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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에 3월에 김용태가 조희식에게 작성해 준 수표 / 金溶台 / NULL"갑진년 3월에 金溶台가 趙羲植에게 作成해 준 標이다. 김용태는 全州에 사는 李景相으로부터 급전이 필요하다는 부탁을 받고 지난 임인년에 上京하여 沈局長으로부터 2만냥, 그리고 趙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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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년에 전대복이 박빈운에게 작성해 준 수표 / 全大福 / NULL무진년 8월에 全大福이 둔덕에 대대로 살던 전주이씨의 산지기인 박빈운에게 작성해 준 수기이다. 이 생원 댁에 회전(灰田)을 받기를 허락하기로 약속한 수기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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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에 김문언이 작성한 수표 / 金文彦 / NULL을축년 4월 20일에 김문언이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10냥을 빌리고 매달 오푼씩 이자을 갚는다고 약속하면서 작성한 수표이다. 수취인은 미상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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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에 고금대가 작성한 수표 / 高今大 / NULL무자년에 고금대가 작성한 표이다. 고금대는 어느 고을 흑선평에 있는 潤字 菁田을 40냥에 팔았다. 그런데 구문기가 순천에 있어 내어 줄 수 없자 뒷날 찾아다 줄 것을 표로써 약속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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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에 차희철이 아무개로부터 받은 수표 / NULL / 18871887년(고종 24) 2월에 누군가가 車喜澈에게 작성해 준 수표이다. 문서상태가 좋지 않아서 작성자를 확인할 수 없다. 내용을 보면 문서 작성자가 자신의 조부모를 장사 지내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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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년에 용담현 일남면에 사는 이상윤이 작성한 수표 / 李象允 / NULL"기묘년에 용담현 일남면 망덕리에 사는 이상윤이 작성한 수표이다. 8월 24일에 이상윤이 논 3말 3되지기를 방매하면서 매수자에게 넘겨주어야 할 구문기가 없자, 이 수표를 작성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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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에 임해수가 임군언에게 써 준 수표 / 林海洙 / NULL갑신년 11월 5일에 임해수가 임군언에게 써 준 수표이다. 임해수는 지난달 22일에 堂山峙에 있는 林君彦의 曾祖墓 근처에 자신의 돌아가신 장인을 투장하였다가 적발되어 관으로부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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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에 정노 용금이 어떤 사람에게 작성해 준 수표 / 鄭奴 用金 / NULL"병자년에 鄭氏 집안의 奴 用金이가 주인을 대신하여 46냥 4전을 빌리면서 작성해 준 수표이다. 용금이는 요긴한 일로 돈을 빌렸으며, 3월 그믐까지 갚기로 하였다. 원래 노비들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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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에 송지원 등이 작성한 수표 / 孫之源 等 / NULL辛酉年에 송지원 등이 산의 일부를 팔면서 작성한 手標이다. 산의 일부를 14냥에 팔면서 경계를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훗날 사단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였다. 頭民과 洞任이 수결을 하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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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환이 모생원댁에 작성해 준 수표 / 柳時還 / NULL유시환이라는 자가 某생원댁에 써준 수표이다. 유시환이 某생원댁의 선산을 침범하자 생원이 관에 청원을 내었다. 이에 유시환은 이후로는 생원댁의 선산을 침범치 않겠다는 수표를 작성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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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에 전금이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 田金 / 18301830년(순조 30) 3월 2일에 전금이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전금은 자신이 상속을 받아 경작해오다가 긴히 쓸 곳이 있어서 원송면 백토평에 있는 側字畓 4마지기를 錢文 36냥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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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에 권득원이 안생원에게 작성해 준 산송 관련 수표 / 權得元 / 1824"1824년(순조 24)에 權得元이 南原府 東面 白波에 사는 安生員에게 작성해 준 手記이다. 권득원은 자신의 妻를 위 안생원댁의 산소에 偸葬하였다가 일이 발각되자 다음달 15일까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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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에 김화백이 작성한 수표 / 金華伯 / NULL경신년 2월 초10일에 유학 김화백이 유학 양시견에게 빌린 돈 30냥과 이자를 추수가 끝난 뒤에 일시에 갚겠다고 약속하면서 작성한 수기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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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문중관동수기 / NULL / NULL"각 문중별로 성인[冠]과 동자[童]의 수를 기록해 놓은 것으로 성동문중을 비록 15개소의 문중이 기재되어 있다. 총 인원수는 성인 404명, 동자 406명이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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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년에 김윤중이 작성한 수표 / 金閏重 / NULL계해년 9월 17일에 김윤중이 작성한 수표이다. 김윤중은 곽씨의 땅에 조부의 무덤을 쓰고 그 대가로 55냥을 지불하면서 이 수표를 작성하였다. 이때 梁在亨이 증인으로 참여하였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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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에 김정민이 작성한 수표 / 金正民 / 18811881년(고종 18) 3월 26일에 김정민이 양생원 문중에 작성하여 준 수표이다. 김정민은 양생원댁의 산지기로 5년전인 병자년에 임차답의 定稅 25냥 8전 5속을 사세가 부득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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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에 한유원이 작성한 수표 / 韓裕原 / NULL병신년 2월 16일에 韓裕原이 작성하여 김씨들에게 준 수표이다. 이러한 수표를 써 주게 된 이유는 한유원이 김씨의 선산에 투장한 것에 대한 관의 판결 때문이었다. 한유원은 오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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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에 김사승이 작성한 수표 / 金思升 / NULL乙巳年 정월 25일에 票主 金思升이 작성한 수표이다. 김사승은 結錢을 납부할 방법이 없게 되어 棹唱坪에 있는 太田 2斗落只를 아무개에게 저당 잡히고 錢文 25兩을 빌렸다. 이 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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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에 남원부에 사는 최우창이 최종외에게 작성해 준 수표 / 崔遇昌 / NULL무오년 9월 그믐에 남원부 북면 외진전리에 사는 崔遇昌이 장수현에 사는 崔宗巍에게 작성해 준 수표이다. 최우창은 최종외의 선산에 置標를 하였다. 이에 崔宗巍는 소지를 올렸고 최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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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에 장생원댁에서 작성한 수표 / 張生員宅 / 18771877년(고종 14)에 張生員宅에서 金喆伊에게 작성해 준 標이다. 김철이의 처는 장생원댁 奴의 딸이다. 그런데 김철이는 따로 생활을 영위해 왔는데 생활이 어려워지게 되자 자기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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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에 김원서가 국덕환에게 작성해 준 수표 / 金元瑞 / NULL"무술년 3월에 金元瑞가 鞠德煥에게 부안 월명암 왼편에 있는 자신의 선산 일부를 150냥에 팔면서 작성하여 준 수표이다. 국덕환은 이 돈 가운데 50냥은 이번 달 그믐까지 주기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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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에 장지홍이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 張之弘 / 18731873년(고종 10) 4월에 장지홍이 작성한 밭매매문서이다. 장지홍은 자기가 매입하여 여러해 동안 경작해오던 방광면 침산평에 있는 太種田 2두락지를 26냥을 받고 팔았다. 매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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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에 강지언이 작성한 수표 / 姜之彦 / NULL壬申年에 姜之彦이 작성한 수기이다. 강지언은 전에 자신의 토지를 전당잡히고 75냥을 얻어 썼다. 만약 돈을 갚지 못하면 전당평 4두락과 蒲田 3두락을 권매할 것과 매년 3석의 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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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에 박기수가 작성한 수표 / 朴基洙 / NULL병오년 9월 1일에 朴基洙가 양씨의 조모산에 투장하였다가 소송에서 진 후 원고 측에 작성해 준 수표이다. 그는 9월 그믐날까지 몰래 쓴 무덤을 옮겨 주기로 약속하였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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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에 곡성에 사는 배달제가 오현의의 앞으로 작성한 수표 / 裴達濟 / 18301830년(순조 30) 8월 10일 곡성에 사는 裴達濟가 吳顯義의 앞으로 쓴 수기이다. 배달제는 오현의가 제소한 선산 접경문제의 산송에서 패소하였다. 두 사람은 화의를 거쳐 선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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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역전과 관련하여 작성된 수표 / 徐相大 / NULL"감역 김낙종이 감역전과 관련하여 들어간 비용의 내역을 서상대가 기록한 문서로, 감역전 5천5백냥 중에 상평전 4천2백냥을 관에 납입하였는데, 그 납입내역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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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년에 부안현에 사는 신순학이 작성한 수표 / 申順學 / NULL정축년 12월에 전라도 부안현 위도에 사는 申順學이 400냥을 빌리면서 작성해 준 수표이다. 그는 이 돈을 고기를 잡을 어장에 투자할 목적으로 빌렸으며 다음해 2월 30일까지 갚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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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에 보소유사 성의진 등이 작성한 수표 / 成義鎭 等 / NULL"정묘년 정월 13일에 성씨 족보를 만드는 사무소의 유사인 成義鎭, 成奎喆 등이 작성한 수표이다. 前年인 병인년에 창녕성씨족보를 만든 보소에서 다시 名賢錄 2책 1권을 만들기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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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에 허여문이 김춘화에게 작성해 준 수표 / 許汝文 / NULL을축년에 許汝文이 金春化에게 작성해 준 수기이다. 수기의 작성자인 허여문은 김춘화로부터 돈 20냥을 빌리고서 이를 갚지 못하였다. 그래서 1865년 12월 20일에 할 수 없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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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에 부안현에 사는 김봉구가 작성한 수표 / 金鳳九 / 18571857년(철종 8)에 扶安縣 立下面 愚磻里에 사는 金鳳九가 작성한 수표이다. 김봉구(1813-1868)는 우반리에 세거하는 부안김씨 종손으로 고생원에게 1년 동안 매월 3푼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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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에 백기홍이 작성한 수표 / 白基弘 / 18281828년(순조 28) 1월 30일에 백기홍이 김생원의 선산에 몰래 무덤을 쓰려가 발각되었는데 續貸의 뜻으로 김생원에게 10냥을 받치는 것을 약속하면서 작성한 수기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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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임순돈이 작성한 수표 / 林順敦 / NULL"幼學 林順敦이 작성한 수기이다. 작성 시기와 수기를 받는 주체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南二作에 소재한 腸字, 移字, 持字, 逐字畓 등 모두 43두락의 토지를 방매하면서 작성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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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에 이정조가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 李正祚 / 18931893년(고종 30) 10월 10일에 이정조가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이정조는 흉년으로 인하여 생계가 어렵게 되자 흥양현 고읍면에 있는 君字丁 1마지기를 26냥에 팔았다. 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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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에 김재신이 작성한 수표 / 金載臣 / 1893"계사년 9월 20일에 김기홍과 박병필 사이에 일어난 선산 경계를 둘러싼 소송에서 문제가 된 지역을 살핀 후에 보고하라는 성주의 처분에 따라 좌수 김재신이 살펴 조사한 후에, 소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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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에 오성서가 작성한 수표 / 吳聖瑞 / 18971897년에 장수현 계남면 곡리에 사는 梁思弼이 그의 親山을 私掘한 吳聖瑞을 고소하자 이를 심리하는 과정에서 도형한 결과 원고 측에 별로 하자가 없음이 드러나자 관에서는 서로 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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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에 김인복이 작성한 수표 / 金麟復 / NULL기미년 1월 초 7일에 金麟復이 作成한 手票이다. 김인복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수표의 수급자에게 3분의 이자로 20냥을 빌리면서 명년 10월 말일까지 원금과 이자를 합한 27냥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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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에 이중옥이 작성한 수표 / NULL / NULL"기축년 4월 3일에 李仲玉이 吳生員의 門中 앞으로 작성한 手標이다. 자신의 先山과 오생원의 선산이 맞닿아 있었는데, 우연히 오생원의 선산을 침범하여 나무를 베었으므로 贖錢으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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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에 유학 김노후가 유학 조인겸에게 작성해 준 수표 / 金魯厚 / NULL임신년 11월에 유학 김노후가 작성해 준 수표이다. 김노후는 2백냥을 차용하면서 명년 10월까지 갚기로 약속하였다. 기한을 어길 경우 본 문기를 관에 가져가 증거삼으라고 하였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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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년에 유용삼이 작성한 수표 / 劉龍三 / NULL"계해젼 10월20일에 劉龍三이 작성한 手標로, 潭陽의 金守海에게 捧上해야 할 돈 8냥을 宣興三 앞으로 相計하여 처리하기로 약속하면서 작성한 수표이다. 이 문서에는 또한 같은 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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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년에 조병필이 작성한 수표 / 趙秉弼 / NULL계유년에 조병필이 작성하여 홍조봉에게 준 수표이다. 홍조봉이 조병필의 선산에 투장을 하였다. 이에 소송을 하여 기한내에 묘을 파가도록 하였다. 그러나 만일 다음 달 안에 이장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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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에 김화백이 작성한 수표 / 金華伯 / NULL정묘년 2월 초7일에 김화백이 양시견에게 빌린 돈 30냥과 이자 백미 60두를 亡室 장례 때 갚는다고 약속하면석 작성한 수기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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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에 문중의 황병문 등이 작성한 수표 / 黃炳文 等 / NULL정미년 8월 26일에 문중의 황병문 등 3인은 井邑 西二面에 있는 선산이 金衡載의 선산과 경계를 두고 있으므로 서로의 선산이 見奪되는 일이 없도록 경계를 분명히 하기를 약속하면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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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에 수표주인 방모가 작성한 수표 / 房某 / NULL갑술년에 標主인 房 아무게가 돈 3냥을 보냈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표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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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4년에 부안현에 사는 송수가 작성한 전답매매문서 / 宋洙 / 17641764년(영조 40)에 부안현에 사는 宋洙가 상서면에 위치한 논 9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판매 가격은 32냥이고 판매 이유는 필요한 바 있어서 라고만 밝히고 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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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에 황재익이 작성한 수표 / 黃在翼 / NULL무자년 4월 28일에 장수현에 사는 黃在翼이 작성한 手標이다. 그가 2년 전인 丙戌年에 梁某에게 빌려준 돈 20냥을 梁某의 집에 가서 청구하자 몇 번이나 미루다가 梁某의 부친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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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에 한재석이 문중의 한태리 등에게 작성해 준 수표 / 韓載錫 / 1891"1891년(고종 28) 4월 1일에 한재석이 문중의 門長 한태리와 종손 한태모에게 작성해 준 수표이다. 한재석은 장수군 덕치면 두무동에 있는 선산의 송추 열 그루를 사사로이 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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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에 김재한이 오생원에게 작성하여 준 수표 / 金在漢 / NULL갑술년 8월 28일에 金在漢이 작성하여 吳生員에게 건네 준 수표이다. 김재한은 오생원댁 선산의 산지기를 수십년 동안 해 오다가 산지기를 바꾸자 산의 땅 일부를 閔斑에게 몰래 팔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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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년에 김순칠이 작성한 수표 / 金順七 / NULL기묘년 3월 25일에 유학 김순칠이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23냥을 빌리고 매년 賭租 ?石을 이자로 갚고 8월 그믐까지는 이자와 함께 갚는다고 약속하면서 작성한 수표이다. 수취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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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에 김봉구가 작성한 수표 / 金鳳九 / 18571857년(철종 8) 12월 22일에 手標主 金鳳九(1813-1868)가 긴히 쓸데가 생기자 아무개에게 300냥을 빌리고서 내년 10월 晦日까지 원리금과 이에 따른 이자를 모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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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 5월 23일에 표주 임우춘이 7월내로 굴이하겠다는 뜻으로 강응진에게 작성해준 수표 / 林右春 / NULL"을묘년 5월 23일에 표주(標主) 임우춘(林右春)이 7월내로 굴이(掘移)하겠다는 뜻으로 강응진(姜應鎭)에게 작성해준 수표(手標)이다. 임우춘이 초계(草溪)에 거주하는 강반(姜班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