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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4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시랑공사적(侍郞公事蹟)]이다. 매우 간략히 정리한 문건이다. 그는 고려 때 벼슬을 한 인물로서, 묘소도 불분명하다가, 문헌의 고증을 통해 추적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간략하게 그의 벼슬과 내력을 기술했다고 밝혔다. 그는 부인과 함께 합장되어 있다고 했다. 이하의 내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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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이한걸이 만우 박정형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18443] / 기록자료>고문서 / 이한걸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행장(行狀)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이한걸(李漢杰)이 만우(晩愚) 박정형(朴廷瀅)의 행적을 기록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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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만우 박정형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1844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행장(行狀)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만우(晩愚) 박정형(朴廷瀅)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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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권상규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1844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행장(行狀)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권상규(權相奎)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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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권상규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1844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행장(行狀)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권상규(權相奎)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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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만회정 송세빈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1844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행장(行狀)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만회정(晩悔亭) 송세빈(宋世彬)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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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성균생원 배공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1844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묘지명(墓誌銘)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성균관 생원 배공의 행적을 기록한 묘지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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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권재륜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1844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사(遺事)이다. 유사란 일개인의 약력을 기술한 글의 형태다. 주인공의 호는 소헌공(疎軒公)이며 자손이 기술한 내용이다. 성 안동권씨(安東權氏) 휘 재륜(載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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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가은 이공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1845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행장(行狀)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가은 이공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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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기유년 1월에 이만도가 박종범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18451] / 기록자료>고문서 / 이만도[통정대부행돈령부사정박공행장(通政大夫行敦寧府都正朴公行狀)]이다. 향산이 지은 문건이다. 번남 박씨 종범의 행적을 기록한 묘갈명이다. 비교적 체계를 갖춘 묘갈명이다. 서두에서 그의 선대 가계를 정리했다. 선대의 관력과 행적을 비교적 자세히 기록하려고 했던 점을 파악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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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이만도가 송서부군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18452] / 기록자료>고문서 / 이만도[왕고송서부군유사(王考松西府君遺事)]이다. 향산이 지은 문건이다. 체계를 갖춘 유사이다. 그는 봉화의 법전에서 출생했으며, 어질고 고결한 선비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후인들에게 걱스러운 감화를 끼친 점을 부각했다. 특히, 그의 정신과 의리를 추구하는 마음은 선조 퇴계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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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이만도가 응와하공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18453] / 기록자료>고문서 / 이만도[응와하공행장(凝窩河公行狀)]이다. 진주 강응명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이다. 향산이 지은 문건이다. 단형 서사체의 행장이다. 서두에 그의 선대 가계를 기술했다. 관력과 생평 및 이력을 중심으로 하여 간략히 기술했다. 강응명의 행적 가운데 주목되는 점은 유학자로서의 면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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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응와하공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1845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실기(實紀)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응와 하공의 행적을 기록한 실기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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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5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묘갈명(墓碣銘)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통훈대부 행 장락원주부 강탄 이공의 행적을 기록한 묘갈명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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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5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묘갈명(墓碣銘)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양만춘의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작성한 묘갈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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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5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묘갈명(墓碣銘)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오서 안공의 행적을 기록한 묘갈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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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5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열녀유인김씨묘갈명병서(烈女儒人金氏墓碣銘竝書)]이다. 월성 김씨 부인의 절개와 열을 기리는 묘갈명병서이다. 그녀는 울산 태생으로, 이중순에게 시집을 갔다. 타고난 성품이 곱고 어질어 매사에 어진 부덕을 실천하여, 귀감이 되었다. 남편이 학질에 걸려 생명이 위중해지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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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이가순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59] / 기록자료>고문서 / 이가순묘비문(墓碑文)으로 자헌대부 행례조판서 지족당 남공비문(資憲大夫行禮曹判書止足堂南公墓碑文)이다. 통훈대부(通訓大夫) 진성(眞城) 이가순(李家純)이 찬(撰)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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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기록한 만우박공의 묘갈명(墓碣銘)[1846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만우박공묘갈명병서(晩愚朴公墓碣銘幷書)]이다. 박공의 생평과 특징적인 국면을 부각하면서, 입전 형식을 취한 묘갈명이다. 일반 묘갈명의 형식과 유사하다. 전반부의 유년 시절에는 효성이 뛰어나고, 학문적 성취가 조숙했음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예법에 밝아, 해박한 예법출처 : 유교넷 -
226320
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정씨 부인의 행적을 추모한 행장(行狀)[1846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정씨 부인의 행적을 추모하며, 덕행을 기리는 갈문이다. 부인은 울진 이씨의 아내로서, 어질고 곧은 성품으로 덕행이 뛰어났다. 그리고 이런 성품을 바탕으로 하여 현모양처로서, 갑오년에 적도가 침입했을 때, 피난하지 않고 의연하게 사리를 들어 그들을 훈계하여 결국 그들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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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6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인의이공묘갈명병서]이다. 이석의 묘지명이다. 서두에서 그의 선대 가계를 정리했다. 그는 임진왜란 때에 의거를 일으키고, 그 대열에서 왜적을 맞아 다 방면으로 그들을 제압하는데 주력했으며, 상관을 도와 왜적 퇴치와 민심 안정에 기여한 바가 많다고 했다. 그의 유년 시출처 : 유교넷 -
226322
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우경의 행적을 기록한 묘갈명[1846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묘갈명(墓碣銘)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우경의 행적을 기록한 묘갈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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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6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송사송공묘갈명병서]이다. 송해익의 행적을 추모하며, 학덕을 기리는 묘갈명 병서이다. 서두에 선대의 가계에 대해 상세히 기술했다. 그의 비범하고 순수한 자질을 바탕으로 한 인품과 학문 등을 강조한 문건이다. 그의 효행 및 학문의 출중함 등을 부각햇다. 그리고 그의 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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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6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선무공신수문장이공묘지명]이다. 이희정의 묘지명이다. 서두에서 그의 선대 가계를 정리했다. 그는 진성 이씨 가문에서 생장하면서, 가문의 여열을 이어 받았다고 강조했다. 대체로 간략한 서술이다. 관련 자료의 빈약으로 그의 생평을 간략하게 기술했다. 그는 가학 연원을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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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6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통정대부홍문관응교하계이공묘갈명]이다. 병서의 내용이다. 진성 이가순의 행적을 기록한 묘갈명이다. 향산이 지은 문건이다. 단형 서사체의 묘갈명이다. 서두에 그의 선대 가계를 상세하게 기술했다. 선대의 관력과 이력을 간략히 기술했다. 이가순의 행적 가운데 주목되는 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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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6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묘갈명(墓碣銘)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진사 이공의 행적을 기록한 묘갈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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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이만규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68] / 기록자료>고문서 / 이만규[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이공묘지명병서]이다. 이춘경의 행적을 기술한 묘지명이다. 이만규가 지은 문건이다. 단형 서사체의 묘 갈명이다. 서두에 그의 선대 가계를 간략히 정리하면서, 가문 유풍을 강조했다. 선대의 관력과 이력을 중심으로 기술했다. 그의 행적 가운데 주목되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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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6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함의재최공묘갈명병서]이다. 퇴계의 시를 읽는 가운데, 함의재에 관한 기록을 보고, 그의 행적을 추모하며 기록한 묘갈명이다. 그의 어질고 고결한 행적이 민멸되어 후세에 전해지지 못하는 점을 애석하게 여겨 기록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찍이 문에가 숙성했고, 재주가 영민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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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이중업이 침랑 정순모의 행적을 기술한 묘갈명[18470] / 기록자료>고문서 / 이중업[구계정공묘갈명병서]이다. 침랑 정순모의 행적을 기술한 묘갈명이다. 이중업이 지은 문건이다. 단형 서사체의 묘갈명으로, 서두에 그의 선대 가계를 정리했다. 그리고 가문 전통과 그 유풍을 강조했다. 선대의 관력과 이력을 중심으로 기술했다. 그의 행적 가운데 주목되는 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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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7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행장(行狀)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출처 : 유교넷 -
226331
진성이씨 향산고택 갑인년 7월에 이중업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72] / 기록자료>고문서 / 이중업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묘갈명(墓碣銘)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진사 이고의 행적을 기록한 묘갈명이다.출처 : 유교넷 -
226332
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7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평장처사 권태직의 묘갈명이다. 그는 일찍이 향산의 문하에서 의리와 도덕 및 학문을 익혔다고 기록했다. 곧고 정직한 덕행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전통 유학을 배우는 한편 서양 신식 학문을 섭렵했다고 강조했다. 정자를 수축하고, 동지들과 함께 날마다 학문을 강론하고 도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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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계묘년 8월에 이동흠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74] / 기록자료>고문서 / 이동흠묘비문(墓碑文)으로 주인공은 안동권씨 호(號)평재(平齋)며 학문과 풍행이 독실한 처사로 저술이 되어있다. 계묘 팔월 일에 진성이동흠(眞城李東欽)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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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7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묘비명으로 좌부승지 능성구씨 명곡공(左副承旨陵城具氏明谷公)의 갈명이며 청직(청직)을 역임한 업적을 남긴 관료며 찬(撰)을 한 문중)(文主)의 이름은 없다. 02=는 별도의 문건이며 정자를 세우려고 취지문을 적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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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7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죽림권부정묘갈명]이다. 사육신 사건과 함께 순국한 권공의 행적을 기술한 묘갈명이다. 단형 서사체의 묘갈명으로, 서두에 당시 정황과 순국 배경을 상세히 정리했다. 그의 행적이 역사 속에 민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묘갈명을 짓게 된 배경을 강조한 것이다. 그의 죽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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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7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묘갈명(墓碣銘)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학파 이공의 행적을 기록한 묘갈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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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7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중업이 지은 죽초 배치규의 묘지명이다. 일반 묘지명과 크게 다른 바는 없다. 그는 8세에 이미 소학과 역사서를 섭렵했다. 이어 그의 효성이 지극했던 점과 학문 수학이 조숙했던 점을 부각했다. 상주로서, 예에 따라 상례를 시행하며, 도리를 실천했다고 강조했다. 치가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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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7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행장(行狀)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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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향산의 가전(家傳) 초고문[1848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향산의 가전 초고문이다. 향산의 가전을 작성하기 위한 초보적인 작업의 글로서, 이 문건에 기초하여 보충하거나 뺄 것은 빼고 나서 소기한 전기문 형식의 글을 완성하는 것이다. 향산 선대의 가계 정리 및 향산의 유년기 일화에서부터 성장 과정에서 인품이 올바르고 고결했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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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이석정이 지은 기암처사 이공의 제문[18481]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학성 이석정이석정이 기암처사 이공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 형식의 글이다. 이공이 병을 이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점을 애석해 하였다. 이어 그가 향산의 가문에서 태어나 향산의 의리 정신과 그 선대 조상 퇴계의 유풍을 계승했던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의 유림 활동과 사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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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김석림이 이중업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뇌문[18482]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김석림김석림이 이중업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뇌문이다. 이중업의 가학 연원을 추억하면서, 퇴계와 향산의 의리 정신을 계승했던 점을 강조했다. 이어 서산 김흥락의 문하에서 종유하며, 유학의 진수를 익혔으며, 군자다운 기상을 체득했다고 추모했다. 망자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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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이만효(李晩孝)에서 이만규(李晩煃)로 개명을 고하는 고유문[18483] / 기록자료>고문서 / 만규고유문으로 기묘 유월 계묘일에 이만효(李晩孝)를 이만규(李晩煃)로 개명을 하여 사당에 고한 간지와 관공서의 임직원(任職員)명단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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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갈암의 묘도비문을 세우고 진행 과정과 추모의 정을 표현한 글[1848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갈암선생묘도입후시고사]이다. 갈암의 묘도비문을 세우고, 진행 과정과 추모의 정을 표현한 글이다. 후지의 성격이 강한 글이다. 갈암의 평생 추구하던 일을 추모하면서, 그의 정신 지향과 성리학적인 삶의 추구 자세 등에 대해 회고의 정을 표현한 글이다. 유교적 철학 이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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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김노수가 향산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뇌사[18485] / 기록자료>고문서 / 정계 김노수문소 김노수가 향산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뇌사이다. 일반 제문의 형식처럼 향산의 생전 업적을 추모하고, 그의 의기 실현의 위대성을 천양했다. 그리고 향산의 죽음 이후가 후손 및 후인들에게 주는 의미를 선명하게 제시했다. 향산은 진성 이씨 가문의 여열을 이어 받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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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죽오 이근오의 행장(行狀)[1848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죽오 이근오의 행적을 기리며 지은 행장 형식의 글이다. 특히, 그의 조정 정계 활동 가운데 경연 등에서 주상에게 건의한 성리학적 정치 편력을 강조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무리에서 빼어나 중망을 받았다. 그리고 재주가 빼어났기 때문에 문예도 조숙하여 급제 이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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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최우모에게 보낸 행장(行狀)[1848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두 편의 글이 한 건의 문건으로 처리된 경우이다. 앞 부분의 글은 제강거사 완산 최공의 산수 음영하는 낭만 정조의 모습과 호방한 자세 등을 기초로 하여 작성한 글이다. 그는 산수 자연을 벗 삼아 즐기며, 고매한 인품과 개성을 발휘한 일사의 전혀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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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권연하가 임재 이공에게 보낸 행장(行狀)[18488] / 기록자료>고문서 / 권연하묘비명으로 안동권공(安東權公)이제(頤齋)의 갈명이며 문주(文主)의 이름은 없다. 봉화유곡(奉化酉谷)분이며 학덕이 겸비한 학자로 저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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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이원식 등이 한준목에게 보낸 행장(行狀)[18489] / 기록자료>고문서 / 이원식 등이원식, 이후성이 보낸 간찰이다. 서로 떨어져 살기 때문에 그리운 정이 매우 간절하다고 표현했다. 서신을 받아 들고, 매우 기뻤다고 술회했다. 이어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이어 자기의 근황과 가족의 안부 등에 대해 상세히 아뢰었다. 그리고 자기 선대 조상의 묘갈명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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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능기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90]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능기행장류의 문건으로 제목 부분이 훼손이 되어서 글의 명칭을 알 수 없으나 행장(行狀)이나 유사(遺事)류의 내용이다. 순묘(純廟)연간 정묘 십일월 이십일일 경주읍 안강현 석정리(安康邑 石亭里)에 태어난 분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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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향산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849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만의 행적과 생평을 기록한 문건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품행이 돋보여서 칭송을 받았다. 기묘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그리고 을미사변 이후에는 두문불출하고, 강직한 의리를 고수했다. 이어 일제의 만행과 침략적인 야욕 근성에 항거하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