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28851
재령이씨 충효당 계해년에 남효순이 안릉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92] / 기록자료>고문서 / 남효순계해년 5월 안릉이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 전에 통가하생 영양 남효순(南孝舜)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쇠퇴하고 타락한 시대에 태어나서 옛것으로 모범을 삼았으며, 큰 풍채와 아름다움 도량을 지녀 운조공의 유훈을 잘 계승하였으며, 충과 효를 본받고 시례(詩禮)를출처 : 유교넷 -
228852
재령이씨 충효당 신사년에 이우강이 구수 한양조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4993] / 기록자료>고문서 / 이우강신사년(1761년) 11월 17일 형수 한양조씨의 기일을 맞아 셋째 시동생인 재령 이우강(李宇鋼)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재령이씨의 맏며느리로 들어와서 남편을 내조하여 선조들의 제사를 잘 섬기더니, 지난 병인년(1746년) 봄과 여름사이에 맏형과 어머니가 연이어출처 : 유교넷 -
228853
재령이씨 충효당 갑신년에 면성 박영만이 사우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94] / 기록자료>고문서 / 면성 박영만갑신년(1884년) 9월 8일 친구인 첨지중추부사 안릉이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 전날 저녁에 경제(庚弟) 면성 박영만(朴永萬)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자신은 병이 들어 참석할 수 없어 대신 손자 연찬(璉燦)을 보내게 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해동의 명문가로 운출처 : 유교넷 -
228854
재령이씨 충효당 갑신년에 이수부가 대종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4995] / 기록자료>고문서 / 종말 이수부갑신년(1884년) 9월 8일 대종군 첨지충추부사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2일전 저녁에 종말(宗末) 수악(壽岳)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문헌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때부터 효우를 바탕으로 위중한 덕까지 겸비하였으며, 일찍부터 견문을 넓혀 세상에 유용함을 주니 고인출처 : 유교넷 -
228855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499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연도와 저자를 알 수 없는 제문 초록이다. 자신을 소제(小弟)로 칭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동년배에서 몇살 어린 사람이 쓴 제문으로 보인다. 가정의 교훈을 잘 승습하였으며, 남을 대함에 너그럽고 몸가짐은 삼가고 학덕을 길러 후배들로부터 추앙받았음을 기리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856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499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미완성된 제문 초고본이다. 지은 연도와 저자는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은 동갑임을 알 수 있다. 해동의 명문가이며 영남의 이름난 문벌로써 덕업이 서로 계승되고 유현이 배출된 집안에서 태어난 공은 자질이 향기롭고 품성이 순수하였으며, 배움이 독실하여 문장으로 표출되었고출처 : 유교넷 -
228857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499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저작연도와 저작자를 알 수 없는 미완성 상태의 제문 초고본이다. 83세의 수를 누렸으며 덕이 있고 집안의 문헌을 이은 군자다운 풍모가 있음을 언급하면서, 자신에게 "우리 집안은 시례와 충효를 집안의 표준으로 삼았으며, 효제로써 집안을 다스리고 친목과 화목에 힘썼음을출처 : 유교넷 -
228858
재령이씨 충효당 을유년에 남조한이 척종숙 호군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4999] / 기록자료>고문서 / 척종질 남조한을유년(1885년) 5월 1일 척종숙(戚從叔) 호군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척종질(戚從侄) 남조한(南朝漢)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재령이씨의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운악공의 적통을 이어 시례를 밝히고 그 유훈을 잘 인습하여 집안을 잘 이끌던 공출처 : 유교넷 -
228859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500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인(孺人)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지은 제문(祭文)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어 의지할 곳 없는 자신을 불쌍하게 여겨 친자식처럼 사랑해주신 은덕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있다. 또한 유한(幽閑)한 덕성에 단아하고 청결한 행실을 지녔으며 40년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출처 : 유교넷 -
228860
재령이씨 충효당 갑신년에 남흥수가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01] / 기록자료>고문서 / 남흥수갑신년(1884년) 9월 8일 이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3일 전에 남흥수(南興壽)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자신과 같은 연배인 공은 죽리관의 적통을 이엇으며 약파공의 후손임을 언급하고 있으며, 풍의(風儀)가 넓고 절도가 상밀(詳謐)하였음을 표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861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시아버지가 며느리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1500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시아버지가 며느리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지은 제문(祭文)이다.. 젖먹이 어린 자식만을 남겨놓고 죽은 며느리를 애통해하면서 망자의 죽음을 위로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862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500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미완성된 제문 초고본이다. 미완성된 제문 초고본이다. 지은 연도와 저자는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은 동갑임을 알 수 있다. 해동의 명문가이며 영남의 이름난 문벌로써 덕업이 서로 계승되고 유현이 배출된 집안에서 태어난 공은 자질이 향기롭고 품성이 순수하였으며, 배움이출처 : 유교넷 -
228863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이병규가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5004]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질 이병규족종질(族從侄) 이병규(李秉圭)가 지은 만사(輓詞)이다. 형식은 7언 절구이며 모두 4수이다. 공은 덕업과 문장과 충효를 겸비한 우리나라의 명문벌열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85세까지 오랜 수를 누렸음을 기리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864
재령이씨 충효당 신미년에 백거은이 사형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05]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백거은신미년(1811년) 9월 10일 사형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사제(査弟) 대흥 백거은(白居殷)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백로가 지나고 상강이 지난 아름다운 중양절에 자연속에서 흥취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지만, 공의 대상일이기에 예법을 지켜 곡을 하출처 : 유교넷 -
228865
재령이씨 충효당 신미년에 당숙 이상춘이 종질에게 올린 제문(祭文)[15006] / 기록자료>고문서 / 당숙 이상춘신미년(1811년) 7월 16일 종부(宗婦)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당숙(堂叔) 이상춘(李相春)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집안의 대소사와 제사받드는 일에 한치도 소홀함이 없이 현숙한 부덕으로 능수능란(能手能爛)하게 처리한 종부의 미덕을 기리면서 죽음을 애출처 : 유교넷 -
228866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종질에게 올린 제문(祭文)[1500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종질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지은 제문(祭文)이다.. 어린 동생들을 남겨놓고 자신보다도 먼저 죽은 조카의 죽음을 원통해하고 있다. 저자와 연도는 훼손되어 알 수 없으며, 구체적인 내용도 훼손이 심하여 자세히 알 수가 없다.출처 : 유교넷 -
228867
재령이씨 충효당 기사년에 남기중이 내종 백형에게 올린 제문(祭文)[15008] / 기록자료>고문서 / 남기중기사년 7월 18일 외사촌형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고종사촌 동생인 남기중(南基重)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외사촌형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성품은 화기롭고 온화하였으며 기량은 넓고 명확하였으며, 항상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고 가족들의출처 : 유교넷 -
228868
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부 이성호가 망실 의성김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5009] / 기록자료>고문서 / 부 이성호정축년(1877년) 9월 24일 유인 의성김씨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남편 이성호(李性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내조가 잘하고 집안을 잘 보살피던 아내가 25세의 젊은 나이로 죽게 된 것을 애통해하고 있다. 아내가 죽어서는 안될 3가지 이유를 언급한 대목은 부인을출처 : 유교넷 -
228869
재령이씨 충효당 신미년에 중제 이증영이 백형에게 올린 제문(祭文)[15010] / 기록자료>고문서 / 중제 이증영신미년(1811년) 7월 18일 형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둘째 동생인 이증영(李增榮)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형의 죽음도 애통한 일이지만, 올해들어 여동생 최실이가 죽고, 늙은 어머니마저 기력이 점점 쇠약해져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임을 하소연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870
재령이씨 충효당 을해년에 남경열이 매형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11] / 기록자료>고문서 / 인제 남경열을해년 3월 매형인 처사 안릉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처남 남경열(南景烈)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자신은 참가할 수 없어 아들 몽양(夢陽)으로 하여금 대신 제를 올리게 하고 있다. 시내를 사이에 두고 서로 왕래하면서 여름날에는 높은 누대에서, 가을밤에는 엄숙한 절출처 : 유교넷 -
228871
재령이씨 충효당 계유년에 이태모가 중숙부에게 올린 제문(祭文)[15012] / 기록자료>고문서 / 질 이태모계유년(1873년) 4월 12일 중숙부 처사부군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조카 이태모(李泰模)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고결한 뜻을 지녀 불의한 것은 사소한 것이라도 주거나 받지 않았으며,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님께 혼정신성하였으며, 형을 공경하고 아우와 우출처 : 유교넷 -
228872
재령이씨 충효당 신미년에 면성 박홍유가 익우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13] / 기록자료>고문서 / 면성 박홍유신미년 7월 16일 친구인 재령이공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친구 면성 박홍유(朴弘儒)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어릴때부터 관중과 포숙아처럼 관포지교로써 흉금없이 지내던 충효당의 주인인 친구가 죽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873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백거은이 사형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14]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백거은7월 18일 사형(査兄)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사제(査弟) 백거은(白居殷)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의 자상하고 돈독했던 천성을 언급하면서 홀로 공의 당에 올라보지만 함께 이야기하고 즐길 사람이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874
재령이씨 충효당 갑신년에 족조 이재영이 종군 약파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15] / 기록자료>고문서 / 족조 이재영갑신년(1884년) 9월 8일 종군 약파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 전날 저녁에 족조(族祖) 재영(再榮)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종가의 주인인 공은 운악동의 유풍을 이어받고 십대동안 전해온 기틀을 바탕으로하여 우뚝한 모습에 삼가고 두터이하는 마음을 가졌으며, 논의출처 : 유교넷 -
228875
재령이씨 충효당 무진년에 빙숙 이헌급이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16] / 기록자료>고문서 / 빙숙 이헌급무진년(1748년) 7월 18일 처사 재령이공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빙숙(聘叔) 여강 이헌급(李憲伋)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의 죽음에 장차를 끊는 듯한 고통속에 눈물을 흘리면서 이별을 고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876
재령이씨 충효당 갑신년에 사종제 이수형이 사종형에게 올린 제문(祭文)[15017]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제 이수형갑신년 10월 17일 종형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하루전날 사종제(四從弟) 수형(壽亨)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살아생전에 편안한 날이 없었고 죽어서도 일을 주관하여 처리할 자식하나 없이 40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은 종형의 죽음을 애통해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877
재령이씨 충효당 갑신년에 중제 이현덕이 백형 약파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18] / 기록자료>고문서 / 중제 이현덕갑신년(1884년) 9월 8일 맏형인 통정대부 중추부사 오위장 약파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중제(仲弟) 현덕(鉉德)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7남매의 맏형으로 태어난 형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연이의 여의었기에 조모 슬하에서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 어린 동생들을 돌봐준 은출처 : 유교넷 -
228878
재령이씨 충효당 갑신년에 이종호가 종숙 약파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19]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이종호갑신년(1884년) 9월 8일 종숙인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약파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족질(族侄) 종호(宗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과 자신은 비록 친족이지만 공이 평소 자기집안을 존모하여 사랑하고 보살펴 준 것은 친족관계때문만이 아님을 언급하면서, 자신도 공출처 : 유교넷 -
228879
재령이씨 충효당 기묘년에 내종형 이교영이 외종매 의성김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5020]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형 이교영기묘년(1879년) 8월 4일 외종매(外從妹) 의성김씨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내종형(內從兄) 안릉 이교영(李敎榮)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여자의 미덕으로 여기는 4가지 덕용언공(德容言工)에서, 부인은 순하고 아름답고 유순하고 은혜로운 덕을 지녔으며, 정숙하고 한가로출처 : 유교넷 -
228880
재령이씨 충효당 임인년에 손생 이중한이 빙대구 약파공측실부인박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5021] / 기록자료>고문서 / 손생 이중한임인년(1902년) 5월 7일 빙대구(聘大舅) 약파(藥坡) 안릉이공의 측실부인 박씨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손생(孫甥) 진성 이중한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사사로운 감정에서 지은 것만이 아니고 훗날 부인된 사람들이 부인의 미덕에 감흥하고 흠모하기를 바란출처 : 유교넷 -
228881
재령이씨 충효당 갑신년에 이현기가 종형 약파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22]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이현기갑신년(1884년) 9월 8일 종형인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 약파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종제(從弟) 현기(鉉基)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어린 시절 자신의 집안이 가난할때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30리 떨어진 험하고 위험한 방동(芳洞)으로 갔는데, 이곳에서출처 : 유교넷 -
228882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사종형 이수간이 사종제 무언에게 올린 제문(祭文)[15023]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형 이수간1월 24일 사종제(四從弟) 처사 무언(懋彦)군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사종형(四從兄) 상간(相侃)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무언군의 신중한 일처리 덕분에 전할 일이 있으면 그에게 전하고, 상의할 일이 있으면 같이 상의해서 거의 착오가 없었음을 나타내고출처 : 유교넷 -
228883
재령이씨 충효당 갑오년에 족조 상엽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5024] / 기록자료>고문서 / 족조 상엽갑오년(1834년) 9월 9일 종군처사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 전날 저녁에 족조(族祖) 상엽(相曄)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가정에서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밖에서는 친족들의 돈목을 위해 애쓴 종군의 자질과 기량에 향당뿐만아니라 원근의 사람들도 추복하였음을 표현하출처 : 유교넷 -
228884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부중숙이 의성김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5025] / 기록자료>고문서 / 부중숙24일 아내 의성김씨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남편 중숙(仲叔)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4월에 둘째아이가 죽고, 7월에 아내마저 죽게된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한탄하고 있다. 훼손때문에 지은 연도는 알 수가 없다.출처 : 유교넷 -
228885
재령이씨 충효당 병인년에 이우능이 족질 천성에게 올린 제문(祭文)[15026] / 기록자료>고문서 / 족숙 이우능병인년(1746년) 8월 28일 족질 천성(天成)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하루전날 족숙(族叔) 우릉(宇錂)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3월에 백부와 함께 가마를 받들고 우산(寓山)으로 들어갔는데 지금 8월에 장례를 치르니 너무 황당하다는 내용이다. 또한 22세의 젊은출처 : 유교넷 -
228886
재령이씨 충효당 갑오년에 신대훤이 이형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27] / 기록자료>고문서 / 인제 신대훤갑오년 6일 자형 안릉이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 전에 처남 신대훤(申大暄)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곧고 견고한 바탕에 깨끗하고 방정한 자질을 지녔으며, 마음가짐은 포용력이 넓고 일을 처리함에 두루 상세하게 하였으며, 말을 할때는 작은 실수도 하지 않았고 행동은출처 : 유교넷 -
228887
재령이씨 충효당 을유년에 중제 이현덕이 백형 약파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28] / 기록자료>고문서 / 중제 이현덕을유년(1885년) 5월 1일 맏형인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 약파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중제(仲弟) 현덕(鉉德)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형이 죽은 뒤에 가문의 기운이 쇠약하여 며느리•숙모•사촌동생•종손녀까지 연이어 죽게 되었음을 언급하고 있출처 : 유교넷 -
228888
재령이씨 충효당 경오년에 삼종제 이방영이 종형에게 올린 제문(祭文)[15029]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제 이방영경오년(1810년) 11월 25일 종군처사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삼종제(三從弟) 이방영(李邦榮)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강건하고 풍부한 품성을 지닌 공이 50도 안되어 죽은 것을 애도하고 있다. 위로는 80된 어버이가 계시고 애로는 결혼하지 않은 자식이출처 : 유교넷 -
228889
재령이씨 충효당 을유년에 김노연이 내구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30]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김노연을유년(1885년) 5월 1일 외삼촌인 통정대부 부호군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생질 의성 김노연(金魯淵)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선조들의 유훈을 이어받아 80수를 누리면서 집안에서나 남을 대할때나 항상 후덕과 정성으로 대하여 향당과 친족들로부터출처 : 유교넷 -
228890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당숙 이상춘이 종질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31] / 기록자료>고문서 / 당숙 이상춘종질 재령이공의 소상일을 2달 지난 중양절에 당숙 상춘(相春)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작년 성복(成服)할때 문상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애닮은 심정으로 통곡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891
재령이씨 충효당 기사년에 정우 이시옥이 이공 성실에게 올린 제문(祭文)[15032] / 기록자료>고문서 / 정우 이시옥기사년(1809년) 10월 15일 재령이공 성실(聖實)을 장례일을 맞이하여 친구 이성중[李聖中 ; 자는 시옥(時沃)]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면서 근심과 즐거움도 함께 나누면서 꺼리낌없이 지내던 막역한 친구가 48세의 나이로 죽자 인생의 무상함출처 : 유교넷 -
228892
재령이씨 충효당 갑오년에 이수곤이 종종수 단양신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5033] / 기록자료>고문서 / 부종제 이수곤갑오년(1834년) 9월 9일 종종수(宗從嫂) 단양신씨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전날 저녁에 부종제(夫從弟) 재령 이수곤(李壽坤)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남편에게 공경하고 자녀들에게 자상하였음을 기리고 있다. 생계가 어려워 산속에 들어가 살때에출처 : 유교넷 -
228893
재령이씨 충효당 병술년에 완산 유건호가 약파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34] / 기록자료>고문서 / 완산 류건호병술년(1886년) 5월 1일 약파(藥坡) 처사 재령이공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세가자 완산 류건호(柳建鎬)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인량동에 훌륭한 세 사람이 있는데, 단정하고 수칙한 이로는 이공 우용(佑用)이 있으며, 호탕하고 강개한 사람으로는 남공 훈백(薰伯)이출처 : 유교넷 -
228894
재령이씨 충효당 계사년에 이지현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5035] / 기록자료>고문서 / 이지현계사년(1713년) 1월 13일 영해 서면 익동에 사는 유학 이지현(李之炫)이 산신에게 올리는 축문이다. 자신의 부모들이 일지(日池)에 있는 구산(龜山)에 묻혔으니 산을 지키는 신들은 부모들을 잘 보살펴 달라는 내용이다. 명산으로 알려진 구산에 부모들을 묻히게 한 것출처 : 유교넷 -
228895
재령이씨 충효당 기축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503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기축년(1709년) 3월 19일 생질 김수재(金秀才)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이지현(李之炫)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순수하고 삼가는 행실에 넉넉하고 민첩한 자질을 지녔으며, 박식하고 재주있으며, 집안에선 그의 효우(孝友)에 탄복하고 사림에선 그의 재량(才良)에 칭찬출처 : 유교넷 -
228896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홍도익 등이 스승 고산 선생에게 올린 제문(祭文)[15037] / 기록자료>고문서 / 홍도익 등 4인제자인 홍도익(洪道翼)•이유오(李兪吾)•배면(裵冕)•김이현(金以鉉) 등이 스승인 고산(孤山)선생에게 올리는 제문(祭文)이다.. 고산선생은 학가산과 낙동강의 정기를 모아 태어나셨으며, 77년동안 영남지역의 사표가 되었음을 기리고 있다. 선생을 증자에 비유하면서 노둔하고출처 : 유교넷 -
228897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이성흠이 호군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38]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이성흠충효당의 주인인 족형 호군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족제 이성흠(李性欽)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장례일은 족숙 수만(壽萬)이 와서 알려주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운악공의 후손으로 태어난 공은, 산과 같은 빛나는 모습에 봄같이 중후한 기운을 지녔음을 나타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898
재령이씨 충효당 무신년에 발급자미상이 재령이실에게 올린 제문(祭文)[1503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무신년(1848몀) 9월 4일 생질녀 상락김씨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하루전날 외삼촌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누나의 둘째딸이 재령이씨 집안으로 시집간지 13년만에 뜻밖의 병을 얻어 33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생질녀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죽은 날짜는 6월 26일이다출처 : 유교넷 -
228899
재령이씨 충효당 임자년에 사손 이상흡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5040] / 기록자료>고문서 / 사손 이상흡임자년(1852년) 10월 27일 섭사손(攝祀孫) 상흡(相翕)이 조부에게 올리는 축문이다. 숙종때 일이 잘못되어 조부의 관직이 제대로 제수되지 못하다가 160년이 지나서야 조부의 올바른 관직이 제수되어 묘표석을 바꾸면서 올리는 축문이다. 처사였던 조부의 관직은 자헌대출처 : 유교넷 -
228900
재령이씨 충효당 갑신년에 이교영이 대종군 첨추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41] / 기록자료>고문서 / 종말 이교영갑신년(1884년) 9월 8일 대종군 첨지중추부사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종말(宗末) 교영(敎榮)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75세까지 장수하였고 오복을 다 가진 분이 돌아가시어 서운한 것이 없지만, 가문이 쇠퇴하고 퇴락할때 공이 집안을 다시 진흥케 한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