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28951
재령이씨 충효당 을유년에 이현식이 백형 약파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92]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현식을유년(1885년) 5월 1일 맏형인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 약파공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동생현식(鉉植)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형이 죽자 집안의 빛이 사라지고 기강이 무너져 버렸으며 조카들은 아버지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있으며, 작년출처 : 유교넷 -
228952
재령이씨 충효당 병술년에 여강 이능립이 첨추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93] / 기록자료>고문서 / 여강 이능립병술년(1886년) 5월 1일 첨지중추부사 재령이공의 대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정제(情弟) 여강 이능립(李能立)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영해가 영남에 일컬어지게 된 것은 재령이씨때문이고, 공은 재령이씨의 주손으로, 위의(威儀)는 만물을 진압하였고 도량은 넓출처 : 유교넷 -
228953
재령이씨 충효당 갑신년에 삼종숙 이수연이 삼종질 종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5094]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숙 이수연갑신년(1884년) 9월 8일 삼종질 호군종군 약파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 전에 삼종질 수연(壽蓮)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시례와 효우로 다져진 집안에서 태어난 공은 타고난 품성이 순수하고 받은 기운이 두터워서 문중을 진압시킬 수가 있었으며, 큰일이나 급하고출처 : 유교넷 -
228954
재령이씨 충효당 갑신년에 통가시하생 박우용이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95]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하생 박우용갑신년(1884년) 9월 8일 처사 재령이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통가시하생 박우용(朴宇鏞)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명현의 주손이며 영남의 명망을 받은 공은 우뚝한 풍모에 온화한 품성을 지녔으며, 화락으로 남에게 접하고 엄하게 자신을 규율하여 집안의 유풍을 이었으출처 : 유교넷 -
228955
재령이씨 충효당 갑신년에 이수기가 약파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096]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이수기갑신년(1884년) 9월 8일 통정대부 약파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 전날 저녁에 족종(族從) 수기(壽璣)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중후한 품성에 70평생을 살면서 선조들의 시례의 교훈을 잘 이어받았으며 후세에 충효의 가르침을 전하여 덕망이 높았음을 기리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956
재령이씨 충효당 임신년에 가형 이준희가 삼매 이실에게 올린 제문(祭文)[15097] / 기록자료>고문서 / 가형 이준희임신년 8월 8일 여동생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친정오빠인 준희(準羲)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유인은 완고한 자질에 우둔한 성품을 지녀, 평소 말을 빨리하지 않고 조용하고 정숙하였음을 드러내고 있다. 5세에 유모를 잃고 성장하여서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으며, 19출처 : 유교넷 -
228957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사시생이 만지례에 올린 제문(祭文)[15098] / 기록자료>고문서 / 사시생귀현(龜峴)에 사는 사시생(査侍生)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형식은 7언율시이며, 모두 7수이다. 대상이 인물이 아니고, 지례(知禮)마을이 사라지게 됨을 안타까워하면서 지은 만사(輓詞)이다. 오랜기간 풍류객들의 쉼터였고 학덕과 문풍을 자랑하던 곳이 없어지게 됨을 안타출처 : 유교넷 -
228958
재령이씨 충효당 기사년에 부 이병칠이 망실에게 올린 제문(祭文)[15099] / 기록자료>고문서 / 부 이병칠기사년에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로하기 위하여 남편 이병칠(李秉七)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시집와서 40년동안 집안에선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냈으며, 친척과 향당에선 친목과 화목을 도모하였으며, 자식들에겐 자상하면서 엄하였으며, 비복들에겐 어질면출처 : 유교넷 -
228959
재령이씨 충효당 병술년에 이만호가 백부에게 올린 제문(祭文)[15100] / 기록자료>고문서 / 질 이만호병술년(1886년) 5월 1일 백부인 첨지중추부사부군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조카 이만호(李晩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살아 생전에 친척과 향당에서 진무(鎭撫)하였으며, 몸가짐과 남을 대함에 삼가고 너그러웠음을 표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960
재령이씨 충효당 갑신년에 통가하생 박훈수가 첨추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101]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박훈수갑신년(1884년) 9월 8일 첨지중추부사 안릉이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통가하생 면성 박훈수(朴勳秀)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돈독하고 후덕한 품성을 지닌 공은 충효를 집안에 전하고 수신(守身)을 확실히하고 거짓으로 꾸미지 않아 칠순에 이르러 산악까지 덕이 가득차출처 : 유교넷 -
228961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이중영이 백씨 처사부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5102]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중영맏형의 권폄(權窆 : 임시로 하는 매장)일을 맞이하여 2일 전에 동생 이중영(李重榮)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자 집안의 맏형으로서 집안일을 걱정하고 동생들을 사랑하고 가르쳐줌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었으며, 성명을 보전하고 집안이 유지될 수 있었출처 : 유교넷 -
228962
재령이씨 충효당 정축년에 시아버지가 장자부 의성김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510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정축년(1877년) 9월 24일 맏며느리 의성김씨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시아버지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시집와서 25년간 하루같이 불만스러운 일이 있어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으며, 선조들을 받들고 웃어른을 섬시고 남을 다하여 한결같이 정성을 다하였으며, 온화하고 부출처 : 유교넷 -
228963
재령이씨 충효당 경술년에 부 이현발이 망실 안동김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5104] / 기록자료>고문서 / 부 이현발경술년(1850년) 6월 26일 부인 안동김씨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남편 이현발(李鉉發)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13년간 부부로 화락한 삶을 누렸음을 피력하고 있다. 또한 아내가 죽은 후 3년 동안 하루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음을 언급하면서 남편의출처 : 유교넷 -
228964
재령이씨 충효당 신미년에 족조 이광노가 대종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5105] / 기록자료>고문서 / 족조 이광노신미년(1811년) 7월 16일 대종군 성실(聖實)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족조(族祖) 이광노(李光魯)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인량동에 터전을 잡은 조상이 충효를 집안에 전하였으며, 이런 전통을 이어 받은 공은 강개하고 장엄한 성품에 우뚝한 용모를 지녔으출처 : 유교넷 -
228965
재령이씨 충효당 을유년에 박재만이 척전장 약파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106] / 기록자료>고문서 / 척하생 박재만을유년(1885년) 5월 1일 척존장(戚尊丈) 첨지중추부사 약파 재령이공의 중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척하생(戚下生) 면성 박재만(朴載萬)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고가의 전형을 이어받아 논의는 정중하고 풍범은 단응하며, 산이 서 있는 것처럼 엄하고 깊은 연못출처 : 유교넷 -
228966
재령이씨 충효당 경오년에 삼종제 이운영이 종형에게 올린 제문(祭文)[15107]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제 이운영경오년(1810년) 11월 25일 종형의 개장(改葬)일을 하루 앞두고 삼종제인 이진영(李震榮)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금년 가을 중상일에 다시 개장함할 것을 논의하여 오늘 개장하게 되었음을 고하고 있다. 종형의 우뚝한 기량을 다시 볼 수 없고, 넓고 너그러운 목소출처 : 유교넷 -
228967
재령이씨 충효당 신미년에 신상호가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108]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신상호신미년(1811년) 7월 18일 처사 재령이공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사제(査弟) 신상호(申相鎬)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지난 여름에 아내마저 죽자 세도가 땅에 떨어져 맏이인 극초(克肖)는 아비를 모시는 정성이 부족해져 문후조차 걸르게 되었음을 언급하면출처 : 유교넷 -
228968
재령이씨 충효당 을해년에 당제 이상춘이 당형에게 올린 제문(祭文)[15109] / 기록자료>고문서 / 당제 이상춘을해년(1815년) 3월 20일 당형의 합부(合祔)일을 하루 앞두고 당제 상춘(相春)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형이 죽은지 얼마안되어 형수와 막내조카도 연이어 죽음에 형의 무덤을 형수와 합장하고, 종질의 무덤을 그 아래에 옮기게 되었음을 고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969
재령이씨 충효당 신사년에 이우성이 선형 처사부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5110]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우성신사년(1761년) 11월 13일 형의 무덤을 옮기어 형수와 합장하는 날을 맞이하여 동생 宇成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형이 죽은 지 16년동안 형수는 강건한 모습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조상들을 받들다가, 금년 늦가을에 8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음을 먼저 알리출처 : 유교넷 -
228970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면성 박상영이 안능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111] / 기록자료>고문서 / 면성 박상영안릉이공의 이장일을 맞이하여 면성(綿城) 박상영(朴祥永)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안릉이공의 죽은뒤 집안의 운수가 불길하여 곧바로 공의 무덤을 이장할려고 했는데, 갑자기 병이 들어 2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이장을 하게 되었음을 고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971
재령이씨 충효당 병술년에 통가제 박진각이 재령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112]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제 박진각병술년(1886년) 5월 1일 첨지중추부사 재령이공의 금상(琴祥)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통가제(通家弟) 면성 박진각(朴鎭珏)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충효당의 고가에서 태어나 시례의 유풍을 계승한 공은 위의있는 모습에 말은 정중하며, 남을 대하고 스스로 행동할때출처 : 유교넷 -
228972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이우함이 종조부에게 올린 제문(祭文)[15113]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이우함12월 15일 종조부형 처사부군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2일 전에 재종제 이우함(李宇䤴)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바닷가에 터전을 잡아 가문은 공의 시대까지 9대동안 대대로 시례를 전하여 구업(舊業)을 잘 이었는데, 불행하게도 공이 죽음에 의지할 곳이 없게됨을 안타까워출처 : 유교넷 -
228973
재령이씨 충효당 무진년에 이인수가 대종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5114] / 기록자료>고문서 / 족숙 이인수무진년(1748년) 2월 12일 대종군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족숙 인수(仁樹)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몸이 아파 직접 곡을 할 수 없기때문에 아들 우추(宇錘)를 보내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어릴적부터 선부형들의 성대한 때와 걸맞는 전형으로 집안을 통솔하고 진압하였출처 : 유교넷 -
228974
재령이씨 충효당 병인년에 이우전이 대종형에게 올린 제문(祭文)[15115]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이우전병인년 12월 대종군처사부군의 제사일을 맞이하여 족제(族弟) 이우전(李宇銓)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이 죽은 뒤 5개월도 안되어 공의 선부인께서 돌아가셨고, 대렴도 하기전에 공의 맏이가 요절하여 세사람을 신주를 한방에 모시게 되어 너무 애통하여 목이 막힐 정도임출처 : 유교넷 -
228975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511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저작연도와 저자를 알 수 없다. 자신의 조부와 공의 대부가 함께 형제의 의를 맺어 동고동락하였음을 언급하고 있다. 공은 순박한 자질에 근후한 성품을 지녔으며, 효로써 어버이를 섬기고 친족들을 화목하게 이끌었으며, 문사가 넉넉하여 후배들의 의표가 되었음을 기리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976
재령이씨 충효당 신사년에 이광덕이 한양조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5117] / 기록자료>고문서 / 질 이광덕신사년(1761년) 11월 17일 백모 유인 한양조씨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조카 이광덕(李光德)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11세에 백부의 문하에 수업을 받다가 12세에 어머니를 여의자 백모께서 불쌍히 여겨 자식처럼 보살펴주시고 사랑해 주신 것에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977
재령이씨 충효당 기사년에 손종열이 재령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118]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제 손종열기사년(1809년) 10월 17일 재령이공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표종제(表從弟) 손종열(孫鐘烈)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내며, 사랑하는 어진 심성을 지녔으며, 충후함으로써 자신을 삼가고 온순함으로써 세상에 처함에 추앙하지 않는출처 : 유교넷 -
228978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511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연도와 저자를 알 수 없는 제문 초록이다. 총 304글자로 제문의 기본형식인 4언 댓구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상으로 보아 처남이 죽은 매형에게 올리는 제문으로 보인다.출처 : 유교넷 -
228979
재령이씨 충효당 경오년에 대흥 백거은이 사형에게 올린 제문(祭文)[15120]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대흥 백거은경오년(1810년) 11월 25일 사형 재령이공의 이장(移葬)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사제인 대흥 백거은(白居殷)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의 집안이 기구하여 판각을 마치자 화가 겹치어 다시 선영의 무덤 곂으로 이장하게 되었음을 고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980
재령이씨 충효당 무신년에 이현덕이 구수 안동김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5121]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이현덕무신년(1848년) 9월 4일 맏형수 유인 안동김씨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시동생 이현덕(李鉉德)이 지은 제문(祭文)이다.. 부드럽고 아름답고 정순한 덕을 지녔으며, 형제와 종당간에 마땅하게 하였으며, 어질고 치밀하게 일을 처리하여 집안어른들로부터 칭찬이출처 : 유교넷 -
228981
재령이씨 충효당 병인년에 이의제가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5122] / 기록자료>고문서 / 종형 이의제병인년(1746년) 8월 28일 당팔제(堂八弟) 천성(天成)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하루전날 종형 이의제(李宜濟)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2월 12일에는 백부께서 세상을 떠나고, 6월 16일에는 조모까지 세상을 떠났음을 먼저 밝히고 있다. 증조부와 조부때에만 해도 고출처 : 유교넷 -
228982
재령이씨 충효당 갑신년에 이만호가 첨추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123] / 기록자료>고문서 / 질 이만호갑신년(1884년) 9월 8일 백부인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부군의 장례일을 맞이하여 이틀전에 조카 만호(晩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아름답고 덕스러운 풍모를 다시 볼 수 없고, 정성스럽게 아껴주시는 은혜를 다시 입을 수 없게 됨을 안타까워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983
재령이씨 충효당 병술년에 이형호가 백부 첨추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5124] / 기록자료>고문서 / 질 이형호병술년(1886년) 5월 1일 백부인 첨지중추부사부군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전날 저녁에 조카 형호(亨浩)가 지은 제문(祭文)이다.. 돌아가신 이후로 집안의 전형의 땅에 떨어졌음을 고하고 있으며, 문중 대소사에 대해서 의논할 곳이 없으며, 집안의 의심나는 일에 대해서 물출처 : 유교넷 -
228984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지(試紙)[1512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문과식년 을과 제2등으로 급제한 사람이 임금에게 자신의 뜻을 가납해 줄 것을 바라는 뜻으로 올린 시지(試紙)이다. 성군의 자질로서 요순의 정신을 본받아 나라를 혼란에 빠지게 하지 말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부강한 국가로 다스려줄것을 바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228985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시지(試紙)(版築讀書賦)[1512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독서에 관한 글을 적은 부(賦)이다. 독서의 중요성과 독서의 효용성, 영향력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아름다운 말과 올바른 행실과 뛰어난 문장은 모두 독서를 충분히 한 뒤에야 가능한 일임을 피력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28986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홀기(笏記)[1512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사당에서 제사를 지낼 때의 의식(儀式)을 적은 홀기(笏記)이다. 주인을 비롯한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해야할 임무와 행동들에 대한 순서를 기록해 놓은 것이다.출처 : 유교넷 -
228987
재령이씨 충효당 모년에 유치호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5128] / 기록자료>고문서 / 전주인 류치호이 문서는 류치호(柳致皜)가 지은 운악(雲嶽)선생 이공의 묘지명이다. 이공은 자가 양원(養源)이며, 1554년에 태어나서 1632년에 돌아가셨으며, 조(祖)는 울진현을 다스렸던 애(瑷)이며 영해에 이주하였다 했다. 아버지는 좌승지에 증직된 은보(殷輔)이며 어머니는 정출처 : 유교넷 -
228988
재령이씨 충효당 경오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문부(文簿)(柯木亭祭位禊案)[1512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경오년 11월 작성된 계안(禊案)으로 가목정(柯木亭) 제위(祭位)에 부조한 사람과 금액을 기록해 놓고 있다. 돈의 단위가 1원, 5원으로 보아 경오년(1930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출처 : 유교넷 -
228989
재령이씨 충효당 신유년에 남곡노인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문부(文簿)(講會錄)[15130] / 기록자료>고문서 / 남곡노인이 문서는 신유년 3월에 남곡노인(南谷老人)이 지은 강회록(講會錄)이다. 서문에서 그는 가학의 연원이 땅에 떨어지고 후학들을 일깨워 줄 지도자가 없어 참다운 학문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지도자에게 자신들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면서 몇 년동안 강회에 참여한 명단을 함께출처 : 유교넷 -
228990
재령이씨 충효당 1615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문부(文簿)(洞重完議)[1513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만력43년(1615년) 5월에, 마을의 계를 결성할 때 작성한 완의(完議)이다. 계에 참석한 계원의 명단과 계의 회칙인 동규(洞規)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동규는 주로 상례와 혼례시에 관한 내용으로, 임무를 충실하게 이행하지 못하면 이에 따른 벌칙을 상중하출처 : 유교넷 -
228991
재령이씨 충효당 계묘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문부(文簿)(時用洞案)[1513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서는 마을의 계를 다시 결성하는 동안(洞案)이다. 박신지(朴身之)가 지은 서문에서 보면 지금의 인촌 상리와 하리는 옛날에는 두 개의 동으로 나뉘었다가 중간에 없어진 것이 수십년 되었으며, 마을의 부로(父老)들이 서로 협의하여 다시 동계를 결성하기로 합의하여 다시출처 : 유교넷 -
228992
재령이씨 충효당 1642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문부(文簿)(洞案)[1513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서는 1642년(숭정 15년)에 2월에 작성된 것으로 마을의 계를 결성한 동안(洞案)이다. 동규를 보면 대상인원은 부모, 본인, 처로 상을 당했을 때, 결혼을 할 때 부조를 하는 내용이다. 부모에게 불효하고 형제간에 화목하지 못하고 공물을 빼앗아 먹으면 마을에서출처 : 유교넷 -
228993
재령이씨 충효당 병자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문부(文簿)(洞案)[1513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서는 병자년 4월에 결성된 동안(洞案)이다. 후록은 신사년 3월에 썼다고 되어있으니 동계를 결성하여 5년 만에 다시 수정한 듯 하다. 참여한 인원은 처음은 121명이고 나중에 10명이 추가되어 모두 131명이 가입한 것으로 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228994
재령이씨 충효당 경술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문부(文簿)(譜廳日記)[1513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서는 족보를 간행하면서 보청(譜廳)의 일들을 기록한 일기이다. 경술년에 족보를 개수한 후로 2기(24년)가 지난 지금 속보(續譜)의 논의가 있어 멀리 있는 곳에는 통문을 돌려 죽리관에 모여 금년 봄에 작업에 들어가기로 약속하였다고 했다. 3월 22일에 독동(篤洞출처 : 유교넷 -
228995
재령이씨 충효당 무진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문부(文簿)(洞案續錄)[1513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조선시대에는 향약(鄕約)에 널리 보급되어 각 고을마다 실시되었는데 시기가 아래로 내려 올수록 동(洞)이나 마을에서도 이를 실시하였다. 이와 같이 동이나 마을에서 실시된 향약을 동약(洞約)이라고 하였으며 마을 단위였기 때문에 그곳에 거주하는 양반은 물론 평민이나 천민(출처 : 유교넷 -
228996
재령이씨 충효당 계축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문부(文簿)(日池小齋會奠錄)[1513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일지(日池) 소재(小齋) 회전록(會奠錄)으로, 일지에 있는 재사에 제사를 지낼때의 산신축과 지역별 소재되어 있는 신위를 모두 기록해 두고 있다. 갑인년 10월 8일 일지(日池) 재사의 제사에 참석한 34명과 무자년 10월 9일 독동(篤洞) 제사에 참석한 인원 37명을출처 : 유교넷 -
228997
재령이씨 충효당 병자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문부(文簿)(계 稧案)[1513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문중의 계모임을 위해 만든 계안(契案)이다. 계를 결성할 당시 계묘년(1663년) 초기 인원에, 병자년(1696년)부터 정미년(1727년)까지 추가 가입한 회원들의 명단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삼혼사상(三婚四喪)에 대한 부조에 대한 원칙을 기술하고 있으며, 부조를출처 : 유교넷 -
228998
재령이씨 충효당 경자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문부(文簿)(門契完議)[1513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경자년에 문중의 계모임을 위해 만든 완의(完議)이다. 친목과 화합을 위해 결성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으며, 주로 흉사와 길사에 계 모임에서 행해야 할 부조에 대한 원칙을 매우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변동이 있을 경우 회의를 거쳐 새롭게 추가하였다.출처 : 유교넷 -
228999
재령이씨 충효당 무신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문부(文簿)(扶助記)[1514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서는 무신년 10월 2일에 작성한 부조기(扶助記)이다. 금액 단위가 백원, 천원인 것으로 보아 1958년으로 추정된다.출처 : 유교넷 -
229000
재령이씨 충효당 계해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문부(文簿)(弔慰錄)[1514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서는 계해년 4월 25일 오시(午時) 초상(初喪) 때에 작성한 조위록(弔慰錄)이다. 조상(弔喪)을 온 사람은 초상때뿐만 아니라 5월 21일 장사할 때에 참석한 인원과 이듬해 소상을 앞두고 15일, 20일, 23일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4월 24일 소상때 참석한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