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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에 이조이가 작성한 수표 / 李召史 / NULL무자년 2월 초7일에 이조이가 작성한 수표이다. 과부 이씨는 세미를 내느라 사채를 빌렸는데 빌린 사채를 갚을 길이 없어 딸을 종으로 보내는 등 집안은 황폐해지고 기물도 다하여 형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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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에 정화춘이 작성한 수표 / 丁花春 / NULL병술년 11월 23일에 정화춘이 부모를 李明心의 산지에 입장하였는데 3년후 이장할 것을 약속하며 작성한 수표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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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년에 김아무개와 최아무개 등이 작성한 수표 / 金某 崔某 / NULL"丁巳年 12월 18일에 契首(계의 우두머리)인 金아무개와 계원 崔아무개가 作成한 手記이다. 원래 수기는 매매, 임대, 전당 또는 차용 등을 할 때 쌍방간에 맺은 계약이나 약속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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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년에 구성여가 송 아무개에게 작성해 준 수표 / 具聖汝 / NULL"갑자년 3월 25일에 구성여가 작성하여 宋 아무개에게 준 수기이다. 구성여는 송씨와 송추를 작벌한 사안으로 2년여에 걸쳐 소송을 하였었다. 그런데 이 수기에서 구성여는 자신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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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에 김봉겸이 박여화에게 작성해 준 수표 / 金鳳兼 / 18951895년(고종 32)에 金鳳兼이 작성한 다짐문서이다. 김봉겸은 작년 10월 같은 읍에 사는 朴汝化라는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린 바 있다. 그런데 이 돈을 약속한 날짜까지 갚지 못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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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에 김영석과 김윤장이 조위장에게 작성해 준 수표 / 金永碩 等 / NULL"무술년 12월 5일에 金永碩과 金允長이 趙衛將에게 작성해 준 수표이다. 宗孫이 稅米를 낼 길이 막막하자 종중 재산인 孰字畓 5두락을 종중에서 의논하여 방매하였다. 방매가격은 적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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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에 박제영이 김천우에게 써 준 수표 / 朴齊榮 / NULL"정미년 4월 10일에 박제영이 김천우에게 써 준 수표이다. 고부 건성면 덕성리(현 정읍시 정우면 화천리)에 사는 朴齊榮은 長城 西三面 高莊山(현 장성군 서삼면 장산리)에 있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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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에 기린이 작성한 수표 / 基麟 / 18421842년(헌종 8) 5월 11일에 族弟 基麟이 임시로 장사를 지낸 곳이 족형의 선산과 인접한 곳이므로 족형이 앞으로 그 근처에 무덤을 쓰더라고 금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작성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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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에 박규진이 작성한 수표 / 朴圭鎭 / NULL계미년에 朴圭鎭이 作成한 手標이다. 박규진은 화곡 5섬을 전당잡히고 백미 80되 1석을 빌려 썼다. 박규진은 8월 10일까지 지난번에 빌려 쓴 백미를 기한 내에 갚지 못하면 백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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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에 서병윤이 작성한 수표 / 徐丙潤 / 18891889년(고종 26)에 徐丙潤이 작성한 표이다. 金洛鍾의 監役帖과 관련한 금전문제로 사건이 발생하자 김락종 측과 徐相大 측이 사화하면서 작성한 것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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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에 유학 장박옥이 작성해 준 전답매매문서 / 張泊玉 / 1882"1882년(고종 19)에 유학 張泊玉이 월등면에 있는 논 5두락 중에서 3두락을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기이다. 장박옥은 대대로 경작해 오던 논을 형편이 안 좋아져서 팔게 되었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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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에 김형재가 작성한 수표 / 金亨載 / NULL"병신년 2월 19일에 김형재가 작성한 수표이다, 김형재는 계사년 봄에 상대방 祖母山所 근처에 입장하여서 4월 그믐내로 굴거할 것을 약속하였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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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에 문감룡이 작성한 수표 / 文甘龍 / 18251825년(순조 25)에 文甘龍이 趙希孟에게 작성해 준 手記이다. 文甘龍의 선산에 조희맹 측이 이장하였다가 문제가 발생하자 옮기기로 하고 수기를 작성한 바 있다. 그러나 약속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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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에 이용하가 작성한 수표 / 李用夏 / NULL경자년 1월 14일에 이용하가 작성한 手記이다. 이용하는 매우 가난하여 집의 뒤터를 10냥에 김영신에게 팔면서 수기를 작성하였다. 이때 박천은이 증인으로 참여하였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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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에 류이진이 작성한 수표 / 柳彛鎭 / NULL"갑신년 10월 28일에 장수현에 사는 柳彛鎭이 작성한 手標이다. 그가 얼마 전에 梁某에게 빌려준 돈 80냥을 梁某의 집에 가서 청구하자 몇 번이나 미루다가 梁某의 부친이 30냥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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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원이 작성한 수표 / 梁局元 / NULL"장수현 계남면 곡리에 사는 梁局元이 채권자에게 작성해 준 手標이다. 그는 자신이 진 빚 193냥 가운데 113냥을 탕감받고, 나머지 80냥을 보름 간격으로 세 번에 걸쳐서 갚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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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에 최만화가 작성한 수표 / 崔萬化 / NULL을유년 5월 3일에 崔萬化가 梁生員댁에 작성해 준 手標이다. 1년 전에 標主를 비롯한 4명이 梁生員에게 노름빚 400냥을 졌다가 탕감 받은 나머지 50냥을 갚기로 하고 標를 써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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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에 류이진이 작성한 수표 / 柳彛鎭 / NULL"정해년 3월 12일에 장수현 읍내에 사는 柳彛鎭이 작성한 手標이다. 그는 1년 전에 계남면 곡리에 사는 양모에게 노름판에서 60냥을 빌려 주었다가 이를 받지 못하였는데, 몇 차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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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에 정세현이 김생원에게 써 준 수표 / 程世賢 / NULL경오년 8월 18일에 程世賢이 龍潭에 사는 金生員에게 써 준 수표이다. 程世賢은 김생원의 선산에 투장한 일로 대해 관으로부터 묘를 이장하라는 판결을 받은 듯하다. 이에 程世賢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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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에 오영환이 작성한 수표 / 吳英煥 / NULL"경자년 정월에 吳英煥이 작성한 手標이다. 관련문서 15804와 함께 그 내용을 유추하면, 大谷面 德川坪에 6두락지의 논을 가지고 있던 金相奎가 550냥을 받고 같은 고을의 尹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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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년에 문창혁이 박생원에게 써 준 수표 / 文昌赫 / NULL기묘년 3월 1일에 文昌赫이 朴生員에게 작성하여 준 수표이다. 문창혁의 부모 산소가 박생원 댁 선산자락에 있는데 박생원이 이를 누차 파갈 것을 부탁하였다. 이에 문창혁은 결국 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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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에 정순을이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 鄭淳乙 / 18961896년(건양 1) 1월 15일에 鄭淳乙이 從兄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전답매매문서이다. 정순을은 자신이 매득하여 오랫동안 경작해 오던 羅州牧 道林面(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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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에 박유권이 신만규에게 작성해 준 수표 / 朴有權 / 18701870년(고종 7)에 장수현에 사는 朴有權이 진안현에 사는 辛滿珪에게 작성해 준 수표이다. 박유권은 신만규의 선산에 투장하였다가 전해에 신만규가 제기한 소송에서 낙과하자 한식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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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년에 최덕언 등이 작성한 수표 / 崔德彦 等 / NULL"계유년에 崔德彦 등이 작성한 手記이다. 族人의 호의로 그의 금양지에 亡親의 묘를 써서 무사히 장례를 치루었으나, 차후 다시 이곳에 묘를 쓰면, 이번의 親葬까지 모두 관에 고하여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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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에 양영옥이 작성한 수표 / 梁永玉 / NULL갑신년에 양영옥이 작성한 수기이다. 양영옥은 구례현 계사면 유곡 당산평에 있는 制字 네 배미의 토지를 41냥에 팔았다. 그런데 네 배미 가운데 두 배미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자 3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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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에 서상순이 국용헌에게 써 준 수표 / 徐祥淳 / NULL신해년에 幼學 徐祥淳이 鞠龍憲에게 작성하여 준 문서이다. 서상순은 자신의 선산에 국용헌이 몰래 무덤을 쓰자 이 사실을 관에 고하였다. 그 후 관에서는 山의 圖形을 보고 서로간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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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에 곡성에 사는 서상대가 김영국에게 작성해 준 수표 / 徐相大 / 18861886년(고종 23)에 곡성에 사는 서상대가 김영국에게 작성해 준 표이다. 서상대는 김영국의 아들인 김락종의 감역전 조로 받은 1200냥을 돌려주기로 약속하고 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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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에 양홍이 작성한 수표 / 梁泓 / NULL"신사년 2월에 유학 양홍이 유학 安在烈에게 작성하여 준 수기이다. 양홍은 일찍이 안재열의 증조모산을 사서 入葬하고 여러 해를 지켜 왔는데, 경인년 12월에 안재열이 그곳에 조모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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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년에 4개 마을의 두민이 작성한 수표 / NULL / NULL기묘년 10월에 4개 마을의 어른인 頭民들이 오씨에게 작성해 준 표이다. 4개 마을에서 관리하던 산지와 오씨 선산은 길을 경계로 나뉘었는데 새로운 길이 남에 따라 분쟁이 일어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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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년에 이내일이 작성한 수표 / 李乃一 / NULL"갑자년 4월 21일에 이내일이 제내에 있는 아무개에게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매달 이자 5푼씩 갚기로 하고 7냥을 빌리고, 또 빌린 돈은 11월 그믐 안으로 갚는다고 약속하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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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에 김원득 등이 작성한 수표 / 金元得 等 / NULL"기해년 12월 12일에 金元得이 작성한 手記이다. 西部 永村에 사는 金永申이 祖母의 묘를 복암촌 뒤에 쓰니, 이에 마을에서 소장을 올리므로 김영신이 백방으로 애걸하자 부득이하게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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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에 송행원 등이 작성한 수표 / 宋幸元 等 / NULL"신미년 2월14일에 頭民 宋幸元, 朴子和, 金學範 등이 作成한 標이다. 泰仁 西村面 6里에 사는 崔大成에게 나온 補役錢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族戚들이 서로 분담하여 8냥을 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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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에 박종실이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 朴宗實 / 1888"1888년(고종 25) 11월 14일에 박종실이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박종실은 동복현 읍내면 동정촌에 있는 金字畓 1두락지를 60냥에 팔았으며, 매수인에게 신문기와 구문기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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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에 김화백이 작성한 수표 / 金華伯 / NULL신유년 1월 25일에 유학 김화백이 유학 양시견에게 작년 봄에 돈 30냥과 매달 이자 5푼씩을 갚는다고 하면서 빌렸다. 그런데 기한이 지나도 갚지를 못해서 가을 추수가 끝난 뒤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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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년에 김봉구가 작성한 수표 / 金鳳九 / NULL정사년 11월 초 5일에 金鳳九가 작성한 수표이다. 김봉구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수표의 수급자에게 3분의 이자로 50냥을 빌리면서 명년 10월 말일까지 갚겠다는 약속의 뜻으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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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년에 강학무가 한일문에게 작성해 준 수표 / 姜學茂 / NULL기유년에 임실군 신평면에 사는 강학무가 덕치면 日九之里에 사는 韓日文에게 묵은 빚 9냥 7전 7부를 갚기로 하고 작성해 준 수기이다. 증인은 申福烈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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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에 김효중이 작성해 준 수표 / 金孝仲 / NULL경술년 2월에 김효중이 쓸 곳이 생겨 36냥을 빌리면서 작성해 준 수표이다. 이자는 변리로 계산하되 올해 10월 말까지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기로 약속하였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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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에 이내순 등이 작성한 수표 / 李乃順 等 / NULL"신미년 3월 15일에 李乃順, 崔萬何, 金基?, 丁英之 등이 梁生員에게 작성해 준 手標이다. 이들은 노름을 하다 진 빚 400냥 가운데 탕감받고 남은 50냥을 반드시 갚기로 약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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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에 안진천이 작성한 수표 / 安鎭天 / NULL병오년에 安鎭天이 작성하여 산 주인에게 준 수표이다. 안천진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자 興德 二東面 橋洞 後麓에 임시로 모셨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계신 산 주인이 관에 문제를 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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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에 신종언이 작성한 수표 / 愼宗彦 / NULL"무술년에 신종언이 작성한 수표이다. 지난 갑오년에 질좋은 담배잎 96묶음으로 2냥빚을 탕감하기로 수표를 작성하였었는데, 서로 다른 말이 나오니 이에 서로 다른 말이 나오지 않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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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에 신동환이 작성한 수표 / 辛東煥 / NULL을사년에 신동환이 암장한 묘를 내년 봄까지 파묘하기로 약속하는 수기이다. 신동환은 김생원댁의 先山主脈에 밤에 몰래 暗葬하였다. 망자의 장례를 치르면서 양반가에서 금지하는 땅에 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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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에 윤아무개가 작성한 수표 / 尹某 / NULL갑오년에 尹아무개가 작성한 手票이다. 화양촌에 살던 김팔월과 김속오를 찾을 수 없으므로 그들이 담당해야 하는 것을 동중에서 대신하기로 약속하는 수표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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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에 국덕환이 김원서에게 작성해 준 수표 / 鞠德煥 / NULL무술년 3월에 鞠德煥이 과산 월명암의 왼쪽에 자리한 땅을 金元西로부터 사들이면서 작성하여 준 다짐문서이다. 당시 이 땅에 대하여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김생원에 대해서는 따로 표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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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에 김응규가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 金應奎 / NULL경신년 3월 3일에 김응규가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김응규가 조상에게서 전해받은 논 4마지기가 일동면 외도산리에 있는데 동생이 여러차례 위조문기를 만들어서 팔아먹곤 하였다. 형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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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에 장세운이 방생원에게 써준 수표 / 張世蕓 / 18341834년(순조 34) 11월 13일 장세운이 방세원에게 써준 수기이다. 장세운이 모친상을 당하여 방세원의 선산에 몰래 무덤을 썼는데 11월 말일까지는 다른 곳으로 이장하겠다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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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년에 박성춘이 작성한 수표 / 朴成春 / NULL丁巳年 10월 초6일에 標主인 朴成春이 錦沙村前에 있는 按字畓 10斗落只를 아무개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手標이다. 방매시에는 신문기는 물론이고 구문기 또한 매득인에게 넘겨주어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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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에 서원발이 작성한 수표 / 徐元發 / NULL기축년에 장수현에 사는 徐元發이 작성한 手標이다. 그가 5년 전인 갑신년과 2년 전인 정해년에 梁某에게 빌려준 돈과 이자 모두 합해서 50냥을 梁某의 집에 가서 청구하였다. 梁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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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에 오재삼이 오생원댁 노 운노매에게 써 준 수표 / 吳再三 / 17891789년(정조 13) 9월 3일에 吳再三이 吳生員宅 奴 雲老昧에게 써 준 수기이다. 오생원댁은 최곳대의 셋째딸 古邑德을 지난 1784년에 매득하였다. 그런데 고읍덕이 올 8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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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에 한용진이 쓴 수표 / 韓用鎭 / NULL"경신년 6월에 韓用鎭이 작성하여 준 수표이다. 한용진은 船主人으로써 辛丑年부터 매년 本錢과 利子를 합한 40량의 稅를 바치기로 하였는데, 만약 이 약속을 어기면 선주인의 자격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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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에 김만현이 고부의 김생원에게 작성해 준 수표 / 金萬鉉 / 18831883년(고종 20) 4월 19일에 김제에 사는 김만현이 고부 김생원댁에 써준 수표이다. 작년 8월에 김만현은 김생원의 증조부모묘 사이에 즉은 아들을 투매를 하였는데 官掘하여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