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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계가생 영양 남오진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42] / 기록자료>고문서 / 계가생 영양 남오진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5일에 계가생(契家生)인 영양 남오진(南五鎭)이 고 처사 재령 이공에게 제를 올릴 때 지은 제문(祭文)이다.. 세상에서 오래 살았느니 일찍 죽었느니 복이다 재앙이다 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공이 나에게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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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족하생 항발이 대종군 처사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43] / 기록자료>고문서 / 족하생 항발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5일에 고 대종군(大宗君) 처사 재령 이공의 종상일을 하루 앞둔 저녁에 족하생(族下生)인 항발(恒發)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노전지 경광을 갖추어 마을에서는 두려워하고 경복하였으며, 향당에서는 우러러보고 사모하였으며, 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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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족소종 상현이 종군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44]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종 상현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5일에 고 대종군(大宗君) 처사 재령 이공의 종상일을 하루 앞둔 저녁에 족소종(族少從)인 상현(尙鉉)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운조(雲祖)공의 주손으로 효우를 이어받았으며, 온아한 자태와 순진한 성품으로 향당에선 존망을 받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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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김성 박원수가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45] / 기록자료>고문서 / 계하생 김성 박원수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5일에 고 처사 안릉 이씨의 종상일을 하루 앞둔 저녁에 계하생인 면성 박원수(朴元秀)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충효당의 모유(謀猷)를 공이 이어 받아 아름다운 것과 짝하여 이어 받았으며, 타고난 자질이 두터워 사람들에게 중망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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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건발이 대종군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46] / 기록자료>고문서 / 종하생 건발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7월 8일에 고 대종군 처사 안릉 이공의 담제(禫祭)일을 맞아 종하생(宗下生) 건발(健發)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께서는 심성이 너그럽고 두터웠으며 용모가 풍만하고 크셨으며 말을 할 때는 삼가고 일을 할 때는 더욱 공손하여 모든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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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질녀서 낙안 오희직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47] / 기록자료>고문서 / 질녀서 낙안 오희직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7월 8일에 고 처사 안릉 이공의 담제(禫祭)일을 맞아 손녀 사위인 낙안 오희직(樂安 吳熙稷)이 쓴 제문(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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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친가종손 용대가 고숙모 이유인 의성김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4848]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종손 용대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11월 17일에 존고숙모(尊고모부母) 이유인(李孺人) 의성 김씨의 대상일을 하루 앞둔 저녁에 친가의 종손(從孫) 용대(龍大)가 쓴 제문(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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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손녀서 영양 남성진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49] / 기록자료>고문서 / 손녀서 영양 남성진이 문서는 고 처사 재령이공의 금상(琴祥)일이 무인년(1938년) 5월인데, 손녀사위인 영양 남성진(南星鎭)은 멀리 다른 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소식을 접하여 6월 15일날 쓴 제문(祭文)이다.. 공은 고가의 주손으로 호방한 기상에 마음이 넓었으며, 평소 말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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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손녀서 영양 남중갑이 빙대구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50] / 기록자료>고문서 / 손녀서 영양 남중갑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5일에 처사 안릉 이공의 금상(琴祥)일을 하루 앞둔 저녁에 손녀 사위인 영양 남중갑(南重甲)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병자년(1936년) 봄에 제가 처음 공의 집안에 기러기를 보내던 날(전안례) 공은 이미 병석에 계셨는데 제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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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종생질 영양 남창호가 내종숙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51] / 기록자료>고문서 / 종생질 영양남창호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5일에 내종숙인 처사 재령이공의 상결(祥闋)일을 하루 앞둔 저녁에 종생질인 영양 남창호(南昌鎬)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제가 어릴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왕래하면서 공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며, 공이 돌아가신 뒤로는 예의가 땅에 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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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재종소제 병규가 종형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52]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소제 병규무인년(1938년) 5월 16일 재종형 처사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재종 동생 병규(秉圭)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풍채가 엄정하고 의관이 매우 위대하며 기량이 엄숙하여 마치 산을 바라보는 것 같아 동생으로서 감히 자리를 함께할 수 없음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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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철호가 대종군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53] / 기록자료>고문서 / 종하생 철호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5일에 고 대종군 처사 안릉 이씨의 종상일을 하루 앞둔 저녁에 종하생(宗下生) 철호(喆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운조공의 문학과 도덕을 이어 받아 충효당의 주인이 되어 모범되는 준칙이 있으셨으며, 효우와 충신으로 친족과 향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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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기영이 종군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54]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복인 기영이 문서는 기해년(1959년) 4월 8일 안릉 이씨의 담제일을 맞아 종족복인(宗族服人) 기영(箕榮)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의 맑은 자태와 온아한 행실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하며 학문, 나이, 덕행이 탁월하였는데, 공이 이제 계시지 않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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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정소제 영양 남조철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55] / 기록자료>고문서 / 정소제 영양 남조철이 문서는 무인년(1938년) 5월 15일에 처사 안릉 이공의 종상일을 하루 앞둔 날 정소제(情少弟) 영양 남조철(南朝澈)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중후한 자질에 온화한 품성을 지녔고 효우를 기틀로 삼아 모든 행실을 쌓았으며 집안을 도와 가문을 살찌웠으며, 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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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안동 권동호 등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56]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제 안동권동호·동규 등이 문서는 무술년(1958년) 2월 22일에 고 처사 재령이공의 연제(練祭:소상)일 전날에 내종제 권동호(權東浩), 권동규(權東奎)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덕이 넉넉하고 천수를 누렸으며 바닷가에서 명문거족이 되었다고 했다. 난리(6.25동란)를 겪으면서 자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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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통가하생 평산 신기환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57]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평산 신기환이 문서는 무술년(1958년) 2월 22일에 고 처사 재령 이공의 소상일 전날에 통가하생(通家下生)인 신기환(申基煥)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효우를 쌓고 화락하게 지냈으며, 자손들이 번창하고 구십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니 임금도 부럽지 않아 서운할것이 없지만 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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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해년에 세가자 의성 김시식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58] / 기록자료>고문서 / 세가자 의성 김시식이 문서는 기해년(1959년) 1월 15일에 고 처사 재령 이씨의 대상일을 한달 앞두고 세가자(世家子)인 김시식(金時湜)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이 유람함에 시냇물도 윤택해지고 초목들도 꽃을 피웠으며, 망년지우를 맺어 어진 사람들도 함께 어울렸다고 했다. 내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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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영양 남병한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59] / 기록자료>고문서 / 계하생 영양 남병한무술년(1958년) 2월 23일 고 처사 안릉이공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계하생 남병한(南炳韓)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의 집안은 바닷가 명문거족으로 밝은 시대의 문헌과 시례가 서로 승습되었으며, 공은 효우로써 집안을 다스리고 화목으로 친족들을 규합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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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권하생 일선 김병호가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60] / 기록자료>고문서 / 권하생 일선 김병호무술년(1958년) 2월 23일 고 처사 안릉이공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권하생(眷下生) 김병호(金炳虎)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쇠퇴해져가던 문풍이 공에게 와서 다시 새롭게 되었는데, 공이 죽음에 다시 세도가 쇠락해짐을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아버지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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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현중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61]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현중무술년(1958년) 2월 23일 고 종군 처사 재령이공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종(族從) 현중(鉉重)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모습은 단아하고 지조는 빙설같았으며, 어진성품으로 선조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말하고 행동할때 삼가고 조심하였으며, 충신을 근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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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현문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62]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현문무술년(1958년) 2월 23일 고 종군 처사 재령이공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종(族從) 현문(鉉文)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충효의 가풍을 전하고 시례의 유풍을 남긴 사람은 공 한사람밖에 없음을 언급하고 있다. 공보다 16살 어린 자신을 비열하게 대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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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종질녀서 진성 이순교가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63]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녀서 진성 이순교무술년(1958년) 2월 23일 고 종군 처사 재령이공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종질녀 사위인 진성 이순교(李純敎)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의 마음은 견고하고 행동은 힘차며, 성품은 어질고 인자하였고 덕은 근후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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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종질녀서 낙안 오병태가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64]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녀서 낙안 오병태무술년(1958년) 2월 22일 처사 재령이공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종질녀 사위인 낙안(樂安) 오병태(吳炳泰)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이 죽었다는 소식에 온나라가 애통해하고 온 향리가 슬퍼한 것은 단지 정에 매여서가 아니고, 공의 공헌으로 인해 어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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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진성 이창수가 내종형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65]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제 진성 이창수무술년(1958년) 2월 23일 외사촌형 처사 안릉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고종사촌 동생 진성 이창수(李昌洙)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이 죽음으로 인해 풍속이 쇠퇴하고 윤리가 무너지게 되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때는 공의 실덕(實德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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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통가하생 평산 신상길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66]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평산 신상길무술년(1958년) 2월 23일 처사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저녁에 통가하생 평산 신길(申吉)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온아한 자태에 근신한 덕을 지녔으며, 효우로써 집안을 이끌고 충신으로 남들과 교접하여 향린(鄕隣)에서 추앙하고 종당(宗黨)에서 탄복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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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족종시교생 현석·현대가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67]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시교생 현석·현대무술년(1958년) 2월 23일 처사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종시교생(族從侍敎生) 현석(鉉碩)•현대(鉉大)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충효당에서 태어나 시례의 가르침을 받은 공은 본성은 효제롭고 본심은 인자하고 자애로와 집안의 동량이 되었음을 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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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병필이 종군 만산처사에게 올린 제문(祭文)[14868]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숙 병필무술년(1958년) 2월 23일 종군 만산(晩山)처사의 소상일을 하루 앞둔 저녁에 재종숙 병필(秉弼)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말과 행동, 마음과 모습이 모두 옛스러워 고인(古人)에 비유하고 있으며, 순진한 성품에 검소한 바탕을 지녀 농사일로 자손들을 즐겁게 하였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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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족종시교생 현대가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69]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시교생 현대무술년(1958년) 2월 23일에 처사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종시교생(族從侍敎生) 현대(鉉大)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의 죽음으로 인해 후생들이 의탁할 곳이 없어지게 되었고, 문조가 쇠퇴하게 되었음을 표현하고 있다. 살아계실때 90을 바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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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족종시교생 문호가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70]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시교생 문호무술년(1958년) 2월 23일 처사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종시교생(族從侍敎生) 문호(文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집안에서 위로는 누세의 업을 지키고 아래로는 온 문중을 통솔하였음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유호덕(攸好德)은 하늘이 내려준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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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삼종소자 극호가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71]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소자 극호무술년(1958년) 2월 23일 처사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삼종소자(三從小子) 극호(極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고가(古家)에서 태어나 대인접물에 화기애애하였고, 선조들을 잇고 후배들을 열어줌에 규모가 정정하였으며, 충후(忠厚)하고 온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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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원호가 종군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72] / 기록자료>고문서 / 종하생 원호무술년(1958년) 2월 23일 종군 처사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날 저녁에 종하생(宗下生) 원호(元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이 살아계실적에 대전(大田) 재사(齋舍)가 뜻밖에 불타버려서 파보(派譜)간행이 중단된 것을 늘 애통하셨으며, 공이 죽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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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항발이 종군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73]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항발무술년(1958년) 2월 23일 종군 처사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날 저녁에 족종 항발(恒發)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살아생전에 보사(譜事)의 일로 서로 합심하여 5책을 만들었는데, 재사가 불타버려 중단되었다가 이제 노소(老少)가 협력하여 재사건립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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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창현이 종군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74]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창현무술년(1958년) 2월 23일 종군 처사 안릉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날 저녁에 족종 창현(昌鉉)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타고난 성품이 온아하며, 효우를 근본으로 하고 학문을 여사로 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자신의 막힌 부분은 반드시 소통시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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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현석이 종군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75]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현석무술년(1958년) 2월 23일 종군 처사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날 저녁에 족종 현석(鉉奭)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효우를 큰 근본으로 하여 덕을 닦았으며, 덕이 닦아지면 여사로 문장을 하였음을 표현하고 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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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굉주가 족형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76]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제 굉주무술년(1958년) 2월 23일 족형(族兄) 처사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날 저녁에 족소제(族小弟) 굉주(宏柱)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서울에서 살다가 뒤늦게 영남에 와서 살았기때문에 아직 화수회에도 기반이 없으며, 평상시 공과 대면한 적도 없지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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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병진이 종군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77]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숙 병진무술년(1958년) 2월 23일 종군 처사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날 저녁에 재종숙 병진(秉瑨)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비록 공에게 자신이 당숙이지만, 지위로 말하면 공은 종이고 자신은 지엽이며, 나이로 말하면 공은 어른이고 자신은 젊고, 자질로 말하면 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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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장호가 종군 처사 신암에게 올린 제문(祭文)[14878] / 기록자료>고문서 / 종하생 장호무술년(1958년) 2월 23일 종군 처사 신암(愼庵)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날 저녁에 종하생(宗下生) 장호(長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인애(仁愛)를 사물에까지 미치게 하고 충선(忠善)으로 사람과 접하였으며, 세상의 영욕을 뜬구름처럼 담박하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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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가통소제 영양 남오진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79] / 기록자료>고문서 / 가통소제 영양 남오진무술년(1958년) 2월 23일 처사 안릉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통가소제(通家少弟) 영양 남오진(南五鎭)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자신은 몸이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대신 글만 지어 집사자에 부탁함을 밝히고 있다. 공의 의리의 행동은 지나치지 않아도 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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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종숙 병주가 종군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80] / 기록자료>고문서 / 종숙 병주무술년(1958년) 2월 23일 종군 처사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날 저녁에 삼종숙 병주(秉周)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나라에 어진 임금이 있으면 나라가 흥하게 되고, 집안에 어진 주인이 있으면 집안이 잘 다스려지는 것처럼 공은 대종군으로 덕있는 군자의 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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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부종손 문소 김용대가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81] / 기록자료>고문서 / 부종손 문소 김용대무술년(1958년) 2월 23일 처사 안릉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부종손(婦從孫) 의성 김용대(金龍大)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충효당의 주손으로 덕행은 태산북두와 같았으며, 집안에선 효우(孝友)있게 향당에선 신의있게 대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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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병기가 백가재종질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82]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숙 병기무술년(1958년) 2월 23일 재종질 처사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날 저녁에 재종숙 병기(秉璣)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의 타고난 성품은 풍만하고 후덕하며, 정신은 단아하고 깨끗하며, 행의는 어질고 착함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처신에 있어서는 단정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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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손녀서 진성 이원홍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83] / 기록자료>고문서 / 손녀서 진성 이원홍무술년(1958년) 2월 23일 처사 안릉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날 저녁에 손녀사위 진성 이원홍(李源鴻)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가풍있는 집안에 추숭받기란 드문 일인데, 오직 공은 망벌(望閥)이 융성하여 종당이 모두 우러러보며 향당이 추숭하는 바 되었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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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권동만 등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84] / 기록자료>고문서 / 부질 권동만·동호·동규·동수 등정축년(1937년) 4월 23일 처의 친정조카 권동수(權東洙)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지난해 안릉이공의 별세때에는 권동만(權東萬)•동호(東浩)•동규(東奎)•동수(東洙) 등이 모두 연이어 병을 얻어 문상을 오지 못하였으며, 소상일은 5월 16일이지만 그때는 농사일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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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삼종제 태희가 종형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85]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제 태희무술년(1958년) 2월 23일 종형 처사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날 저녁에 삼종제 태희(泰熙)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이 살아계실때 공을 아는 사람은 모두 공경하고 사모하였으며, 공의 평상시 덕행은 남들이 미칠 수 없는 것이며, 어진 성품과 온아한 거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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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이병휘이 종군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86] / 기록자료>고문서 / 족말 이병휘무술년(1958년) 2월 23일 종군 처사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날 저녁에 족말 이병휘(李秉輝)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의 아름다운 덕은 가문의 종법이 되어 자손들은 원근친소의 구별없이 모두가 추숭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원로대신처럼 묘당위에 앉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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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병원이 종군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87]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병원무술년(1958년) 2월 23일 종군 처사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날 저녁에 족종 병원(秉元)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강직하고 분명한 자질에 자애롭고 어진 덕행을 지녔으며, 위기지학에 힘써 위로는 왕국(王國)에 수용(需用)되고 아래로는 문호를 유지할 수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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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병자년에 병균이 종형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88]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병균병자년(1936년) 6월 2일 사촌형 처사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날 저녁에 사촌동생 병균(秉均)이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보다 19살 어린 본인으로서는 공의 젊은 시절을 알 수 없지만, 몸소 겪은 바로는 천성이 순수하여 집안에서는 효우로써 대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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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만희가 백부 처사부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4889]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만희정축년(1937년) 5월 16일 백부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조카 만희(萬熙)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의지할 곳 없는 혈혈단신의 몸을 40년간 어루만지고 돌보아준 백부님의 은덕을 만분의 일이라도 갚으려고 하였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너무 애통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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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병자년에 중내제대흥백 남수중이 표형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90] / 기록자료>고문서 / 중내제대흥백 남수중병자년(1936년) 6월 2일 고종사촌형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외사촌 동생 대흥(大興) 백남수(白南壽)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세상의 법도가 쇠퇴하여 겉으로 자신을 꾸며서 남을 현혹시키기까지 함으로 인해 실질적인 덕행을 지닌 사람은 드문데, 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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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489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개갈(改竭)시에 지은 고유문이다. 선조의 터전위에 자손들이 번창하게 되었음을 기리고 있으며,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한줌의 흙, 하나의 돌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되지만, 16대 400년을 거치는 동안 비석이 마멸되었기 때문에 개갈하게 되었음을 알리고 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