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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28901

    갑신년(1884년) 9월 8일 약파령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 전에 종하(宗下) 덕영(德榮)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운조공이 영해에 터전을 마련하여 시례를 전하고 문헌을 열어주었으며, 공이 이곳에서 태어나 선조들의 유훈을 이어받아 가풍을 계술하였으며, 넓은 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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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02

    갑신년(1884년) 9월 8일 외조부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부호군 부군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 전날 저녁에 외손 여강 이조원(李祖源)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증조부 밑에서 가르침과 애호를 받았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또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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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03

    갑신년(1884년) 9월 8일 인숙(姻叔) 첨지중추부사 약포(藥圃)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질서(侄壻) 박홍수(朴洪秀)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안릉이씨의 면면히 전해오던 유풍을 공이 잘 이어받아 자신의 좁고 국한된 면을 열어주었고 세상살이의 번거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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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04

    갑신년(1884년) 9월 8일 종형인 약파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 전에 족제(族弟) 이현중(李鉉重)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몸이 아파 직접 곡을 하지 못하고 손자 병련(秉璉)을 대신 보내게 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안으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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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05

    을유년(1885년) 5월 1일 고모부 약파 이공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조카 대흥 백종운(白宗運)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총명한 자질에 넓고 두터운 도량을 지녔으며, 효제를 근본으로, 충신을 바탕으로하여, 약관때부터 과거지업은 포기하고 위기지학에 힘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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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06

    갑자년(1924년) 2월 12일 처사 한양 조칠대(趙七大)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안릉이씨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저자가 밝혀져 있지 않고 내용이 수정된 것으로 보아 제문을 짓기 위한 초고본이다. 대대로 밝은 문헌이 있는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난 공은 성품이 어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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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07

    을해년 3월 20일 고모 유인 영양남씨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조카 남부양(南富陽)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사랑으로 대해주고 의지처가 되어준 고모의 은덕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다. 두텁고 어진 덕을 지녔으며, 맑고 삼가면서도 은혜로와 여군자의 기풍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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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08

    계하생(契下生) 진성 이병문(李炳文)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형식은 7언 절구이며, 모두 4수이다. 대대로 밝은 문헌이 있으며 영남의 우뚝한 문벌집안에서 태어난 공은 90년을 부지런하고 독실하게 자신을 지키면서 타인들의 존망을 받았음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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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09

    시생(侍生) 영천 이정찬(李晶燦)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형식은 7언 율시이다. 충효당의 유풍을 잘 계술하여 평생동안 세월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90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봄바람처럼 따뜻함을 주었던 공이 갑자기 떠나가시니 후생된 입장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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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10

    윤달 13일에 제문을 짓기 위한 초고본으로 보인다. 저자는 알 수 없으며 내용도 너무 소략하여 전체적인 정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망자(亡者)의 기풍이 비가 갠 강남에 만리밖의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풍모가 있었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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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11

    임진년(1892년) 2월 17일 종증조 호군공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종증손 이원섭(李元燮)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문헌이 우뚝한 집안의 4형중 둘째로 태어난 공은 품성이 어질며 남을 대할때는 온화하지만 자신을 단속할때는 엄정하게 하였으며, 독실한 효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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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12

    임오년(1882년) 10월 7일 맏며느리 의성김씨의 개폄(改窆)일에 시아버지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5,6동안 부모처럼 섬기고 봉양해준 것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묻힌 곳이 이롭지 못하여 이장하게 되었으니 노여워하지 말라는 80 넘은 시아버지의 정성어린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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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13

    을유년(1885년) 5월 1일 첨지중추부사 약파 이공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통가시하생 남만영(南萬榮)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덕은 한 지역을 구제하였고, 행실은 한 고을의 모범이 되었으며, 충후(忠厚)하다는 말이 남들의 입에서 끊어지 않았고, 비리하고 태만한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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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14

    한 집안의 묘우를 중수할 날짜를 택일한 것이다. 주손내외, 자부내외, 손자손부, 손녀, 증손까지 중수할 날짜를 택일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시신을 안치할 방향까지 지정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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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15

    경오년(1810년) 11월 25일 사형 처사부군 재령이공의 이장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사제(査弟) 신상호(申相鎬)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묘터가 좋지 못해서 봄에 장자(長子)와 손자들이 선조의 무덤 가까이로 이장할 것을 의논하여 결행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28916

    신미년(1871년) 9월 7일 유학(幼學) 백호운(白灝運)이 토지신에게 올리는 산신축문이다. 자헌대부 이조판서겸 성균관좨주 세자시강원찬선 문경공 갈암 이선생의 신도비가 너무 오래되어 새롭게 개갈하였으니 토지신과 산신들에게 잘 보살펴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28917

    신미년(1811년) 7월 20일 처사 재령이공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18일 전에 사하(査下) 의성 김낙수(金樂壽)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충효당의 주인이 되어 고가(古家)의 규범을 이어받고 길사(吉士)의 풍의(風儀)를 지녔으며, 인륜을 두터이하고 의리를 중하게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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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18

    신미년(1811년) 7월 17일 처사 재령이공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하루전에 정제(情弟) 의성 김이운(金利運)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청아한 자질에 단아하고 화락한 성품을 지녔으며, 주손으로 선조들의 유풍을 이어 예학으로 계술하였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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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19

    병술년(1886년) 2월 20일 내종형 안릉이공 약파옹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표종제(表從弟) 안동 김도(金燾)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운조공의 주손이며 충효당의 주인인 공은 고가의 전통을 승습하고 선조들의 유풍을 바탕으로 남을 접하고 자신을 대함에 있어 반드시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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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20

    갑신년(1884년) 9월 8일 백부인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겸오위장 부군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 전에 조카 의호(義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성품은 어질고 온화하며, 모습은 위의가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았으며, 종족에 처해서는 그 정성을 다하였으며 향당에 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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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21

    갑신년(1884년) 9월 8일 종형인 첨지중추부사 약파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이틀 전날 저녁에 족소제(族少弟) 현성(鉉成)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길사나 흉사가 있으면 반드시 몸소 가서 물었고,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대면해서 말해주었으며, 어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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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22

    갑신년(1884년) 9월 8일 맏형인 통정대부 중추부사 오위장 약파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5일 전에 동생 현국(鉉國)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형은 일찍 부모를 여의었으며, 2명은 결혼을 하였지만 나머지 4남매는 아직 강포에 있는 동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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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23

    병인년(1746년) 12월 13일 처사 재령이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첨친(忝親) 여강 이익중(李益中)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노병때문에 곡은 할 수 없어서 대신 아들 헌급(憲伋)을 보냈다. 재령이씨는 영남의 명문 망벌로써 홍유(鴻儒)와 석사(碩士)들이 배출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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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24

    병술년(1886년) 5월 1일 첨지중추부사 약파(藥坡) 이공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척소제(戚少弟) 영천 이효연(李孝淵)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우뚝한 고가의 풍모를 지녔고 문헌이 밝은 집안에서 태어나 후덕과 의범을 지녔으며, 넓은 아량으로 일을 맡아 잘 처리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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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25

    정묘년 10월 27일 처사 재령이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증손(族曾孫) 현기(玄企)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운조공의 주손이며 팔순의 수를 누린 공은 굳세고 총명한 자질에 탁락한 기상을 지녔으며, 군자다운 면모가 있음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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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26

    임오년(1882년) 10월 7일 아내 의성김씨의 개장일을 맞이하여 남편 안릉 이성호(李性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아내가 죽은 뒤 6년만에 방동(芳洞)으로 이장하게 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노부가 아직 살아계시지만 이제는 기력이 점점 쇠하여가고있으며, 아내가 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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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27

    갑자년(1924년) 4월 25일 처사 안릉이공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척후생(戚後生) 남오진(南午鎭)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영해지방의 대인으로 덕이 있고 오래살았으며, 산림에 묻혀 살면서도 고인의 풍모를 지녔기에 한 고을의 중망을 받았음을 드러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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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28

    갑신년(1884년) 3월 20일 성균진사 무안박공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하루전날 계하(契下) 안릉 이현발(李鉉發)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자신은 병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고 대신 손자 병칠(秉七)을 보내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고인의 풍모를 지녀 어그리짐이 없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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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29

    갑신년(1884년) 9월 8일 사장(査丈)인 첨지중추부사 부호군 재령이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 전날 저녁에 사생(査生) 영해 신례경(申禮敬)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5복에서 보통 오래 사는 것을 최고로 여기지만, 자신은 유현들의 뜻을 받들어 덕이 가장 우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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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30

    임신년(1872년) 8월 8일 이종매(姨從妹) 안릉이씨의 부인 안동권씨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이종(姨從) 박우찬(朴瑀燦)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서로 이종간인지 모르다가 부인이 안릉이씨집안으로 시집을 와 가까이에 살다가 보니 알게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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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31

    임신년(1872년) 8월 8일 장조카며느리 유인 안동권씨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중숙부(仲叔父)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부인은 인자하고 어진 성품에, 위의가 온화하고 맑고 아름다운 행실을 지녔으니 마땅히 오래 살아야 하는데, 시집온지 3년도 안되어 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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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32

    갑신년(1884년) 9월 8일 종형인 약파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 전날 저녁에 종제 현옥(鉉玉)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삼달(三達)은 조정과 향당에서 보세장민(輔世長民)하는 것임을 언급하면서, 공이 중후하고 근검절약하는 성품에 위의와 신의가 있으며, 위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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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33

    정축년(1877년) 9월 24일 맏형수 유인 의성김씨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시동생 이중호(李中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임신년 여름에는 질부가 죽고, 계유년 봄에는 중형이 죽고, 올해 8월에는 형수마저 죽으니 3년연속 집안에 불행이 생겼음을 애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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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34

    기사년(1809년) 10월 종질 처사군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삼종숙 이상준(李相俊)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자신은 부족한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종질은 완전한 자질을 가지고 있어 항상 종질에게 부탁하였는데, 노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종질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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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35

    신미년(1811년) 7월 18일 중표종숙부(仲表從叔父) 재령이공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표종질(表從姪) 한양 조언철(趙彦哲)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우뚝한 풍의와 위엄있는 도량을 지녔으며 집안에서 효우로써하였고 향당에선 논의가 중하게 쓰여 몇 년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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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36

    제문의 시작부분이 훼손되어 제문을 지은 사람과 연도, 제사를 받는 신주를 알 수 없다. 온순하고 삼가는 품성에, 자질은 순수하고 아름다워 60년 동안 향당에서 칭송을 받았으면서 살았지만, 조금 더 수를 누리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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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37

    갑술년 5월 1일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재령이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사하생(査下生) 조석노(曺錫魯)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온아한 성품에 어진 심덕을 지녔으며, 화목으로 친족들에게 처하고 정성으로 사람들과 접하였으며, 언론이 정중하여 사람들이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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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38

    갑신년(1884년) 9월 8일 대종군 첨지중추부사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 전날 저녁에 척종손(戚從孫) 면성 박재후(朴載厚)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중후한 자질에 덕망까지 갖추어 모습을 보면 간중엄위(簡重嚴威)한 기상이 있고 말을 들으면 통변달사(通變達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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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39

    갑신년(1884년) 9월 8일 대종군 통정대부 약파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 전날 저녁에 족말(族末) 수백(壽栢)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집안을 다스리고 친족을 부림에 마땅하게 하였으며, 선조들을 받들고 남에게 접한 도리는 어그러짐이 없게 하였으며, 엄연히 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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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40

    갑신년(1884년) 9월 8일 종군 약파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 전날 저녁에 족조(族祖) 면영(冕榮)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쇠퇴해가던 집안의 문풍을 공이 우뚝하게 종당의 맹주로서, 몸가짐은 공손하고 부지런하였으며, 처세는 자세하고 주도면밀하게하여 문풍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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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41

    임진년(1832년) 10월 21일 외구(外舅)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영해 신공(申公)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외생(外甥) 이수일(李壽一)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돌아가신지 몇달만에 장례를 치르게 되었음을 알리고 있으며, 돌아가셨을때는 목이 메여 할말은 못하였기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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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42

    경오년(1810년) 10월 9일 대종자(大宗子) 처사군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인 이해중(李海重)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재령이씨는 인량동에서 훌륭한 집안이며, 나이와 성격은 다르지만 공과 자신은 어릴때부터 함께 지냈는데, 오늘 중상일에 곡을 하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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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43

    신축년(1661년) 9월 26일 성균학유를 역임한 조카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종숙(從叔) 이휘일(李徽逸)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인자한 성품을 지녔기에 오랜 수를 누릴 줄 알았더니만 병으로 인해 죽은 조카를 위해 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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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44

    기사년(1809년) 10월 17일 종형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 전날 저녁에 당제(堂弟) 이세영(李世榮)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타고난 품성이 너그럽고 관대하며, 일처리에 있어서 확실하던 형이 50세도 안된 나이에 병으로 죽게 됨을 애통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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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45

    사형의 죽음을 맞이하여 사제인 의성 김진림(金鎭林)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90된 나이로 직접가서 곡을 할 수 없는 처지라서 종질 노연(魯淵)을 보내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충효와 시례(詩禮)의 문풍을 이어받아 충직하고 신의있는 바탕에 강녕하게 오랜 수를 누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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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46

    병술년(1886년) 5월 1일 외조부 첨지중추부사 재령이공의 종상일을 하루 앞둔 저녁에 외손 여강 이학원(李學源)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얼굴도 모른채 증조부 슬하에서 커오다가 아동의 시기도 되지 않아 증조부마저 세상을 떠나 외조부 슬하에게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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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47

    을유년(1885년) 5월 1일 대구(大舊) 용양위부호군 재령이공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손녀사위 의성 김규병(金奎秉)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비록 늦게 태어났지만 문하에서 수업을 받은지 10여년이 되었으며 그동안 아껴주시고 보살펴주신 공의 은혜에 감사드린다는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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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48

    을미년(1835년) 4월 1일 외삼촌 처사 대흥 백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이틀전에, 사위 재령이공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사위를 속칭 '반쪽 아들'이라고 하기에 반쪽 아들로서 도리를 다할 것임을 언급하고 있으며, 외삼촌의 순수하고 두터운 자질에 고요한 성품을 지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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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49

    정축년(1877년) 9월 23일 맏질부 유인 의성김씨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남편의 막내 삼촌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용모는 단정하고 기질은 굳세고 총명하였으며, 성품은 온하하고 행실은 치밀하였으며, 선조들을 받들고 부모를 모시는 예절이 있었고 집안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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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8950

    저자와 연도를 알 수 없는 제문(祭文)이다.. 훼손이 심하여 자세한 내용은 알기 어려우나, 80년동안 산림에 묻혀 살면서 선조들의 유풍을 이어받아 후인들에게 잘 이어주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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