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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累然如人之旅行於墻外而見其䯻)[1369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많은 사람들이 담장 밖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그들의 상투를 보고(疊疊然如人之旅行於墻外而見其䯻)」라는 제목으로 지은 시로 특이한 소재이다. 시의 내용에서 '산이 상투가 되고 상투가 산이 된다(山爲䯻䯻爲山)'라는 표현이 재미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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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至魯城下猶聞絃誦之聲)[1369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노성(魯城)의 아래에 와서도 오히려 현송(絃誦)의 소리를 듣다(至魯城下猶聞絃誦之聲)」라는 제목의 시로 노성(魯城)은 지금의 충남(忠南) 논산군(論山郡) 노성면(魯城面)을 가리키는데 이곳에 와 보니 태평세월이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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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醉翁亭夕陽…)[1369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취옹정(醉翁亭)의 석양(夕陽)에서 놀던 사람은 떠나고 짐승들만 즐겁게 노는 것을 탄식하며(醉翁亭夕陽歎遊人去卽禽獸樂)」라는 제목의 시이다. 취옹(醉翁)은 중국 송(宋) 나라 문장가인 구양수(歐陽脩)의 별호(別號)로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취옹정기(醉翁亭記)」 등을 특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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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山深四月始聞鶯)[1369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산속이라 4월에야 앵무새소리를 듣다(山深四月始聞鶯)」라는 제목의 시로 중국(中國)의 육방옹(陸放翁)에 관해 소재(素材)를 삼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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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顧笑秦舞陽)[1369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진(秦)나라 무양(舞陽)의 빛이 변한 것을 돌아보고 웃으며(顧笑秦舞陽色變)」라는 제목의 시이다. 무양은 번쾌(樊噲)의 이름으로 무양후(舞陽侯)를 지냈다. 진(秦)이 망한 후 유방(劉邦)이 천하를 통일할 때 큰 공을 많이 세웠던 인물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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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携幼入室有酒盈罇)[1369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어린아이 데리고 방에 드니 동이 가득 술이 있네(携幼入室有酒盈罇)」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었다. 사실 이 제목은 도연명(陶淵明 )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휴유입실(携幼入室) 유주영준(有酒盈樽) 인호상이자작(引壺觴以自酌)’의 내용을 따와 지은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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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摠爲從作詩)[1369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모든 것이 과거가 되어 시를 짓다(摠爲從前作詩)」라는 제목의 고풍(古風) 시이다. 중국(中國)의 지명과 고사(故事)를 주로 이용하여 시)를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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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岳王墓弔英雄未心死詩)[1369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악왕묘(岳王墓)에서 영웅(英雄)을 조문하면서 마음으로 죽지 않았다 여기는 시(岳王墓弔英雄未心死詩)」라는 제목의 시이다. 악왕(岳王)은 중국 송나라의 충신(忠臣)이면서 명장(名將)인 악비(岳飛)를 가리킨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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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期見火)[1370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봉화(烽火) 보기를 기약하는 시(期見火)」라는 제목으로 전쟁의 비장함이 잘 드러나 있다. 시대는 나와 있지 않지만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의 일을 시로 읊은 것이 아닌가 싶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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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百有餘年漢有賈生)[1370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백 여 년 뒤에 한(漢)나라의 가생(賈生)이 있다[百有餘年漢有賈生]」라는 제목의 시로 중국(中國)의 다양한 고사(故事)를 들어서 충신(忠臣)을 기린 시이다. 가생(賈生)은 중국 한(漢)나라 문제(文帝) 때의 충신인 가의(賈誼)를 말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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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醉翁亭기문(記文)中之畵)[1370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취옹정기(醉翁亭記)의 문장 가운데 그림[醉翁亭記文中之畵]」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취옹(醉翁)은 중국 송(宋)나라 문장가인 구양수(歐陽脩)의 별호(別號)로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취옹정기(醉翁亭記)」에 관한 글이 많다. 그리고 '문장 가운데 그림[文中之畵]'은 중국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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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使人可其秦)[1370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사람을 시켜 아뢰게 하다[使人可其奏]」라는 제목의 시로 신하로서 임금에 대한 충성(忠誠)을 읊은 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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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夜坐聽秋風)[1370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밤에 앉아서 가을 바람소리를 듣다[夜坐聽秋風]」라는 제목의 시로 타향(他鄕)에서의 쓸쓸한 자신의 심정을 읊은 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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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擧手視公子)[1370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손을 들어 공자(公子)에게 보여주다[擧手視公子]」라는 제목의 시로 중국의 다양한 역사적인 사실을 든 시이다. 사실 이 제목은 『사기(史記)』 「위공자열전(魏公子列傳)」에 나오는 말을 제목으로 따온 것으로 여기서의 공자(公子)는 위공자(魏公子)를 말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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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爲此春酒以介眉壽)[1370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춘주(春酒)를 만들어 장수를 빌도다[爲此春酒以介眉壽]」라는 제목의 장수(長壽)를 비는 시이다. 여기에 제목으로 삼고 있는 「위차춘주이개미수(爲此春酒以介眉壽)」는 『시경(詩經)』 「빈풍(豳風) 칠월(七月)」에 나오는 구절인 '팔월박조(八月剝棗) 시월확도(十月穫稻) 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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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見瀑布下淙處有一柱向日而立)[1370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폭포 아래쪽 물 흐르는 곳 기둥 하나 해를 향해 섰네[見瀑布下淙處有一柱向日而立]」라는 제목의 시로 제목에서 잘 나타나 있듯 폭포와 폭포의 아래 서 있는 큰 기둥의 모습을 표현한 기행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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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飯顆山前逢杜甫問因何太瘦)[1370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반과산(飯顆山)앞에서 두보(杜甫)를 만나 어찌 그리 수척했는지 묻다[飯顆山前逢杜甫問因何太瘦]」라는 제목의 시로 이백(李白)이 반과산에서 두보를 만나 희롱삼아 지은 시의 '반과산전봉두보(飯顆山前逢杜甫) 두대립자일정오(頭戴笠子日亭午) 차문위하태수생(借問爲何太瘦生) 위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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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面首至馬當道見一노叟)[1370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머리를 돌려 말을 타고 이르니 어떤 노인 의연히 낚시돌 위에 앉았네[回首至馬當見一老叟依然坐磯上]」라는 제목의 시로 신비(神秘)한 노인을 만나고 지은 시이다. 마치 주문왕(朱文王)이 강태공(姜太公)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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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爲漢則漢勝與楚則楚勝)[1371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한(漢)나라를 편들면 한나라가 이기고 초(楚)나라를 편들면 초나라가 이긴다[爲漢則漢勝與楚則楚勝]」라는 제목의 시로 중국 『사기(史記)』 「회음후전(淮陰侯傳)」에 나오는 구절로 한고조(漢高祖) 때 변사(辯士)인 괴철(蒯徹)이 한신(韓信)에게 한 말을 따와 지은 시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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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夜理裝)[1371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한 밤중에 짐을 꾸리며[夜理裝]」라는 제목의 시로 다음 날 서관(西關)으로 가는 짐을 꾸리며 심정을 적은 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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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定惠院見海棠花歎好事移西蜀)[1371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정혜운에서 해당화를 보고 좋은 일로 서촉으로 옮기는 것을 탄식하다[定惠院見海棠花歎好事移西蜀]」라는 제목의 시로 송(宋) 나라 소동파(蘇東坡)가 황주(黃州)로 귀양가서 정혜원(定惠院)이란 절에 있을 때 절 동쪽에 해당화 한 그루가 있는데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는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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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四時之景不同而樂亦無窮)[1371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사시(四時)의 경치가 같지 않고 즐거움 또한 끝이 없네[四時之景不同而樂亦無窮]」라는 제목의 시로 이는 중국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의 「취옹정기(醉翁亭記)」에서 따온 구절로 시를 지은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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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天下詩名又在杜家)[1371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천하의 시의 명성이 또 두보(杜甫)의 집안에 있다[天下詩名又在杜家]」라는 제목의 시로 이 말은 「죽파시화(竹坡詩話)」에 나오는 구절로 소릉(少陵)의 아들 종무(宗武)가 완병조(阮兵曹)에게 시를 보여주자 완병조(阮兵曹)가 한 말을 따와서 지은 시(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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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環(水+除)皆山)[1371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주위 물가가 모두 산이네[環滁皆山]」라는 제목의 시로 중국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의 「취옹정기(醉翁亭記)」에서 따온 구절로 시를 지은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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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責漂麥)[1371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보리 떠내려 보낸 것을 책망하며[責漂麥]」라는 제목의 시로 『후한서(後漢書)』 권113에 한(漢) 나라 때 사람 문통(文通)이, ‘한 번은 아내가 밭에 가면서 보리를 마당에 널어놓고, 그에게 닭을 보라고 부탁하였는데, 마침 비가 와서 보리 멍석이 떠내려갔으나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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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二世三世至于萬世)[1371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2세, 3세를 지나 만세(萬世)까지[二世三世至于萬世]」라는 제목의 시로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나오는 말로 진시황(秦始皇)이 자신의 후손이 2세, 3세를 거쳐 만세에 이를 것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따온 제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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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至今傳者武陵人)[1371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지금까지 전해 오는 것은 무릉 사람이다[至今傳者武陵人]」라는 제목의 시이다. 도원은 진(晉) 나라 때 도잠(陶潛)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에 관한 내용으로 그에 의하면 어부가 뜻밖에 가게 된 별경(別境), 즉 도화원에는 옛날 진(秦)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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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太牢祠孔子)[1371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태뢰(太牢; 나라에서 제사를 지낼 때에, 제물로 소를 통째로 바치던 일, 원래는 소, 양, 돼지를 모두 바치는 것이었으나, 뒤에는 소만 바쳤다)로 공자(孔子)께 제사지내다[太牢祠孔子]」라는 제목의 시로 제목은 『한서(漢書)』에 '한 무제 태뢰로 공자를 제사지내[파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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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泰山不讓故能[1372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시의 제목으로 삼고 있는 구절(泰山不讓土壤故能成其大河海不擇細流故能就其深: 태산(泰山)은 흙을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그 큼을 이룰 수 있었고 하해(河海)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기 때문에 그 깊음을 이룰 수 있었다)은 진(秦)나라의 재상인 이사(李斯)가 올린 자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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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此四君者皆以容之功)[1372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네 임금은 모두 객의 공입니다[此四君者皆以客之功]」라는 제목의 시로 이는 『사기(史記)』 「이사열전(李斯列傳)」에서 따온 구절로 다른 나라의 인재 등용을 중시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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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八月仙)[1372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시의 제목으로 삼고 있는 「팔월선(八月仙)」은 두보(杜甫)의 시이나 「박물지(博物誌)」에 '옛말에 은하수가 바다와 통해 있다고 하였다. 근래에 바닷가에 사는 어떤 사람이 매년 8월이면 뗏목을 타고 떠서 오가는데, 시기를 놓치지 않았다'는 데서 그 소재를 삼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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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望美人芳天一方)[1372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하늘 한쪽 가에서 미인을 바라보노라[望美人兮天一方]」라는 제목의 시이다. 사실 중국(中國)의 소식(蘇軾)이 이른바 '아득한 나의 회포여, 미인(임금)을 하늘 저 끝에 바라보도다[渺渺兮余懷 望美人兮天一方]'라는 구절에서 따와 그 모티브를 삼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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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不如三伏日高睡足北窓凉)[1372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소식(蘇軾)의 시에 '새벽 조회 시간 기다리느라 신발에 서리가 가득한 벼슬살이보다는, 한여름 해가 높이 솟도록 늦잠을 자며 북창의 시원한 바람을 즐기는 것이 훨씬 낫지 않으랴.[五更待漏靴滿霜 不如三伏日高睡足北窓]라는 표현이 있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박박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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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未知明年又在河變)[1372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내년에는 또 어디에 있을는지[未知明年又在何處]」라는 제목의 시는 송나라 범중엄(范仲淹)이 지은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동정호(洞庭湖)에 비가 부슬부슬 오는 컴컴한 저문 날에 범이 휘파람 불고 원숭이가 울 제, 귀양 온 불우(不遇)한 신하가 임금을 생각하는 슬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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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先視其人次論其價)[1372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먼저 그 사람을 본 뒤에 그 사람의 값어치를 논하라[先視其人次論其價]」라는 제목의 시로 중국(中國)의 장량(張良)의 고사(故事)를 따와 지은 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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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揖問赤壁遊)[1372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절하고 적벽(赤壁)의 놀이를 묻다[揖問赤壁遊]」라는 제목의 시로 중국의 송(宋) 나라 때 문장가 소식(蘇軾)이 적벽에서 노닌 고사(故事)를 따와서 지은 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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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太史秦日下五色雲)[1372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속자치통감(續資治通鑑)』에 나오는 구절인 '태사주일하오색운견(太史奏日下五色雲見) 좌우개하(左右皆賀)'를 제목으로 따와 지은 시로 「태사(太史)가 (왕께) 태양 아래 오색구름이 있음을 아뢰다[太史奏日下五色雲]」라는 것으로 제목을 삼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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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跋文:賀淵先生文集跋)[1372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하연선생문집발(賀淵先生文集跋)」로 김황(金榥:1896∼1978)이 쓴 글이다. 김황의 본관(本貫)은 의성이고, 호(號)는 중재(重齋)로 우옹(宇顒)의 아들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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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기연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謹次先祖義興公改碣時韻)[13730] / 기록자료>고문서 / 기연의흥공(義興公)의 묘갈(墓碣)을 개수(改竪)하면서 지은 시와 서문(序文)으로 기연(起淵)이 지었다. 내용은 개수(改竪)하기 전에는 의흥공(義興公)의 외고손(外高孫)인 퇴계(退溪) 선생이 묘갈문을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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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기연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伏次義興公墓道改碣時韻)[13731] / 기록자료>고문서 / 기연선조(先祖)인 의흥공(義興公)의 묘도(墓道)에 묘갈(墓碣)을 개수(改竪)할 때 지은 시를 15대 손인 기연(起淵)이 차운하여 지은 시인데, 농암(聾巖)으로부터 400년이 지났음을 알 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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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김상호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謹次義興公改碣原韻)[13732] / 기록자료>고문서 / 김상호선조(先祖)인 의흥공(義興公)의 묘도(墓道)에 묘갈(墓碣)을 개수(改竪)할 때 지은 시(詩)를 영양(英陽)의 김상호(金相鎬)가 차운(次韻)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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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이용구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序文:淸風子朴先生逸稿序)[13733] / 기록자료>고문서 / 후학 이용구청풍자박선생(淸風子朴先生) 일고(逸稿)의 서문(序文)으로 사손(嗣孫)인 박기락(朴基駱)이 유고(遺稿)를 수집하고 비갈(碑碣)의 내용 등을 모아 1책을 만들었음을 밝히고 있다. 서문은 후손(後孫)인 영양(永陽)의 이용구(李龍九)가 적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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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수(遯叟) 김공(金公)의 신도비각기(神道碑閣記)로 글은 후손(後孫)인 영양(永陽)의 이용구(李龍九)가 적었고, 구체적인 내용은 사손(嗣孫)인 재현(宰顯)이 척연히 여겨 문중(門中) 사람들과 의논하여 묘 아래에 비각을 세웠음을 말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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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기미년 4월에 이용구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跋文:七圃朴公文集跋)[13735] / 기록자료>고문서 / 이용구제목은 없지만 문집(文集)의 서문으로 칠포박공(七圃朴公)이 죽고 난 뒤 110년이 지나 유문(遺文) 등 남긴 글을 모아 수정하여 세상에 간행함을 알리고 있다. 글 서문은 후손(後孫)인 영양(永陽)의 이용구(李龍九)가 적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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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후인 조육용 등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13736] / 기록자료>고문서 / 후인 조육용 등시의 제목은 없지만 비갈(碑碣)을 개수(改竪)하면서 지은 시로 원시(原詩)에 차운(次韻)하여 한양(漢陽)의 후손(後孫) 조육용(趙堉容)이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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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계가소자 이용구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跋文)[13737] / 기록자료>고문서 / 계가소자 이용구제목은 없지만 남고(楠皐) 권선생(權先生)이 죽은 지 오래되어 이학재(李學宰)와 유건기(柳建基)가 선생이 남긴 유고(遺稿)를 모아 세상에 펴냈음을 알 수 있다. 서문(序文)은 영양(永陽)의 이용구(李龍九)가 적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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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1373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제목과 지은이가 모두 기록이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자연의 경치와 한적한 생활들을 잘 기록하여 지은 5언 고시(古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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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이수동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次松湖亭韻)[13739] / 기록자료>고문서 / 이수동이수동(李秀東)이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에 기해년(己亥年)에 분천(汾川)을 지나다가 애일당(愛日堂)의 현판을 보고 그 지은 뜻을 물어보고 싶었다는 내용과 송호정(松湖亭)에 갔다가 차운(次韻)하여 지은 시를 편지와 함께 보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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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追次壽筵韻 等)[1374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문학적인 감흥과 서정성을 결부시켜 지은 시문(詩文)인데 추차수정운(追次壽筵韻)이라는 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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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문(詩文)(詩:贈別李聾巖賢輔二首)[1374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농암(李聾巖)과 헤어지며」라는 제목으로 지은 두 수(首)의 시이다. 시 뒤에 따로 설명을 붙여 이 시들은 『곤암집(困庵集)』에서 나온 것으로 따로 5, 6수가 더 있음을 밝히고 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