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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병인년 10월에 영천성통문중에서 이용구에게 보낸 통문(通文)[13842] / 기록자료>고문서 / 영천성통문중통문이다. 영천 성동(城洞) 문중 임시회의소에서 영천 이씨 종가에 보낸 글이다. 영천 이씨 문중의 족보 간행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일부 문건이 오류가 발견되어 근거 없는 이야기에 미혹되지 말라고 했다. 이어 조목별로 문제의 소지가 있는 사안 및 문구를 지출처 : 유교넷 -
227702
영천이씨 농암종택 기해년 10월에 문원간소에서 문중에게 보낸 통문(通文)[13843] / 기록자료>고문서 / 문원간소영천 이씨 문중 문집과 문건에 대한 기록의 문건이다. 특히, 농암의 문집과 남긴 글에 대한 언급이 돋보인다. 농암을 비롯한 영천 이씨 문중에서 문예적 업적이 돋보이는 분들에 대한 문집과 전적의 기록 내력에 대해 간략히 언급해 두었다.출처 : 유교넷 -
227703
영천이씨 농암종택 기해년 10월에 문원간소에서 문중에게 보낸 통문(通文)[13844] / 기록자료>고문서 / 문원간소문원발간재통문(文苑發刊再通文)이다. 서두에서 시문의 재도론적인 성격을 강조했다. 문과 도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문의 성쇠는 도의 성쇠에 달려있다고 했다. 기해년 10월에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장성읍(長城邑) 매화동(梅花洞) (문원) 간행소에서 간행했다고 밝혔다.출처 : 유교넷 -
227704
영천이씨 농암종택 을축년 3월에 석현재가 이용구에게 보낸 통문(通文)[13845] / 기록자료>고문서 / 석현재이수채(李洙埰)및 여러 유사가 연대 서명하여 보낸 통문이다. 영천 이씨 시조 영양군(永陽君)의 사우(祀宇) 중건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는 여러 후손들의 협조와 유림들의 발의를 거쳐 이루어진 것인데, 그런데 지파별로 배정된 사우 건립 기금 모금의 진척이 부진하여 통문을출처 : 유교넷 -
227705
영천이씨 농암종택 임신년 3월에 발급자미상이 산운종중에게 보낸 통문(通文)[1384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산운종중(山雲宗中)에서 안성 통문에 답한 글이다. 통문의 내용에 의하면, 족보 간행을 위해 모든 종중의 힘을 모으자는 견해에 대해 감격해 하였다. 이어 영천 이씨 족보의 근원과 연원을 회고하면서, 가문의 번성과 영광을 추억하였다. 이와 함께 족보 편찬 과정에서 오류를출처 : 유교넷 -
227706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384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학문 수수 연원의 중요성에 대해 지적했다. 이 글에서 중심 인물은 농암이다. 공자의 학문을 이어 간 주자를 거론했다. 그리고 공자는 일정한 스승의 도움이 없이 자득한 경지를 구축한 인물임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주자가 그 학문을 집대성하였고, 그 학문을 퇴계가 계승하출처 : 유교넷 -
227707
영천이씨 농암종택 1959에 동국씨족고중간소에서 이용구에게 보낸 통문(通文)[13848] / 기록자료>고문서 / 동국씨족고중간소동국씨족고(東國氏族攷)를 편찬하면서, 전국 각 대종가에 보낸 통문이다. 각 문중에서는 이 거대한 자료집을 편찬하는데 따른 기초 자료인 단자를 우송하고, 책자 발간 경비를 부담해야 함을 알리고 이에 대한 협조를 부탁한 통문이다. 이는 신라에서 고려 및 조선조에 이르기까출처 : 유교넷 -
227708
영천이씨 농암종택 정묘년 11월에 영해종생이 이용구에게 보낸 통문(通文)[13849] / 기록자료>고문서 / 영해종생대동보(大同譜)를 편찬하면서, 각 지파 문중에 보낸 통문이다. 서두에서 이 책 편찬의 의의를 설명했다. 그리고 이 책의 편찬 기준 및 범례를 정리했다. 이러한 거대 사업 추진 과정에서 소요되는 경비 거출에 일체 동참하여 어려움이 없게 해 달라고 통보했다. 말미에 유사출처 : 유교넷 -
227709
영천이씨 농암종택 갑자년 10월에 영천이씨대동보소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3850] / 기록자료>고문서 / 영천이씨대동보소문중 여러 친족들에게 보낸 회문(回文)이다. 영천 이씨 문중의 족보 편찬 사업과 관련하여 문중 산하 지파에게 보낸 통문 형식의 글이다. 서두에서 족보 편찬의 필요성과 영천 이씨의 유래 등에 대해 강조했다. 그리고 족보 편찬 경비를 지파별로 분담한 바 대로 조속히 납부출처 : 유교넷 -
227710
영천이씨 농암종택 계묘년 11월에 우계서원당회중에서 행암공택에게 보낸 통문(通文)[13851] / 기록자료>고문서 / 우계서원당회중농운정사는 퇴계의 명에 따라 수축된 것으로, 퇴계의 급문 제자들이 학문을 연찬하던 곳임을 상기시켰다. 세월이 오래되어 기둥과 주춧돌이 망가져서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음을 언급했다. 그리고 정부로부터 서원 수리 비용이 내려와 서원과 담장을 일부 고쳤다고 했다. 이어 후손출처 : 유교넷 -
227711
영천이씨 농암종택 계묘년 11월에 우계서원당회중에서 청암공택에게 보낸 통문(通文)[13852] / 기록자료>고문서 / 우계서원당회중유림이나 서원 현안 등을 유림 단체나 문중에 알리기 위해 보낸 통문(通文)인데 선현을 존중하게 여기고 유학 정신을 기리기 위한 유림들의 모임을 알리기 위해 보낸 글이다.출처 : 유교넷 -
227712
영천이씨 농암종택 갑술년 3월에 구천서당에서 문중에게 보낸 통문(通文)[13853] / 기록자료>고문서 / 귀천서당안동시 일직면 소호리 귀천서당(龜川書堂)에서 보낸 통문이다. 소산(小山) 이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존현양사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묘우를 건립하고 처음으로 제사를 올리며 인근 유림을 초청하기 위해 보낸 통문이다. 말미에 유사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227713
영천이씨 농암종택 을해년 2월에 영천향교회중에서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3854] / 기록자료>고문서 / 영천향교회중영천 향교에서 보낸 통문이다. 송곡서원(松谷書院)이 조정의 훼철령에 따라 훼철된 점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어 도를 높이고 어진이를 숭상하는 이치가 허물어졌음을 한탄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주자가 서원을 세우고, 조선에서 퇴계가 서원을 창건한 내력을 강조했다. 이에 송곡출처 : 유교넷 -
227714
영천이씨 농암종택 기해년 2월에 덕곡서당에서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3855] / 기록자료>고문서 / 덕곡서당하단 부분은 흐릿하여 식별이 어려운 문건이다. 상단의 내용을 참조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특정 행사 추진 과정에서 역할 분담자의 명단을 기록해 둔 문건이다. 맨 먼저 간사 7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이어 내빈 접대자 7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판본을 베끼는출처 : 유교넷 -
227715
영천이씨 농암종택 을사년 1월에 임고서원에서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3856] / 기록자료>고문서 / 임고서원조정의 명에 따라 훼철된 임고서원(臨皐書院)의 복원을 마치고 고유문을 올리며 참석한 자들의 명단을 기록해 둔 방명록이다. 서두에는 통문 한 통이 기록되어 있다. 통문의 내용은 임고서원의 복원이 절실함을 알리고 존현양사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 이를 추진하게 되었다고출처 : 유교넷 -
227716
영천이씨 농암종택 병인년 11월에 영천성동종중에서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3857] / 기록자료>고문서 / 영천성동종중영천 이씨 문중의 각 지파에게 보낸 통문이다. 영천 이씨의 대동보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여러 지손들의 협조와 이해를 당부하며 보낸 문건이다. 이 과정에서 대동보 편찬의 의의와 필요성 및 가문의 중흥 의지 등을 강하게 반영한 의도가 엿보인다. 말미에 유사들의 명단이 정리출처 : 유교넷 -
227717
영천이씨 농암종택 병오년 1월에 분강유소회중에서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3858] / 기록자료>고문서 / 분강유소회중효절공 농암의 영정을 모실 사우를 건립하기 위해 여러 지파 문중들의 협력을 당부하기 위해 보낸 통문이다. 서두에서 이 사업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역설하였다. 영천 이씨의 연대 의식을 강조한 내용이 담겨 있다. 말미에 유사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227718
영천이씨 농암종택 임술년 12월에 경충재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3859] / 기록자료>고문서 / 현풍 경충재곽두영(郭斗榮) 등이 보낸 통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와 많은 애국지사들의 화왕산성 전투 내력을 기록한 「창의록(倡義錄)」이 오랜 세월을 경과하면서, 산일되어 다시 이를 수습하여 「용사세강록(龍蛇世講錄)」이라고 명명하출처 : 유교넷 -
227719
영천이씨 농암종택 신유년 2월에 영천군 단애 영모재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3860] / 기록자료>고문서 / 영천군 단애 영모재영천군(永川郡) 단애(丹崖) 영모재(永慕齋)에서 보낸 통문이다. 충장공(忠莊公) 대전(大田) 선생에 대한 기록 등에서 그를 폄하하고 오해하는 부분이 많음을 지적하면서,이에 대한 오류 및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각 문중에 보낸 통문이다. 특히, 역사서 및 지방지 및 문출처 : 유교넷 -
227720
영천이씨 농암종택 경오년 7월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386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문중에 돌린 통문 형식의 문건이다. 분강서원을 이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붕에서 비가 새어 수리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런데 서원 자체의 경비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우니, 각 작은 문중에서 성금을 모아 수습을 도모해 주기를 원한다는 내용의출처 : 유교넷 -
227721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386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행단유소답통초(杏檀儒所答通草)」이다.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와 우복(尤伏) 정경세(鄭經世:1563∼1633)의 위업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행단의 의의에 대해 중국 유래를 들어 설명하면서, 그 의의를 강조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는 사문흥학의 기반이 되는 정신출처 : 유교넷 -
227722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386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한양에 사는 유림들이 도산서원(陶山書院)에 보낸 통문이다. 서두에서 영남 유학의 진수를 강조하면서, 정조의 배려 등에 대해 언급하였다. 정조의 영남 유림에 대한 각별한 온정에 대해 감격하는 마음을 장황하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영남 유림의 중지를 모으기 위해 다음 달출처 : 유교넷 -
227723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386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림이나 서원 현안 등을 유림 단체나 문중에 알리기 위해 보낸 통문(通文)인데 선현을 존중하게 여기고 유학 정신을 기리기 위한 유림들의 현안을 협의하기 위한 모임을 위해 보낸 글이다.출처 : 유교넷 -
227724
영천이씨 농암종택 신유년 3월에 밀양예림재회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3865] / 기록자료>고문서 / 밀양예림재회밀양(密陽) 예림재회(禮林齋會)에서 보낸 통문이다. 성호(星湖) 이익(李瀷:1629∼1690)은 퇴계를 사숙하면서 정치, 경제, 역사, 국학, 문학, 유학 등 전반적인 측면에서 광대한 학문 업적을 남긴 유학자임을 칭송했다. 그리고 그의 시문이 광범위하며, 전체 문집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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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정사년 1월에 성호집인간임시사무소에서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3866] / 기록자료>고문서 / 성호집인간임시사무소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성호집(星湖集)』 간행 임시사무소에서 보낸 통문이다. 서두에서 성호의 학문적인 업적과 위대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의 정신과 철학이 온축된 저서를 전체 문집으로 발간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역설했다. 이어 이를 교정하고, 편집하여 45권으로 발행하출처 : 유교넷 -
227726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분강유림회중에서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13867] / 기록자료>고문서 / 분강유림회중서두에서 존령양사의 기능과 사문흥학의 의의를 천명했다. 이어 농암(聾巖)의 업적과 위업을 칭송했다. 농암의 업적과 정신을 후세에 기리기 위해 영정을 모실 사우를 건립하려고 하니, 이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를 해달라고 통보한 통문이다. 특히, 분강서원의 훼철 경위출처 : 유교넷 -
227727
영천이씨 농암종택 경오년에 이진연의 호구단자(戶口單子)[13868]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이진연(35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주소는 의동면(宜東面) 분천리이다. 해당자는 이진연(李進淵)이다. 그의 나이는 53세이다. 그는 무인생이며, 본관은 영천이다. 이어 그의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 처, 처부, 처조부, 처외조부, 노비의 호구 단자가 기록되어 있다. 노비출처 : 유교넷 -
227728
영천이씨 농암종택 갑오년에 이유헌의 호구단자(戶口單子)[13869]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이유헌(25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주소는 의동면(宜東面) 분천리이다. 해당자는 이유헌(李裕憲)으로, 나이는 25세이다. 이는 갑오년의 기록이다. 그의 본관은 영천이다. 이어 그의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 처, 처부, 처조부, 처외조부, 노비의 호구 단자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227729
영천이씨 농암종택 을유년에 이진연의 호구단자(戶口單子)[13870]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이진연(68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주소는 의동면(宜東面) 분천리이다. 해당자는 이진연(李進淵)으로, 나이는 68세이다. 이는 을유년의 기록이다. 그의 본관은 영천이다. 이어 그의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 처, 처부, 처조부, 처외조부, 노비의 호구 단자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227730
영천이씨 농암종택 임오년에 이진연의 호구단자(戶口單子)[13871]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이진연(65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주인공의 주소는 의동면(宜東面) 분천리이다. 해당자는 이진연(李進淵)으로, 나이는 65세이다. 이는 임오년의 기록이다. 그의 본관은 영천이다. 이어 그의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 처, 처부, 처조부, 처외조부, 노비의 호구 단자가 자세히출처 : 유교넷 -
227731
영천이씨 농암종택 기묘년에 이진연의 호구단자(戶口單子)[13872]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이진연(62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주인공의 주소는 의동면(宜東面) 분천리이다. 해당자는 이진연(李進淵)으로, 나이는 62세이다. 이는 을묘년의 기록이다. 그의 본관은 영천이다. 이어 그의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 처, 처부, 처조부, 처외조부, 노비의 호구 단자가 자세히출처 : 유교넷 -
227732
영천이씨 농암종택 병자년에 이진연의 호구단자(戶口單子)[13873]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이진연(69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주인공의 주소는 의동면(宜東面) 분천리이다. 해당자는 이진연(李進淵)으로, 그의 나이 69세인 병자년의 기록이다. 그의 본관은 영천이다. 이어 그의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 처, 처부, 처조부, 처외조부, 노비의 호구 단자가 자세히 기록출처 : 유교넷 -
227733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이인묵의 호구단자(戶口單子)[13874]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이인묵(54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주인공의 주소는 진보현(眞寶縣) 수정리(水淨里)이다. 그의 성명은 이인묵(李仁默)으로, 54세인 을미년의 기록이다. 그의 본관은 영천이다. 안동에서 영천으로 이주해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어 그의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 처, 처부,출처 : 유교넷 -
227734
영천이씨 농암종택 정유년에 이유헌의 호구단자(戶口單子)[13875]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이유헌(28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주인공의 주소는 의동면(宜東面) 분천리이다. 해당자는 이유헌(李裕憲)으로, 그의 나이 28세인 경오년의 기록이다. 그의 본관은 영천이다. 이어 그의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 처, 처부, 처조부, 처외조부, 노비의 호구 단자가 자세히 기록출처 : 유교넷 -
227735
영천이씨 농암종택 계유에 이진연의 호구단자(戶口單子)[13876]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이진연(56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주인공의 주소는 의동면(宜東面) 분천리이다. 해당자는 이진연(李進淵)으로, 그의 나이 56세인 무인년의 기록이다. 그의 본관은 영천이다. 이어 그의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 처, 처부, 처조부, 처외조부, 노비의 호구 단자가 자세히 기록출처 : 유교넷 -
227736
영천이씨 농암종택 1798년에 안동부에서 이정린에게 보낸 준호구(準戶口)[13877]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준호구(準戶口)이다. 주인공의 주소는 임기리(林基里)이다. 해당자는 이정린(李廷隣)으로, 그의 나이 38세인 신사년의 기록이다. 그의 본관은 영천이다. 이어 그의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 처, 처부, 처조부, 처외조부, 노비의 호구 단자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227737
영천이씨 농암종택 1810년에 안동부에서 이인묵에게 보낸 준호구(準戶口)[13878]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준호구(準戶口)이다. 주인공의 주소는 감하리(甘下里)이다. 해당자는 이인묵(李仁默)으로, 그의 나이 36세인 을미년의 기록이다. 그의 본관은 영천이다. 이어 그의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 처, 처부, 처조부, 처외조부, 노비의 호구 단자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227738
영천이씨 농암종택 1906년에 군수가 이두경에게 보낸 준호구(準戶口)[13879] / 기록자료>고문서 / 군수거주지 및 부양 가족수를 정리한 준호구(準戶口)이다. 주인공의 주소는 의동면(宜東面) 분천리이다. 호주는 이두경(李斗慶)으로, 본관은 영천이다. 이어 동거하는 가족의 명단이 정리되어 있다. 현재 부양하는 노인의 상세한 명단 기록과 함께 가옥 형태 및 동수를 기록한 문출처 : 유교넷 -
227739
영천이씨 농암종택 1898년에 군수가 이유헌에게 보낸 준호구(準戶口)[13880] / 기록자료>고문서 / 군수거주지 및 부양 가족수를 정리한 준호구(準戶口)이다. 주인공의 주소는 의동면(宜東面) 분천리이다. 호주는 이유헌(李裕憲)으로, 본관은 영천이다. 이어 동거하는 가족의 명단이 정리되어 있다. 현재 부양하는 노인의 상세한 명단 기록과 함께 가옥 형태 및 동수를 기록한 문출처 : 유교넷 -
227740
영천이씨 농암종택 1899년에 군수가 이유헌에게 보낸 준호구(準戶口)[13881] / 기록자료>고문서 / 군수거주지 및 부양 가족수를 정리한 준호구(準戶口)이다. 주인공의 주소는 의동면(宜東面) 분천리이다. 호주는 이유헌(李裕憲)으로, 본관은 영천이다. 그의 나이 30세 때의 기록이며, 직업이 기록되어 있다. 이어 동거하는 가족의 명단이 정리되어 있다. 현재 부양하는 노인의출처 : 유교넷 -
227741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홀기(笏記)[1388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홀기(笏記)이다. 제사를 올리는 순서와 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순서를 맡은 이들의 역할과 순서 및 절차를 상세히 기록한 문건이다. 6대조, 5대조, 고조, 증조, 조부, 부 등의 차례로 제사를 올리는 과정에서 예절과 읍하고 헌작하는 일체의 절차와 예를 기록한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227742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홀기(笏記)[1388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관례홀기(冠禮笏記)이다. 관례를 시행하면서, 제반 절차를 상세히 기록한 문건이다. 남성에게 성년식을 거행하는 행위로서, 아주 상세한 절차를 제시하였다. 일반적인 관례 홀기와 별 차이가 없는 형식의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227743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홀기(笏記)[1388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홀기(笏記)이다. 제사를 올리는 순서와 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순서를 맡은 이들의 역할과 순서 및 절차를 상세히 기록한 문건이다. 조상 순서대로 제사를 올리는 과정에서 예절과 읍하고 헌작하는 일체의 절차와 예를 기록한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227744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홀기(笏記)[1388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홀기(笏記)이다. 묘소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순서와 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순서를 맡은 이들의 역할과 순서 및 절차를 상세히 기록한 문건이다. 조상 순서대로 제사를 올리는 과정에서 예절과 읍하고 헌작하는 일체의 절차와 예를 기록한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227745
영천이씨 농암종택 임인년 10월에 발급자미상이 사천재사에게 보낸 홀기(笏記)[1388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홀기(笏記)이다.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순서와 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순서를 맡은 이들의 역할과 순서 및 절차를 상세히 기록한 문건이다.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과정에서 예절과 읍하고 헌작하는 일체의 절차와 예를 기록한 문건이다. 다소 간략함을 추구한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227746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사천재사에게 보낸 홀기(笏記)[1388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길흉사를 진행하기 위한 절차를 기록한 홀기(笏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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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정묘년 3월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집사록(執事錄)(聾巖先生改題時執事分定)[1388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농암 선생 추모 사업 행사시에 역할을 맡은 이를 기록한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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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정묘년 2월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집사록(執事錄)(愛日堂重修時)[1388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애일당을 중수할 때 역할을 맡은 이들을 기록한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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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정미년 12월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집사록(執事錄)(吉祀時爬任)[1389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길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역할 분담자를 기록한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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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신묘년 1월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집사록(執事錄)(改題주時執事)[1389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조상 추모 현안 추진을 위한 역할 분담자 명단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