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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92751

    1742년(영조 18) 12월에 예조에서 송경빈의 처 김씨에게 발급한 입안이다. 김씨는 남편 송경빈이 후사가 없이 죽자 남편의 4촌형인 송상유의 제 3남인 태환을 양자로 삼게 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52

    "1713년(숙종 39)년 4월 21일에 廣州府에서 吳生員宅 奴 石只에게 발급한 사급입안과 이에 점련된 일련의 문서이다. 오생원은 동년 4월 13일에 자신의 奴 石只를 시켜서 광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53

    "1687년(숙종13) 8월에 부안현에서 金守昌에게 발급해 준 사급입안이다. 내용은 김수창이 李混에게서 正租 35石을 주고 노비 2명을 매득한 사실이 확실함을 인증한다는 것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54

    1893년(고종 30) 4월에 예조에서 전라도 전주의 박시화(朴時華) 등 향교유생에게 발급한 정려입안이다. 박시화 등이 1년 전부터 같은 고을의 박기옥(朴基玉)의 효행에 대해 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55

    "1770년(영조 46)년 12월에 전라도 구례현 방광면에 거주하던 왕생원댁(王生員宅)에서 남원부(南原府) 중방방(中方坊)에 살던 박세운(朴世雲)으로부터 계집종 1명을 구입하면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56

    1857년(철종 8) 1월 24일에 이형구가 再從兄인 이동근에게 작성해 준 논 매매문서이다. 이형구는 대대로 경작해 오던 논을 올 봄 私債가 너무 많아지자 부득이 방매한다고 매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57

    "1722년 (경종 2) 9월 예조(禮曹)에서 계후(繼後)를 위해 이씨(李氏) 가문에 내린 입안(立案)이다. 이이함(李?涵)이 후사가 없이 사망하자 그 처 김씨는 동성 육촌형 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58

    "1770년(영조 46)년에 전라도 구례현(求禮縣)에 거주하던 유학 왕선(王璿)이 옥과현(玉果縣)에 살던 최인휘(崔仁徽)로부터 계집종 3명을 구입하면서 작성한 입안문서이다.부분1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59

    1888년(고종 25) 4월에 한성부(漢城府)에서 충청도(忠淸道) 보은군(報恩郡) 내북면(內北面) 산대리(山臺里)에 거주하는 유상태(柳相泰)에게 발급한 입안이다. 보은군 내북면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60

    "1730(영조 6)년 1월에 진보관(眞寶官)에서 권복창(權復昌)에게 발급한 입안과 일련의 문서들이 점련되어 있다. 모두 4장의 문서가 점련되어 있는데 오른쪽에 있어야 할 2장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61

    "1890년 12월에 예조(禮曹)에서 장석용(張錫龍)의 정려(旌閭) 문제로 박규문(朴奎文)에게 발급해준 정려입안(旌閭立案)이다. 박규문이 올린 소지(所志)에 대한 왕의 계하(啓下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62

    "을축년에 수령(守令)이 매우 복잡한 산송 사건을 처리하면서 발급해 준 입안(立案)이다. 내용은 이렇다. 남원(南原)에 사는 최석제(崔錫濟)가 조부(祖父)의 묘를 쓴 산이 박홍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63

    "1782년(정조 6)년 12월에 전라도 구례현(求禮縣)에 거주하던 유학 왕선(王璿)이 인근 고을인 옥과현(玉果縣)에 살던 김팽령(金彭齡)으로부터 계집종 2명을 구입하면서 작성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64

    1653년(효종 4)에 예조(禮曹)에서 유신남(柳信男)에게 발급한 양자입안(立案)이다. 당시 68세였던 유신남(柳信男)은 갑자기 하나밖에 없는 아들 내외가 죽자 이에 작고한 형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65

    "1771년(영조 47)에 예조(禮曹)에서 조덕량(趙德良)의 처(妻) 홍씨(洪氏)가 조경제(趙景悌)를 양자를 맞아들인 사실을 확인하고 발급한 양자(養子) 입안(立案)이다. 죽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66

    1683년(숙종 9)에 예조(禮曹)에서 이성호(李聖虎)의 아내 조씨(曹氏)에게 발급한 양자 입안(立案)이다. 그녀는 시동생 성구(聖龜)의 넷째 아들인 이함(?涵)을 양자로 맞이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67

    "1862년(철종 13) 2월 6일에 박성탁이 작성한 밭매매문서이다. 문서에는 단지 ‘元年壬戌’이라고만 적혀 있으나, 원년에 해당하는 임술년은 同治元年 밖에 없으므로 작성연대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68

    "1906년 11월에 원임(原任) 한성부(漢城府) 판윤(判尹)에게 발급해준 증직입안(贈職立案)이다. 한성부 판윤에 대한 포상 내역은 선대의 품계를 2자급 올려주고 한각(翰閣),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69

    "1586년(선조 19)에 예조에서 작성하여 박희(朴禧)에게 내려준 양자입안문서이다. 경상도 상주에 사는 박희가 선조 17년에 본인은 본 부인과, 첩 등에게서 자식이 없으므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70

    "1787년(정조 11)에 전라도(全羅道) 강진군(康津郡) 열수면(列樹面)에 사는 유학 김재옥(金再玉)이 김태운(金兌運)으로부터 4구(四口)의 계집종(婢)를 사들이고 작성한 노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71

    1634년(인조 12)에 예조에서 작성하여 박원량(朴元亮)에게 내려준 양자입안문서이다. 박원량은 본 부인과 첩에게서 자식이 전혀 없어 누군가의 둘째아들인 박행(朴荇)을 양자로 맞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72

    "1789년(정조 13) 5월에 박재형(朴再亨)이 경상도 함창현(咸昌縣, 현 경북 상주)으로부터 발급받은 입안과 입안을 받기 위해 올린 입안신청소지와 일련의 문서들이 점련되어 있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73

    "1745년(영조 21) 3월 3일에 예조에서 고오동열(故吳東說)의 처(妻) 김씨에게 발급한 계후입안이다. 고오동열 처 김씨는 후손이 없어 동성(同姓) 8촌 형인 오상두(吳象斗)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74

    "1700년(숙종 26)에 전라도(全羅道) 광양현(光陽縣)에서 유학 김한명(金漢鳴)에게 발급한 입안이다. 광양현감은 3월에 제출한 유학 김한명(金漢鳴)의 소지 즉, 김한명이 나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75

    1888년(고종 25) 유강원(柳江源) 유상태(柳相泰) 유상린(柳相?)이 작성한 입의(立議)이다. 이들은 5대조와 6대조의 묘를 벌초하는데 분란이 일어나자 앞으로 모두가 참여하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76

    "모년에 전라도(全羅道) 태인현(泰仁縣) 고현내면(古縣內面) 은석동(銀石洞)에 거주하는 김씨(金氏) 집안에서 자신들의 선산(先山)을 수호(守護)하자는 뜻으로 작성한 입의(立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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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777

    1792년(정조 16) 3월에 유씨(柳氏)들이 작성한 분계(分契) 완의(完議)이다. 이들은 조상의 제사를 잘 받들기 위해 족계(族契)를 만들고 제위답(祭位畓)을 장만하여 여기에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78

    정축년 2월 19일에 崔仁中이 유학 아무개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기이다. 최인중은 다른 곳에 있는 논과 밭을 구입하기 위하여 부안 입하면 우반 동평에 있는 예자 隨자답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79

    "1850년(철종 1) 정월에 권백(權栢), 권익영(權益榮), 권봉영(權鳳榮), 권교우(權敎右), 권성호(權聲鎬) 등이 모여 작성한 완의(完議)이다. 이들은 선대부터 내려온 종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80

    경인년 11월에 경상도(慶尙道) 문경현(聞慶縣)에 거주하던 신씨와 김씨가 선산을 공동으로 관리하기로 약속하고서 작성한 완의이다. 이들의 선산이 같은 고을 귀동(龜洞)에 있었는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81

    "임자년 10월 13일에 유학 송지호(宋持昊), 이각(李珏) 등 5인이 작성한 동중완약문이다. 완약이란 합의된 내용을 기록한 문서이다. 여기에서는 임실의 선비 강주영(姜周永)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82

    "무인년 3월 16일에 은석동재각종회소(銀石洞齋閣宗會所)에서 전라도(全羅道) 태인현(泰仁縣) 고현내면(古縣內面) 은석동에 있는 선산(先山)에 대해 양가(兩家)에서 공동으로 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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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783

    "완의(完議)란 향청·향교·서원·문중·유생 등 구성원들이 상호 의논하여 합의한 사항을 지키도록 약속한 문서이다. 일명 입의(立議)·완약(完約)·조약(條約) 등으로 불리운다. 문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84

    어느 문서에 첨부된 立旨이다. 논값 200냥을 모두 지불했고 구권은 다른 전답에 붙어 있기 때문에 구권에 배탈하므로 이것으로 잘 헤아리고 신권으로 고쳐 정하자는 내용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85

    "갑술년에 장의(掌議) 최윤국(崔允國)이 향중(鄕中)에 납부한 200냥을 향례전(鄕禮錢) 천채(薦債)의 용도로 지출한 것은 부득이한 조처로 향론을 모아 좌수(座首) 송인곤(宋仁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86

    "경자년 2월 26일에 金采仲이 綾州牧 道莊面 碧池洞에 居住하는 朴百善에게 작성해 준 尺文으로, 박백선이 김채중에게 빌렸었던 錢文 총 410량을 각기 210냥과 200냥으로 2차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87

    1888년 4월과 5월에 巡賑色이 全羅道 興德縣의 漁稅와 鹽釜稅를 받고서 발급한 영수증이다. 무자년은 고종 25년(1888)으로 추정된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88

    을유년 9월 20일에 김낙종이 감역첩을 발급받은 후 돈을 내고 받은 영수증이다. 그는 감역첩을 발급받고 5000냥을 선공감에 납부하였다. 이에 선곡 박아무개가 이 영수증을 발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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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789

    "1515년(중종 10) 8월에 왕이 김석필을 통훈대부 행 덕원도호부사에 제수한다는 내용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당하의 품계이고, 도호부사는 종3품 관직이다. 따라서 ‘품계가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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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790

    "1791년(정조 15) 11월 초3일에 조수현이 작성한 논 매매문서이다. 그는 순천부 주암면에 있는 상자답 4두락지를 곡성에 사는 大同人에게 팔았는데, 대동인이 이사를 오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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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791

    임술년 5월에 京錢所에서 全羅道 茂長縣에 살던 金孝吉과 金瀅模로부터 京錢을 받고 발급해 준 영수증이다. 임술년은 철종 13년(1862)으로 추정된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92

    "기묘년 12월 5일에 全羅道 長水縣 天川面 三壯洞에 살던 韓氏의 奴 次栗이 金字凡의 약값 3냥 6전을 최씨에게 주고서 받은 자문이다. 자문이란 조세·수수료·부과금 등을 받고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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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793

    "모년에 장후권(張厚權)이 장의열(張儀烈)과 장홍열(張弘烈)에게서 각기 10냥 8전 3푼의 돈을 받고 작성해준 영수증이다. 이들은 광영 굴촌에 살고 있었으며, 돈을 받은 장후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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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794

    모년에 전라도(全羅道) 나주목(羅州牧)의 장청(將廳) 집강(執綱) 전공서(錢公瑞)가 하의도(荷衣島)의 풍헌(風憲)과 두민(頭民)에게 연례범접채(年例凡接債) 10냥을 받고서 발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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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795

    "정미년에 장수동공소(長水洞公所)에서 발급한 척문(尺文)이다. 을사년 정월(正月)의 판공비(判功費) 16량과 12월의 판공비 4량 등 20량을 받고 교안(敎案)을 내 준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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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796

    을축년 6월에 구례현에서 작성한 靑大竹陪持錢殖本節目이다. 구례현은 예로부터 靑竹이 유명하여 궁궐에 진상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가지 폐단이 생겨나 청죽을 진상하는 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797

    "1840년(헌종 6)에 全羅道 求禮縣에서 작성한 地土船船主邑費矯革節目이다. 구례현에는 지토선이 있어 각종 진상품과 세금을 나르는 조운에 이용하였다. 그런데 지토선의 선주가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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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798

    경술년 5월에 靈光郡守가 아전에게 내린 救弊節目이다. 고부에 사는 동몽 김두보는 그의 선대로부터 영광의 묘장면 한시랑촌에 있는 규장각의 둔토를 경작해 왔다. 그런데 己巳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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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799

    "韓龍祚의 처 金氏에 대한 褒揚上書에 대하여 官에서 내린 지시문들을 한데 모아 놓은 것이다. 앞의 문서 ‘고00900’과 관련된 것으로, 당시 고을의 유림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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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800

    병신년에 작성된 령 / 未詳 / NULL
    "이 문서는 산송소지(山訟所志)에 대한 관아의 명령문, 즉 제사(題辭)로 생각되나, 일반적인 형태와는 조금 다르다. 제사는 사대부나 백성들이 올린 소지의 말미에 쓰는 것이 보통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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