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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기축년 2월에 희락이 종형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65]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희락김희락(金曦洛)이 종형 처사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밍자와의 사별 아픔을 절실하게 묘사하였다. 특히, 망자가 평소 자신에게 베푼 은덕을 회고하면서, 그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의 심정을 곡진히 표현하였다. 망자의 효성과 우애 정신을 강조하고 그가 가정에서 가족과 친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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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기축년 2월에 안동 김하규가 처사 의성김공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66] / 기록자료>고문서 / 부질 안동 김하규김하규(金夏圭)가 처사 김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망자의 가문과 덕행의 번성함을 강조했다. 망자는 가문의 영향에 힘입어 어진 덕성과 빼어난 문예적 역량을 지녔다고 했다. 이와 함께 그의 효행담과 덕행담을 회고하면서, 특히 자신과의 교분을 회고하였다. 만년에 그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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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기축년 2월에 통가소자 완산 유동운이 처사 의성김공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67]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소자 완산 류동운류동운(柳東運)이 처사 김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평소 망자의 후덕한 인품과 고결한 자태를 익히 듣고, 그에 대한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고 술회하였다. 그리고 망자가 그 명성에 걸맞게 자신과 가족 및 친지들에게 베풀었던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그에 대한 그리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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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기축년 4월에 주락이 재종형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68]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주락김주락(金宙洛)이 재종형 처사 김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망자가 어렸을 때 자신에게 훈계한 기억을 떠올리며, 그리운 정을 토로하였다. 그리고 빈한과 부귀 영화를 초월해서 살라고 강조했던 망자의 고결한 인품과 기개를 회고하면서, 그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을 토로한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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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무자년 2월에 술연이 족종형 처사김공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69]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술연김술연(金述淵)이 종형 처사 김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개인적인 사별 슬픔을 문학적 심상으로 표현하였다. 망자와 대화를 하는 것 같은 문맥으로 표현하면서, 망자와의 사별 아픔을 보다 절실하게 표현하였다. 특히, 망자가 친지들에게 모범적으로 효행을 실천했던 점과 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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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경오년 10월에 장규가 김씨고 한산이씨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70]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장규김장규(金章珪)가 유인(孺人) 한산이씨부인(韓山李氏夫人)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부인에 대한 애도의 심정이 대화식으로 표현된 제문이다. 부인의 아름다운 덕성은 가정의 교훈을 깊이 체득한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했다. 이어 부인이 가족과 친지들에게 베푼 어진 덕행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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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임신년 9월에 동락이 백모 한산이씨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71] / 기록자료>고문서 / 종자 동락임신(壬申) 구월 십칠일 숙모(叔母) 유인(孺人) 한산이씨(韓山李氏)를 위한 제문(祭文)으로 종자(從子) 동락(東洛)이 쓴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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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정해년 윤4월에 통가제 동래 정찬관이 처사 의성김공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72]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제 동래 정찬관정찬관(鄭鑽寬)이 처사 김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서두에서부터 망자에 대한 슬픈 마음을 절실하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망자의 가문이 여러 면에서 출중했고, 망자가 그런 유풍을 계승했던 점을 강조했다. 그는 가학을 통해 시서와 예의를 익혀, 고결한 선비 형상을 구비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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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무자년 10월에 통가생 청송 심한택이 처사 의성김공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73]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생 청송 심한택심한택(沈漢澤)이 처사 김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망자가 별세한 지 일주기가 되는 시점에서 망자의 평소 행적과 덕행을 추모하며, 지은 제문이다. 망자는 집안의 가풍을 계승하여 학문적인 성취와 덕업을 이루었다고 했다. 이어 예전에 망자가 자신에게 베풀었던 아름다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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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임신년 9월에 동락이 종형 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74]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동락김동락(金東洛)이 종형 처사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장문에 걸쳐 그를 추모하는 동시에 그리운 정을 표현하였다. 서두에서부터 망자를 잃은 애통함과 그리운 정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가족 관계를 설명하면서, 평소 가족과 단란하게 지냈던 점을 회고하면서 그리운 정서를 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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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임신년 9월에 영양 남대진이 한산이씨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75] / 기록자료>고문서 / 인소제 영양 남대진임신(壬申) 구월 십칠일 숙모(叔母) 유인(孺人) 한산이씨(韓山李氏)를 위한 제문(祭文)으로 영양(英陽)의 남대진(南大鎭)이 쓴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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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정해년 윤월에 상수가 처사 문소 김희원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76]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상수정해(丁亥) 윤월(閏月) 사일에 김희원(金希源)을 위한 제문으로 족종(族從) 상수(常壽)가 쓴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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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정미년 10월에 하진이 백부 백모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77] / 기록자료>고문서 / 종자 하진김하진(金夏鎭)이 백부의 무덤을 이장하여 백모와 합장하면서 영전에 바친 제문이다. 백부와의 어린 시절 추억을 회고하면서, 개인적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하였다. 그리고 망자의 행적과 덕행을 추모하면서, 사별의 아픔을 문면에 그려내었다. 망자와의 교분과 추억을 회고하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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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무자년 2월에 사종제 부락이 사종형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78]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제 부락김부락(金孚洛)이 종형 처사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망자의 가족애를 강조하면서, 효성과 우애가 독실했던 점을 회고하였다. 그리고 그의 빼어난 재주와 학문 및 덕행을 추모하면서, 사별에의 아픔을 절실하게 그려내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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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임신년 9월에 의성 김규진이 한산이씨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79]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의성 김규진김규진(金珪鎭)이 유인(孺人) 한산이씨부인(韓山李氏夫人)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서두에서부터 부인의 어진 덕행과 고운 자태를 추모하였다. 그리고 부인의 이런 면모는 결국 가문의 교육과 유풍에 기인한 것임을 강조했다. 부인의 내조와 정숙한 면모를 강조하는 한편, 후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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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기축년 2월에 호락이 족형 처사 의성김공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80]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호락김호락(金虎洛)이 처사 김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사림들이 의지할 바를 잃었다고 하면서,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했다. 그리고 그가 육십 평생을 살면서, 베풀었던 행적과 학문적인 영향 등에 대해 강조하며 추모의 심정을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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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무자년 2월에 동래 정성관이 인형 처사 문소김공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81]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동래 정성관정성관(鄭聖寬)이 처사 김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망자의 굳건한 기상과 어진 덕성을 함께부각하면서, 그리운 정을 곡진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망자가 병세를 이기지 못한 채 별세한 점을 애통하게 여겼다. 그리고 그가 평소에 가족과 친지들에게 베푼 애정의 인간미를 추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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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정해년 윤4월에 산진이 처사 의성김공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82]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산진김산진(金山鎭)이 처사 김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집안의 연로한 분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게 된 점을 애석하게 여기며, 슬픈 심정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망자가 일찍이 가학을 계승하여 어진 덕성과 훌륭한 품성을 구비했던 점을 추모했다. 이와 함께 망자가 가문과 가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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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임신년 11월에 의성 김기연이 족숙모 한산이씨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83]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의성 김기연김기연(金器淵)이 숙모 유인 한산이씨 부인의 영전에 제문이다. 김기연은 부인이 평소 자기에게 베푼 덕행을 회고했다. 그리고 부인이 평소 가정과 친척들에게 어진 인품을 바탕으로 하여, 베푼 사랑의 실천 정신을 강조하였다. 부인의 이런 면모는 결국 가문의 유풍에 기초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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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정해년 윤4월에 진발이 재종질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84]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숙 진발종숙인 진발(鎭發)이 재종질 처사 김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서두에서 부터 망자와 대화하듯이 슬프고 그리운 심정을 토로하였다. 평소 망자와의 교분을 추억하면서 그리운 심정을 표현하였다. 이어지는 글에서도 망자를 잃은 슬픔과 그리움을 표현하며 평생의 행적을 추모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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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경오년 10월에 응추가 종형 처사공, 부인 한산이씨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85]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제 응추종형(從兄)인 처사공(處士公)이 돌아가시고 지금 부인(夫人)인 한산이씨(韓山李氏)와 합장을 하면서 지은 제문으로 족소제(族小弟) 응추(應樞)가 지은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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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무자년 2월에 재락이 재종형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86]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재락김재락(金在洛)이 재종형 처사 김공의 영전에 올린 장문의 제문이다. 김재락은 집안 어른들의 전언을 통해 김공의 행적에 대해 익히 들은 바 있다고 강조했다. 김공은 평소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전해지는 유풍을 익히고, 유가적 전통을 체득하여 단아한 선비 형상을 이루었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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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기축년 2월에 삼종소제 기락이 삼종형 처사 김공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87]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소제 기락기축(己丑) 이월 이십삼일에 삼종형(三從兄) 김공(金公)을 위한 제문으로 삼종소제(三從少弟)인 기락(起洛)이 쓴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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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무자년 2월에 사종제 양락이 종형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 [06288]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제 양락김양락(金養洛)이 종형 처사 김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망자에 대한 개인 정서 표현이 주조를 이룬다. 망자가 자기 가족들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돌보아 준 은덕을 생각하면서, 애도의 심정을 문면에 드러내었다. 평소 가정과 친척들에게 행했던 어질고 겸손한 모습을 떠올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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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모년에 이씨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계안(契案)(矯風契祝約宣書)[06289] / 기록자료>고문서 / 우동 이씨교풍계규약선언(矯風契規約宣言)이다. 조국 광복 이후 무너진 기강과 윤리강상 및 도덕성 회복을 위한 선언문이다. 전체 내용은 강령과 벌칙, 조직, 집회, 부칙, 임원의 순서로 되어있다. 조직은 회장, 총무, 서무, 경리, 감사 등으로 구성되어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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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76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29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敎旨)이다.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관직이나 시호, 토지,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이 문건은 1676년(숙종 2) 6월 15일에 왕이 중훈대부인 김방걸(金邦杰)을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 일종의 사령장이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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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79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29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76년(숙종 2) 11월 30일에 왕이 통훈대부(通訓大夫)인 김방걸(金邦杰)을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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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89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29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79년(숙종 5) 8월 2일에 왕이 통훈대부(通訓大夫)인 김방걸(金邦杰)을 사간원(司諫院) 헌납(獻納)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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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87년에 발급자미상이 김세중에게 내린 교지(敎旨)[0629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87년(숙종 13) 9월 15일에 유학 김세중(金世重)을 진사시 3등 53인으로 합격했음을 확인한 합격증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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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89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29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89년(숙종 15) 2월 28일에 왕이 통훈대부(通訓大夫)인 김방걸(金邦杰)을 홍문관부수찬지제교겸경연검토관춘추관기사관(弘文館副修撰知製敎兼經筵檢討官春秋館記事官)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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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89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29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89년(숙종 15) 윤 3월 13일에 왕이 통훈대부(通訓大夫)인 김방걸(金邦杰)을 사간원(司諫院) 사간(司諫)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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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89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29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89년(숙종 15) 4월 9일에 왕이 통훈대부(通訓大夫)인 김방걸(金邦杰)을 사간원(司諫院) 사간(司諫)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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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89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29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89년(숙종 15) 5월 14일에 왕이 김방걸(金邦杰)을 통훈대부종부시정겸춘추관편수관(通訓大夫宗簿寺正兼春秋館編修官)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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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89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29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89년(숙종 15) 8월 19일에 왕이 통훈대부(通訓大夫)인 김방걸(金邦杰)을 홍문관부수찬지제교겸경연검토관춘추관기사관(弘文館副修撰知製敎兼經筵檢討官春秋館記事官)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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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89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29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89년(숙종 15) 12월 6일에 왕이 통훈대부(通訓大夫)인 김방걸(金邦杰)을 홍문관부응교지제교겸경연시강관춘추관편수관(弘文館副應敎知製敎兼經筵侍講官春秋館編修官)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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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90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30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89년(숙종 15) 12월 26일에 왕이 통훈대부(通訓大夫)인 김방걸(金邦杰)을 사간원(司諫院) 사간(司諫)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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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90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30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90년(숙종 16) 1월 11일에 왕이 통훈대부(通訓大夫)인 김방걸(金邦杰)을 홍문관부응교지제교겸경연시강관춘추관편수관(弘文館副應敎知製敎兼經筵侍講官春秋館編修官)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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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90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30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90년(숙종 16) 2월 2일에 왕이 김방걸(金邦杰)을 통정대부승정원동부승지겸경연참찬관춘추관수찬관(通政大夫承政院同副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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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91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30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90년(숙종 16) 4월 12일에 왕이 절충장군(折衝將軍)인 김방걸(金邦杰)을 호분위부사직(虎賁衛副司直)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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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91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30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91년(숙종 17) 6월 25일에 왕이 김방걸(金邦杰)을 통정대부병조참의(通政大夫兵曹參議)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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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92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30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敎旨)이다. 이 문건은 1691년(숙종 17) 10월 27일에 왕이 김방걸(金邦杰)을 통정대부병조참의지제교(通政大夫兵曹參議知製敎)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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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92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30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92년(숙종 18) 1월 26일에 왕이 김방걸(金邦杰)을 통정대부병조참의지제교(通政大夫兵曹參議知製敎)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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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92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30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92년(숙종 18) 3월 3일에 왕이 김방걸(金邦杰)을 통정대부예조참의(通政大夫禮曹參議)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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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92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30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92년(숙종 18) 3월 3일에 왕이 김방걸(金邦杰)을 절충장군용양위부사직(折衝將軍龍驤衞副司直)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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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75년에 발급자미상이 김재중에게 내린 교지(敎旨)[0630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75년(숙종 1) 10월에 왕이 김재중(金載重)을 통덕랑(通德郞)에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말미에 해당 관원들의 수결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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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93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31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92년(숙종 18) 7월 27일에 왕이 절충장군인 김방걸을 용양위부호군(龍驤衞副護軍)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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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92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31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93년(숙종 19) 2월 4일에 왕이 절충장군(折衝將軍)인 김방걸(金邦杰)을 용양위부호군(龍驤衞副護軍)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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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93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31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92년(숙종 18) 4월에 왕이 절충장군(折衝將軍)인 김방걸(金邦杰)을 용양위사과(龍驤衞司果) 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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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94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31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93년(숙종 19) 12월 14일에 왕이 절충장군(折衝將軍)인 김방걸(金邦杰)을 용양위부호군(龍驤衞副護軍)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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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종택 1694년에 발급자미상이 김방걸에게 내린 교지(敎旨)[0631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지이다. 이 문건은 1693년(숙종 19) 12월 19일에 왕이 김방걸(金邦杰)을 통정대부사간원대사간(通政大夫司諫院大司諫)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