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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 / 유교문화>인물 / 한권한권(韓卷 ; 1386~1448)의 자는 가서(可舒), 호는 유선(儒仙), 본관은 곡산(谷山)이다. 1408(태종 8)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410년 승문원(承文院)이 설치되어 경학(經學)에 해박한 사람을 뽑을 때 초대 승문원 정자(承文院 正字)에 임명되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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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두 / 유교문화>인물 / 한산두조선 중기의 학자 한산두(韓山斗 ; 1556∼1627)의 자는 사첨(士瞻), 호는 추월당(秋月堂),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일취(日就)의 아들이며 영주(榮州)사람이다. 정유재란(丁酉再亂)때 대신들이 도성(都城)을 비우고 파천(播遷)할 것을 주장하자, 그가 상소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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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옹 / 유교문화>인물 / 한옹여말선초의 문인인자 문신이었던 한옹(韓雍 ; 1352~1425)의 자는 백희(百熙), 호는 정포(靜浦), 본관은 곡산(谷山)이다. 금자광록대부 문하평장사 예(銳)의 증손이며 정당문학 진(瑨)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관찰사 방좌(邦佐)이다. 여말선초에 모두 중앙과 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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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충 / 유교문화>인물 / 한철충여말선초의 한철충(韓哲沖 ; 1321∼?)의 호는 몽계(夢溪),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 장령시사(掌令侍史), 양광도안렴사(楊廣道按廉使), 예의판서(禮儀判書), 전법판서(典法判書) 등을 역임했으며 고려가 망하자 72현과 함께 두문동에 들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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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극창 / 유교문화>인물 / 한극창조선 후기의 문신인 한극창(韓克昌 ; 1600∼1650)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유백(裕伯), 호는 오주(오州)이다. 서(瑞)의 아들로, 위(瑋)에게 입양되었다. 1624년(인조 2) 진사가 되고, 163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찰방이 되었으나 권신 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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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필수 / 유교문화>인물 / 한필수한필수(韓必壽 ; 1696∼1751)의 호는 인묵재(忍默齋),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효행이 지극해서 지방관이 예조(禮曹)에 보고하고 의정부에서 논의까지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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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윤 / 유교문화>인물 / 허경윤조선중기의 학자 허경윤(許景胤 ; 1573~1646)의 자는 사술(士述), 호는 죽암(竹庵),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세절(世節)의 아들로 김해에서 살았다. 20세에 임진왜란을 당하여 모친을 모시고 함양(咸陽)으로 피난하였는데 왜적이 수로왕릉을 도굴한다는 소문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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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 / 유교문화>인물 / 허선허선(許墡 ; 1618~1672)의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분경(賁卿), 호는 종오당(從吾堂)이다. 아버지는 심(심)이며, 어머니는 함양박씨(咸陽朴氏)로 광남(光男)의 딸이다. 일찍이 과업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연구에 전념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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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식 / 유교문화>인물 / 허원식조선말기의 문신 허원식(許元栻 ; 1828∼1891)의 본관은 하양(河陽), 초명은 식(栻), 자는 순필(舜弼), 호는 삼원(三元)· 백암거사(白巖居士)이다. 1880년(고종 17) 수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김홍집(金弘集)이 황준헌(黃遵憲)의 저술 『조선책략 朝鮮策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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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조 / 유교문화>인물 / 허조허조(許稠 ; 1369∼1439)의 자(字)는 중통(仲通), 호(號)는 경암(敬庵), 본관(本貫)은 하양(河陽)이다. 선생은 권근(權近)의 문인(門人)으로 1383(우왕 9)년 진사, 1385년 생원에 합격하였으며 1390(공양왕 2)년 문과에 급제, 1392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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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조 / 유교문화>인물 / 허조허조(許稠 ; 1430∼1456)의 자는 사하(賜하), 호는 응천(凝川), 본관은 하양(河陽)이다. 1447(세종 29)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집현전 수찬을 지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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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숙 / 유교문화>인물 / 허숙허숙(許(土+肅) ; 1857∼1942)의 자가 용경(容卿), 호는 내정(來亭),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아버지는 훈(薰)이다. 몇 번이나 초시(初試)에 합격했으나 회시(會試)에는 불리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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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용 / 유교문화>인물 / 허용허용(許墉 ; 1860∼1933)의 자가 숭경(崇卿), 호는 과암(果庵),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아버지는 훈(薰)이며, 허숙(許숙)의 동생이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여 앞길이 열리려는 무렵 시사가 날로 그릇됨에 벼슬길을 단념하고 벽지에 숨어살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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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채 / 유교문화>인물 / 허채조선 말기의 학자인 허채(許埰 ; 1859∼1935)의 자는 경무(景懋), 호는 금주(錦洲),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욱(욱)의 아들이며 1891년(고종 28)년 진사에 합격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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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후 / 유교문화>인물 / 허후조선초기의 문관인 허후(許詡 ; 1398∼1453)의 자는 일신(日新), 호는 일령(一寧), 본관은 하양(河陽)이다. 좌의정 조(稠)의 아들로 1426년(세종8) 문과에 급제하고, 20여년 동안 직제학(直提學)·승지(承旨) 등의 벼슬을 거쳐 좌찬성에 이르렀다. 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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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손 / 유교문화>인물 / 홍경손조선초기의 문신인 홍경손(洪敬孫 ; 1409∼1481)의 자는 길보(吉甫), 호는 우국재(友菊齋),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아버지는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을 지낸 지(智)며 어머니는 개성왕씨(開城王氏)로 고려말의 수연대군(壽延大君) 왕규(王珪)의 딸이다. 143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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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승 / 유교문화>인물 / 홍경승조선중기의 문인, 홍경승(洪慶承 ; 1567∼? )의 자는 군하(君賀), 호는 혼암(混庵), 본관은 악림(缶林), 아버지는 거원(巨源)이며, 군위(軍威)에 거주했다. 일찍이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예를 질의하며 위기(爲己)의 요지를 들으며, 산사에서 공부하다가 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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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귀명 / 유교문화>인물 / 홍귀명홍귀명(洪龜命 ; 1714∼1775)의 자는 경수(景受), 호는 쌍료당(雙蓼堂), 본관은 부림(缶林)이다. 그는 천성이 순수하고 총명이 뛰어났다. 장성하여서는 여러 번 향시에 합격했으나 과거에 불리한 후로는 위기지학에 전심하여 『심경』, 『근사록(近思錄)』, 『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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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구범 / 유교문화>인물 / 홍구범조선후기의 학자 홍구범(洪龜範 ; 1691∼1762)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대백(大伯), 호는 활안(闊岸). 아버지는 우하(宇河)이며, 어머니는 일선김씨(一善金氏)로 구서(九敍)의 딸이다. 약관 이전에 경사(經史)와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에 통하였으며, 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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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귀달 / 유교문화>인물 / 홍귀달조선 전기의 문신 홍귀달(洪貴達 ; 1438~1504)의 본관은 부계(缶溪). 자는 겸선(兼善), 호는 허백당(虛白堂)·함허정(涵虛亭). 아버지는 증판서 효손(孝孫)이며, 어머니는 노집(盧緝)의 딸이다. 1460(세조 6) 강릉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겸예문(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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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구서 / 유교문화>인물 / 홍구서조선 후기의 학자 홍구서(洪龜瑞 ; 1726∼1779)의 본관은 부림(缶林), 자는 경오(景五), 호는 물계(勿溪)다. 1761년(영조 37)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62년 승정원 사변가주서(事變假注書)에 기용되고, 이듬해 숭문원의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 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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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우 / 유교문화>인물 / 홍기우홍기우(洪麒佑 ; 1827∼1912)의 자는 선겸(善兼), 호는 오은(五隱), 본관은 부림(缶林)이다. 아버지는 학수(學修)이며, 군위(軍威)에서 태어났다. 그는 8세에 족숙인 삼외공(三畏公)에게 수학하였다. 친명(親命)으로 과거를 보는데 한양 사람들이 모두 좁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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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로 / 유교문화>인물 / 홍로고려말의 학자이며 문신이었던 홍로(洪魯 ; 1366∼1392)의 자를 득지(得之)라 했으며, 호는 경재(敬齋), 본관(本貫)은 부림(缶林)이다. 선생은 7세에 이미 『효경』을 통독하였고 정몽주의 문하에서 수학, 성리학에 뜻을 두었다. 1387년(고려우왕 13)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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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 / 유교문화>인물 / 홍석조선 후기의 문신 홍석(洪奭 ; 1736∼1805)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청중(淸仲), 호는 현암(玄巖). 아버지는 유규(有圭)이며,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기천(起天)의 딸이다. 1765년(영조 41) 사마시에 합격한 뒤 채제공(蔡濟恭)의 문하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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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공 / 유교문화>인물 / 홍세공조선 중기의 문신인 홍세공(洪世恭 ; 1541∼1598)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중안(仲安), 호는 봉계(鳳溪). 군수 보(俌)의 아들이다. 1567년(명종 22) 생원이 되고, 1573년(선조 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1588년 평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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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언충 / 유교문화>인물 / 홍언충홍언충(洪彦忠 ; 1473∼1508)의 자는 직경(直卿), 호는 우암(寓庵), 본관은 부계(缶溪)이다. 아버지는 귀달(貴達)이며 군위(軍威)에서 태어났다.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증광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승정원부정자가 되고 정자, 저작, 박사를 지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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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여하 / 유교문화>인물 / 홍여하홍여하(洪汝河 ; 1621∼1678)의 자는 백원(百源), 호는 산택재(山澤齋), 혹은 목재(木齋), 본관은 부계(缶溪)이며, 대사간 호(鎬)의 아들이다. 1654년(효종 5) 진사시 및 명경과(明經科)에 합격하여,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등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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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우원 / 유교문화>인물 / 홍우원홍우원(洪宇遠 ; 1605∼1687)의 자는 군징(君徵), 호는 남파(南坡),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1645년(인조 23) 문과별시 병과(慶科;왕세자책봉)에 합격하였다. 1647년 검열이 되고, 이듬해 봉교로 태백산 사고와 오대산 사고를 살피고 돌아왔다. 정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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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 / 유교문화>인물 / 홍위조선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홍위(洪瑋 ; 1559∼1624)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위부(偉夫), 호는 서담(西潭), 군위출생이며, 참봉 우식(禹軾)의 손자로, 증한성부우윤 흔(訢)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홍혼(洪渾)의 딸이다.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이다. 15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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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전 / 유교문화>인물 / 홍전조선말기의 학자 홍전(洪壂 ; 1804∼1865)의 자는 사직(士直), 호는 노운(老雲), 본관은 남양(南陽), 아버지는 시윤(始潤)이다. 일찍이 정재 유치명(柳致明)선생을 사사(師事)하여 성명이기(性命理氣)의 학설을 깊이 연구하였고 만년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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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형 / 유교문화>인물 / 홍준형홍준형(洪俊亨 ; 1606~1666)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언겸(彦謙), 호는 매헌(梅軒). 아버지는 적(勣)이며, 어머니는 기계유씨(杞溪兪氏)로 대기(大祺)의 딸이다. 작은아버지인 진사 사려(思勵)에 게 입양되었다. 1651년(효종 2) 사마시에 합격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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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중명 / 유교문화>인물 / 홍중명홍중명(洪重明 ; 1654∼1725)의 자는 중회(仲晦),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으나 효행이 지극하고 행동이 엄중하여 동년배들이 흠모하였다 한다. 자라서 삼촌 한태상(韓泰相)에게 수학하였으며 관직에는 오르지 못하였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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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흔 / 유교문화>인물 / 홍흔조선 중기의 학자 홍흔(洪昕 ; 1601∼1653)의 본관은 부림(缶林), 자는 백승(伯昇), 호는 문곡(文谷)이다. 병자호란 때 의병을 모아 행군하기 직전에 화의 성립의 비보를 듣자 통곡하며 문산(文山)에 들어가 숨어살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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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계희 / 유교문화>인물 / 황계희조선 후기의 학자 황계희(黃啓熙 ; 1727∼1785)의 자는 경초(景初), 호는 심기당(審幾堂),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아버지는 도중(道重)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로 만헌(萬憲)의 딸이다.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777년(정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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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난선 / 유교문화>인물 / 황난선황난선(黃蘭善 ; 1825∼1908)의 자는 동보(同輔), 호는 시려(是廬),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아버지는 인로(麟老)이며, 상주(尙州)에서 태어났다. 그는 여러번 초시(初試)에 합격했으나 회시(會試)에서 불리(不利)함으로써 과거를 단념하고, 중형(仲兄)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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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뉴 / 유교문화>인물 / 황뉴황뉴(黃紐 ; 1578∼1626)의 자는 회보(會甫), 호는 반간(槃澗), 아버지는 준원(俊元),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 사열(師說)의 딸이다. 일찍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편찬한바 있는 황효헌(黃孝獻)의 증손으로, 대대로 경상도 상주(尙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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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연 / 유교문화>인물 / 황도연황도연(黃道淵 ; 1857∼1913)의 자는 성관(聖貫), 호는 도은(道隱), 본관은 평해(平海), 아버지는 수극(壽極)이다. 6세조에 이르러 안동 금계(金溪)에서 영천으로 이거 도촌(道村)에 거주하였다. 박우현(朴愚賢)에게 수업하였고 김흥락이 김성일의 「동자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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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명하 / 유교문화>인물 / 황명하조선 후기의 학자 황명하(黃命河 ; 1651∼1765)의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자윤(子潤), 호는 해헌(懈軒). 아버지는 통덕랑 석건(石建)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시경(是經)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이 뛰어나고 교유의 범위가 넓었으며, 벼슬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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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우 / 유교문화>인물 / 황사우조선의 문신인 황사우(黃士祐 ; 1486∼1536)의 자는 국보(國輔), 호는 용헌(용軒),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희성(希聖)의 아들이며, 1509년(중종 4)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 1520년 지평(持平)이 되고, 문학(文學)·헌납(獻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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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 / 유교문화>인물 / 황시조선의 문신인 황시(黃是 ; 1555∼1626)의 자는 시지(是之), 호는 부훤당(負暄堂),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직장(直長) 응규(應奎)의 아들이다. 1579년(선조12)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584년 친시문과(親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15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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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증 / 유교문화>인물 / 황유증조선의 문신인 황유중(黃有中 ; 1564∼1620)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중정(仲正), 호는 조대(釣臺)이다. 대사헌 섬(暹)의 아들로 일찌기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했으나 당시 시관(試官)이던 아버지 섬이 그의 글을 알아보고 급제를 취소했다. 뒤에 음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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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서한 / 유교문화>인물 / 황서한황서한(黃舒漢 ; 1774∼1819)의 자는 치순(穉醇), 호는 백천(白川),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9세에 김진동(金鎭東)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였다. 1789년(정조 22)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고 오직 정주(程朱)의 책만 공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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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여헌 / 유교문화>인물 / 황여헌황여헌(黃汝獻 ; 1486∼?)의 자는 헌지(獻之), 호는 유촌(柳村),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관(灌)의 아들로서 상주(尙州)사람이다. 스무살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2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저작(著作)·박사(博士)·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이조정랑·울산군수(蔚山郡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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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헌 / 유교문화>인물 / 황효헌황효헌(黃孝獻 ; 1491∼1532)의 자는 숙공(叔貢), 호는 축옹(畜翁)이다. 18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25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박사(弘文館博士)·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을 역임하였다. 1516년 중종이 지치(至治)를 도모하여 사유(師儒)를 택할 때 이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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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원선 / 유교문화>인물 / 황원선황원선(黃源善 ; 1798~1873)의 자는 진무(進懋), 호는 장원(藏園),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석로(錫老)의 아들로 상주(尙州)에서 살았다. 그는 일찍부터 외조부 정종로(鄭宗魯)에게 나아가서 수학하였으며, 또 번로(磻老), 헌로(獻老), 인로(麟老) 등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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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응규 / 유교문화>인물 / 황응규황응규(黃應奎 ; 1518∼1599)의 자는 중문(仲文), 호는 송간(松澗),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아버지는 우찬성 사우(士祐)이며, 어머니는 오수정(吳壽楨)의 딸이다. 주세붕(周世鵬)·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43년(중종 38) 사마시에 합격, 성균관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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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응청 / 유교문화>인물 / 황응청조선의 학자인 황응청(黃應淸 ; 1524~1605)의 자는 청지(淸之), 호는 대해(大海),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목사(牧使) 우(瑀)의 아들로 1552년(명종 7)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천거로 예빈시 참봉(禮賓寺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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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 유교문화>인물 / 황희조선 초기의 문신인 황희(黃喜 ; 1363∼1452)의 본관은 장수(長水), 초명은 수로(壽老),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厖村)이다. 1389년(창왕 1) 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성균관학관(成均館學官)이 되었다.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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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흡 / 유교문화>인물 / 권흡권흡(權(心+翕) ; 1710~1748)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제능(悌能), 호는 오헌(梧軒)이다. 순경(舜經)의 아들이며, 효자였다. 류정원(柳正源)의 [呈文]과 류형진(柳衡鎭)의 [傳]에 효행 사실이 소상하게 실려있다. 효행으로 童蒙敎官에 증직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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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건 / 유교문화>인물 / 김응건김응건(金應楗 ; 1808~1885)의 자는 경이(景以), 호는 기암(棄嵓)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