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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93351

    "1903년(광무 7) 5월에 궁내부에서 9품 종사랑 유관현을 肇慶廟參奉?判 8명 가운데 한 명으로 임관한다는 내용의 칙명이다. 당시 의정부찬정 겸 궁내부대신임시서리였던 성기운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52

    "1902년(광무 6) 11월에 왕이 이무주에게 正三品 通政大夫의 품계를 내리면서 발급한 칙명이다. 국왕이 耆社에 들어가면서 80세가 넘은 士庶들에게 加資의 恩賜를 내림에 따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53

    1908년(융희 2) 1월에 왕이 김정우에게 通政大夫 秘書監承의 증직을 내리면서 발급한 칙명이다. 김정우는 증손인 김풍객이 嘉義大夫에 임명되자 법전에 따라 추증을 받은 것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54

    1902년(광무 6) 12월에 왕이 종2품인 이위용을 정2품 資憲大夫 工曹判書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칙명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55

    "1903년(광무 7) 2월에 왕이 전광표를 정3품 通政大夫로 임명한다는 칙명이다. 전광표에게 이러한 영광이 돌아가게 된 것은 기로소에 소속된 그의 나이가 80이 넘었기 때문이었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56

    1868년(고종 5) 3월 13일에 曺錫?이 작성한 논 매매문서이다. 그는 대대로 물려받아 경작해 오던 광양현 인덕면의 金字畓 5두락지를 부득이한 사정으로 160냥을 받고 李春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57

    1903년(광무 7) 4월에 왕이 3品의 장필진을 종3품의 嘉善大夫로 올리면서 발급한 칙명이다. 국왕이 耆社에 들어가면서 4품 이상의 朝官들에게 加資의 恩賜를 내림에 따라 張苾鎭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58

    1902년(광무 6) 11월에 이위용을 정3품 통정대부로 올려주면서 발급한 수직칙명이다. 고종은 자신이 耆老所에 들어가게 된 것을 기념하는 뜻에서 士庶人 중 80이 넘은 백성에게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59

    1903년(광무 7) 3월 9일 국왕이 80세가 된 고수영을 의례에 따라 정3품 通政大夫로 승급하면서 발급한 칙명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60

    1903년(광무 7) 9월에 왕이 노병규에게 정3품의 通訓大夫 戶曺參判의 증직를 내리면서 발급한 칙명이다. 通訓大夫는 정3품 당하관의 품계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61

    "1903년(광무 7) 9월에 왕이 전광두의 처 양씨에게 내린 칙명으로, 양씨부인을 淑夫人으로 삼는다는 내용이다. 숙부인이란 정 3품의 품계로, 이는 그녀의 남편인 전광두가 嘉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62

    1904년(광무 8) 7월에 왕이 유인 정씨를 淑人으로 봉한 칙명이다. 칙명이란 조선시대의 교지를 대신하여 갑오개혁기에 새로 만들어진 사령장을 말한다. 본 문서는 남원 산동에 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63

    1903년(광무 7) 8월에 왕이 유인 홍씨를 淑夫人으로 봉하면서 발급한 勅命이다. 홍씨는 남편인 정광식이 通政大夫에 오르자 법전에 따라 淑夫人에 봉해진 것이다. 칙명은 조선시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64

    1908년(융희 2) 1월에 왕이 유인 김씨에게 貞夫人의 품계를 내리면서 발급한 칙명이다. 김씨는 증손인 김풍객이 嘉義大夫에 임명되자 법전에 따라 추증을 받은 것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65

    "1902년(광무 6) 7월에 왕이 6품 通訓大夫 유재홍을 정3품 通政大夫로 올려주면서 발급한 수직칙명이다. 고종은 자신이 耆老所에 들어가게 된 것을 기념하는 뜻에서 5품 이하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66

    "1902년(광무 6)에 발급된 空名帖으로 幼學 아무개를 敦寧府都正에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첩을 받는 사람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채 발급된 공명첩을 받은 경우, 물론 그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67

    1877년(고종 14) 3월 27일에 김경애가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김경애는 그동안 경작해오던 구례현 문척면 산치리 석문외평에 있는 遐字畓 6두락지 가운데 4두락지를 100냥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68

    1902년(광무 6)에 발급된 공명첩으로 이미 正三品職인 都正職을 이미 받은 사람을 從二品인 嘉善大夫 吏曹參判에 임명하는 것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69

    1902년(광무 6) 8월에 왕이 장세홍을 敎官 兼 通德郞 行 宣陵 參奉에 임명하면서 그에게 발급한 교지이다. 宣陵은 成宗大王의 陵號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70

    1899년(광무 3) 5월에 왕이 최상화를 童蒙敎官으로 추증하면서 발급한 추증교지이다. 최상화는 효행이 탁이하여 죽은 후에 그를 기리기 위해 발급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71

    1899년(광무 3) 3월에 內部署理 閔種?이 鞠在舜을 思陵參奉 敍判任8等官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敎牒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72

    1903년(광무 7) 8월에 궁내부대신 임시서리 議政府贊政 성기운이 김형두(1878-?)를 敬陵참봉에 임명하고 판임관 8등으로 서임하면서 발급한 임명장이다. 김형두는 부안현 우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73

    1904년에 朴家淳을 金溝郡 均田舍로 任命하면서 發給한 任命狀이다. 이때의 균전사는 대한제국기에 토지를 정비하기 위해서 설치한 임시직이다. 그리고 이때의 갑진년은 1895년에 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74

    1901년 2월 15일에 鄭永錫이 작성한 가옥 매매문서이다. 정영석은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파도리에 있는 3칸짜리 가옥을 70냥에 팔았다. 70냥 가운데 토지값인 1냥을 제외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75

    "1906년(광무 10) 1월 23일에 김진엽이 작성한 가옥과 밭 매매문서이다. 김진엽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서 우덕면 학전리에 있는 4칸 초가를 비롯하여 밭 약 7두락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76

    1906년(광무 10) 12월에 고성군에서 공증한 가옥매매문서이다. 고성군 하이면 월아동 2통 1호의 가옥 5칸을 배경순에게 130냥을 받고 판 것을 고성군에서 공증한 것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77

    1902년(광무 6) 2월 3일에 박인열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박인열은 그동안 거주해온 양안에 있는 草家 3칸 가옥을 52냥을 받고 팔았다. 박인열은 이 가옥이 본래 구문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78

    1877년(고종 14) 12월 10일에 김수환이 전라도 구례현 계사면 유곡리에 있는 制字畓 4마지기를 120냥을 받고 이동우에게 팔면서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김수환은 신문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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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379

    1907년(융희 1) 8월 1일에 오씨의 노 일금이 오윤선에게 작성해 준 가옥매매문서이다. 오씨의 노 일금은 긴히 필요한 곳이 있어서 여산군 합선면 외평리에 소재한 2칸 가옥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80

    1900년(광무 4) 11월 10일에 이순택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이순택은 그동안 거주해온 구례 토지면 양안리에 있는 巨字 초가 4칸 가옥을 71냥에 팔았다. 구문기는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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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381

    1908년(융희 2) 10월 10일에 장명흠이 문순직에서 작성해 준 가옥 매매문서이다. 장명흠은 부득이한 형편으로 인하여 열동면 척동의 字字 4칸짜리 가옥을 80냥을 받고 문순직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82

    "1903년(광무 7) 3월 12일에 백낙준이 작성한 가옥, 전답 매매문서이다. 백낙준은 그의 동생이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하자 이를 갚기 위해 남원 천유치에 있는 垂字草家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83

    1899년(광무 3) 11월 10일에 이생원댁 노 복돌이가 가척리에 있는 초가 3칸을 노 同伊에게 2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가옥 매매문서이다. 이 가옥의 구문기는 본래 없었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84

    "1902년(광무 6)에 서영화가 세금을 낼 방법이 없어서 上而面 柳亭里에 있는 초가집 5칸과 집터 1두락를 70냥에 매매하면서 작성한 문서이다. 金興萬이 증인으로 참여하고 있고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85

    1899년(광무 3) 2월 29일에 오생원댁 노 만금이가 김생원댁 노 산금에게 작성해 준 가옥매매문서이다. 오생원댁 노 만금은 여산군 합선면 외평리에 소재한 3칸 가옥을 35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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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386

    "1899년(광무 3) 4월 28일에 김운집이 작성한 가옥과 전답 매매문서이다. 김운집은 이사를 하게 되어 고산 운서면 상중리에 있는 가옥과, 논 5두5승락지와 菜田 1두락지 그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87

    1906년(광무 10) 9월에 이경숙이 작성한 水砧매매문서이다. 이경숙이 자신이 사서 여러해 동안 세를 받아오던 구례 중방면에 있는 水砧을 308냥에 팔고 작성한 문서이다. 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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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388

    1902년(광무 6) 8월 25일에 정화실이 작성한 石物 매매문서이다. 그의 증조모산이 우림곡 용동에 있는데 그곳의 석물 일습을 90냥을 받고 팔았다. 매매사유에 대한 언급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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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389

    1821년(순조 21) 1월 29일에 김유재가 작성한 논매매문서이다. 김유재는 일동면 려제평 소재 市字畓 5마지기와 翫字畓 5마지기를 합하여 모두 130냥을 받고 김준기에게 팔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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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390

    "1902년(광무 6) 8월 8일에 外長孫인 김병연이 작성한 망주, 상석 매매문서이다. 김병연의 증외가인 房氏山이 전주 이동면 서우동 후록에 있는데 본손이 없어서 외손인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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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391

    "1904년(광무 8)에 李救汝가 작성한 가옥 매매문서이다. 이구여는 이사를 가기 위하여 오랫동안 거주해 오던 전라도 구례현 토지면 파도리에 있는 가옥 2칸과 텃밭 1負, 과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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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392

    "1901년(광무 5)에 幼學 鄭德汝와 幼學 李明瑞가 각각 집터를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로, 두 건의 매매 내용이 한장의 종이에 기록되어 있다. 정덕녀는 이사를 가기 위하여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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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393

    1903년(광무 7) 윤5월 4일에 嚴相永이 작성한 집터 매매문서이다. 엄상영은 요근래 화재를 당하여 이사하기로 마음을 먹고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파도리에 있는 집터와 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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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394

    1899년(광무 3) 3월 27일에 오두영은 형편이 어려워 귀등동 남쪽 기슭에 있는 선산을 삼종형에게 20냥을 받고 팔았다. 그는 이 산지의 구문기와 신문기를 모두 넘겨주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395

    1904년(광무 8) 3월 12일에 柳光澤이 작성한 산지 매매문서이다. 유광택은 살길이 막막하여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둔덕방 순주동 류산 아래 오른편에 있는 산지를 50냥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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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396

    "1903년(광무 7) 11월 9일에 전라북도 고부에 살던 文學鉉이 작성한 산지매매문서이다 급히 돈을 써야할 데가 있었던 문학현은 흥덕현 일남면의 반등산 용추에 있는 5대조 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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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397

    1898년 4월 2일에 양군익이 작성한 산지 매매문서이다. 양군익은 전주 이동면 방마동에 있는 산지를 긴히 써야 할 곳이 있어서 15냥을 받고 팔았다. 그는 이 산지의 구문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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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398

    1900년 8월 19일에 강성수가 작성한 산지매매문서이다. 강성수는 남원 고달방 탑선촌 뒤에 있는 산지 90냥에 팔았다. 산지의 사방 한계를 자세하게 적었다. 매수인에게 구문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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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399

    1901년 9월 27일에 아무개가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이 문서는 대각선으로 절반이 절취된 문서라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가 없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93400

    "幼學 李達興이 작성한 토지매매문서이다. 이달흥이 토지를 팔고 매매문서를 작성하였다. 이때 洞任 幼學 申英文이 매매문서를 작성해 주었고 幼學 金仲哲과 幼學 鄭騏俊이 증인으로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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