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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92451

    계축년 7월에 전라도 부안현 위도에 사는 申永仲이 80냥을 빌리고서 작성해 준 수기이다. 8월 15일까지 본전과 이자 모두를 갚겠다고 약속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52

    유이진이 작성한 수표 / 柳彛辰 / NULL
    "유이진이 장수현 계남면 곡리에 사는 梁生員에게 작성해 준 手標이다. 그가 양생원에게 빌린 돈 193냥 가운데 113냥은 탕감 받고 나머지 90냥을 10월 보름까지 갚기로 하고,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53

    병인년 11월13일에 任福行이 작성하여 宣興三에게 건네 준 手標이다. 임복행은 선흥삼의 콩밭 2마지기를 전당잡고 2냥을 빌려주었다가 금년에 본전까지 모두 돌려받았다. 그러나 임복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54

    1877년(고종 14)에 崔權淳이 崔相祐에게 작성해 준 수표이다. 아마도 최상우는 그의 부친이 사망하였으나 무덤을 쓸 곳이 적당치 않자 최권순의 선산에 무덤을 쓸 수 있도록 해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55

    1882년(고종 19) 3월에 임금이 80이 넘은 김종만에게 통정대부의 품계를 내리면서 발급한 수직교지이다. 조선시대에는 매년 정월에 나이 많은 백성에게 품계나 벼슬을 하사하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56

    "1856년(철종 7) 11월 24일에 誕日?員 일동의 명의로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이들은 동복현 읍내면 항현평의 始字畓 4두락지를 德禪에게 89냥을 받고 팔았으며, 그에게 본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57

    "무진년 윤4월 16일에 鄭子煥이 방생원에게 작성해 준 수표이다. 정자환은 이전에 방생원댁의 산에 자기의 할머니의 무덤을 몰래 썼고, 또 형이 죽자 또 방생원댁의 산에 몰래 묻었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58

    1869년(고종 6) 8월에 장수현 동면에 사는 朴有權이 작성한 수표이다. 그는 진안에 사는 辛滿珪의 선산에 투장하였다가 辛滿珪가 제기한 산송에서 낙과하자 다음해 한식 때 까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59

    "계사년에 金大圭가 전주 귀이동면 두방리 뒷산기슭에 있는 진천군의 무덤이 있는 선산에 몰래 쓴 무덤을 파내고, 또 진천군의 산소로부터 80 걸음 안은 침범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60

    계사년 10월 28일에 金子寬이 작성한 標文이다. 그 내용이 너무 간략하여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추정컨대 白光洙가 갚아야 할 債錢 150냥을 白奇凡으로부터 推給하라는 題敎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61

    "경자년에 써준 수표로 지난 정유년에 척동에 있는 산을 유학 安在烈이 河鎭宇와 함께 샀는데, 이제 하진우가 나눌 것을 원하자 서로 경계를 나누며 나중에 말썽이 나지 않도록 증표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62

    "1861년(철종 12) 4월 10일에 박계윤이 族姪 朴文植에게 作成해 준 수표이다. 순방의 밀린 세미를 선산의 송추방매로 마련하려하자, 문식이 선산송추 판매는 불가하니 자당출급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63

    "1863년(철종 14)에 박중구 등이 함부로 선산의 소나무를 베어 낸 박성근에게 차후로는 門議에 따르도록 하라는 수표이다. 지난 칠 월에 박성근이 무단으로 선산에 있는 소나무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64

    "1850년(철종 1)에 충청도 연산에 사는 李秉一이 작성한 수기로, 山地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長水郡 天川面 態洞에 있는 그의 고조묘 근처에 오래된 무덤이 있었으나 무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65

    1856년(철종 7) 3월 10일에 李兢述이 林錫兆에게 주는 수표이다. 산원동 후록에 위치하고 있는 과수원과 시초지를 90냥에 임석조에게 팔고 이 수표를 써 주었다. 이 수표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66

    무인년에 朴勝一이 논 2마지기를 팔면서 새로운 문기에 첨부해야할 예전 문기가 없자 이 수표를 작성하여 매매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하여 주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67

    1845년(헌종 11) 11월 30일에 문영록이 최지순에게 작성해 준 논매매문서이다. 문영록은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효우동 임정촌에 소재한 霜字畓 6마지기을 최지순에게 60냥을 받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68

    갑신년 11월 16일에 최봉석이 작성한 수표이다. 최봉석은 私和의 뜻으로 상대방에게 고부군 우덕면(현 정읍시 덕천면) 학동의 진결 2부 7속을 줘야 하는데 舊?로 3부 1속을 移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69

    갑진년 10월 13일에 최병철이 어머니가 묻혀 있는 곳 일부를 20냥 받고 팔면서 작성한 수표이다. 수취인은 미상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70

    병오년에 幼學 尹昌殷이 작성한 手標이다. 윤창은은 某人에게 벼 1석가인 18냥을 台峰坪에 있는 太種 七升落과 羊牛基洞에 있는 논 三升落을 전당하고 금년 추수 후에도 갚지 두 곳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71

    "1887년(고종 24) 11월 6일에 장수현 계남면에 사는 양사헌이 작성해 준 수표로, 놀러다니면서 발생한 밥값을 집에 돌아간 뒤 반드시 갚아 줄 것을 약속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72

    "갑자년 11월 19일에 유학 유영신이 부득이 한 일로 대대로 경작해 오던 논을 팔기 위하여 舊文記를 추심한 즉, 종형댁에 있는 구문기는 從兄이 이미 고인이 되어 구문기를 행방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73

    1873년 정월 25일에 宣在璟이 작성한 수기이다. 계유년은 다른 문서로 보아 1873년(고종 10)이다. 이 문서에 보이는 ‘仲兄嫂氏’는 바로 宣持平의 아내인 과부 柳氏를 말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74

    "갑자년 9월에 童蒙 全聖根이 朴哥에게 작성하여 준 수표이다. 전성근과 박가는 선산문제로 소송이 있었는데 그 고을 면임이 사실을 조사한 후, 선산을 半으로 나누어 한 쪽은 全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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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75

    병술년에 작성된 일종의 수표이다. 이 문서는 아마도 김락종의 감역첩과 관련하여 작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76

    1877년(고종 14)에 尹滋煥이 작성한 手標이다. 尹滋煥은 監役帖과 관련하여 徐相大에게 돈을 받지 못하자 金監役 즉 전라도 구례현에 사는 金洛鍾을 찾아 갔다. 하지만 김락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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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77

    1805년(순조 5) 5월 2일에 오씨 문중의 오성찬 등이 박경채에게 작성해 준 수기이다. 오성찬 등은 박경채에게 50냥을 받으면서 박경채가 매득한 선운사의 땅에 대해서 用山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78

    1883년(고종 20) 10월 31일에 이동식이 전라도 구례현 계사면 유곡리 당산평에 있는 制字畓 2마지기를 85냥에 팔면서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이동식은 이 토지를 자신이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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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79

    정사년 7월에 김충길이 자신이 경작하던 논 10마지기를 110냥에 팔겠다고 약속해주는 수표이다. 이 문서가 작성된 정사년은 1857년으로 이 문서가 작성되기 열흘 전에 동일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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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80

    1811년(순조 11) 8월에 張徹輝라는 사람이 둔덕에 거주하던 李致英에게 작성해 준 수표이다. 喪人 張徹輝는 부모상을 당하여 율촌에 몰래 무덤을 썼다.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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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81

    1858년(철종 9) 7월 27일에 手標主 黃鍾遠이 긴히 쓸데가 생기자 田 20斗落只를 아무개에게 典當을 잡히고 30냥을 빌리면서 내년 10월 晦日까지 원리금 및 이에 따른 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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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82

    정해년에 萬頃에 사는 任時賢이 柴場1결을 매입하면서 柴場主인 陳映鈺에게 작성해 준 手記이다. 그는 진영옥 소유의 산지의 일부를 葬地用으로 매입하면서 진영옥 측의 세 무덤근처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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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83

    "병진년 2월 19일에 이대여가 경술년 壽得에게서 松楸를 22냥에 샀는데, 금년 고부에 사는 李乃一이 와서 그 송추는 수득이 심은 것이 아니라고 하여 부득이 묘의 일부를 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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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84

    1873년(고종 10) 2월 4일에 梁達元이 토지매매와 관련하여 예전 문기 대신 작성한 수표이다. 양달원은 전라도 남원부 수지방 행심평에 있는 목화밭 3두락지를 1872년에 팔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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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85

    1850년(철종 1) 10월 16일에 金赫河가 吳淇憲에게 작성해 준 수기이다. 김혁하는 완등의 땅과 관련해서 여러차례 송사에서 패소하였다. 이 땅을 사면서 다시는 소송을 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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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86

    1862년(철종 13) 10월 15일에 김재환이 김인규에게 작성해 준 수기이다. 김재환은 자신의 亡妻를 김인규 조부산에 투장한 것에 대해 2월 보름 내로 파갈 것을 약속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87

    1891년(고종 28) 11월 22일에 오봉원이 양경원에게 작성한 수표이다. 관의 결정에 따라서 더 이상 송사와 관련된 侵索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488

    1833년(순조 33) 4월에 具進士宅의 마름인 한용오가 유학 조인겸에게 작성해 준 수표이다. 한용오는 구진사댁의 8대조 位畓 다섯 마지기를 조인겸에게 매매하였다. 구진사를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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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89

    1863년(철종 14) 11월 17일에 한량 윤봉진이 작성한 논 매매문서이다. 그는 자신이 매입한 오리동의 상자답 3두락지를 23냥에 강우춘에게 팔았다. 윤봉진이 판 논은 관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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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90

    경인년 5월달에 盧益壽가 선산을 다른 넓은 곳에 옮기는데 선산 한 자락을 매매하면서 자손들과 서로 합의하에 차후에 다른 말이 없도록 증명하기 위하여 작성하여 준 수표이다.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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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91

    1880년(고종 17) 3월 6일에 姜君瑞가 朴致允에게 6兩을 빌리면서 작성해 준 水標이다. 그는 긴요하게 필요가 있어서 돈 6량을 빌리고 6일 이내 갚기로 하면서 밀점촌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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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92

    신미년에 李明洙가 작성한 수표이다. 이명수는 도망간 노비 足間을 대신하여 任白同의 딸 文令(初名은 이름은 分心)을 대신하여 납부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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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93

    1861년(철종 12) 9월 7일에 張世完이 樂洞 龍蛇洞面에 있는 나무를 베었는데 주인이 알고 관에 고발하려 하자 다시는 베어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작성해 준 수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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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94

    1858년(철종 9) 11월 17일에 申秀一이 작성한 手表이다. 그는 죽은 자신의 아내를 남의 禁養地 안에 투장을 하였다가 발각되었다. 더욱이 어린 자식의 무덤 바로 옆에 투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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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95

    1858년(철종 9) 2월 28일 유학 유태규가 유학 박시철에게 작성하여 준 수기이다. 유태규는 박시철 조모의 무덤 근처에 몰래 무덤을 쓴 일이 있었는데 전년 10월 말까지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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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96

    1858년(철종 9) 9월 25일에 엄석규가 김생원에게 작성해 준 수표이다. 엄석규가 김생원댁 산지와 자신의 산지 경계가 불분명하여 관의 적간 끝에 김생원댁 주택산지가 분명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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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97

    "1791년(정조 15)에 婢 三德의 夫 梁順弼이 作成한 手記이다. 양순필의 후처인 삼덕이에게는 令伊라는 14살짜리 딸이 있었다. 그 딸이 지금 仰役을 하게 됨에 따라 그 어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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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98

    1858년(철종 9) 7월 18일에 유태규가 박시철의 조모산에 불법으로 매장한 묘를 10월 안으로 파가겠다고 약속하며 써준 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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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499

    "1865년(고종 2) 梁德明이 趙洹에게 써 준 수표, 즉 다짐문서이다. 양덕명은 종손 茂永이 종중재산인 선산 2마지기를 조원에게 팔아먹자 이 산을 되돌려 받기로 하였으나, 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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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500

    1872년(고종 9) 5월 7일에 강전문이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그는 여러 해 경작해오던 남원 수지방 만지평에 있는 海字畓 4마지기를 200냥을 받고 팔았다. 그는 이 논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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