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28501
재령이씨 충효당 기미년에 수악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42] / 기록자료>고문서 / 수악기미(己未) 정월 초육일 수악(壽岳)이 보낸 간찰이다. 신년이 되어서 문중으로 보낸 편지이다. 종갓집이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 소식이 막연하다면서 인사말과 장손의 관례(冠禮)에 대해 언급하였다.출처 : 유교넷 -
228502
재령이씨 충효당 병자년에 김휴락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43]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휴락병자년 4월 28일 김휴락(金休洛)의 편지로 특별히 편지를 주신데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고 상대방의 안부를 살피게 되어 위로되며 새로 맞이한 사람은 보지는 못하였지만 현숙하다고 들었으며 결혼식을 잘 치루어 다행이며 가문의 경사스러운 일이라고 축하하고 자신을 쓸모없는 인출처 : 유교넷 -
228503
재령이씨 충효당 기미년에 상건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44] / 기록자료>고문서 / 족말 상건기미년 2월 23일 상건(相健)의 편지로 지난번 모임을 마치고 산장에 돌아와 생각새보니 새로운 단어들은 없다고 밝히고 상대방과 당내와 자제들의 안부를 두루 묻고, 자신은 노환으로 볼품이 없으며 선조의 시호를 청하는 일은 과거가 끝난 뒤에 올리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출처 : 유교넷 -
228504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김병식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45]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김병식기해년 12월 29일 김병식(金秉植)의 편지로 분주히 세상살이를 하다보니 상대방에게 몇 개월을 편지도 올리지 못하였음을 밝히고 상대방과 자제들 며느리의 안부를 두루 묻고 자신은 수 개월을 객지에 나가 있다가 겨우 집으로 돌아왔으며 아이들은 무고하며 주곡(注谷) 마암공출처 : 유교넷 -
228505
재령이씨 충효당 계해년에 손진수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46]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손진수계해년 8월 29일 손진수(孫晉洙)의 편지로 상대방의 조고(祖考)가 돌아가신지 돌기가 됨에 위로의 편지로 상대방과 부모의 건강을 걱정하고, 자신의 조카가 노성(魯城)으로 갔으며 자신은 내년 봄에 찾아뵈올 생각이며 그때에 찾아뵙지 못한 각처에도 인사를 할 생각이며 가을출처 : 유교넷 -
228506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극호가 이석규에게 보낸 간찰(簡札)[14647]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극호기해년 5월 21일 익동석포(翊洞石浦)에 사는 족종(族從) 극호(極浩)가 보낸 편지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건강이 좋지 못하여 오랫동안 외출을 하지 않아 그 동안 적조하였음을 밝히고 집안의 혼사를 정하는 일은 해점(海店)의 주서댁(註書宅)의 규수가 범절이 뛰어출처 : 유교넷 -
228507
재령이씨 충효당 경인년에 이교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48]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이교영경인년 5월 18일 이교영(李教英)의 편지로 하인이 편지를 전해주어 소식을 알게 되었음을 밝히고 자신은 객지에서 얻은 병이 집으로 돌아온 뒤로 완쾌되지 않았으며 요즈음 눈병과 설사가 겹쳐서 공무를 손을 놓고 있으며 제수용품은 내일 발송할 계획이며 김도한(金度漢)의 말출처 : 유교넷 -
228508
재령이씨 충효당 기축년에 이교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49]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교영기축년 11월 24일 김교영(李教英)의 편지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무고하며 사당에 위판을 봉안하는 일은 날씨가 추워 모두들 꺼리고 있으니 상대방이 설득하여 찰 처리해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228509
재령이씨 충효당 병자년에 김호연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50]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김호연병자년 5월 9일 김호연(金鎬淵)의 편지로 아들이 돌아올 때에 편지를 전해주어 소식을 알게 되었음을 밝히고 상대방의 당내의 안부를 두루 묻고, 자신은 무고하며 아들이 평소의 가르침을 잘 따르지 않고 있으니 상대방이 인도해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228510
재령이씨 충효당 계해년에 교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51]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교영계해년 12월 8일 교영(教榮)의 편지로 족친들의 회의를 마치고 찾아뵙고 말씀을 드리지 못한 미안함을 전하고 회의에 원로들은 참석치 않고 젊은 사람들만 참석하여 의견만 분분하고 결론을 내지 못하였으며 선조를 모시는 일은 후손 모두의 책임이니 상대방께서 주도하여 잘 처출처 : 유교넷 -
228511
재령이씨 충효당 신축년에 오수희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52]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오수희신축년 8월 23일 오수의(吳壽羲)의 편지로 상대방의 아들이 편지를 전해주었음을 밝히고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무고하며 수리일자를 정해주신 일은 농번기와 겹치지 않게 재조정하는 것이 어떠한지를 묻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228512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상건이 종당에 보낸 간찰(簡札)[14653] / 기록자료>고문서 / 족 상건상건(相健)의 편지로 상대방과 헤어진 후로 상의할 일이 많아 돌아가고 싶은 심정임을 밝히고 상대방과 고을의 안부를 묻고, 우리 가문에서 올리는 단자는 초안을 잡아서 보내니 검토하여 보고 혼자서 작성하는 것보다 몇 사람이 모여서 작성하고 영남과 영외의 몇 사람이 연대출처 : 유교넷 -
228513
재령이씨 충효당 병진년에 조연용이 익동(翊洞)에 보낸 간찰(簡札)[14654] / 기록자료>고문서 / 계제 조연용병진(丙辰)년에 계제 조연용(契弟 趙演容)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이 간찰의 주 내용은 가족의 안부 묻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가족 및 집안의 길흉사 언급과 염려, 배려의 감사, 질병 등 어려움을 당한 이들에 대한 염려, 아이들의 성장과 학업에 대한 염려출처 : 유교넷 -
228514
재령이씨 충효당 기축년에 이종항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55]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 이종항기축(己丑)년에 소제 이종항(小弟 李鍾恒)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이 간찰의 주 내용은 가족의 안부 묻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가족 및 집안의 길흉사 언급과 염려, 배려의 감사, 질병 등 어려움을 당한 이들에 대한 염려, 문중 조상 추모 사업 현안 언급 등출처 : 유교넷 -
228515
재령이씨 충효당 을축년에 김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56] / 기록자료>고문서 / 손제 김직을축(乙丑)년에 손제 김직(損弟 金溭)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이 간찰의 주 내용은 가족의 안부 묻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가족 및 집안의 길흉사 언급과 염려, 어려움을 당한 이들에 대한 염려, 출타한 이들의 근황, 문중 조상 추모 관련 현안 언급, 자손들출처 : 유교넷 -
228516
재령이씨 충효당 임인년에 김형칠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57]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형칠임인(壬寅)년에 제 김형칠(弟 金衡七)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이 간찰의 주 내용은 가족의 안부 묻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가족 및 집안의 길흉사 언급과 염려, 배려의 감사, 질병 등 어려움을 당한 이들에 대한 염려, 농사 작황 언급과 출타한 이들의 근황출처 : 유교넷 -
228517
재령이씨 충효당 경신년 7월에 손후익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58]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손후익경신(庚申) 칠월 십오일 손후익(孫厚翼)이 보낸 간찰이다. 경주 양동(良洞)의 손씨가 자기 부친 앞으로 온 편지에 답장을 쓴 것이다. 자기 부친이 월전에 만주로 봉천(奉天)으로 가셨다는 말과 혼수품에 대해 언급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228518
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김병식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59] / 기록자료>고문서 / 김병식정축(丁丑)년에 김병식(金秉軾)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이 간찰의 주 내용은 가족의 안부 묻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가족 및 집안의 길흉사 언급과 염려 등이다.출처 : 유교넷 -
228519
재령이씨 충효당 경술년에 황만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60] / 기록자료>고문서 / 계하생 황만영경술(庚戌) 오월 사일 황만영(黃萬英)이 보낸 간찰이다. 편지를 받고 답장으로 쓴 사가에 보내는 편지이다. 안부를 전하면서 자신은 모친 묘를 이장(移葬)했다는 말과 삼촌의 안부를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520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이지호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61]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이지호기해(己亥)년에 제 이지호(弟 李祉鎬)가 보낸 간찰(簡札)이다. 이 간찰의 주 내용은 가족의 안부 묻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가족 및 집안의 길흉사 언급과 염려, 배려의 감사, 질병 등 어려움을 당한 이들에 대한 염려, 출타한 이들의 근황, 초상을 당한 여러출처 : 유교넷 -
228521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김형칠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62] / 기록자료>고문서 / 계말 김형칠기해(己亥)년에 계말 김형칠(契末 金衡七)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이 간찰의 주 내용은 가족의 안부 묻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가족 및 집안의 길흉사 언급과 염려 등이다.출처 : 유교넷 -
228522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남우진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63] / 기록자료>고문서 / ○하 남우진기해(己亥)년에 ○하 남우진(○下 南禹鎭)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이 간찰의 주 내용은 가족의 안부 묻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가족 및 집안의 길흉사 언급과 염려와 평소 그리운 마음이 간절한 정회 등을 표현했다.출처 : 유교넷 -
228523
재령이씨 충효당 임술년 윤8월에 김진림이 사돈에게 보낸 간찰(簡札)[14664]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진림임술(壬戌) 윤팔월 십구일 김진림(金鎭林)이 보낸 간찰이다. 사갓집의 편지를 받고 답장으로 쓴 내용이다. 안부를 전하면서 손자가 입학한다는 말과 며느리의 병이 조금 호전이 되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228524
재령이씨 충효당 신유년에 이능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65] / 기록자료>고문서 / 사계 이능직신유(辛酉)년에 사계 이능직(査契 李能直)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이 간찰의 주 내용은 가족의 안부 묻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가족 및 집안의 길흉사 언급과 염려, 연로한 분들의 근황과 새 신부의 건강 등에 대해 언급, 학업 권면 등이다.출처 : 유교넷 -
228525
재령이씨 충효당 정미년에 남오진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66] / 기록자료>고문서 / 생 남오진정미(丁未)년에 생 남오진(生 南五鎭)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이 간찰의 주 내용은 가족의 안부 묻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가족 및 집안의 길흉사 언급과 염려, 조상 추모 사업 관련 묘지명 작성 등에 대한 언급 등이다.출처 : 유교넷 -
228526
재령이씨 충효당 신묘년에 김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67] / 기록자료>고문서 / 계생 김상신묘(辛卯)년에 계생 김상(契生 金常)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이 간찰의 주 내용은 가족의 안부 묻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가족 및 집안의 길흉사 언급과 염려, 학문적인 가르침에 대한 감사 등이다.출처 : 유교넷 -
228527
재령이씨 충효당 임진년에 이인호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68]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인호임진(壬辰)년에 사제 이인호(査弟 李寅鎬)가 보낸 간찰(簡札)이다. 이 간찰의 주 내용은 사돈댁의 안부 묻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가족 및 집안의 길흉사 언급과 염려, 문중 현안 언급 등이다.출처 : 유교넷 -
228528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 10월에 김완섭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69]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김완섭시월 이십일일 김완섭(金完燮)이 보낸 간찰이다. 앞부분이 없어서 애매하다. 내용으로 보면 『번암집(樊岩集)』, 『서애집(西厓集)』, 『학봉집(鶴峰集)』 등의 책에 대해서 언급하였다.출처 : 유교넷 -
228529
재령이씨 충효당 계사년에 이인호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70]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인호계사(癸巳)년에 사제 이인호(査弟 李寅鎬)가 보낸 간찰(簡札)이다. 이 간찰의 주 내용은 사돈댁의 안부 묻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가족 및 집안의 길흉사 언급과 염려, 새 신부와 연로한 분들의 건강 등에 대한 염려 등이다.출처 : 유교넷 -
228530
재령이씨 충효당 갑오년에 이동은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14671]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동은갑오(甲午)년에 사제 이동은(査弟 李東恩)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이 간찰의 주 내용은 사돈댁의 안부 묻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가족 및 집안의 길흉사 언급과 염려, 배려의 감사, 질병 등 어려움을 당한 이들에 대한 염려, 출타한 이들의 근황 염려 등이다.출처 : 유교넷 -
228531
재령이씨 충효당 임진년에 이원각 등이 이생원에게 보낸 간찰(簡札)[14672] / 기록자료>고문서 / 이원각·원하·원태임진(壬辰)년에 이원각(李源慤) 등 3인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이 간찰의 주 내용은 가족의 안부 묻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가족 및 집안의 길흉사 언급과 염려, 배려의 감사, 질병 등 어려움을 당한 이들에 대한 염려 등이다.출처 : 유교넷 -
228532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평산 신만원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673] / 기록자료>고문서 / 척종 평산 신만원이 문서는 척종(戚從) 평산(平山) 신만원(申萬源)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칠언율시 한 수와 칠언절구 한 수로 되어 있다. '한가지 마음으로 독실하여 앞 선인들을 크게 하셨고 모든 일을 당당하게 후학들을 위해 계획하셨으며 쌓은 후덕과 남기신 은덕은 하늘이 반드시 보출처 : 유교넷 -
228533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대흥 백운시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674]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대흥 백운시이 문서는 시하생(侍下生) 백운시(白雲時)가 지은 만사(輓詞)이다. 형식은 오언율시이며 모두 두 수이다. 첫번째는 가학의 연원을 이어 공경함을 지니고 정성이 깊고 말이 적었으며, 나이에 비례한 인덕은 고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을 만하다고 하였고, 두번째는 근졸(謹拙출처 : 유교넷 -
228534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현문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675]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현문이 문서는 족종 현문(鉉文)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칠언율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신선같은 풍모를 지녀 백 년 동안 우리 가문의 모범이 되었음을 표현하였으며, 충효당의 주인으로서 친족들과 함께 편안하게 지내고 일찍이 보고 들은 것은 협흡함이 있었음을 표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535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남호정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676] / 기록자료>고문서 / 정소제 영양 남호정이 문서는 정소제(情少弟) 남호정(南浩定)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칠언 절구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모두 세 수이다. 다른 만사들에 비해 특이한 점은 한 수가 끝난뒤 '우(右)'를 넣어 앞뒤의 시를 구별시켜 주고 있다. 첫번째는 충효당 앞 문을 지나려다가 공이 팔출처 : 유교넷 -
228536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성호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677] / 기록자료>고문서 / 종하생 성호이 문서는 종하생(宗下生) 성호(成浩)가 지은 만사(輓詞)이다. 칠언율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죽리관을 큰바다 동쪽에 열어 밝게 스스로 청풍자적하셨으며 묵묵히 자연을 벗삼아 옛 선조들의 기풍을 이어받았고 자식을 가르침에 순수하고 깊어 상황에 적합하게 하셨으며 남을출처 : 유교넷 -
228537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영양 남효탁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678] / 기록자료>고문서 / 영양 남효탁이 문서는 남효탁(南孝鐸)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칠언율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고인의 유아(儒雅)를 이은 것은 바닷가에 사는 우리 공 뿐이며, 마음을 미리 정해 시비에 휘말리지 않았고, 외물로 인해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셨으며 몇대에 걸쳐 이웃에 살면서 나이를 잊출처 : 유교넷 -
228538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전의 이병호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679] / 기록자료>고문서 / 사시생 전의 이병호이 문서는 이병호(李秉鎬)가 지은 만사(輓詞)이다. 칠언율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모두 두 수이다. 첫번째는 중후한 마음에 고가의 유풍을 이어받아 결정하지 못하는 중론을 명확하게 해결해 주셨는데, 팔순이 되어 돌아가시니 향림의 일을 누구에게 의지할까 하는 애타는출처 : 유교넷 -
228539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현문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680]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현문이 문서는 족종(族從) 현문(鉉文)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오언배율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24구 120자이다. 안릉이씨(安陵李氏)가 동해에 자리잡아 모두가 운조공의 후손이 되어 충효당의 가풍을 이어받았음을 표현하고 있다. 공은 대종군으로 팔십수를 누렸고 많은 친족출처 : 유교넷 -
228540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영양 이유재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681] / 기록자료>고문서 / 계하생 영양 이유재이 문서는 계하생(契下生) 이유재(李裕載)가 지은 만사(輓詞)이다. 칠언율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운조공은 약파공의 후손으로 난새와 봉황이 나는 듯한 전형이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옛 도를 본받아 무너져가는 풍속을 수습하였고 풍론을 결정한다고 표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541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족하시생 호언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682] / 기록자료>고문서 / 족하시생 호언이 문서는 족하시생(族下侍生) 호언(浩彦)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오언배율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모두 24구 120자이다. 선조들의 가훈을 복응하여 고가(古家)의 풍모를 쇠퇴하게 하지 않았고 인륜을 두터이 하고 예교를 숭상하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공이 죽출처 : 유교넷 -
228542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기환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683]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제 기환이 문서는 재령이씨 집안에 족소제(族少弟) 기환(基煥)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오언율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충효당의 집안에서 태어나 표연히 죽었지만 집안을 빛나게 꽃피웠음을 표현하고 있다. 아울러 규범과 법도는 오랜 세월을 이었으며, 남기신 도서(圖書)도 다섯출처 : 유교넷 -
228543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표택 기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684] / 기록자료>고문서 / 표택 기이 문서는 일본 오오사카시(大阪市) 동성구(東城區) 저사야정(猪飼野町) 5번지에 살고 있는 표택기(表宅琪)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칠언율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부고가 잘못 전해진 것이 아닌가 의심하여 재차 확인하였지만 결국 제대로 전달됨을 확인하자 근심스러운출처 : 유교넷 -
228544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이굉주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685]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제 이굉주이 문서는 족소제(族少弟) 굉주(宏柱)가 형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지은 만사(輓詞)이다. 칠언율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구순까지 누린 온화함은 충효당에게서 물려받은 것임을 표현하고 있다. 모범적인 행동은 남들이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남을 표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545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권오인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686] / 기록자료>고문서 / 내재종질 영가 권오인이 문서는 내재종질 권오인(權五寅)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오언율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바닷가 고을에서 문헌이 있는 곳은 공의 집안 뿐이다. 얼음처럼 차가운 구십 된 아버지의 가르침을 이어 모든 행실에 앞서 실천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신령스럽고 영광스러운 가르출처 : 유교넷 -
228546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진성 이병두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687]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진성 이병두이 문서는 이병두(李炳斗)가 지은 만사(輓詞)이다. 칠언율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맑은 덕은 세상에 아름다운 향취를 피웠음을 표현하고 있다. 팔순까지 수를 누리다가 돌아가셨지만 애통한 마음은 금할 수 없다고 표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547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이영교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688] / 기록자료>고문서 / 세가하생 진성 이영교이 문서는 이영교(李榮敎)가 지은 만사(輓詞)이다. 칠언율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움직일 때 모습은 새신부 같았고 가만히 있을 때의 모습은 부처와 같았음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효우(孝友)를 가업으로 전해주었으며, 시대의 전범이 된다고 표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548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용발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689]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용발이 문서는 족종(族從) 용발(瑢發)이 사촌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지은 만사(輓詞)이다. 칠언율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시대마다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몰래 덕업을 닦았으며, 지은 긍구당은 규모가 크고 칸 수도 많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어받아 완성한 선조들출처 : 유교넷 -
228549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무안 박영희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690]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무안 박영희이 문서는 세제(世弟)인 박영희(朴永憙)가 지은 만사(輓詞)이다. 칠언율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팔순까지 강녕하셨음을 기리고 있다. 또한 몸가짐은 온화하고 너그러웠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지난날 한밤중에 함께 배를 타고 노닐었던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마지막에는출처 : 유교넷 -
228550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백순우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691] / 기록자료>고문서 / 백순우이 문서는 영해 양정(陽亭)에 살았던 백순우(白淳愚)가 지은 칠언율시이다. 제목은 「근차죽리관이건운(謹次竹里館移建韻)」이다. 이 시는 그의 문집인 『모산문집』에도 실려 있다. 다만 함련 첫째구 마지막 글자가 문집에는 '택(宅)'으로 되어 있는 점이 다를 뿐이다. 내용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