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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박준선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742]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 밀양 박준선이 문서는 사돈인 박준선(朴峻善)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칠언율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인(仁)을 생활하고 실천하시어 충효당의 남기신 법도는 세상에 전해지겠네, 밤낮 학문에 힘썼으니 고요히 열반에 드소서. 영원히 우러러 볼 줄 알았더니 어찌하여 신선이 되겠습니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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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김동연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743]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경주 김동연이 문서는 시생(侍生)인 김동연(金東淵)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칠언 율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온화하고 덕스러운 성품은 이웃까지 알려져 90평생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으며, 인량동의 참다운 군자임을 표현하고 있다.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대접할 때에 체용을 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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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권영욕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744] / 기록자료>고문서 / 정소제 안동 권영욕정소제(情少弟)인 권영용(權永鎔)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7언 율시이며, 빙옥같은 용모와 법도를 잘 이어받았으며 90수를 누리는 동안 천진하고 과묵스런 모습으로 집안의 어려운 일을 해결하여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았건만 갑자기 돌아가시어 눈물을 수건을 적신다는 내용출처 : 유교넷 -
228604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김준식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4745] / 기록자료>고문서 / 세가하생 의성 김준식세가하생(世家下生)인 의성 김준식(金浚植)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7언 절구이며, 모두 5수이다. 온화한 정신에 86세의 수를 누려 우리 동방에서 우러러 보는 바 되었으며, 충효의 유훈을 잘 지켜 후세에 밝게 드리웠음을 표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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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갑자년에 현규가 대종군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46]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현규이 문서는 갑자년(1924년) 4월 24일 저녁에 족종(族從) 현규(鉉圭)가 8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대종군 처사공의 소상(小祥)을 맞아 지은 제문(祭文)이다.. 충직하고 순정한 품성에 한결같이 너그럽고 돈후함만을 일삼았음을 표현하고 있다. 집안에서는 온유하고 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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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중락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47] / 기록자료>고문서 / 종하생 중락이 문서는 정축년(1937년) 5월 15일에 종하생(宗下生)인 중락(中洛)이 종군 처사 재령 이공의 중상일을 하루 앞두고 지은 제문(祭文)이다.. 효우(孝友)가 먼곳까지 미쳤으며 아침저녁으로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듯 하였으며, 시간만 나면 학문에 힘써 문중에서 모두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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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병주가 재종형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48]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병주이 문서는 정축년(1937년) 5월 15일에 재종제 병주(秉周)가 그의 재종형의 중상일을 하루 앞두고 지은 제문(祭文)이다.. 형에게 진실로 잊기 어려운 은혜가 있으며, 평소에 가르치고 경계함이 교훈적이었지만 만분의 일도 본받지 못하겠음을 표현하고 있다. 불행하게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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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승희가 백부 처사부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4749] / 기록자료>고문서 / 종자 승희이 문서는 정축년(1937년) 5월 15일에 조카 승희(承熙)가 그의 백부 처사부군의 중상일을 하루 앞두고 지은 제문(祭文)이다.. 방에 들어가면 의범을 보는 듯 하고, 당에 오르면 기침소리를 듣는 듯 하지만 다시는 보고 듣지 못함을 애통해 하고 있다. 나이 15세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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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현문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50]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현문이 문서는 정축년(1937년) 5월 15일에 족종(族從) 현문(鉉文)이 종군 처사 재령이공의 중상일을 하루 앞두고 지은 제문(祭文)이다.. 팔십년 동안 충효당에 거처하시면서 효우와 덕성을 잘 계술(繼述)하시고 궁행까지 겸하시어 고을의 사우들이 추충하는 바가 되었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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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중표질 여강 이기동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51] / 기록자료>고문서 / 중표질 여강 이기동정축년(1937년) 5월 16일에 처사 재령이공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중표질(重表姪) 여강 이기동(李基東)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효우의 가법을 이어받아, 선조를 받든 정성과 종족을 통솔한 뜻은 모두가 추종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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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영양 남병하가 사장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52]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영양 남병하정축년(1937년) 5월14일에 남병하(南炳夏)가 안릉이공의 중상일을 2일 앞두고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의 덕과 유택을 향리에서 존경하고 추망함을 표현하고 있다. 풍채와 위의는 산과 같이 우뚝하고 온화한 말씀과 덕스러운 얼굴빛은 봄바람처럼 화사하다고 말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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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재학이 백부 처사부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4753] / 기록자료>고문서 / 종자 재학기해년(1959년) 4월 8일에 백부의 대상을 맞이하여 조카 재학(在鶴)이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어 우리 남매들이 의지할 곳이 없음에 백부께서 자식처럼 돌보아 주셨고, 저의 못난 성품을 올바르게 인도해주신 백부님의 은공을 잊을 수가 없다는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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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병술년에 손 병선이 왕부통정대부첨지중추부사부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4754] / 기록자료>고문서 / 손 병선병술년(1886년) 5월 1일에 조부의 대상을 하루 앞두고 손자 병선(秉璿)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인간세상의 걱정과 즐거움이 한결같지 않아서 지난 겨울에 혼인을 한 자식놈이 전날 천연두로 죽어서 처참하기 그지 없음을 조부의 영전에 고하고 있다. 또한 집안과 문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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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통가제 영양 남진하가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55]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제 영양 남진하무인년(1938년) 5월 16일 남진하(南鎭夏)가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덕망있는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나 진실되고 온화한 품성에 행실은 항상 독실하였음을 표현하고 있다. 겸양하고 청렴한 성품을 지녀 원근의 선비들이 찾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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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통가생 전의 이병호가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56]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생 전의 이병호무인년(1938년) 5월 16일 이병호(李秉鎬)가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지은 제문(祭文)이다.. 선현들을 배출한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나 중후한 용모에 선조들을 정성으로 받들고 집안사람들을 돈독하게 이끌었음을 표현하고 있다. 게다가 이런 모습은 향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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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종표제 완산 유승호가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57] / 기록자료>고문서 / 종표제 완산 류승호무인년(1938년) 5월 16일 처사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종표제(從表弟) 완산 류승호(柳升鎬)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충효를 독실히 행하고 시례를 기초로 하여 80년 동안 강녕하시었으며, 처세와 접인에 너그러웠으며, 거짓된 말과 꾸밈이 있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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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인호가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58] / 기록자료>고문서 / 종하생 인호무인년(1938년) 5월 16일 종하생 인호(麟浩)가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혁혁한 대종가의 주손으로 태어나 81세의 수를 누렸음을 언급하고 있다. 따뜻한 옷을 몸에 두르지 않고 거친밥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근심하고 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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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건호가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59] / 기록자료>고문서 / 종하생 건호기해년(1959년) 2월 23일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건호(建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화려하지 사치함을 싫어하였고 항상 검소함을 실천하였음을 드러내고 있다. 효우와 화목으로써 인도하심은 마치 장공예가 대대로 한곳에서 집안을 이끈 것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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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족소자 병주가 종대부 처사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60]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자 병주기해년(1959년) 2월 23일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병주(秉柱)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타고난 덕성에 맑고 순수하셨으며 90에도 강건한 모습을 지녔음을 언급하고 있다. 중용과 대학으로 자신의 우둔함과 용렬함을 일깨워 주셨음을 표현하고있다. 항출처 : 유교넷 -
228620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현득이 종군 처사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61]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현득기해년(1959년) 2월 23일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현득(鉉得)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타고난 복으로 강녕하게 90을 살면서도 수척함이 없이 보고 들으심에 오히려 총명하셨음을 드러내고 있다. 공의 덕행은 원근의 사람들이 공경하고 탄복할 것이니출처 : 유교넷 -
228621
재령이씨 충효당 정유년에 병헌이 종군 처사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62] / 기록자료>고문서 / 족말 병헌정유년(1957년) 4월 2일 종군 처사의 대상을 맞이하여 족말(族末) 병헌(秉憲)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어려서 스스로 학문에 힘써 인의 근본을 알고 효제(孝悌)로써 먼저 행하시고 충신(忠信)으로써 닦았음을 드러내고 있다. 남과 자신을 구별하지 않았고 자신출처 : 유교넷 -
228622
재령이씨 충효당 정유년에 성호가 종군 처사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63] / 기록자료>고문서 / 종하생 성호정유년(1957년) 4월 2일 종군 처사의 대상을 맞이하여 성호(成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의 덕은 온 고을이 추종하는 바이며, 평생의 지업은 우뚝하였지만, 지금은 대소사의 일에 대해 물어 볼 사람이 없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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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유년에 평산 신태형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64] / 기록자료>고문서 / 계하생 평산 신태형정유년(1957년) 4월 2일 재령이씨의 대상을 맞이하여 하루전날 신태형(申泰亨)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청명하고 온수(溫粹)한 자질에 확실한 의지와 돈독하고 두터운 덕을 지녀 가정에 베풂에 가정이 화목 향리에 베풂에 향리가 엄숙해졌음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자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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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유년에 긍호가 처사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65] / 기록자료>고문서 / 종하생 긍호정유년(1957년) 4월 2일 처사 이공의 대상을 맞이하여 하루전날 긍호(肯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이 천성을 바탕으로 덕을 행하심은 선조들을 받들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남들과 교접하고 친족들과 강론함에서 비롯된 것이지 자신의 영욕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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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유년에 병덕이 종종질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66] / 기록자료>고문서 / 족말 병덕정유년(1957년) 4월 1일 처사 재령이공의 대상을 맞이하여 병덕(秉悳)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대전 재사(齋舍)가 중건되지 않아 몇년동안 고심하고 계획을 짜고 마음을 합치기를 두 수레바퀴처럼 했는데, 이제 한 수레가 부러졌으니 한쪽수레가 어찌 가겠는가라는 애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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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유년에 족종시생 대현이 종군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67]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시생 대현정유년(1957년) 4월 1일 처사 안릉이공의 대상을 맞이하여 대현(大鉉)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100년동안 운조공의 가풍을 빛나게 하였으며 화수회를 결집하여 족척들의 사표가 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특별한 은전으로 우매함을 일깨워주셔서 영원히 잊지 못하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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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유년에 통가하생 진성 이원각 등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68]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진성 이원각·원하·원태 등정유년(1957년) 4월 2일 처사 안릉이공의 대상을 맞이하여 이원각(李源慤)•원하(源河)•원태(源台) 등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죽리관에서 태어난 공의 모습은 옥같이 깨끗하고 속은 생강처럼 매워 온화하게 잡는 바가 있으며 개연히 용납하는 바가 있어, 모두가 선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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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현원이 종군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69]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현원기해년(1959년) 2월 22일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현원(鉉元)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온아한 성품에 물아(物我)의 구별이 없이 착하고 온당함을 일삼았으니 군자스런 면모를 지녔음을 표현하고 있다. 서로 힘입고 의지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이야기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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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현원이 종군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70]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현원기해년(1959년) 2월 22일 종군 처사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종(族從) 현원(鉉遠)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말세(末世)의 모범이시며, 문질(文質)과 언행(言行)으로 70평생동안 집안을 잘 다스려 모두가 추앙하는 바가 되었음을 표현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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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족소자 식호가 종군 처사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71]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자 식호기해년(1839년) 3월 22일 대종군 처사 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소자 식호(植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가문의 문조(門祚)와 숙덕(宿德)이 날로 쇠퇴해져갈때 공이 우뚝하게 지켜주었는데 이제 계시지 않으니 애통하다는 내용이다. 또한 후생들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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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병광이 종군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72]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숙 병광기해년(1959년) 2월 23일 종군 처사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재종숙 병광(秉光)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을 오복이라 하는데, 이중에 하나도 가지기 어려운데 종군 처사는 90세까지 살면서 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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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필호가 종군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73]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필호기해년(1959년) 2월 22일 종군 처사 재령 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종(族從) 필호(必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이 살아 있음은 마치 큰 그늘이 그 아래에 넓게 덮혀도 비바람이 침입하는 지를 모르는 것과 같으며, 공이 죽음은 마치 무거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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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현만이 종군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74]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현만기해년(1959년) 2월 23일 종군 처사 재령 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종 현만(鉉萬)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백년의 전형(典型)을 지녀 후생들의 모범이 되었는데, 이제 멀리 떠나가셨으니 후생들의 통감(痛感)스런 일임을 표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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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학희가 종형 처사부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4775]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학희기해년(1959년) 2월 23일 종형처사 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제(族弟) 학희(學熙)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형의 고상한 모습을 다시 보지 못하며, 엄정한 가르침을 다시 듣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항상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들의 화목을 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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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삼종제 동희가 삼종형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76]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제 동희기해년(1959년) 2월 23일 삼종형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삼종제 동희(東熙)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형의 박학다식하고 방정(方正)한 품행을, 명예와 이익만을 쫓는 이들에게 우러러보고 본받게 한다면 어려운 시대에 보탬이 될 것임을 피력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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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족소종 병일이 종군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77]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종 병일기해년(1959년) 2월 23일 종군 처사 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소종(族少從) 병일(秉日)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이 모범적인 행동과 덕스러운 모습으로, 가정에서는 효도하고 우애있게 지냈으며 남에게는 인자하고 어질게 행하셨음을 찬양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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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병모가 대종군 처사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78] / 기록자료>고문서 / 족말 병모기해년(1959년) 2월 23일 종군 처사 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말(族末) 병모(秉謨)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의 성품때문에 집안에 파란이 없었고, 밝은 해같이 공정한 마음때문에 사사롭게 편가름이 없었으며, 여기에 달빛에 비친 연꽃같이 아름다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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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족소자 호선이 종군 처사부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4779]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자 호선기해년(1959년) 2월 23일 종군 처사부군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소자 호선(浩善)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가정교육이 엄정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선조들이 남긴 은택을 이어 받아, 선조들을 받들고, 정성과 공경으로 남들과 접했음을 언급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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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만희가 처사부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4780]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만희기해년(1959년) 2월 23일 당형 처사부군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종제(從弟) 만희(萬熙)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온화하고 덕스러움은 타고난 품성이고 총명하고 박아(博雅)함은 형의 재지(才智)요, 밝게 조수(操守)함은 형의 정고(貞固)이며, 효우와 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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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족소자 병종이 종군 처사부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4781]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자 병종기해년(1959년) 2월 23일 종군 처사부군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소자 병종(秉宗)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이 있을때는 집안의 전형(典型)이 있었지만, 돌아가신 뒤에는 집안의 전형(典型)이 텅비게 되었으며, 의지하고 본받을 사람이 없음을 안타까워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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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진성 이건호가 사장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82]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진성 이건호기해년(1959년) 2월 23일 사장처사(查丈處士) 재령 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사하생(查下生) 진성 이건호(李健鎬)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의 의표는 찬란하고, 덕행은 세상의 기강이 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말은 간결하면서도 엄중하고 기운은 온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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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통가하생 의성 김시현이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83]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의성 김시현기해년(1959년) 2월 15일에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통가하생 의성 김시현(金時鉉)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일때문에 당일 곡을 하러 갈 수 없기때문에 미리 제문을 지었음을 밝히고 있다. 더군다나 오늘 왕고(王考)가 죽어서 슬픈데다가 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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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영양 남호인이 내종형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84]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제 영양 남호인기해년(1959년) 2월 23일 외사촌형 처사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고종사촌 동생 남호인(南浩仁)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고모 조카 사이로 나이는 비록 차이가 있었지만 서로간의 윤리강상이 더욱 돈독하여 자신이 항상 기뻐하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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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계가생 진성 이병문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85] / 기록자료>고문서 / 계가생 진성 이병문기해년(1959년) 2월 23일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계가생(契家生) 진성 이병문(李炳文)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효우(孝友)스런 마음과 인애(仁愛)스런 행동은 군자답고, 우뚝한 거동과 순수한 모습은 대가의 주인답다고 말하고 있다. 한결같은 정성에 친족들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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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표종소제 무안 박형락이 내종형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86]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소제 무안 박형락기해년(1959년) 2월 23일 외사촌형 처사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고종사촌 동생 무안 박형락(朴亨洛)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으로 하였고 선조들을 받듬에 정성으로 하였으며, 여러 친족들을 통솔함에 온화한 봄바람처럼 하였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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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순흥 안용훈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87]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순흥 안용훈기해년(1959년) 2월 23일 처사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세하생(世下生) 순흥 안용근(安鎔堇)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의 품성은 너그럽고 온화하여 효우스런 행동으로 나타났으며, 공의 거동은 위엄있고 중후하여 군자스런 풍모를 지녔음을 언급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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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영양 남수진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88]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영양 남수진기해년(1959년) 2월 23일 처사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시하생(侍下生) 영양 남수진(南洙鎭)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사람이 태어남에 모두가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사람이 죽음에 모두가 애통해 하는 것은, 대인군자가 아니면 능히 할 수 없는 일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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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영양 남중상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89] / 기록자료>고문서 / 계하생 영양 남중상기해년(1959년) 2월 23일 처사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세하생(世下生) 영양 남중상(南重相)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아름다운 덕성(德性)과 정성스러운 지행(志行)을 지녔음을 나타내고 있다. 정성스럽게 가르쳐준 은혜에 보답할 수 없음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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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종질녀서 안동 권병모가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90]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녀서 안동 권병모기해년(1959년) 2월 23일 처사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종질녀 사위 권병모(權炳謨)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30세에 지은 것으로, 공의 헐칠한 키와 하얀 수염과 눈썹은 고인(古人)의 풍모를 지녔으며, 온아하고 인자한 품성에 삼가고 분수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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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족소자 근호가 대종군 처사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91]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자 근호기해년(1839년) 3월 22일에 대종군 처사 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소자 근호(根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자신을 제문만 짓고 곡을 할 사람은 재종재 식호(植浩)가 할 것임을 언급하고 있다. 천부적인 효우와 본성적인 문학을 지녔음을 언급하고 있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