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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92801

    1759년(영조 35) 1월 15일에 김천경이 승 건한에게 작성해 준 논매매문서이다. 김천경은 순창군 팔등면 계등원에 있는 莊字畓 5마지기를 승 취한에게 49냥을 받고 팔았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02

    신미년 윤3월 14일 29세의 송광익(宋光益)이 작성한 고음이다. 송광익은 조모무덤을 3월내 이굴할 것을 약속하였으나 병으로 인해 굴거하지 못하므로 4월 초10일내에 굴거할 것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03

    "모년에 수령(守令)이 최한주(崔澣注)가 올린 산송(山諒)의 소장(訴狀)에 대하여 내린 판결문이다. 이것은 오래된 소송으로 대질을 시켜보니 이씨 측에도 근거가 될 만한 공사(公私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04

    "모년에 27일자로 작성된 배제(背題)이다. 누구의 소송과 관련된 것인지, 언제 작성된 것인지, 어느 관에서 작성된 것인지 알 수 없다. 내용은 산송관련 소송이며 각자 경계를 정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05

    신미년 14일 29세의 송광익(宋光益)이 작성한 고음이다. 송광익은 조모를 투장한 일로 산송에서 낙과하였다. 여러차 이굴할 뜻을 밝혔으나 지키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달 30일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06

    정축년 11월 21일에 관에서 판결을 내린 제사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 제사만으로는 알 수 없으나 도형을 살펴본후 이반(李班)이 낙과하였음을 판결하고 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07

    신미년 정월 27일 29세의 송광익(宋光益)이 작성한 고음이다. 송광익은 손가양반(孫哥兩班) 선산에 조모를 투장하였는데 낙송하여 3차에 걸쳐 고음을 작성하게 되었다. 또 다시 2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08

    경오년 2월 20일 30세의 송광익(宋光益)이 작성한 고음(?音)이다. 송광익은 손반선산(孫浣先山) 근처에 조모를 장사지냈는데 송사에서 낙과하였다. 따라서 7월 그믐내에 조모무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09

    1854년(철종 5) 8월에 성균관에서 전라도 곡성현 출신 趙昌驥에게 발급한 照訖帖이다. 과거시험장은 예조와 성균관 두 곳으로 각각 一所와 二所로 불리웠는데 ‘照訖二所’는 성균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10

    1777년(정조 1) 5월 2일에 왈수가 족대부 유탁에게 작성해 준 불망기이다. 曰壽가 족대부 유탁의 선산을 빌려 부친을 장사지내고 그 인근에 이후로 繼葬할 뜻이 없음을 분명하게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11

    "1843년(헌종 9) 11월 10일에 유학 임수열 등 5명의 이름으로 종손 임인옥에게 써 준 불망기이다. 불망기란 글자 그대로 잊지 말아 달라는 뜻이다. 종문이 쇄락함에 종인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12

    1837년(헌종 3) 5월 15일에 김종한이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김종한은 자신이 여러 해 경작해오던 남원 산동 온천전평에 있는 伏字畓 5두락지와 羌字畓 2두락지 그리고 오양동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13

    정미년 5월 29일에 정성완(鄭聖完)이 아무개 생원에게 작성해준 불망기이다. 정성완은 흉년으로 인해 생계가 어렵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긴히 쓸 곳이 생겼는데 다른 변통할 방법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14

    "1728년(영조 4)에 유학(幼學) 이억(李檍)이 매형(妹兄) 오찬주(吳纘周)에게 작성해 준 부망기(不忘記)이다. 이억은 이 不忘記에서 자신의 부친이 생전에 사위, 곧 그의 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15

    1858년(철종 9) 2월 22일에 ▒만식(▒晩植)이 화수계(花樹契) 앞으로 작성한 유서이다. 서당동(書堂洞)에 있는 조부(祖父) 선산에 대한 그간의 내력을 쓰면서 그 곳 금양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16

    모년 작성된 불망기 / 未詳 / NULL
    "모년에 작성된 불망기이다. 이 글은‘불망기(不忘記)’이라고 하여 생원시 시험을 칠 때 일종의 응시요령과 주의점에 대한 기록이다. 생원시를 칠 때 명지(名紙) 3장이 소요되는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17

    모년 작성된 불망기 / 未詳 / NULL
    "모년에 작성된 불망기이다. 이 글은 불망기라는 제목으로 3가지 사항에 대해 기록하였다. 첫째는 감영에 납부하는 종이와 관련해서 백장사(百丈寺)에 기일 전에 목필(木匹)을 줘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18

    1889년(고종 26)에 全羅道 兼巡察使가 茂長縣의 兼官에게 보낸 감결이다. 겸순찰사는 具氏 선산에 있던 古塚을 개축하고서 자신들의 선조 묘라고 주장하는 吳啓源과 吳泰源을 즉각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19

    "1888년(고종 25)에 全羅道 都巡察使가 흥덕현감에게 보낸 감결로 도순찰사는 여기에서 세 가지 명령을 내리고 있다. 첫째 飢民을 정확히 파악하여 보고할 것, 둘째 의연금 기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20

    1889년(고종 26) 3월에 全羅道 都巡察使가 흥덕현감에게 보낸 감결이다. 도순찰사는 이 감결에서 鞠暻珣을 興德縣 北浦 上道 船旅閣官分主人 겸 浦稅監官으로 임명하고 김응규와 국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21

    1892년(고종 29)에 兼使遭艱假都事가 흥덕현감에게 보낸 감결이다. 겸사는 儲置米와 夫刷價 지출 대장 및 담당 監色 명단 등을 작성하여 다음달 3일까지 제출하라고 지시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22

    "신유년에 겸사도사(兼使都事)가 광양현감(光陽縣監)에게 발송한 감결이다. 이에 의하면 훈국(訓局:훈련도감)의 고직(庫直) 박도원(朴道源)이 올린 소내에 순천(順天)에 사는 장세권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23

    1860년(철종 11) 12월 7일에 오창신이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오창신는 그동안 경작해오던 구례 문척면 죽연리 마고동에 있는 此字畓 2두락지를 錢文 15냥을 받고 팔았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24

    "이 문서는 원래 문서의 머릿 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뒷 부분이 전하지 않기 때문에 작성자나 작성연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전라도관찰사가 장수와 옥구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25

    고군산첨사가 작성한 감결 / 古群山僉使 / NULL
    "고군산첨사(古群山僉使)가 관하의 군진(軍鎭)에 보낸 감결로 추정되나 문서의 앞 부분이 결락되어 작성연대나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남아 있는 내용을 토대로 하여 살펴보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26

    "정축년에 전라도겸순찰사가 운봉(雲峰)과 장수(長水)의 수령에게 보낸 감결(甘結)이다. 감결은 상급관청에서 하급관청으로 발송하는 문서 중의 하나로, 주로 관찰사나 암행어사가 각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27

    乙未年 3월 13일에 鄕校 庫子 奴婢인 先坤이 月葛田에 있는 都約正 張生員에게 보낸 告目이다. 고목의 내용은 齋任 生員들이 주최하여 25일에 거행하는 향약 設始時에 행차해 줄 것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28

    무술년에 褒忠祠 庫子 奴 夫七이 色掌 朴씨에게 올린 告目이다. 부칠은 자신의 상전인 生員主가 褒院 執綱으로 차출되었다는 것을 보고하였다. 색장은 어떤 부서의 사무를 관장하는 아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29

    "辛卯年 정월 22일에 順天府 禮吏 孫鍾錫이 月燈面에 사는 張生員宅에 보낸 告目이다. 내용은 장생원이 社稷祭의 초헌관으로 뽑혔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고목은 각 관청의 하급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30

    정묘년에 무성서원의 장대영 등이 김승지에게 올린 고목이다. 院規와 士論에 따라 武城書院의 院長을 金承旨로 薦望하기로 하였으니 서원에 행차하여 이를 받아들여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31

    1868년(고종 5)에 전라도 장수현에 있던 용암서원의 창고관리인 一權이 1868년 8월에 시목동에 사는 한씨에게 보낸 고목이다. 제사가 임박한데다 조정의 지시도 있으니 한 차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32

    기유년에 禮吏 李吉燮이 張生員에게 보낸 告目이다. 齋任 生員의 분부로 禮吏 이길섭이 월갈전에 사는 장생원에게 문묘에서 이루어지는 제사의 종헌으로 임명되었다는 標紙를 보낸다는 내용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33

    "갑술년 8월에 태인군 고현내면 원촌리에 소재한 武城書院 西齋의 姜炳先, 李五辰, 昔泰奉, 高七星, 金君明 등이 崔生員에게 보낸 告目이다. 최생원이 道內 儒林의 訓長으로 추천되었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34

    1810년(순조 10) 3월 3일에 조자근노미가 작성한 밭매매문서이다. 조자근노미는 성산 아래에 있는 篤字丁 8두락지를 灰場을 포함하여 김생원댁 노 일명에게 2냥5전을 받고 팔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35

    임진년에 承發 朴春植이 작성하여 楊生員宅에 보낸 고목이다. 楊生員이 새로 都正으로 선출되었으므로 정해진 날 향사당에 나올 것을 알리고 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36

    "기축년에 廉處恪, 朴元輔 등이 수령에게 올린 고목이다. 고목은 각 관청의 하급관리가 상급관원에게 올린 문서로 간단한 보고나 문안을 드릴 때 작성하였다. 본 문서는 동헌 首校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37

    정유년에 先坤이 張生員에게 보낸 告目이다. 재임생원의 분부로 향교의 창고지기 종인 선곤이 월갈전에 사는 장생원에게 망기를 ?上하는 일로 올린 고목이다. 고목은 조선시대 各司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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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838

    "기축년 9월 29에 어느 고을의 戶長 金昌瑾, 吏房 崔大龍등이 수령에게 올린 고목이다. 동헌 수직을 타일러 이미 육천냥을 환상으로 경주인에게 보내 무사하였는데 상정미 상납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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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839

    병신년에 校員 趙吉卜이 양생원댁에 보낸 고목이다. 齋任의 추천과 望哭禮를 베풀어 실행하는 일에 관련하여 보낸 문서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40

    "신해년 2월 12일에 鄕校 庫子 宗成이 掌議 朴씨에게 올린 告目이다. 종성은 주인인 生員이 15일에 있는 焚香이 박두하여 출타하였음을 보고하였다. 당시 향교의 장의로는 박씨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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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841

    기축년 10월 10일 金世麟이 상관에게 안부를 묻고 있으며 별일 없다는 보고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서가 잘려나가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42

    기축년 9월에 어느 고을의 형리가 수령에게 올린 고목이다. 감옥을 지키는 일에 더욱 유의하여 현재까지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내용인데 이와 같은 보고를 한 이유는 그 당시에 수령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43

    "병술년에 박재기(朴在基)가 양장의(楊掌議)에게 보낸 고목(告目)이다. 부정(副正)의 선출건으로 명일 오전에 향사당(鄕射堂)에 행차하여 달라는 내용이다. 고목(告目)은 각 관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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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844

    "경진년 10월에 작성되었으며, 이 때 양사제(養士齋) 도유사(都有司) 1명 선병동(宣炳東), 유사 3명 박형문(朴炯文) · 김두석(金斗錫) · 위득량(魏得良)이 선정되었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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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845

    1808년(순조 8)에 남원에 사는 김기철이 남원 대산면 묘동에 소재한 ?畓 4마지기를 유학 안상집에게 팔면서 작성한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매득자인 안상집은 당시 남원의 白波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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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846

    "양사재(養士齋)의 유사(有司)가 정해졌음을 알리는 고목(告目)이다. 고목은 조선시대 공적인 문서양식으로 각사(各司)의 서리 및 지방관아의 향리가 상관에게 공적인 일을 알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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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847

    1868년(고종 5)에 양규희(梁奎熙)가 장의(掌儀)에게 보낸 고목(告目)이다. 병작료(竝作料)를 바치지 못하는 자신의 형편을 변명하고 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48

    경신년 12월에 구장(區長) 하재근(河在根)이 작성한 고목(告目)이다. 동중(洞中)은 별 일없으며 동중의 여러 사람과 의논하여 동수(洞首)를 확실하게 정할 것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2849

    갑술년 3월에 어느 향교의 한장(汗長) 노(奴) 일성(一性)이 작성하여 함장의(咸掌議)댁에 보낸 고목(告目)이다. 함장의가 사임하였으나 곧바로 유사(有司)에 선발되자 한 장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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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850

    "병자년에 향교한장(鄕校汗丈) 성달(成達)이 성황제의 제관 선정 문제로 향교집강에게 올린 고목(告目)이다. 고목이란 각 관청의 하급 관리가 관원에게, 혹은 향교나 서원의 한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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