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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계미년에 증손녀서 영양 남중갑이 유인 의성김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4892] / 기록자료>고문서 / 증손녀서 영양 남중갑계미년(1943년) 11월 29일 유인(孺人) 의성김씨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증손녀 사위인 남중갑(南重甲)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유인은 오늘날 여사(女史)로 집안을 마땅하게 하였으며, 아내의 도리를 잃지 않고 화목하게 지낸 것은 누구나 흠모의 대상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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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술년에 삼종제 무희가 삼종형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93]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제 무희무술년(1958년) 2월 23일 삼종형 처사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삼종제 무희(武熙)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두터운 덕과 너그러운 성품에, 종가를 보전시킨 법도와 남을 대하는 도리는 항상 한결같아, 향당에서는 모두 복종하였으며, 척족들은 모두 영예롭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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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묘년에 부족소자 이충호가 유인 의성김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4894] / 기록자료>고문서 / 부족소자 이충호기묘년(1939년) 11월 17일 유인 의성김씨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부족소자(夫族小子) 이충호(李忠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모친이 살아있을때 유인(孺人)과 항상 우애있게 지내면서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모친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이제 유인마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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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489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하방동(下芳洞) 개갈(改竭)시의 고유문이다.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하였으며, 재량(才良)에 사람들이 복종하고 효성스러움에 세상이 탄복하였음을 표현하고 있다. 과거시험을 보러갔다가 과장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오다가 37세의 나이로 죽게 됨에 부인도 자결을 하니 함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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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병자년에 족하생 돈호가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96] / 기록자료>고문서 / 족하생 돈호병자년(1936년) 6월 2일 종군처사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날 저녁에 족하생(族下生) 돈호(暾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십대에 걸쳐 전해내려온 충효와 대대로 승습된 시례가 자자손손 이어져 왔으며, 공이 이곳에서 태어나 80평생을 하루같이 전형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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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소손 재춘이 조고 처사부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4897] / 기록자료>고문서 / 소손 재춘정축년(1937년) 5월 16일 조부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손자 재춘(在春)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8세에 어머니를 여의하고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일이 바빠서 항상 조부와 조부가 사랑으로 보살펴 주었는데, 12세에 조모마저 세상을 떠나 오직 조부의 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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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영희가 백부 처사부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4898]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영희정축년(1937년) 5월 16일 백부 처사부군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조카 영희(英熙)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사람의 빈부귀천은 운명이지만, 지금 곤궁하면 훗날 부귀할 것이니 본심을 잃지 않고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생활해야함을 일깨워주셨다고 말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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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병자년에 한양 조태호가 내숙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899]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한양 조태호병자년(1936년) 6월 2일 외삼촌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날 저녁에 생질 한양 조태호(趙泰鎬)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어 엄격한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는데, 외삼촌을 믿고 따라 외롭지 않게 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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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병자년에 중표재종손 여강이희용이 중내재종조 처사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00] / 기록자료>고문서 / 중표재종손 여강이희용병자년(1936년) 6월 2일 중내재종조(重內再從祖)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날 저녁에 중표재종손(重表再從孫) 여강 이희용(李熙鏞)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글솜씨는 온 고을에서 칭송할 정도였고 천성을 잘 닦아 팔순까지 수를 누렸으며, 효성이 깊고 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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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병기가 재종형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01]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병기정축년(1937년) 5월 16일 재종형 처사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재종제(再從弟) 병기(秉璣)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충효의 가훈과 시례의 전함이 10대동안 지켜져 왔는데, 중세이래로 재앙이 겹쳐 제대로 전수하지 못하다가 공에게 와서 다시 새롭게 일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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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병자년에 김성 박형락이 내구 처사 안릉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02]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김성 박형락병자년(1936년) 6월 2일 외삼촌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날 저녁에 생질 면성 박형락(朴亨洛)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운조공의 유풍을 이어받아 충효로써 기틀을 삼고 문학으로 터전을 닦아 후손들에게 영향을 주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공의 평상시 행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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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병자년에 중표종질 여강 이규동이 중내종숙부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03] / 기록자료>고문서 / 중표종질 여강 이규동병자년(1936년) 6월 2일 중내종숙(重內從叔)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날 저녁에 중표종질(重表從侄) 여강 이규동(李圭東)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문행과 의범이 있었으며, 성품은 자애롭고 곡진하였음을 언급하고 있다. 작년에 백부마저 돌아가시어 집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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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부이질 문소김제식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04] / 기록자료>고문서 / 부이질 문소김제식정축년(1937년) 5월 15일 조부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부이질(婦姨姪) 의성 김제식(金濟植)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쇠퇴하고 무너져가는 풍속과 가풍을 공의 교화에 힘입어 다시 새롭게 일으킬 수 있었으며, 이런 모습에 복응하고 패복(佩服)하였음을 드러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764
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족생 낙현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05] / 기록자료>고문서 / 족생 낙현정축년(1937년) 5월 16일 대종군 처사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하생(族下生) 낙현(洛鉉)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운조공의 10대 주손으로 해마다 전형(典型)을 이어받아 시례(詩禮)와문헌(文獻)을 계술(繼述)의 토대로 삼았으며, 효제돈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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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현기가 종군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06] / 기록자료>고문서 / 종하생 현기정축년(1937년) 5월 16일 대종군 처사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종하생(宗下生) 현기(鉉基)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300년 동안 지켜져 온 충효당의 유풍을 지켜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공이 그 전범을 잘 이어받아 법도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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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족후생 근호가 종군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07] / 기록자료>고문서 / 족후생 근호정축년(1937년) 5월 16일 대종군 처사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족후생 근호(根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넓고 막힘이 없으며 후하고 박함이 없으며 고가(古家)의 전형을 보전한 사람임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소박하고 꾸밈이 없으며 순수하고 거짓이 없어 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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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병진이 재종형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08]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병진정축년(1937년) 5월 16일 재종형 종군 처사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재종제(再從弟) 병진(秉瑨)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침후(沈厚)한 자질에 효성스런 행동으로, 선조들의 제사를 잘 받들고 여러 종족들을 잘 보살폈으며, 돈독하고 화목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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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대흥 백순우가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09]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대흥 백순우정축년(1937년) 5월 16일 처사 안릉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세제(世弟) 대흥 백순우(白淳愚)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과 자신은 술과 시로써 사귀어 지기지우(知己之友)에 가까우며, 막역한 사이로 나이를 잊고 형체도 잊을 만한 절친한 사이였음을 피력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769
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족하생 재현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10] / 기록자료>고문서 / 족하생 재현정축년(1937년) 5월 16일 처사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족하생 재현(在鉉)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일찍이 가정의 유훈을 들었기에, 덕의(德儀)와 풍유(風猷)는 10대의 전형을 이어받았으며, 효우(孝友)와 돈목(敦睦)은 일시에 여러 사람을 거느릴 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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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병덕이 종형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11]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병덕정축년(1937년) 5월 15일 사촌형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하루 앞둔 저녁에 사촌동생 병덕(秉悳)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성묘 시절이 되면 항상 형을 따라 다녔는데, 이때 '너'라고 칭하지 않고 이름을 불러 주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일송(一松)의 시고(詩稿)가 7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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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영양 이유재가 사장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12] / 기록자료>고문서 / 계하생 영양 이유재정축년(1937년) 5월 16일 사장(査丈) 안릉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계하생(契下生) 영천 이유재(李裕載)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다행한 일이며, 친하지만 공경함을 잊지 않고 항상 한발 뒤에서 공을 믿고 의지하면 따랐음을 언급하고 있다.청명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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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무인년에 영양 남호인이 내구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13]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영양 남호인무인년(1938년) 5월 16일 외삼촌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생질 영양 남호인(南浩仁)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풍부한 덕성에 위엄있는 거동을 지녔으며, 4남 3녀가 강포속에 있을 때 공이 와서 구슬같은 눈물로 울먹임에 감격하여 보답하리라 다짐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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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영양 남하진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14] / 기록자료>고문서 / 척하생 영양 남하진모년 5월 16일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하루 앞둔 저녁에 척하생(戚下生) 영양 남하진(南厦鎮)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효행과 학덕을 겸비하였으며, 남을 대할때는 한계를 짓지 않고 넓은 도량으로 대하였음을 드러내고 있다. 아버지와 공은 함께 고락을 같이하다가 앞뒤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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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족후생 동호가 종군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15] / 기록자료>고문서 / 족후생 동호정축년(1937년) 5월 16일 종군 처사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후생(族後生) 동호(東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풍성하고 위대한 자질에 인자하고 어진 덕을 지녔으며, 선훈을 잘 이어받아 집안에서는 효우(孝友)로, 향당에선 충신(忠信)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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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현규가 종군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16]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현규정축년(1937년) 5월 16일 종군 처사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종(族從) 현규(鉉圭)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타고난 성품이 강직하고 지기가 넓었으며, 어릴때부터 기상이 남달랐으며, 약파공(藥坡公)을 따라 가법을 잘 전수받아 언행이 타의 모범이 되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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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녀서 한양 조호기가 외구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17] / 기록자료>고문서 / 녀서 한양 조호기정축년(1937년) 5월 16일 장인 안릉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사위 한양 조호기(趙鎬基)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타고난 성품이 순수하고 너그럽고 효성스러우며, 70평생을 종손으로 있으면서 집안의 화합을 위해 힘쓰시고 우대를 돈독히 하였기에 자손들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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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계소생 김성 박재창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18] / 기록자료>고문서 / 계소생 김성 박재창정축년(1937년) 5월 16일 처사 안릉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계하생(契下生) 면성 박재창(朴載昶)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명망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그 전통을 이었으며, 항상 효우를 근본으로, 문장으로 여사로 하였음을 표현하고 있다. 인자한 모습으로 오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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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진성 이문수·창수가 숙부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19]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진성 이문수·창수정축년(1937년) 5월 16일 외숙부 처사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생질인 진성 이문수(李文洙)•창수(昌洙) 형제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품안에서 자람이 항상 측은히 여기시고 구휼해 주심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멀리 떨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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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족후생 의발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20] / 기록자료>고문서 / 족후생 의발정축년(1937년) 5월 16일 처사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족후생(族後生) 의발(宜發)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사람이 살아있을때는 그사람의 어짊을 즐거워하고 그 사람의 의에 복응하고, 그 사람의 정에 친하게 되다가, 죽으면 그 어짊을 애석해하고 그 의를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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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계해년에 안동 권준희가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21]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안동 권준희계해년 4월 25일 안릉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사하생(査下生) 권준희(權準羲)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몸소 갈 수가 없어 대신 아들 동규(東奎)를 보냄을 언급하고 있다. 공의 덕의가 품성하고 위엄있는 모습은 마치 산에 호랑이가 버티고 있는 모습과 같음을 표현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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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계해년에 통가하생 영양 남효순이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22]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영양 남효순계해년(1923년) 5월 21일 처사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이틀 전에 통가하생(通家下生) 영양 남효순(南孝舜)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우러러 충효를 본받았고 굽어보아 시례를 전수해 받아 가정에서 향리까지 미쳐 모두가 칭복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항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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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계해년에 평해 황수로가 사형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23]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평해 황수로계해년(1923년) 5월 21일 사형(査兄)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사제(査弟) 평해 황수로(黃洙老)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하고, 달변이기보다는 차라리 과묵하며, 냄새는 지란(芝蘭)과 같고, 맛은 숙속(菽粟)과 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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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을축년에 손녀서 한양 조호기가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24] / 기록자료>고문서 / 손녀서 한양 조호기을축년(1925) 4월 25일 처사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손녀사위 한양 조호기(趙鎬基)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사람이 90까지 산다는 것은 천에 한두명 정도인데 공은 86세의 나이인데도 시를 외우는 소리는 밝고 힘찼음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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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을축년에 외손서 선성 김직구가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25] / 기록자료>고문서 / 외손서 선성 김직구을축년(1925) 4월 24일 처사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5일 전에 외손녀사위인 예안 김직(金溭)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집안의 기고 때문에 미리 곡을 하게 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진실되고 정직한 품성에 좋아한 것은 책밖에 없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어머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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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영양 남진도가 처사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26] / 기록자료>고문서 / 인소제 영양 남진도정축년(1937년) 5월 16일 처사 안릉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인소제(姻少弟) 영양 남진도(南鎭燾)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의방(義方)으로 인도해주시고 각별한 지우를 입었으며, 대면해서 가르쳐줌에 마치 엄한 스승처럼 여겨졌음을 드러내고 있다. 백수(白壽)를 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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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계해년에 수악이 종로 처사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27]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수악계해년(1923년) 5월 21일 처사 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19일에 족종 수악(壽岳)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85세의 수를 누렸으며 고종명까지 했으니 5복중에 네가지를 지녔으며, 자신도 80이 넘은 나이라서 직접가서 곡을 할 수 없기에 대신 둘째 아들 지발(篪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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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족후생 규발이 처사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28] / 기록자료>고문서 / 족후생 규발정축년(1937년) 5월 16일 처사 안릉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족후생 규발(逵發)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마음가짐은 맑았으며 처세에는 흐린한 듯 텅비웠으니 아무도 욕할 사람이 없음을 언급하고 있으며, 갑자기 세상을 떠나 모든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지만, 공과 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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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생질이 외삼촌에게 올린 제문(祭文)[1492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생질이 외삼촌에게 쓴 제문(祭文)이다.. 태어나서 얼마 안되어 어머니를 여의자 강포에 쌓여 있는 자신을 보살펴 주시고 키워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드린다는 내용이다. 유현의 집안에서 태어나 문헌의 실마리를 이엇으며, 총명한 자질에 해박한 지식같이 겸비하여 집안에서나 향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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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병술년에 백기동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4930] / 기록자료>고문서 / 백기동병술년 5월 1일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백기동(白基東)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넓은 도량과 정확한 논리를 지녔으며, 견권(繾綣)한 가르침을 다시 얻을 수 없음을 애석해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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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493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작자와 연도를 알 수 없는 제문(祭文)이다.. 소상이 되기 전에 국휼(國恤) 때문에 소상에 참석하지 못하고, 소상이 지난 지금에서야 곡을 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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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자식이 어머니에게 올린 제문(祭文)[1493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자식이 어머니에게 바치는 제문(祭文)이다.. 연도와 작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난삽하게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제문을 짓기 위해 연습을 한 것으로 보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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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사제가 사형에게 올린 제문(祭文)[1493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사형(査兄)의 죽음을 맞아 사제(査弟)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사형의 부음소식에 너무 놀랐고 애통한 심정 금할길이 없음을 전하고 있으며, 달려가 곡을 해야 도리지만 몸이 불편하여 자식을 대신 보내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793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493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상사(上舍) 조공(趙公)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계하생(契下生)인 안릉이씨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아직 초고상태이기때문에 저자는 밝혀져 있지 않다. 공의 집안은 혁혁한 영남의 명문거족으로 덕망과 문장은 이미 알려져 있으며, 만곡 조술도가 이런 유풍을 이엇으며 공은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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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야성 정세현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4935] / 기록자료>고문서 / 야성 정세현야성(野城) 정세현(鄭世鉉)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7언율시이며, 모두 2수이다. 영남의 명문가인 충효당의 종손으로 태어났으며, 벼슬없이 바닷가에 살면서 문벌을 빛나게 하였음을 기리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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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병신년에 월성 이순경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4936] / 기록자료>고문서 / 월성 이순경병신년 2월 28일 종모형(從母兄) 처사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종모제(從母弟) 월성 이순경(李舜慶)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행실과 학덕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대하고 사물과 접할때 도량이 좁지 않았으며, 마음을 다스린 뒤에 밖으로 행동을 하였으며, 효를 바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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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신미년에 백거은이 사형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37]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백거은신미년(1811년) 7월 18일 사형(査兄)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사제(査弟) 백거은(白居殷)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의 행실과 의범에 대해서는 전날에 자세하고 곡진하게 드러내었음을 언급하면서 막내 누이가 갑자기 죽게 된 것에 대해 애통해 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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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기사년에 당숙 이상춘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4938] / 기록자료>고문서 / 당숙 이상춘기사년 10월 15일에 종질 처서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당숙 이상춘(李相春)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비록 숙질간이지만 나이차이가 없어 어릴때부터 함께 놀고 자랐음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집안 일을 처리함에 있어 항상 종질의 자문을 받아서 처리하였음도 말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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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을유년에 질서 박기찬이 인숙부 호군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39] / 기록자료>고문서 / 질서 박기찬을유년(1885년) 5월 1일 시숙(媤叔) 재령이공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질서(姪壻) 면성 박기찬(朴璣燦)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의 거동과 덕행을 다시 볼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동시에 자손이 번창하고 80수에 5복까지 겸하였음을 기리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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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자식이 어머니에게 올린 제문(祭文)[1494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자식이 어머니에게 바치는 제문(祭文)이다.. 연도와 작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난삽하게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제문을 짓기 위한 초고본이다. 아버지 형제의 7남매의 뒷바라지를 감당하면서 현숙한 부덕을 잃지 않은 어머니의 훌륭하신 정성에 감읍하고 있으며, 막내로 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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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충효당 임신년에 오대손 이현발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4941] / 기록자료>고문서 / 오대손 이현발임신년(1872년) 8월 3일 종5대손 현발(李鉉發)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종조고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부군과 종조비 숙부인 아주신씨의 무덤아래에 종족손부 안동권씨의 무덤을 덧붙여 쓰게 되었으니 놀라지 마시라는 내용을 고하고 있다. 조부의 무덤아래에 손부의 무덤을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