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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25451

    안동김씨 보백당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보백당종택은 안동에서 동남쪽으로 내려가다 길 왼편에 묵계리의 선항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묵계리는 조선시대 청백리로 알려진 보백당 김계행의 마을로, 김계행은 연산군 때 관직에서 물러난 후 경치 좋은 이곳에 은거하였다. 이 집은 대문칸인 행랑채와 본채인 口자 기와집과
    출처 : 유교넷
  • 225452

    임하구곡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안동시 임하면 내앞(천전)의 반변천 건너에 있는 백운정으로부터 상류를 거슬러 옛 망천동, 사의동, 박곡리, 악사리, 길안면 용계리의 도연과 선유정 일대에 이르는 반변천 양쪽 기슭을 임하 구곡이라고 한다. 그 일대에는 내앞 의성김씨 문중의 옛 유적이 널리 퍼져 있는
    출처 : 유교넷
  • 225453

    낙암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낙암정은 낙동강변의 자연 경관이 아름답게 보이는 낙연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은 1451년(문종 1)에 배환이 처음 건립하였으며, 1813년(순조 13)에 다시 지었다. 그 후 퇴락하여 1881년(고종 18)과 1955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낙동강
    출처 : 유교넷
  • 225454

    고산칠곡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안동부의 속현인 일직현의 소호리 일대에는 한산이씨와 달성서씨(대구서씨)가 대대로 살아온 곳이다. 붉은 암벽이 병풍을 두른 듯한 대석산 남쪽 기슭을 배경으로 하여 앞으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멀리 황학산에서 발원하여 의성의 옥산을 거쳐 80리를 흘러내린 미천이
    출처 : 유교넷
  • 225455

    안동권씨 수곡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이 건물은 1792년(정조 16)에 권조의 할아버지 권보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수곡종택이다. 옆에 있는 별당에는 일지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풍산에서 하회마을로 가는 길목의 오른쪽에 안동권씨 집성촌인 가일마을에 있다. 중요민속자료 제176호로 지정된 이 종택은
    출처 : 유교넷
  • 225456

    병산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병산서원은 원래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이 그 전신인데, 1572년(선조 5) 서애 류성룡이 지금의 병산으로 옮겨 놓았다. 1604년(선조 37) 서애가 죽자 후학들이 1614년(광해군 6) 존덕사를 세워 그의 위패를 모시고 병산서원으로 개칭하였다. 그 후, 철종
    출처 : 유교넷
  • 225457

    원지정사ㆍ옥연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원지정사는 1573년(선조 6) 서애 류성룡이 홍문관 재직 중 부친상을 당하자 낙향하여 지내면서 건립한 정사이다. 1781년(정조 5)에 연좌루를 고쳐 지은바 있으며, 1979년에는 전체 보수 정비와 함께 사주문을 신축했다. 건물은 북쪽 북촌댁 뒤편에 동남향하
    출처 : 유교넷
  • 225458

    빈연정사ㆍ겸암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빈연정사는 겸암 류운룡이 1583년(선조 16)에 건립하여 서재로 사용하던 정사이다. 류운룡은 서애 류성룡의 맏형으로 현재 풍기의 우곡서원과 1996년 이 마을 맞은편에 다시 세운 화천서원에서 모시고 있다. 마을 서북쪽 강둑 길 가까이 얕은 언덕 위에 북향으로
    출처 : 유교넷
  • 225459

    하회16경 / 유교문화>유적 / 미상
    500년이 넘는 세월을 하회마을에서 살아온 풍산 류씨 집안에게는 마을 주변의 모래톱, 바위절벽, 산자락 곳곳에 마을의 역사와 애환이 서려 있는 것이다. 언제 누가 하회 16경을 꼽아 왔는지 알 수 없어도 류성룡의 손자인 류원지가 이를 정리하여 16경을 확정하고 『
    출처 : 유교넷
  • 225460

    병산10경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병산서원 일대는 강과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데다가 장마가 지면 외부와 단절되므로 원래 10여 호 만이 사는 한적한 곳이었다. 퇴계학파인 권구는 1716년 전염병을 피해서 가족들을 이끌고 이 마을로 이주하였는데, 그는 이 마을을 병곡으로 고쳐 부르고 자신의 호로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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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61

    학가산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서 봉화 쪽으로 흘러내린 지맥이 한쪽에서는 온혜 쪽으로 내려서면서 영지산을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태자산으로 갈라져 나와 서남행하여 학가산 쪽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낙동강의 두 지류, 청량산으로부터 안동으로 흘
    출처 : 유교넷
  • 225462

    웅부공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안동의 옛 군청과 법원 검찰청이 있던 부지에 새로이 조성되는 가칭 ‘도심전통테마공원’의 이름은 시민들의 공모로 안동의 옛 이름을 딴 ‘웅부공원’과 ‘문화공원’으로 정해졌다. 관아터로 추정되는 이 공원에는 옛 대도호부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 관아의 동헌(영가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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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63

    안동민속박물관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안동민속박물관은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대표 박물관이다. 안동시 성곡동에 위치하여 안동댐 바로 아래의 강변에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끼고 있다. 안동문화권의 민속 문화를 조사, 연구, 보존,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주로 생활 물품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실내 전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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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64

    안동 석빙고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안동 석빙고는 보물 제305호로 원래 예안면 소재지에서 낙동강 상류를 따라 개설된 청량산행 길에 보이는 산기슭에 있었다. 그러나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게 되어 1976년 1월 도산면 동부리에서 현위치로 옮겼다. 이 석빙고는 예안의 이매신 현감이 1737년(영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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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65

    선성현 객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선성현은 경상북도 예안의 옛 지명으로 예안군은 1913년 안동군에 편입되었다. 이 객사는 1712년(숙종 38년) 현감 김성유가 고쳐 지은 一자형 건물이다.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지역이 수몰되자, 안동군 도산면 서부동에서 지금의 성곡동 민속촌으로 옮겨왔다.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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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66

    태사묘 / 유교문화>유적 / 미상
    태사묘는 안동시 중심부인 북문동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고려 개국 공신인 김선평, 권행, 장길 삼태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이 세 사람은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과 한판 승부(병산전투)를 벌릴 때 왕건을 도와 견훤을 물리친 지역의 대표적인 호족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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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67

    영호루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영호루는 진주 촉성루, 밀양 영남루와 더불어 영남 3대 누각의 하나로 유명하다. 고려시대에 지어졌으며 원래는 현 위치에서 낙동강 건너편 물가에 있었다. 홍건적의 난 때 안동까지 피난 왔던 고려 공민왕이 개경으로 돌아가서 ‘영호루’라고 쓴 현판 글자를 내려 주었다.
    출처 : 유교넷
  • 225468

    부라원루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부라원루는 전통 우편통신 제도인 역원제도에 의하여 예안현에 속했던 부라원의 누각으로 원사는 없어지고 누각만 남아 있다. 영가지에 의하면 안동지방에는 30개에 가까운 원이 있었다고 하나 당시의 누각이 현존하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원래는 부포동 마을 앞 들판에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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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69

    광산김씨 탁청정종가 / 유교문화>유적 / 미상
    탁청정 종가는 광산 김씨 오천유적지 경내에 자리 잡고 있다. 경내에서 오른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자 기와집과 정자가 보인다. □자 기와집은 탁청정종가이며, 정자는 종택의 별당 정침 탁청정이다. 탁청정은 오천칠군자 가운데 한명인 김유의 호이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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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70

    권순기 / 유교문화>인물 / 권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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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71

    고산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이 건물은 정유재란 시 안동 수성장으로 활약한 성성재 금난수의 정자이다. 기록에 따르면 금난수 35세 되던 1564년(명종 19)에 당시 선성현의 명승지였던 가송협에 짓고 일동정사라 부르며 늘 경전을 가까이 한 채 유유자적하였다 한다. 고산정은 안동 팔경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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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72

    애일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이 건물은 조선 중종 때 문신이며 학자인 농암 이현보의 별당 건물이다. 1512년(중종 7)에 이현보의 나이 46세 때 94세의 부친과 92세의 숙부, 82세의 사정 김집 등을 중심으로 한 구로회를 만들고, 늙은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경로당을 지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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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73

    취규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취규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용담 임흘을 기린 정자이다. 임흘의 본관은 풍천으로, 호는 용담 또는 나부산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막았으나, 패하여 김해의 의진에서 군사를 다시 모아 왜적에 대항하였다. 만년에 예안 온혜에 은거하였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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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74

    월란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월란정은 퇴계 이황의 제자 만취당 김사원이 동문인 간재 이덕홍과 10여 년간 수학하던 월란암 옛터에 후손과 후학들이 선조의 학덕을 추모해 건립한 정자이다. 도산면 단천에 이르러 낙동강을 건너면 마을이 있고 이 마을에서 남쪽으로 낙동강 변의 산을 따라 올라가면 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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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75

    백운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백운정은 귀봉 김수일이 그의 아버지 청계 김진으로부터 부지를 얻어 1568년(선조 1)에 세운 정자이다. 반변천을 건너 내앞(천전동)을 마주 바라보는 강 언덕 위에 자리 잡아 정자의 누마루가 반변천을 굽어보게 배치하였으며, 그 뒤쪽에 ㄷ자형의 주사가 이어져서 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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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76

    만우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만우정은 조선시대 병조참판을 지낸 정재 류치명이 학생을 가르치던 곳으로 1885년(고종 22)에 건립된 정자이다. 당초 임하면 사의동에 위치했으나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1988년 이곳으로 같이 옮겨진 정재종택의 오른쪽에 있다. 만우정은 팔작기와집이며 장식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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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77

    만휴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만휴정은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보백당 김계행이 1500년(연산군 6)에 건립한 정자이다. 길안면 묵계서원에서 개울 건너 산골짜기에 들어서면 웅장한 계곡에 반석 위로 폭포를 동반한 계곡물이 흐르는데 정자는 이 절경을 이루는 곳에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김계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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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78

    송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송정은 병자호란 뒤에 벼슬길을 단념하고 와룡산 아래에 있는 도연폭포 근처에 와룡초당을 지어 40여 년 동안 절의를 지키고 후진 양성에 이바지한 표은 김시온을 추모하기 위해 1679년(숙종 5)에 건립한 정자이다. 현 건물은 1949년 화재로 일부 소실되었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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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79

    약계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약계정은 현종 때 영릉참봉을 지낸 약계 권순기가 학생을 가르치던 정자이다. 원래는 반변천 옆에 있었으나 수해로 유실되어 1897년(광무 2) 마을 안으로 옮겨져 보존되어 오다가,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길안면 용계리에서 1989년 현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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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80

    선유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선유정은 청계 김진이 지어 셋째 아들 운암 김명일에게 내려준 정자이다. 김진의 본관은 의성으로 호는 청계이다. 부암서당과 임천서당 등을 열어 다섯 아들을 비롯한 문중 자제들과 근처의 젊은이들을 가르치며 고장에 면학의 기풍을 일으켰다. 이 정자는 임하리에서 신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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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81

    상봉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류성룡의 호인 서애는 하회마을의 서쪽 화천 건너에 있는 벼랑이고, 그 위에 상봉정이 있다. 먼저 양진당과 충효당을 지나 남산을 바라보면서 똑바로 길로 나오면 화천과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돌아들면 커다란 느티나무와 마주한다. 이 고목과 마주하여 강을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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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82

    석문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석문정사는 1587년(선조 20)에 학봉 김성일이 지은 정자이다.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청성산 중턱 전망 좋은 곳에 동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김성일은 자연 경관이 뛰어난 이곳에서 성리학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력을 다하였다. 경치 좋은 곳에서 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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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83

    연어헌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연어헌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송암 권호문이 자연과 벗하며 살았던 유서 깊은 정자이다. 앞쪽에 한글로 쓴 연어헌 현판이 하나 더 있으며 내부에는 무민재, 유정재 등의 현판과 시판이 걸려 있다. 청성산 기슭에 낙동강을 굽어보며 자리잡고 있다. 연어란 솔개가 하늘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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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84

    파산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파산정은 안동시 풍천면의 낙동강 기슭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파산 류중엄의 정자이다. 류중엄은 1564년(명종 19) 낙동강 언덕에 정자를 지어 학생을 가르치는 장소로 삼고자 스승인 퇴계 이황에게 물었는데 “형편에 맞게 차차 이룩하라.”는 답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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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85

    체화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체화정은 진사 이민적이 효종 때 학문을 닦기 위해 건립한 정자이다. 그 후 순조로부터 효자 기념의 정려비를 받았던 이한오가 노모를 이곳에 모셔 효도하던 곳이라 한다. 정자는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다락집이다. 일반적으로 방 앞쪽에 툇마루를 두는 경우 칸 사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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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86

    삼귀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삼귀정은 안동김씨 소산 입향조 김혁의 11대손 김영전이 지례 현감으로 있을 때 88세 노모인 예천권씨를 즐겁게 하려는 효심에서 그의 아우 김영추, 김영수와 함께 1495년(연산군 1)에 건립한 정자이다. 그간 몇 차례 중수한 것으로 보이나 1947년에 대대적으로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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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87

    청원루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청원루는 중종 때 평양서윤을 지낸 김번이 여생을 보내기 위해 건립한 건물이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의 굴욕적인 강화에 반대한 김상헌이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후 1643년(인조 21) 다시 수리하고 “청나라를 멀리 한다.”는 의미로 청원루라는 당호를 붙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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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88

    침류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침류정은 세종 때 병조판서와 청백리를 지낸 야소헌 이화의 정자이다. 풍산읍 하리의 일성당을 지나 산으로 올라가면 어필 영정각이 있고 그 뒤쪽 언덕 위에 정자가 있다. 원래 이 정자는 풍산 입향조인 이웅과 관련이 있었는데, 풍산읍 소산리 설못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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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89

    함벽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천등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함벽당은 명종 때의 무인인 절충장군 강희철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건립한 정자이다. 그 후 옥봉 권위의 소유가 되었다가 다시 이 마을에 터 잡고 살던 함벽당 유경시의 소유로 바뀌어 현재 전주유씨 치계파문의 관리 하에 있다. 건립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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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90

    동호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동호정은 동호 변영청이 안동시 법흥동의 낙동강가인 동호에 세운 정자이다. 원래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현재는 서후면 금계리로 옮겨져 있다. 변영청은 본관이 원주로 퇴계 이황의 문인이다. 임청각을 세운 이명의 손자사위로 강직한 성품과 선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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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91

    광풍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광풍정이 있는 금계리는 고려 초기 이래 삼태사의 한 사람인 장정필의 후예 안동장씨의 집성촌이다. 이 건물은 조선 후기의 유명한 성리학자요, 김성일과 류성룡의 문하에 나아가 학문을 닦아 영남 학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바 있는 경당 장흥효가 1630년에 이 위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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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92

    명옥대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명옥대는 1665년(현종 6)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사림에서 건립한 정자이다. 봉정사 오르는 길의 왼쪽 계곡 건너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계곡에는 여러 층으로 된 기암이 있는데, 그 높이가 두어 길이 된다. 그 맞은편 바위 표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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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93

    북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북정은 안동시 법흥동 탑동파종택에 딸린 정자이다. 종택 옆의 작은 개울가로 난 완만한 산길을 따라가면 정자가 보인다. 북정은 조선 후기의 인물인 진사 이종주의 호이자 정자 이름이며, 1775년(영조 51)에 지었다. 정자에 걸린 ‘북정기’ 등을 살펴볼 때 처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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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94

    군자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안동의 대종가인 임청각은 영남산 기슭의 비탈진 경사면을 이용하여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아 안채, 중채, 사랑채, 행랑채 등의 건물을 배치하여 채광효과를 높이고 있다. 임청각 경내 오른쪽에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군자정이 위치하며, 군자정의 바로 옆에는 네모난 연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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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95

    읍취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읍취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석문 정영방이 무이산 기슭에 지은 정자이다. 이 정자는 안동 8대 경승의 하나인 선어대를 바라보며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선생은 영양 수비에 살다가 안동 송천으로 돌아와 선어대 아래에 정자를 지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시를 짓고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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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96

    귀래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이 건물은 고성이씨 낙포 이굉선생이 1510년(중종 5)에 지은 정자이다. 1513년(중종 8) 벼슬에서 물러나 안동부성 건너편 낙동강이 합쳐지는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그곳이 도연명의 ‘귀거래사’와 같다하여 이름으로 삼았다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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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97

    반구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이 건물은 임청각을 지은 이명의 여섯 째 아들 반구옹 이굉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정자이다. 처음 세운 때는 1530년대 초기로 추정된다. 당시 안동 유림에서는 이 반구정에서 시회와 향회를 자주 열어 많은 선비가 출입하게 되었고, 유생들 가운데 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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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98

    김형도(金馨燾)가 보낸 간찰이다. 김형도는 문하생의 입장에서 스승에게 사변적이고 학문적인 질의를 하고 있다. 이치와 문에 대한 의문점을 다시 질문하는 형식이다. 이어 안부와 건강에 대한 염려의 마음을 담아 보냈다. 이어 스승의 가르침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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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99

    김구현(金九鉉)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이 간찰의 주 내용은 가족의 안부 묻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가족 및 집안의 길흉사 언급과 염려, 배려의 감사, 질병 등 어려움을 당한 이들에 대한 염려, 출타한 이들의 근황, 가르침에 대한 감사, 문중 현안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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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500

    김덕근(金德根)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이 간찰의 주 내용은 가족의 안부 묻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집안의 길흉사 언급과 염려, 배려의 감사, 질병 등 어려움을 당한 이들에 대한 염려, 자손들의 건강과 학업 염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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