 4마지기 가운데 위쪽의 8승락지를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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