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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추 / 유교문화>인물 / 정추고려말기의 문신인 정추(鄭樞 ; 1333∼1382)의 자는 공권(公權), 호는 원재(圓齋),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아버지는 보(溥)이다. 1353년(공민왕 2)에 급제하고 사간으로 정언 이존오(李存吾)와 더불어 신돈(辛旽)이 무엄하게 임금과 나란히 호상(胡床)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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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구 / 유교문화>인물 / 정치구조선 후기의 학자 정치구(鄭致龜 ; 1824∼1884)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우서(禹瑞), 호는 학파(鶴坡). 아버지는 유탁(裕琢)이며, 어머니는 문소김씨(聞韶金氏)로 곤수(坤壽)의 딸이다. 유치명(柳致明)의 문인으로, 김만각(李晩慤), 이돈우(李敦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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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오 / 유교문화>인물 / 정치오정치오(鄭致五 ; 1844∼1917)의 자는 이극(而極), 호는 노암(露岩), 본관은 영일(迎日), 아버지는 유욱(裕郁)이다. 천성이 강직하고 지기가 호매했다. 뛰어난 유학자 집안이었으므로 가정에서 수학하여 약관에 이르러서는 문사가 크게 이루어졌다. 중년에 선대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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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원 / 유교문화>인물 / 정하원조선 후기의 학자 정하원(鄭夏源 ; 1762∼1809)이 자는 원원(源遠), 호는 운와(雲窩), 본관은 연일(延日)이다. 아버지는 일강(一綱)이며, 어머니는 벽진이씨(碧珍李氏)로 사헌부지평 정춘(挺春)의 딸이다. 남와(南窩) 정동필(鄭東弼), 구암(懼庵) 이수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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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준 / 유교문화>인물 / 정하준정하준(鄭夏濬 ; 1737∼1806)의 자는 희문(希文), 호는 운서(雲西), 본관은 영일(迎日)이다. 아버지는 일옥(一鈺)이며, 영천(永川)에서 태어났다. 그는 10세에 부친을 여의고 계부인 생원 일전(一銓)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곧 계부의 명으로 매산(梅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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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준 / 유교문화>인물 / 정하준정하준(鄭夏浚 ; 1738∼1819)의 자는 경원(景遠), 호는 교와(郊窩), 본관은 영일(迎日), 아버지는 일진(一鎭)이다. 정하준은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재종숙부(再從叔父) 매산선생(梅山先生) 중기(重器)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정중기가 죽음에 족조(族祖) 인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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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호 / 유교문화>인물 / 정하호조선후기의 학자인 정하호(鄭夏濩 ; 1776∼1821)의 자는 사문(士文), 호는 운암(雲庵), 본관은 영일(迎日)이다. 아버지는 일구(一銶)이며 영천(永川)에서 살았다. 그는 재종형인 정하준(鄭夏濬)의 문하에 들어가서 고금의 서적들을 섭렵하여 1803년 (순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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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학렴 / 유교문화>인물 / 정학렴정학렴(鄭學濂 ; 1740~1833)의 자는 경연(景淵), 호는 자애당(自愛堂), 본관은 영일(迎日)이다. 상첨(尙瞻)의 아들로 흥해(興海)에서 살았다. 14세 때 이상정(李象靖)이 영일에서 선비들을 모아 강론을 하였는데, 그도 참여하여 강론을 듣고는 큰 깨우침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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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의 / 유교문화>인물 / 정호의조선 중기의 학자 정호의(鄭好義 ; 1602∼1655)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자방(子方), 호는 상화(常華)·명계(明溪)이다. 아버지는 내금위장(內禁衛將)을 지낸 수번(守藩)이며,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생원 희익(希益)의 딸이다. 전삼성(全三省)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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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신 / 유교문화>인물 / 정호신정호신(鄭好信 ; 1605~1653)의 자는 덕기(德基), 호은 삼휴(三休), 본관은 오천(烏川)이다. 정호의는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하자 낙향하여 독서로 세월을 보냈다. 병자호란을 시로 탄식하였으며 의용(義勇)을 발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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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인 / 유교문화>인물 / 정호인조선 중기의 문신인 정호인(鄭好仁 ; 1597∼?)의 자는 자견(子見), 호는 양계(暘溪), 본관은 영일(迎日)이다. 의병장 세아(世雅)의 손자로, 안번(安藩)의 아들이다. 장현광(張顯光)을 사사(私事)하였으며, 문장과 재행(才行)이 탁월하였다. 1618년(광해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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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직 / 유교문화>인물 / 정환직정환직(鄭煥直 ; 1843∼1907)의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치우(致右), 자는 백온(伯溫), 호는 동암(東巖)이다. 1887년(고종 24)에 일사로 추천되어, 1888년(고종 25) 의금부의 금부도사를 지냈으며, 1894년 삼남참오령(三南參伍領)에 임명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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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온 / 유교문화>인물 / 조경온조선중기의 학자 조경온(曺景溫 ; 1548~1592)의 자는 여률(汝慄), 호는 임계(林溪),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희장(希章)의 아들로 신녕(新寧)에서 살았다. 그는 임진란 때적들이 남의 분묘를 발굴하자 먼저 가족들을 산 속으로 피난을 보내고 자신은 재사(齋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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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구령 / 유교문화>인물 / 조구령조구령(曺九齡 ; 1657∼1719)의 자는 인수(仁수), 호는 정옹(酊翁),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아버지는 이로(爾櫓),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로 홍정(弘禎)의 딸이다. 이현일(李玄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과거에 뜻이 없어 학문수양에만 전력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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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양 / 유교문화>인물 / 조규양조규양(趙葵陽, 1706∼1776)의 자는 향경(向卿), 호는 둔암(鈍巖), 본관은 한양(漢陽), 아버지는 원익(元益)이다. 39세에 사마시에서 아우와 함께 동방 합격하였다. 연이어 동생 보양(普陽)과 아들 석회(錫晦)가 또 문과에서 동방 급제하였다. 그러나 부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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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극승 / 유교문화>인물 / 조극승조선말기의 학자 조극승(曺克承 ; 1824~1899)의 자는 성도(聖度), 호는 죽계(竹溪),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석운(錫運)의 아들로 칠곡(漆谷)에서 살았다. 그는 서찬규(徐贊奎), 이병전(李秉銓) 등 당시 이름난 선비들과 교유하며 강학(講學)에 힘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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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극승 / 유교문화>인물 / 조극승조극승(曺克承 ; 1803∼1877)의 자는 경휴(景休), 호는 구애(龜厓),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유치명의 문인이다. 1831년(순종 31)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가 되었다. 1840년 예조좌랑, 종부시주부, 사헌부감찰을 지냈다. 1845년에는 성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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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원 / 유교문화>인물 / 조기원조선 중기의 문신 조기원(趙基遠 ; 1574∼1652)의 자는 경진(景進), 호는 초은(樵隱),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아버지는 정(靖)으로 상주(尙州)에 거주했다. 19세가 되던 해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묵간공(黔澗公)의 명령으로 아우 영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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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좌 / 유교문화>인물 / 조동좌조선후기의 문인 조동좌(趙東佐 ; 1809∼1888)의 자는 유경(猷卿), 호는 총계(叢桂),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아버지는 술지(述志)로 상주에 거주했다. 당숙(堂叔)인 조술주(趙述周)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이후에 유치명(柳致明)의 문하에 들어가서 학문하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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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려 / 유교문화>인물 / 조려조선 초기의 학자 조려(趙旅 ; 1420~1489)의 자는 주옹(主翁), 호는 어계(漁溪),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아버지는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증직된 안(安)이며, 어머니는 성산(星山)이씨로 택(澤)의 딸이다. 1453(단종 1)년 진사가 되어 장래가 촉망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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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릉 / 유교문화>인물 / 조릉조선 중기의 문인 조릉(趙稜 ; 1607∼1683)의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자방(子方), 호는 모암(慕庵)·사우당(四友堂)이다. 영원(榮遠)의 아들로 문학에 뜻을 두고 탐구하기를 거듭하여 문예가 크게 진보하였다. 아홉번이나 향시에 장원했으나 복시(覆試)에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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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시 / 유교문화>인물 / 조병시조선후기의 문인, 조병시(趙秉時 ; 1837∼1911)의 자는 가중(可中), 호는 침계(枕溪),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아버지는 언목(彦穆)이며 이후에 언석(彦奭)에게 입양되었다. 13세에 사서삼경(四書三經)을, 16세에는 제자백가(諸子百家)에 통달하였다. 20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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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희 / 유교문화>인물 / 조병희조선말기의 학자 조병희(趙秉禧 ; 1855~1917)의 자는 자정(子鼎), 호는 석농(石農),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언교(彦敎)의 아들로 영양(英陽)에서 살았다. 그는 영양 주실에서 태어났는데, 조덕린(趙德隣)의 후손으로 참봉(參奉)을 지냈다. 신채호(申采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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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적 / 유교문화>인물 / 조선적조선 후기의 학자 조선적(曺善迪 ; 1697∼1756)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길(仲吉), 호는 치재(恥齋). 아버지는 좌승지에 증직된 익천(翼天)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로 창징(昌徵)의 딸이다. 이형상(李衡祥)의 문인으로, 일생 벼슬에 나아가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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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신 / 유교문화>인물 / 조성신조선 후기의 학자 조성신(趙聖臣 ;1765∼1835)의 자는 종진(宗鎭), 호는 염와(恬窩), 본관은 한양(漢陽). 아버지는 상순(尙純)이며, 어머니는 고창오씨(高敞吳氏)로 정(鉦)의 딸이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시화(詩畵)에 밝고 해자(解字)에도 뛰어난 재주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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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광 / 유교문화>인물 / 조시광조선후기 학자인 조시광(趙是光 ; 1669∼1740)의 자는 계만(戒萬), 호는 주강(柱江),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이현일과 이재(李栽)에게서 학문을 수양하였다. 1712년(숙종 38)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과거에의 뜻을 버리고 여생을 학문연구와 후진교육에 바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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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 / 유교문화>인물 / 조식조선중기의 학자 조식(曺植 ; 1501~1572)의 본관이 창녕(昌寧), 자는 건중(楗仲, 健中), 호는 남명(南冥)이다. 생원 안습(安習)의 증손으로, 승문원판교 언형(彦亨)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이씨(李氏)이다. 1501년(연산군7) 경상도 삼가현 토골(兎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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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관 / 유교문화>인물 / 조언관조언관(趙彦觀 ; 1805~1870)의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용빈(用賓), 호는 하담(河潭). 아버지는 남복(南復)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단(?)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질로 일찍이 유치명(柳致明)의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몇 차례 과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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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광 / 유교문화>인물 / 조언광조언광(趙彦光 ; 1656~1718)의 자는 실지(實之), 호는 주암(注巖), 본관은 풍양(豐壤)이다. 원윤(元胤)의 아들로 상주(尙州)에서 살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외조부에게서 우 부지런한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하여 덕기(德器)가 일찍 진취되어 더욱 스스로 공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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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완규 / 유교문화>인물 / 조완규조완규(趙完珪 ; ?∼1454)의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호는 매설당(梅雪堂)이다. 영무(英茂)의 손자로, 절제사 전(琠)의 아들이다. 타고난 재질이 탁월하여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이후 김종서(金宗瑞)등과 더불어 국사를 의논하였으며, 안평대군(安平大君)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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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석 / 유교문화>인물 / 조용석조용석(曺龍錫 ; 1705∼1774)의 자는 천응(天應), 호는 북계(北溪),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정만양(鄭萬陽)·규양(葵陽)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았고, 후에 이재(李栽)의 문하에 들어갔다. 과장에 나갔을 때 마침 친면있는 시관(試官)이 도와 줄 뜻을 보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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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위경 / 유교문화>인물 / 조위경조선 중기의 문인 조위경(趙緯經 ; 1698∼1780)의 자는 세문(世文), 호는 취지재(吹지齋), 본관은 풍양(풍壤), 아버지는 언철(彦轍)이며, 상주(尙州)에 거주했다. 선생은 담박한 생활을 즐기고 막연한 세상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시서(詩書)를 익히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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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찬 / 유교문화>인물 / 조유찬조선 후기의 학자인 조유찬(曺有贊 ; 1860∼1934)의 자는 충가(忠可), 호는 성재(惺齋) 또는 회산(晦山),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아버지는 경선(慶善)이며, 창녕에서 태어났다. 그는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와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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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임 / 유교문화>인물 / 조임조선중기의 의병장 조임(趙任 ; 1573∼1644)의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자중(子重), 호는 사월(沙月)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20세의 나이로 형과 함께 곽재우(郭再祐)의 휘하에 들어가 용감히 싸웠다. 1672년(인조 5) 정묘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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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규 / 유교문화>인물 / 조정규조선후기의 학자인 조정규(趙貞奎 ; 1853∼1920)의 자는 태문(泰文), 호는 서천(西川),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아버지는 희린(熙麟)이다. 함안(咸安) 출생이다. 일찍이 과장에서 명성이 드러났으나 \"명리에 구구함은 비부(鄙夫)\"라 하며 책을 휴대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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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원 / 유교문화>인물 / 조영원조영원(趙榮遠 ; 1577∼1640)의 자는 경장(景長), 호는 유담(儒潭), 아버지는 정(靖)이며,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 극일(克一)의 딸이다. 그는 지기(志氣)가 굳세고 덕행(德行)과 도학(道學)에 있어 남달라 남방의 여러 선비들이 그를 매우 중히 여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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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윤 / 유교문화>인물 / 조대윤조대윤(趙大胤 ; 1638∼1705)의 자는 계창(季昌), 호는 입재(立齋), 릉(稜)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이 병환 중에 있을 때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였으며 상(喪)을 당해서는 고례(古禮)에 따라 그 예를 다하였다. 통덕랑(通德郞)에 제수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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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 / 유교문화>인물 / 조정용조정룡(曺挺龍 ; 1694∼1769)의 자는 운경(雲卿), 호는 초당(草堂),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아버지는 필대(必大)이며, 어머니는 안동장씨(安東張氏) 도견(道堅)의 딸이다. 진우직(秦佑稷)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여러 번 향시에 합격한 뒤 1726년(영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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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도 / 유교문화>인물 / 조종도조선 중기의 문신인 조종도(趙宗道 ; 1537∼1597)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백유(伯由), 호는 대소헌(大笑軒), 아버지는 참봉 언(堰)이며, 어머니는 대사성 강로(姜老)의 딸이다. 정두(鄭斗)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58년(명종 13) 생원시에 합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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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원 / 유교문화>인물 / 조주원조주원(趙周源 ; 1851∼1925)의 자는 맹직(孟稷), 호는 만포(晩浦), 본관은 한양(漢陽), 아버지는 현구(鉉耉)이다. 성품이 순후하고 기량이 높았으며 8세에 효경을 통독하고 학업에 힘써서 글을 읽다가 알지 못하면 식사를 잊고 골똘히 사색하여 이해하고야 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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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도 / 유교문화>인물 / 조준도조선 후기의 학자인 조준도(趙遵道 ; 1576~1665)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경행(景行), 호는 방호(方壺), 청송 출신이다. 아버지는 판서에 추증된 지(址)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습독(習讀) 회(恢)의 딸이다. 재종숙인 개(介)에게 입양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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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채신 / 유교문화>인물 / 조채신조선후기의 학자인 조채신(曺采臣 ; 1717∼1797)의 자는 양보(亮甫), 호는 일암(一庵),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아버지는 선명(善鳴)이며 어머니는 여주이씨(驪州李氏)로 덕표(德標)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였고 삼종숙되는 선적(善迪)에게 수학하였으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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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복 / 유교문화>인물 / 조홍복조선 후기의 학자 조홍복(趙弘復 ; 1773∼1841)의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지중(遲中), 호는 망운(望雲). 아버지는 호신(虎臣)이며, 어머니는 재령이씨(載寧李氏)로 구원(俱遠)의 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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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영 / 유교문화>인물 / 조휘영조선 후기의 문인 조휘영(趙徽榮 ; 1805∼1854)의 자는 진오(愼五), 호는 취헌(醉軒), 본관은 한양(漢陽), 아버지는 현상(顯常)이며, 예천(醴泉)에 거주했다. 1836년(헌종 2) 고방산(古方山) 아래에 이주하여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필사하여, 산방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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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맹헌 / 유교문화>인물 / 주맹헌조선 후기의 학자 주맹헌(周孟獻 ; 1617∼1703)의 자는 여택(汝宅), 호는 수구재(守구齋), 본관은 상주(尙州)이다. 아버지는 주부(主簿) 진원(震元)이며, 어머니는 함양조씨(咸陽趙氏)로 군수(郡守) 숙(鷫)의 딸이다. 그는 일찍이 곽연(郭硏)에게 수학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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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박 / 유교문화>인물 / 주박주박(周博 ; 1524∼?)의 자는 약지(約之), 호는 구봉(龜峯), 본관은 상주(尙州)이다.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주세붕(周世鵬)의 아들이며, 이황의 문인이다. 1558년(명종 13)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한 뒤 1568년(선조 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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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성 / 유교문화>인물 / 주재성조선 중기의 학자·의병장인 주재성(周宰成 ; 1681∼1743)의 자는 성재(聖哉), 호는 국담(菊潭), 본관은 상주(尙州)이다. 세붕(世鵬)의 후손이며, 각(珏)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근사록』과 『주자대전』을 탐독하고 「위학입교도(爲學立敎圖)」와 「오륜론(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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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대 / 유교문화>인물 / 주필대주필대(朱必大 ; 1616∼1693)의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한재(寒齋), 본관은 신안(新安)이다. 아버지는 군자감정에 추증된 성유(聖兪)이며, 임만휴(任萬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62년(현종 3)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당쟁으로 조정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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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 유교문화>인물 / 주희주희(朱熹 ; 1130~1200)의 자는 원회(元晦)·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회옹(晦翁)·운곡산인(雲谷山人)·창주병수(滄洲病)·둔옹(遯翁). 이름 희(熹). 푸젠성[福建省] 우계(尤溪) 출생. 선조는 대대로 휘주무원(徽州源:安徽省)의 호족으로 아버지 위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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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건 / 유교문화>인물 / 진건진건(陳健 ; 1598∼1678)의 자는 대중(大中), 호는 명와(明窩), 본관은 여양(驪陽), 아버지는 생원(生員) 한국(翰國), 어머니는 철성이씨(鐵城李氏) 택동(宅東)의 딸이다. 선생은 자질이 총명하여 약관(弱冠)에 향해(鄕解)에 응시했으나 선비의 기풍이 옳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