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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28801

    척하생(戚下生) 무안 박재만(朴載萬)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7언 율시 1수와 7언 절구 1수로 이루어져 있다. 밝은 대훈을 가진 고가의 명성있는 집안에 태어나서, 예를 듣고 시를 배워 가법을 일으켰으며, 충과 효로써 세운 명성을 잊을 수가 없으며, 고요하고 과묵한
    출처 : 유교넷
  • 228802

    갑오년(1834년) 9월 9일 종질 재령이군 용오(用五)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2일 전에 내종숙(內從叔) 남부양(南富陽)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같은 나이에 같은 곳에서 살던 조카가 50의 나이로 세상을 등지게 되어서 슬프다는 표현과 덕성이 순박하고 기운이 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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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03

    기사년(1809년) 10월 7일 표종형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내종제(內從弟) 남몽양(南夢陽)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명망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수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중도에서 죽게 되어 너무 슬픈 일이며 같은 마을에 살던 고모도 아직 왕성한데 공 먼저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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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04

    저자와 연도를 알 수 없는 제문 초고이다. 가난한 사람은 아첨하고 부유한 사람은 교만하는 말세의 풍조에서 공만은 공손하고 검소하고 부지런하고 후덕한 품성에, 자세하고 치밀하고 고요한 성정을 지녔음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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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05

    저자와 연도를 알 수 없는 제문 초고이다. 대상일을 맞이하여 지은 제문으로 보인다. 공의 품성은 얼음과 구슬처럼 맑고 순수하였으며, 아름다운 기풍에 넓고 기상을 지녔으며, 집안에서나 친족에게 마땅하게 행동하여 추복을 받게 되었음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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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06

    망자를 애도하고 위로하기 위해 지은 만시 초고본이다. 형식은 7언 율시이며, 가정에선 효우로써 행동하고 사림에선 온아한 풍모를 지녀, 모든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았음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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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07

    저자와 연도를 알 수 없는 제문 초고이다. 대현의 문하에서 태어난 공은 온화한 성품에 밝은 기량을 지녔으며, 모습은 우아하고 행실은 단정하였으며, 조상을 받들고 부모를 봉양함에 정성과 효성을 다하였음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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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08

    정미년(1967년) 7월 6일 내종숙부 안동권공의 담제일을 맞이하여 표종질이 쓴 제문 초고본이다. 고가의 전형을 이어받아 훈훈한 심성에 넉넉한 품성을 지녔으며, 검고하게 덕을 기르고 온화하게 만물에 접하였음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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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09

    임진년(1892년) 2월 17일 숙부 호군공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조카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제문을 올리는 사람은 이름이 빠져있어 알 수 없다. 옛사람들은 지극히 가까운 사이에는 글이 없다고 했지만, 어리석은 자신을 채찍하고 일깨워주신 숙부인만큼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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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10

    갑신년(1884년) 9월 8일 첨지중추부사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2일전에 중표질(重表侄) 남조학(南朝㶅)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아름다운 공은 운조공의 적통을 이었으며, 시례로써 세상을 밝히고 충효로써 집안을 이름나게 했으며, 덕을 기초로 5복을 누렸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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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11

    을해년(1815년) 3월 20일 고모 유인 영양남씨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조카 남몽양(南夢陽)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인품이 그윽하고 한가하면서도 정숙하였고 온유하면서도 은혜로와, 여사의 기풍이 있었으며, 홀로 사신 10년동안 영위(榮衛)를 사양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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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12

    경오년(1810년) 7월 18일 외삼촌 안릉이공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외생(外甥) 남학수(南鶴壽)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이 빨라서 벌써 중상일이 됨에, 경해(警咳)의 절박함을 견디지 못해 한잔 술을 올리니 오장육부가 찢어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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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13

    기사년(1809년) 10월 17일 정형(情兄) 처사 안릉이공의 권폄(權窆 : 임시로 하는 매장)일을 맞이하여 2일 전날 저녁에 정제(情弟) 남경악(南景岳)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고가(古家)의 전범을 이어받아 좌해(左海)에서 어질었으며, 부침한 세상을 싫어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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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14

    계유년(1873년) 4월 12일 중숙부 처사부군의장례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조카 이태모(李泰模)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고결한 뜻을 지녀 불의한 것은 사소한 것이라도 주거나 받지 않았으며,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님께 혼정신성하였으며, 형을 공경하고 아우와 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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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15

    병인년12월 13일 중부(仲父) 처사부군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조카 이의연(李宜淵)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사람이 어질면 오래살고 고요하면 오래산다고 했는데, 공은 어질고 고요한데도 70수도 누리지 못하였으니 애통한 일이며, 어머니께서 아직 살아계신데도 자식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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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16

    족종(族從) 이항발(李恒發)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7언 절구이며 모두 5수이다. 효제를 근본으로 하고, 문장은 여사(餘事)로 하였으며, 종족을 잘 이끌고 발흥케하면서도 90수까지 누리게 된 것을 기리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28817

    갑신년(1884년) 9월 8일 통정대부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2일전에 인소제(姻少弟) 의성 김석락(金奭洛)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80수를 누린 것만도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오래 산 것인데 3품의 품계까지 받았으니 더할나위없는 홍복이며, 명문가에서 태어나
    출처 : 유교넷
  • 228818

    규장각 전제(典製) 윤희영(尹喜永)이 지은 것으로 문원공(文元公) 회재 이언적과 문순공(文純公) 퇴계 이황의 제사일을 맞이하여 지은 제문(祭文)이다.. 동방 5현으로 추숭받은 두 분의 학덕과 문행을 기리고 찬양하는 내용이다. 전제(典製)는 조선시대때, 내명부(內命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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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19

    진사 백훤(白暄)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이식(李植)•이경(李桱)•이심(李杺)•이수(李檖) 형제와 이지환(李之煥)•이인배(李仁培)가 지은 만시와, 백명담(白命耼)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이지혁(李之爀)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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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20

    유인(孺人)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지은 제문(祭文)이다.. 25년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시부모와 남편을 봉양하고 자식을 양육하다가 죽은 부인을 위해 지은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나이 70이 된 시점에서 유인의 제삿날을 맞이하여 지은 제문인 것 같다. 유인은 효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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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21

    외삼촌 처사 대흥 백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생질(甥侄) 안릉이공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나라에 슬픈 일을 당한 시점에 외삼촌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더욱더 애통함을 언급하고 있다. 아름다운 덕과 한결된 마음, 매사에 조심하고 삼가는 행동을 흠모하고 추앙하였음을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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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22

    무술년 12월 8일 인숙모(姻叔母) 유인 무안박씨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영양 남호양(南昊陽)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아름다운 자질에 맑고 삼가는 모습과 부드럽고 온화한 덕성은 군자의 배필이였으며, 충효의 집안에서 규방의 지략으로, 인척들까지도 사랑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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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23

    병술년(1886년) 5월 1일 빙조부 재령이공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손서(孫壻) 장춘식(蔣春植)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늦게 태어나 가르침을 받지 못하다가 을유년 겨울부터 5개월이나마 문하에 출입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여기고 있으며, 성대한 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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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24

    사하생(査下生) 전의 이병호(李秉鎬)가 지은 만사(輓詞)이다. 5언 율시이며, 세상이 밝을때는 집안의 고풍을 지켰지만 어지러운 때는 함께 고뇌하였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신선이 되어 기록 떠나갔지만 남기신 여운은 영원히 기억할 것이며, 개인적인 슬픔만이 아니고 온 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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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25

    연도와 저자를 알 수 없는 제문 초록이다. 조상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집안의 교훈을 잘 이어받아 가풍을 흥기하고 새롭게 진작시켰음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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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26

    계제(契弟) 남경목(南敬穆)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7언율시이며, 6글자가 떨어져 나가 자세한 것은 알기 어렵지만, 오랫동안 선조들을 받들면서 지내온 공의 향기와 운취는 아직도 산천 곳곳에 남아 있음을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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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27

    연도와 저자를 알 수 없는 초고 상태의 제문(祭文)이다.. 고가의 전통을 이어받아 순수하고 후덕한 자질을 지녔으며, 집안에서는 효제로써 행하고 남을 대할때는 너그럽게 대하였으며, 친족들에게 화목으로 이끌어, 칭송을 받았음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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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28

    갑신년(1884년) 9월 8일 종노(宗老) 호군(護軍)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전에 84세 된 종말(終末) 이상간(李相侃)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자신도 고령의 나이로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두 분은 동갑내기로 공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함께 생활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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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29

    병인년 2월 13일 처사 재령 이여(李汝)의 죽음을 맞아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63세를 살았으며, 효성스럽고 인자한 성품이지만, 대부인이 죽은지 열흘도 안되어 아들과 조카들까지 연달아 죽게 기구한 운명에 대해서 동정어린 마음을 보내고 있다. 저자가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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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30

    정묘년(1687년) 10월 19일 박공의 죽음을 맞아 지은 제문으로 저자를 알 수 없는 초고본이다. 공은 최근에 급제까지 한 사람이며, 자신보다 나이는 비록 12살 많지만 서로 허물없이 거리낌없이 지냈던 사이였는데, 주검이 되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니 너무 애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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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31

    갑신년(1884년) 9월 8일 종군 호군(護軍) 약파공(藥坡公)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숙(族叔) 이수화(李壽墷)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예(禮)를 근본으로 경(敬)을 기초로 하였으며 효우에 돈독하고 온화함을 체득하여, 향당에선 자랑스럽게 여겨 그 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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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32

    갑신년(1884년) 9월 8일 종형인 첨지중추부사공의 장례일을 이틀 앞둔 저녁에 족소제(族少弟) 이현정(李鉉定)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집안은 본디 명망있는 거족이였지만 공이 태어나던 시점에는 도가 쇠퇴하고 풍속이 퇴폐하였는데, 공이 성대한 자질로 구업을 일으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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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33

    무술년 12월 7일 장모 무안박씨의 장례를 맞아 사위 상락 김재선(金在善)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태어나서는 부모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장가든후 26동안 장모님의 지극한 보살핌 덕택에 무사히 지냈음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또한 단아하고 현숙한 덕과 정숙하고 근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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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34

    임오년(1882년) 10월 18일 현손인 현발(鉉發)을 대신하여 그의 아들 중호(中浩)가 지은 것으로, 고조비 유인 전주류씨의 무덤에서 고하는 축문이다. 10월 시제사때 서리가 내린 고조비의 무덤에서 영혼을 위로하는 술잔을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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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35

    을유년(1885년) 5월 1일 종형 호군(護軍)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족하생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제문을 지은 사람은 문서가 훼손되어 알아볼 수가 없다. 공은 대인의 전형과 넓은 아량으로 충효당의 주인이 되어 시례(詩禮)를 서로 전하여 집안을 흥성케 하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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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36

    갑술년(1874년) 7월 11일 딸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아버지가 지은 제문이다. 다섯살 때 어머니를 여의어 다행히 계모를 얻었는데 16세에 또 잃게 되었으며 상을 마치고 시집을 가서 얼마 안되어 22세의 젊은 나이로 죽게 된 기구한 운명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딸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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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37

    기사년(1809년) 10월 17일 대종군 처사군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족인(族人) 이해응(李海應)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재령이씨는 영해지방의 혁혁한 집안으로 운악공의 유풍을 이어받아 '충효(忠孝)'로 당명을 삼고, '인량(仁良)'으로 마을 이름을 정하였음을 밝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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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38

    갑신년(1884년) 9월 8일 종군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약파(藥坡)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 전날 저녁에 족숙(族叔) 이수창(李壽昌)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진중한 위의에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고인의 전형을 지녔고 선조들의 유풍을 잘 승습하였으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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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39

    갑신년(1944년) 2월 29일 종모(從母) 유인 예천임씨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종자(從子) 병기(秉璣)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유인이 집안이 든 뒤로 집안은 풍요로와졌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다가 다행히 후사를 이음으로 인해 손자들은 많아 만년에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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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40

    경오년(1810년) 7월 생질 이성실(李聖實)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내구(內舅) 태언(台彦)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기사년에 이성실이 죽을 당시에는 몸에 병도 있었고 늙은 몸으로 젊은 사람의 상에 가고 싶지 않았기에 참석을 하지 않았다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억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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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41

    친구인 함양 박사엽(朴士曄)을 위해 지은 제문(祭文)이다.. 박사엽은 자기와 둘도 없는 친구로 익동(翼洞) 옛집에서 병으로 죽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어린시절부터 박사엽과 함께 노닐던 지난날을 떠올리면서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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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42

    병술년(1886년) 5월 1일 외삼촌인 통정대부 절충장군 용양위부호군 재령이공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생질 의성 김종병(金宗秉)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기량은 넓고 깊으며, 성품은 넓고 아름다워 향족이 모두 추숭하였음을 언급하고 있으며, 일찍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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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43

    을유년(1885년) 5월 1일 고모부 호군(護軍) 약파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질서(侄壻) 이중장(李中章)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옥같이 아름다운 자질에 바다같이 넓은 도량을 지녔으며, 순후한 덕성에 온화한 용모를 지녔으며, 정(正)으로써 수신하고 서(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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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44

    갑술년(1874년) 7월 11일 아내 안동권씨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남편 안릉 이태모(李泰模)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결혼한지 얼마안되어 부부의 정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시점에 갑자기 죽은 아내를 생각하면서 원통해하고 있다. 슬하에 생김새가 수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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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45

    갑신년(1884년) 9월 8일 약파(藥坡) 재령이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질서(姪壻) 전주 류치두(柳致斗)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의 집안은 영남의 명문으로 유현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며, 시례의 유훈 덕분에 집안이 번창하게 되었음을 언급하고 있으며,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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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46

    병신년(1836년) 5월 처사 재령이공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2월 25일에 소제(少弟) 김만수(金晩壽)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미리 곡을 하게 된 것은 걱정때문에 당일날은 참석이 곤란하기 때문임을 언급하고 있다. 재령이씨는 인량동에서 이름난 집안이며 시례(詩禮)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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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47

    임오년(1762년) 9월 5일 형수 유인 한양조씨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하루 전에 시동생 이우성(李宇成)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자신은 병이 들어 직접 가서 곡을 할 수 없기에 대신 아들 광도(光燾)를 보내게 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겨울에 시집을 와 증조부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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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48

    을유년(1885년) 5월 1일 종군 첨지중추부사 약파(藥坡)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족종 이수의(李壽嶷)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지만 태어나는 것은 존망(存亡)과 관련되어 있으며,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지만 죽는 것은 경중(輕重)과 연계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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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49

    기사년(1809년) 10월 17일 대종손 처사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전날 저녁에 족인 이광목(李光穆)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빼어나고 강건한 자질에 명랑하고 활달한 기상을 지녔으며, 향당에 이르러서는 도탑고 삼가는 뜻을 다하였고, 의심나고 분별이 어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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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850

    신미년(1811년) 7월 16일 정형(情兄) 재령이공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정제(情弟) 박○○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저자가 기록된 부분이 훼손되어 이름은 알 수 없다. 운악공의 주손으로 충효당의 유풍을 잘 이어받았으며, 타고난 품성이 어질고 우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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