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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임술년 6월에 사위 유동저가 기암에게 올린 제문(祭文) [18392]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류동저임술년 6월에 사위 류동저가 기암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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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신유년 7월에 유동저가 기암에게 올린 제문(祭文) [18393]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류동저신유년 7월에 류동저가 기암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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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임자년 10월에 계가소제 유기영이 향산에게 올린 제문(祭文) [18394] / 기록자료>고문서 / 계가소제 류기영임자년 10월에 계가소제 류기영이 향산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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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경술년 10월에 문하척종손 유중식이 모암에게 올린 제문(祭文) [18395] / 기록자료>고문서 / 문하척종손 류중식경술년 10월에 문하척종손 류중식이 모암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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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친구인 김용하가 소릉 이중업에게 올린 제문(祭文) [18396] / 기록자료>고문서 / 우 김용하모년에 친구인 김용하가 소릉 이중업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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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동흠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 [18397]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동흠모년에 동흠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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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 [1839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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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 [1839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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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 [1840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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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병술년 6월에 발급자미상이 벗인 성부에게 올린 제문(祭文) [18401] / 기록자료>고문서 / 우병술년 6월에 발급자미상이 벗인 성부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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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 [1840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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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표형 유진휘가 내종제 이영보에게 올린 제문(祭文) [18403] / 기록자료>고문서 / 표형 류진휘모년에 표형 류진휘가 내종제 이영보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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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신해년 11월에 이원건이 이종형 박공에게 올린 제문(祭文) [18404] / 기록자료>고문서 / 이종제 이원건신해년 11월에 이원건이 이종형 박공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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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 [1840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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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임자년 11월에 최정모가 향산에게 올린 제문(祭文) [18406]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참최인 최정모임자년 11월에 최정모가 향산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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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 [1840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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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최연모가 향산 이만도에게 올린 제문(祭文) [18408] / 기록자료>고문서 / 최연모모년에 최연모가 향산 이만도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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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원호가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 [18409]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원호모년에 원호가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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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기해년 1월에 발급자미상이 졸당종장에게 올린 제문(祭文) [1841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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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아버지가 아들 송길에게 올린 제문(祭文) [18411] / 기록자료>고문서 / 부모년에 아버지가 아들 송길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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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 [1841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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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척형 진가씨에게 올린 제문(祭文) [1841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척형 진가씨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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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사돈인 밀양허씨에게 올린 제문(祭文) [1841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사돈인 밀양허씨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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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천사선생에게 올린 제문(祭文) [1841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천사선생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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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증손 동흠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 [18416] / 기록자료>고문서 / 증손 동흠모년에 증손 동흠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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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기타(其他) 座目[1841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관료로 주소록과 시기는 나타나지 않은 중앙 관료의 주소록이다. 영의정(領議政)부터 영부사 판부사 전현(前現)이조 병조 판서 참판 참의 참지 정랑 좌랑의 성명과 서울의 동까지만 기록이 되어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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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집(詩集)[1841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시를 모은 시집이다. 시의 내용은 산수 흥취와 유학적인 교훈성 등이 담겨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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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천자(千字)[1841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아동 학습용 교재 형식의 천자문 학습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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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초재부군행록(行錄)[1842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서두에 몇 가지 사항이 정리되어 있다. 이하의 내용은 [초재부군행록]이다. 그의 이름은 이휘연이다. 그는 퇴계의 14세 손으로, 어진 성품과 방정한 태도로 선비 형상을 갖춘 인물이었음을 강조했다. 일반 인물 입전의 방식처럼 그의 덕행과 미담 및 탁월한 행적 등을 부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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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치진방(治疹方)[1842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전염병을 치료하기 위한 처방을 기록한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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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고록(通告錄)[1842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문중 현안과 문중 관련 사안을 기록하고 명단을 적은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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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병오년 윤월에 태학 이원상 등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8423] / 기록자료>고문서 / 태학동반수 이원상·서반수 한성렬(西班首韓聖烈)태학동반수(太學東班首) 이원상(李源商)·서반수(西班首) 한성렬(韓聖烈)이 관아에 통보한 문건이다. 손해익과 손최수 등이 이만도, 이병호, 이만규의 시와 발문을 두고, 망령되이 지은 것이라고 한 점에 대해 시정을 관아에 의뢰한 문건이다. 진성이씨 문중의 명예를 실추시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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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하계 이원장이 지례댁에 보낸 통문(通文)[18424] / 기록자료>고문서 / 하계 이원장모년에 하계 이원장이 지례댁에 보낸 통문(通文)이다. 안동댐 건설로 인해 수몰 예정의 토지 측량 결과에 대해 유림들의 거부 행사를 독려하는 글이다. 도산서원의 유래와 역사성 및 그 의의를 설명했다. 이어 국가적인 안동댐 건설로 인해, 유학의 본거지인 도산서원의 부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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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임신년 8월에 회연서당에서 도산서원장무처로 보낸 통문(通文)[18425] / 기록자료>고문서 / 회연서당회중회연서원에서 도산서원 사무처로 보낸 공문서이다. 병오연간에 회연서원에서 도산서원측에게 통보한 적이 있다는 문건이다. 내용은 하계의 승지 댁에서 벼슬 자리를 얻기 위해 고관대작의 인물에게 인사를 청탁한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원에서는 당회를 소집하여 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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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병오년 7월에 도산서원에서 동강서당회중에 보낸 통문(通文)[18426] / 기록자료>고문서 / 도산서원도산서원의 노비 자료 문건이다. 그런데 이 자료는 패악하고 인륜을 저버리는 부류에 대한 기록의 문건이라고 했다. 이들은 윤리와 기강을 무너뜨리는 장본인이라고 소개하면서, 실례를 들고 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하였다. 이런 기록의 문건도 소개하면서, 이들의비행과 악행에 대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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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병오년 8월에 송인헌 등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8427] / 기록자료>고문서 / 호서유생 송인헌 등 18인통문이다. 호서(湖西)의 유생 송인헌, 송병돈, 송수헌, 김직수, 김진수, 김영관, 이철수, 송병승, 송흠구, 송강헌, 송재성, 송유헌, 김영욱, 김영억, 송재용, 송병오 등이 연서하여 보낸 글이다. 서두에서 통문의 의의와 유래를 언급하였다. 공자가 노자에게 예를 묻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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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병술년 2월에 태학장의 김○ 등이 도산에 보낸 통문(通文)[18428] / 기록자료>고문서 / 태학장의 김○, 유사 조○통문(通文)으로 병술(丙戌) 이월 일에 도산서원(陶山書院)에서 발송한 통문이다. 광산김씨 후조당(後彫堂) 시호와 토계선생시호에 대한 안건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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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842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통문으로 도회(道會)에 답장으로 보낸 통문이며 200년이 된 제향문제(祭享問題)에 대해 이론이 있어서 내 글이지만 누구라고 분명히 밝힌 이름은 없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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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843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통문의 답서로 옥산서원(玉山書院)의 통문과 도산서원의 통문을 주고받으면서 임천서원(臨川書院)의 답통이 있은 것에 내용을 기록했으나 어느 쪽에서 어디로 보낸 것인지 나타나지 않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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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843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통고문으로 무인년에 주계(周溪)의 근거 없는 낭설과 선대왕 말씀의 전파와 이씨 전체의 놀랐다는 말이 수록 되었으나 분명한 내용은 알 수 없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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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기타(其他) 稟目[1843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품목(稟目)으로 지방의 백성이 원님에 올린 글이다. 민정을 먼저 살피시고 한 고을 백성들의 생사에 관계되는 조건을 진언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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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학도(學圖)[1843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학습 내용을 도표로 정리한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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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항춘대설첩(巷春臺稧帖)[1843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항춘대를 중심으로 구성한 계 모임 형태와 규칙 등을 기록한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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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3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송서선생행록발]이다. 친족 숙부 송서의 행적을 기록한 문건에 대한 발문이다. 그는 25세에 벼슬 길에 올라서 62세까지를 산 인물로서, 효행이 뛰어나며, 덕행 및 문장에도 일가견을 이룬 인물임을 강조했다. 그는 타고난 품성이 단아하고, 학문과 덕행이 빼어났음을 강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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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이윤덕이 지은 송사 송공의 묘갈명 병서[18436] / 기록자료>고문서 / 이윤덕[송사송공묘갈명병서]이다. 송사 송공의 사망후 37년이 경과된 뒤에, 후손들이 그의 유사를 이윤덕에게 가져 와서 묘갈명을 의뢰하여, 작성된 문건이다. 그는 자가 붕거이며, 본명은 해익이다. 그는 자질이 비범하여, 어려서부터 면학하여 문예가 조숙했다. 그리고 효성이 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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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3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행장(行狀)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청송 심공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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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이영호의 행적을 기록한 구성헌사실(九成軒事實)[18438] / 기록자료>고문서 / 이만도[구성헌사실(九成軒事實)]이다. 박영호의 행적을 기록한 문건이다. 그는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였는데, 벼슬 길에는 나서지 않고 산수 자연에서 소요음영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구성헌을 짓고, 독서하고 소일하며 후학을 가르치는 등의 활동을 했음을 기술했다. 그의 산출처 : 유교넷 -
226298
진성이씨 향산고택 정준량의 사적이 문헌에 나타나는 것을 부분적으로 발췌한 기록[18439] / 기록자료>고문서 / 이광정여러 문건의 기록이 일정한 체제가 없이 정리된 문건이다. 정준량이라는 분의 사적이 여러 문헌에 나타나는 것을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기록한 것이다. 포은집과 퇴계집, 금계 황준량의 자양서당 기문, 퇴계 문인록, 영천군지의 인물조 등에서 용례를 찾아 정리했다. 관련 문건출처 : 유교넷 -
226299
진성이씨 향산고택 계사년 정월에 만규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40] / 기록자료>고문서 / 만규[우산김공유사(右山金公遺事)]이다. 전영락의 행적을 기록한 문건이다. 전만규가 지은 것이다. 서두에서 그의 선대 가계를 정리했다. 선대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기술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품이 빼어나서 일반 아이들과 구분되었고, 재주가 영민했음을 강조했다. 학문이 조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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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번남 박씨 래길(來吉)의 행적을 기록한 묘갈명[1844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번남 박씨 래길(來吉)의 행적을 기록한 묘갈명이다. 극히 간단하면서, 약식으로 정리한 묘갈명이다. 서두에서 그의 선대 가계를 정리했다. 관력 등을 중심으로 약식 기록을 지향했다. 이어 그는 어려서부터 고결한 품성과 방정한 태도를지녀, 중망을 받았으며, 서당을 건립하여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