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28651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질녀서 영양 남중갑이 빙숙부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92] / 기록자료>고문서 / 질녀서 영양 남중갑기해년(1959년) 2월 23일 빙숙부(聘叔父)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질녀사위 영양 남중갑(南重甲)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죽으면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흐르는 물에 비유하면서 애통해하고 있다. 우뚝한 기운을 다시 접할 수 없으며, 온화한 가르침출처 : 유교넷 -
228652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낙현이 처사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93]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낙현기해년(1959년) 2월 23일 처사 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종(族從) 낙현(洛鉉)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어릴때부터 함께 자라면서 웃고 슬퍼하고 기뻐하였으며, 밤낮으로 대화하고 장난하던 일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음을 안타까워출처 : 유교넷 -
228653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족인 구현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94] / 기록자료>고문서 / 족인 구현기해년(1959년) 2월 23일 처사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조행족(祖行族) 구현(九鉉)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충효로써 대가의 종당을 이끌어 오셨고, 옛 선조들의 유풍을 이어받은 모습은 공자와 맹자에 가까울 정도임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시서(출처 : 유교넷 -
228654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족종소자 현욱이 대종군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95]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소자 현욱기해년(1959년) 2월 23일 대종군 처사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종소자(族從小子) 현욱(鉉郁)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작은 언덕이 없이 큰 산을 이룰 수 없으며 가지와 잎 때문에 큰 나무와 이루어 지듯이, 바다와 산들은 선조들이 기초를 마련하고 운악출처 : 유교넷 -
228655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현동이 종군 처사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96] / 기록자료>고문서 / 종하생 현동기해년(1959년) 2월 23일 종군 처사 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종하생 현동(鉉東)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이 죽어 집안의 의범(儀範)이 세상에 영원히 끊어지게 되었음을 애통해 하고 있다. 공의 덕행의 만분의 일도 표현할 수 없겠지만, 사사롭게출처 : 유교넷 -
228656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479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조부 뇌공(酹公)의 유문(遺文)을 조부의 유지(遺旨)에 따라서 고인의 영전에 바친 제문(祭文)이다.. 운악공의 유풍을 300년동안 잘 이어받아 효우를 행하고 친족들을 화목하게 이끌것은 공의 타고난 천성임을 표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657
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의성 김기병이 표종형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98]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제 의성 김기병무인년(1938년) 5월 16일 고종사촌형 재령이공의 기일을 맞이하여 한달 전 4월 1일에 외사촌동생인 의성 김기병(金基秉)이 쓴 제문(祭文)이다.. 어진 운악공의 집안에서 태어나서, 유풍을 이어받고 더욱더 두텁게 만들었으며, 80년 동안 항상 근칙(謹飭)하였음을 밝출처 : 유교넷 -
228658
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통가소제 낙안 오계목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799]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소제 낙안 오계목무인년(1938년) 7월 8일 안릉이공의 기일을 맞이하여 통가소제(通家少弟) 낙안(樂安) 오계목(吳啓睦)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자신은 병이들어 대신 손자 병태(炳泰)를 보내게 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인자함과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을 용납하니 타인을 교접하는데에출처 : 유교넷 -
228659
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문소 김동환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00]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문소 김동환무인년(1938년) 7월 8일 안릉이공의 기일을 맞이하여 세하생(世下生) 의성 김동환(金東煥)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남들에게 관대하게 대하여 남들과 더불어 거슬림이 없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순수하고 효성스러우며 어질고 인자한 모습에 탄복하였음을 밝히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660
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영양 이유일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01]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영양 이유일무인년(1938년) 5월 16일에 처사 재령이공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세가하생(世家下生) 영천 이유일(李裕一)이 쓴 제문(祭文)이다.. 돈목(敦睦)하는 의리에 효우(孝友)의 풍모를 지녔기에, 고을사람들이 귀속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81년동안 군출처 : 유교넷 -
228661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영양 남하진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02] / 기록자료>고문서 / 척소제 영양 남하진기해년(1959년) 2월 23일 처사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척소제(戚少弟) 영양 남하진(南廈鎭)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천지가 닫히고 일월이 어두워지며, 세상이 쇠퇴하고 인도(人道)가 사라졌을때 성령을 보전할 수 있는 사람은 공밖에 없음을 드러출처 : 유교넷 -
228662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평산 신만원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03] / 기록자료>고문서 / 척말 평산 신만원기해년(1959년) 2월 23일에 처사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척말(戚末) 평산 신만원(申萬源)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영남에서 명망있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효제(孝悌)를 먼저 행하고 여력이 있으면 학문을 하였음을 기리고 있다. 또한 친족들을 화목하고 이끌었출처 : 유교넷 -
228663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정소제 진성 이지호가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04] / 기록자료>고문서 / 정소제 진성 이지호기해년(1959년) 2월 23일 처사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정소제(情少弟) 진성 이지호(李祉鎬)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운악공의 고택을 수백년간 지켜오면서, 촌스러울지언정 사치스럽지 않았고 소박할지언정 꾸미지 않았으며, 자신의 장점을 자랑하지 않고 남의 단출처 : 유교넷 -
228664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안동 권오윤이 중표숙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05]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질 안동 권오윤기해년(1959년) 2월 23일 고모부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처조카 안동 권오윤(權五潤)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바다 고을의 문헌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시례와 효우를 익혔으며, 너그럽고 온화한 품성은 들뜨고 시끄러운 풍속을 진압할 수 있었음을 드출처 : 유교넷 -
228665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평산 신세희가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06] / 기록자료>고문서 / 인하생 평산 신세희기해년(1959년) 2월 23일 처사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인하생(隣下生) 평산 신세희(申世熙)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성품이 청렴하고 검약하며 어질고 인자하여 집에 들어가서는 효제로 닦고 밖에 나와서는 학문을 닦았음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웃마을에 살면출처 : 유교넷 -
228666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통가하생 진성 이민호가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07]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진성 이민호기해년(1959년) 2월 23일 처사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통가하생 진성 이민호(李珉鎬)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500년간의 성망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선조들의 가르침을 빛나게 하였으며, 세상이 어지러울때는 두문잠적하여 자신의 내면수양에 전념하였출처 : 유교넷 -
228667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표제시하생 의성 김시령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08] / 기록자료>고문서 / 표제시하생 의성 김시령이 문서는 기해년(1959년) 4월 8일에 이종사촌 동생인 김시령(金時齡)이 재령이씨 이대질(李大耊)이 죽은 지 3년이 되어 그의 덕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서 지어진 제문(祭文)이다.. 살아계실 때는 늘 효제(孝悌)로써 행하시고 모든 행동에 위의(威儀)가 있어 영남에출처 : 유교넷 -
228668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족종시생 덕호가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09]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시생 덕호이 문서는 기해년(1959년) 4월 8일에 족종시하(族從侍下) 이덕호(李悳浩)가 재령이씨 이복교(李卜珓)의 기일을 맞아 그의 덕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서 지어진 제문(祭文)이다.. 살아계실 때는 그렇게 강건하신 분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슬픔을 금할 길이 없다.출처 : 유교넷 -
228669
재령이씨 충효당 기유년에 종손 언흠이 종조모유인 밀양박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4810] / 기록자료>고문서 / 종손 언흠이 문서는 기유년(1969년) 12월 28일 종손 언흠(彦欽)이 종조모 밀양박씨의 1주년 기일(忌日)을 맞아 전날 저녁에 지은 제문(祭文)이다.. 살아 생전에 목소리가 귀에 생생하고 웃으시는 모습이 눈앞에 선한데, 직접 볼 수 없는 애통함을 금할 길이 없다고 하면서출처 : 유교넷 -
228670
재령이씨 충효당 기유년에 질녀서 영양 남중갑이 유인 밀양박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4811] / 기록자료>고문서 / 질녀서 영양 남중갑이 문서는 기유년(1969년) 12월 28일 밀양박씨 중상일을 맞아 조카 사위인 남중갑(南重甲)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사람이 오래사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오늘 제사일을 맞아 아들 손자들이 즐비하게 와서 참석하였음에 조카사위의 입장으로 당당하게 와서 생전출처 : 유교넷 -
228671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중내제시생 의성 김영환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12] / 기록자료>고문서 / 중내제시생 의성 김영환이 문서는 기해년(1959년) 4월 8일에 중내제(重內弟) 김영환(金英煥)이 재령이씨의 담제일을 맞아 그의 덕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서 지어진 제문(祭文)이다.. 살아계실 때는 그렇게 강건하신 분이 이 세상이 계시지 않으니 슬픔을 금할 길이 없어 제수(祭需)를 차려출처 : 유교넷 -
228672
재령이씨 충효당 병술년에 화산 권도가 절충장군룡양위부호군 낙파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13]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자 화산 권도이 문서는 고종 23년 병술년(1886년) 5월 1일에 권도(權鍍)가 절충장군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龍驤衛副護軍) 약파(藥坡) 이공의 소상을 맞아 지은 제문(祭文)이다.. 풍유(風猷)의 돈후함은 계세(季世)의 사표요, 위의(威儀)의 남겨짐은 고가(古家)의 전범(典範)임을출처 : 유교넷 -
228673
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병필이 재종형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14]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병필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6일에 재종형의 기일을 맞아 재종동생인 병필(秉弼)이 쓴 제문(祭文)이다.. 내용을 보면 형보다 늦게 태어나 어찌 형을 제대로 알겠는가마는 평상시 보고 들은 바대로 말하면 타고난 품성은 순심후박(淳深厚博)하고, 의표(儀表)는 굉위출처 : 유교넷 -
228674
재령이씨 충효당 병자년에 병진이 재종종형 처사부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4815]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병진이 문서는 병자년 10월 16일에 재종형의 기일 2주기를 맞아 재종동생인 병진(秉軫)이가 쓴 제문(祭文)이다.. 물려받은 기상은 맑고 빼어나며, 부여받은 품성은 강직하고 밝으며, 오랫동안 수를 누렸으니 복된 삶이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또 고을에서는 유학의 근간을 형성출처 : 유교넷 -
228675
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수진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16]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수진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6일 처사 안릉(安陵)이씨의 종상(終祥)을 맞아 전날 저녁에 족종(族從)인 수진(壽晉)이 쓴 제문(祭文)이다.. 시비(是非)를 올바르게 판별해줌으로서 남들이 복응하게 되었고 문중의 일을 잘 처리하였으며, 효우(孝友)를 몸소 실천하출처 : 유교넷 -
228676
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외손서 순흥 안용훈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17] / 기록자료>고문서 / 외손서 순흥 안용훈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4일에 외손서(外孫壻) 안용훈(安鎔薰)이 처사공 재령이씨 종상(終祥)을 하루 앞두고 쓴 제문(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228677
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평해 황재곤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18] / 기록자료>고문서 / 계하생 평해 황재곤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6일 처사 재령이씨의 종상(終祥)을 맞아 황재곤(黃載坤)이 쓴 제문(祭文)이다.. 황재곤은 제사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대신 종제인 재홍(載洪)에게 제사에 참석하라고 부탁하면서 제문만 지어 주었다. 동쪽 끝에서 영남의 문화를 유통시켜출처 : 유교넷 -
228678
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문소 김옥연이 충효당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19]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제 문소 김옥연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28일 내종제(內從弟) 김옥연(金玉淵)이 재령이씨의 금상(琴祥)을 맞아 지은 제문(祭文)이다.. 학문을 박학하고 행실은 돈독하고, 질박하고 문순(文醇)하며,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고 성리서들을 두루 접하였다고 했다. 그리하여 모든출처 : 유교넷 -
228679
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안동 권정원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20] / 기록자료>고문서 / 계하생 안동 권정원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6일, 처사 재령이씨의 금상(琴祥)을 맞아 전날 저녁에 계하생 권정원(權正源)이 쓴 제문(祭文)이다.. 우리 고향은 자식이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은지 오래되었으며, 그의 순수하고 정직하고 돈독한 성품은 10세를 이어받았지만, 문헌은출처 : 유교넷 -
228680
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통가생 함양 박주락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21]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생 함양 박주락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6일, 고 처사 재령이씨의 종상(終祥)을 맞아 전날 저녁에 이웃에 사는 통가생(通家生) 박주락(朴周洛)이 쓴 제문(祭文)이다.. 공의 자상하고 순박하며 맑고 중후하며 침묵하심은 천부적인 것이며, 몸소 효제를 행하시고 시례를 복응하출처 : 유교넷 -
228681
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통가생 전의 이창호가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22]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생 전의 이창호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6일, 고 처사 재령이씨의 대상(大祥)을 하루 앞두고 통가생(通家生) 이창호(李昌鎬)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원근의 선비들이 와서 문상을 함에 공적인 경우는 공적인 일로 와서 문상을 하는데, 나도 공적인 입장이지만 공적으로 문출처 : 유교넷 -
228682
재령이씨 충효당 계미년에 증손서 평산 신병걸이 빙증조모유인 문소김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4823] / 기록자료>고문서 / 증손서 평산 신병걸이 문서는 계미년(1943년) 11월 29일, 고 빙증조모(騁曾祖母) 유인(孺人) 의성 김씨의 중상(中祥)을 앞둔 저녁에, 증손서(曾孫壻)인 신병걸(申昞杰)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제가 유인의 집을 드나들때 유인은 이미 병석에 계시다가 얼마 안있어 돌아가셨으니 제출처 : 유교넷 -
228683
재령이씨 충효당 계미년에 외손 영양 남호인이 외왕모유인 의성김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4824] / 기록자료>고문서 / 외손 영양 남호인이 문서는 계미년(1943년) 11월 29일, 외왕모(外王母) 유인 의성 김씨의 중상(中祥)일을 앞둔 전날 저녁에, 외손(外孫) 남호인(南浩仁)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유인이 돌아가시던 날 글을 지어 곡을 하려고 하였지만 예법에 '정분이 지극하면 글을 짓지 않는다출처 : 유교넷 -
228684
재령이씨 충효당 을유년에 자종손 전주 유동도가 대자모유인 의성김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4825] / 기록자료>고문서 / 자종손 전주 류동도이 문서는 을유년(1945년) 1월 5일, 고 대이모(大姨母) 유인 의성 김씨의 담제를 맞아 이종손인 류동도(柳東燾)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지난번 한 두 번 찾아뵈었는데, 자식들이 어질고 인자한 성품을 지닌 것은 진실로 이모님에게 부여받은 것임을 알았음을 나타내출처 : 유교넷 -
228685
재령이씨 충효당 계미년에 여서 영양 남진도가 빙모유인 의성김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4826]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영양 남진도이 문서는 계미년(1943년) 11월 29일, 빙모(聘母) 유인 의성 김씨의 종상(終祥)을 하루 앞둔 저녁에, 사위인 남진도(南鎭燾)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장모께서 자신을 사랑하심이 한결같았으며, 순근(淳勤)의 가르침을 주셨고 인자(仁慈)의 정을 불어넣어 주셔서출처 : 유교넷 -
228686
재령이씨 충효당 기묘년에 친가질 의성 김병옥이 고모 재령이유인 의성김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4827]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질 의성 김병옥이 문서는 기묘년(1939년) 11월 17일, 고모(姑母) 유인 의성김씨의 종제(終制)를 맞아 친가의 조카 김병옥(金秉鈺)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재령이씨 집안으로 시집가서 십 년을 대종의 의범을 갖추었으며, 아버지께서 편찮으실때 고모께서 자신의 병처럼 간호해 주출처 : 유교넷 -
228687
재령이씨 충효당 갑신년에 외손 의성 김시령이 외조비유인 의성김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4828] / 기록자료>고문서 / 외손 의성 김시령이 문서는 갑신년(1884년) 2월 6일, 외조모 유인 의성 김씨의 복교(卜珓)일을 맞아 외손인 김시령(金時齡), 시박(時博), 시발(時潑), 시항(時恒)이 올린 제문(祭文)이다.. 예법에 '정분이 지극하면 글을 짓지 않는다'고 하지만 애통함이 창자를 끊는 듯하여 글출처 : 유교넷 -
228688
재령이씨 충효당 계미년에 족소자 현문이 유인 의성김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4829]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자 현문이 문서는 계미년(1943년) 11월 29일, 고 유인 의성김씨의 중상(中祥)을 하루 앞둔 저녁에 족소자(族小子) 현문(鉉文)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어릴때부터 성장하기까지 먹여주시고 어루만져 주신 은혜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손님이나 제사를 받들출처 : 유교넷 -
228689
재령이씨 충효당 갑신년에 부소제 대흥 백기동이 자형 낙파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30] / 기록자료>고문서 / 부소제 대흥 백기동이 문서는 갑신년(1884년) 9월 6일에 부소제(婦少弟) 백기동(白基東)이 이종사촌 형인 약파(藥坡) 이함(李咸)을 애도하기 위하여 지은 제문(祭文)이다.. 세상이 혼탁하여 어진이와 어리석은 자를 분별하기 어려운데 내가 어찌 평가하리오마는 자식이 아버지의 가르침을출처 : 유교넷 -
228690
재령이씨 충효당 기사년에 우 영양 남일운이 충효당주인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31] / 기록자료>고문서 / 우 영양 남일운이 문서는 기사년(1809년) 10월 15일에 남일운(南一運)이 재령이씨 성실(聖實)의 장사를 이틀 앞둔 저녁에 지은 제문(祭文)이다.. 서로를 안다는 것은 거문고 타고 술을 함께 마시는 것이 아니니, 그대의 너그러움은 나의 스승이요, 그대의 굳셈은 나의 두려움이라고출처 : 유교넷 -
228691
재령이씨 충효당 갑신년에 수만이 종군호군 낙파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32] / 기록자료>고문서 / 족숙 수만이 문서는 갑신년(1884년) 9월 8일, 호군 약파공의 장사일을 이틀 앞두고 족숙인 수만(壽萬)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집안의 전통을 이어받아 정중하게 의논하고 책임있게 행동하고 사양하여, 사납게 하지 않아도 남들이 두려워하고 위엄있게 하지 않아도 남들이 공경하출처 : 유교넷 -
228692
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세가하생 문소 김시윤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33] / 기록자료>고문서 / 세가하생 문소 김시윤이 문서는 기해년(1959년) 4월 8일에 안릉 이씨의 담제일을 맞아 김시윤(金時潤)이 쓴 제문(祭文)이다.. 공과 부친이 서로 지기로서 생활하다가 자신의 부친은 오래 살지 못했는데 공이 오래 살아계시어 남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인량리는 자출처 : 유교넷 -
228693
재령이씨 충효당 갑신년에 통가생 진성 이중범이 낙파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34]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생 진성 이중범이 문서는 갑신년(1884년) 9월 8일, 약파(藥坡) 재령 이공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통가생(通家生) 진성 이씨 이중범(李中範)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내용을 보면 공의 모습은 선학(仙鶴)같고 정신은 옥설(玉雪)같으며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고 검약으로 가정을 다스출처 : 유교넷 -
228694
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병찬이 재종질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35]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숙 병찬이 문서는 무술년(1958년) 2월 23일, 재종질 처사공의 중상(中祥)을 하루 앞둔 저녁에 재종숙 병찬(秉燦)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우리 안릉 이씨는 대대로 밝고 밝아, 맑고 검소한 유풍과 문장의 중형(重衡)과 가르침을 받는 교훈은 우리 사림들이 추종하는 것이출처 : 유교넷 -
228695
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부이질 진성 이교우가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36] / 기록자료>고문서 / 부이질 진성 이교우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6일, 고 처사 재령 이함(李涵 ; 1554∼1632, 호 : 雲嶽)의 종상(終祥)일을 하루 앞두고 부이질(婦姨姪) 진성 이교우(李敎雨)가 지은 제문(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228696
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인척지상우무안 박홍수 등이 처사 재령이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4837] / 기록자료>고문서 / 인척지상우무안 박홍수, 사손 재택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5일, 처사 재령 이경두(李敬斗)의 종상(終祥)일을 하루 앞두고 인척이면서 친구인 무안 박홍수(朴弘秀)가 손자로 하여금 제수품을 갖추어 통곡한 마음을 전하는 제문(祭文)이다.. 많은 재령이씨 중에 안릉씨가 가장 번창하였으며 모습은출처 : 유교넷 -
228697
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손녀서진성 이원복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38] / 기록자료>고문서 / 손녀서진성 이원복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6일, 고 처사 재령이씨의 대상(大祥)을 하루 앞둔 저녁에 손녀 사위인 진성 이원복(李源馥)이 처사공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제문(祭文)이다.. 제가 늦게 태어나서 공의 덕행을 만분의 일이라도 알 수 없지만 외람되이 공의 행의를 살펴출처 : 유교넷 -
228698
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통가시하생 진성 이동은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39]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하생 진성 이동은이 문서는 무술년(1958년) 2월 23일, 고 처사 안릉 이공의 중상(中祥)일을 하루 앞둔 저녁에 통가시하생(通家侍下生)인 진성 이동은(李東恩)이 지은 제문(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228699
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평해 황재홍이 내구주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40]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평해 황재홍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5일에 외삼촌 고 처사 안릉 이공의 종상(終祥)일을 하루 앞둔 저녁에 생질인 평해 황재홍(黃載洪)이 지은 제문(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228700
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의성 김영식이 표종형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41]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제 의성 김영식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6일에 표종형 처사 안릉 이공의 종상일을 하루 앞둔 저녁에 내종제인 의성 김영식(金瑛植)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의 집안은 바닷가 명문가 집안으로 시례로서 교육하고 효제로서 가르쳐 문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했다. 세월이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