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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올린 상소(上疏)(草)[0103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상소문(上疏文)이다. 일자와 인명이 없으며, 내용은 상소문을 초(草)한 문건이다. 시정에 대한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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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올린 상소(上疏)(草)[0103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특정 인물에 대한 춘추대의 이념고수 의식을 천양하며, 유교적 학문 정신을 강조한 글이다. 그리고 문면에 유교 정치 이념과 성리학 철학이 결부되어 표현되고 있다. 그의 충효 정신과 의리 정신을 강조하면서, 평소 충효 정신을 실현했던 면모를 기념하고 추모의 심정을 표현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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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김정원이 올린 상소(上疏)(執義金鼎元상소(上疏))[01039] / 기록자료>고문서 / 김정원김정원(金鼎元)이 주상의 덕치를 강조하면서 신하들의 어진 정치 지향을 강조한 상소문이다. 그리고 애민 정서를 반영하였으며 백성들의 삶의 안정과 덕치 이념을 강조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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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올린 상소(上疏)(草)[0104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덕치와 민본주의를 지향하는 군주의 도덕성 각성을 촉구했다. 바람직한 민본주의는 덕치 구현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했다. 군왕의 선정과 덕치 이념 실천을 강조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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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정묘년 3월에 강홍원댁 노 홍득이가 사도주에게 올린 소지(所志)[01041] / 기록자료>고문서 / 강홍원댁 노 홍득이정묘(丁卯) 삼월일의 소지[所志;소송문권]이다. 법전(法田) 강홍원(姜洪原) 댁 종[奴] 홍득이(洪得伊) 명의로 된 토지를 관청에서 결정해 달라는 소장에 판결을 지어준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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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갑술년 10월에 강정언댁 노 석린이가 사도주에게 올린 소지(所志)[01042] / 기록자료>고문서 / 강정언댁 노 석린이갑술(甲戌) 시월일 토지 소송 문권이다. 춘양면(春陽面) 법전리(法田里) 강(姜) 정언(正言) 댁 종 석린(石獜)의 명의로 관청에 소장을 올려서 판결을 받은 문권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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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을유년 11월에 강홍원댁 노 석린이가 사도주에게 올린 소지(所志)[01043] / 기록자료>고문서 / 강홍원댁 노 석린을유(乙酉) 십일월일 토지소송 문권이다. 춘양면(春陽面) 법전리(法田里) 강홍원(姜洪原) 댁 종[奴] 석린(石獜)의 명의로 사도(使道)에 올린 소송의 문권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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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갑신년 8월에 강윤영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01044] / 기록자료>고문서 / 민 강윤영갑신(甲申) 팔월의 소지(所志) 문권이다. 법전(法田) 민(民) 강윤영(姜胤永)의 명의로 성주(城主)에 처분을 요구한 문권이다. 갑자기 횡액을 당한 일에 대해 처분을 내려 달라는 소장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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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계축년 10월에 강헌납댁 노 귀복이 순사도주에게 올린 소지(所志)[01045] / 기록자료>고문서 / 강헌납댁 노 귀복계축(癸丑) 시월일의 소송문권이다. 춘양면(春陽面) 법전리(法田里) 강(姜) 헌납(獻納) 댁 노(奴) 귀복貴福)의 명의로 순사도(巡使都;순찰사)에게 영주에서 상전이 봉변을 당했다고 올린 소장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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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임진년 7월에 강홍원댁 노 학용이 진사주에게 올린 소지(所志)[01046] / 기록자료>고문서 / 강홍원댁 노 학용임진(壬辰) 칠월일의 소장(訴狀)이다. 춘양면(春陽面) 강홍원(姜洪原) 댁 종[奴] 학룡(學龍)의 명의로 진사(鎭使)에 올린 소장이다. 내용은 묘(墓) 가까이 토지를 개간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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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갑신년 6월에 강준흠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01047] / 기록자료>고문서 / 민 강준흠 등갑신(甲申) 유월 강씨의 소장이다. 춘양면(春陽面) 법전리(法田里) 강준흠(姜儁欽) 등 8명의 연명으로 성주(城主)에 올린 소장이다. 내용은 투장(偸葬)에 대한 처분을 내려달라는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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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갑신년 7월에 강준흠 등이 성주각하에게 올린 소지(所志)[01048] / 기록자료>고문서 / 민 강준흠 등갑신(甲申) 칠월일 강씨의 소장이다. 춘양면(春陽面) 법전리(法田里) 강준흠(姜儁欽) 등 8명의 연명으로 성주(城主)에 올린 소장이다. 내용은 투장(偸葬)에 대한 처분을 내려달라는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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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갑신년 7월에 강준흠 등이 성주각하에게 올린 소지(所志)[01049] / 기록자료>고문서 / 민 강준흠 등갑신(甲申) 칠윌일 강씨의 소장이다. 춘양면(春陽面) 법전리(法田里) 강준흠(姜儁欽) 등 8명의 연명으로 성주(城主)에 올린 소장이다. 내용은 투장(偸葬)에 대한 처분을 내려달라는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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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갑신년 7월에 강준흠 등이 성주각하에게 올린 소지(所志)[01050] / 기록자료>고문서 / 민 강준흠 등갑신(甲申) 칠월일 강씨의 소장이다. 춘양면(春陽面) 법전리(法田里) 강준흠(姜儁欽) 등 5명의 연명으로 성주(城主)에 올린 여섯번째 소장이다. 내용은 투장(偸葬)에 대한 처분을 내려달라는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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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갑신년 8월에 강준흠 등이 성주각하에게 올린 소지(所志)[01051] / 기록자료>고문서 / 강준흠 등갑신(甲申) 팔월일 강씨의 소장이다. 춘양면(春陽面) 법전리(法田里) 강준흠(姜儁欽) 등 5명의 연명으로 성주(城主)에 올린 소장이다. 내용은 투장(偸葬)에 대한 처분을 내려달라는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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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갑신년 3월에 강준흠 등이 성주각하에게 올린 소지(所志)[01052] / 기록자료>고문서 / 민 강준흠 등갑신(甲申) 삼월일 강씨의 소장이다. 춘양면(春陽面) 법전리(法田里) 강준흠(姜儁欽)등 8명의 연명으로 성주(城主)에 올린 소장이다. 내용은 투장(偸葬)에 대한 처분을 내려달라는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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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갑신년 8월에 강준흠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01053] / 기록자료>고문서 / 민 강준흠 등갑신(甲申) 팔월일 강씨의 소장이다. 춘양면(春陽面) 법전리(法田里) 강준흠(姜儁欽) 등 7명의 연명으로 성주(城主)에 올린 소장이다. 내용은 투장(偸葬)에 대한 처분을 내려달라는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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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갑신년 8월에 강준흠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01054] / 기록자료>고문서 / 민 강준흠소지(所志)이다. 갑신(甲申)년 8월에 춘양면(春陽面) 법전리(法田里) 백성인 강준흠(姜儁欽)이 관에 올린 청원서로서, 무덤을 아주 먼 곳에 또 빨리 옮길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다. 이에 대하여 관에서는 옮긴 후에 다시 소지를 올리라고 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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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갑신년 8월에 강준흠이 성주각하에게 올린 소지(所志)[01055] / 기록자료>고문서 / 민 강준흠소지(所志)이다. 갑신(甲申)년 8월 춘양면(春陽面) 법전리(法田里) 백성인 강준흠(姜儁欽)이 이장을 너무 늦게한 것에 대하여 관에 소지를 올린 내용이다. 이에 대하여 관에서는 앞으로 잘 수호하고 다시는 소지를 올리지 말아 달라는 제음(題音)을 내려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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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갑자년 5월에 화민 강전이 성주각하에게 올린 소지(所志)[01056]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강전소지(所志)이다. 갑자(甲子)년 5월에 화민(化民) 강전(姜鋑) 등이 투장(偸葬)한 김병인(金炳仁)의 처의 묘를 빨리 옮겨 달라는 청원을 올린 내용이다. 이에 대하여 이장을 하였는지를 조사하여 김민(金民)을 데리고 와서 대령하라고 제음(題音)을 내려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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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계해년 12월에 화민 강전이 성주각하에게 올린 소지(所志)[01057]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강전소지(所志)이다. 계해(癸亥)년 십이월에 화민(化民) 강전(姜鋑) 등이 재차 김병인(金炳仁)의처의 묘를 빨리 이굴하도록 관이 독촉하여 달라는 소지이다. 이에 대하여 다음달 초1일에 김민(金民)은 성화같이 이장하라고 제음(題音)를 내려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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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병자년 12월에 강홍원댁 노 흥손이이 사도주에게 올린 소지(所志)[01058] / 기록자료>고문서 / 강홍원댁 노 흥손이소지(所志)이다. 병자(丙子)년 12월에 사도주(使道主)에게 와단면(臥丹面) 법전리(法田里) 강홍원(姜洪原)의 노(奴) 흥손이(興孫伊)가 올린 소지로 원래 무주공산인 곳을 강씨댁 산소로 하려하니 관에서 인정하여 달라는 내용이다. 이에 대하여 앞으로 착실히 수호하라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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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기해년 2월에 강홍원댁 노 학룡이 사도주에게 올린 소지(所志)[01059] / 기록자료>고문서 / 강홍원댁 노 학룡소지(所志)이다. 기해년 2월에 춘양면(春陽面) 법전리(法田里) 강홍원(姜洪原)의 노(奴) 학룡이(學龍伊)가 사도주(使道主)에게 올린 진정서이다. 분묘로 산 산을 마을 주민들이 개간하여 토지로 사용하므로 이를 금지시켜 달라는 내용이다. 이에 대하여 소지대로 개간을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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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신사년 10월에 강정언댁 노 대천이 사도주에게 올린 소지(所志)[01060] / 기록자료>고문서 / 강정언댁 노 대천강정언댁 노비가 억울한 신상의 일을 원님에게 호소한 소송 문건인 소지(所志)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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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신축년 10월에 강홍원댁 노 학용이 이도주에게 올린 소지(所志)[01061] / 기록자료>고문서 / 강홍원댁 노 학용소지(所志)이다. 신축(辛丑)년 일월에 춘양면(春陽面) 법전리(法田里) 강홍원(姜洪原)이라는 자가 노 학룡(學龍)의 이름으로 올린 진정서이다. 상전댁의 전답을 부치고도 상전의 전답이 아니라고 우겨 도곡을 내지 아니하였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하여 관에서 지번을 즉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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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갑신년 6월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소지(所志)[0106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고음(다짐)이다. 갑신(甲申)년 유월 초팔일에 권대룡(權大龍)이 강수영(姜壽永)과의 산송(山訟)에서 패소하여 왼쪽에 정한 기한까지 이굴하지 않으면 엄격히 이굴을 독려하겠다는 것을 관에 다짐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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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계해년 11월에 화민 강전 등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소지(所志)(草)[01063]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강전 등소지(所志)이다. 계해(癸亥)년 십일월에 화민(化民) 강전(姜鋑)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이다. 김병인(金炳仁)의 투장(偸葬)한 일에 상관하지 않겠다는 관의 다짐에 대하여 호소할 길이 없으므로 다시 살펴 엄히 다짐을 내려주시기를바라는 문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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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 4월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소지(所志)(行狀)[0106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등장(等狀)이다. 종중단자(宗中單子)와 제사(題辭)가 첨부되어 있다. 단독으로 올리는 소지(所志)와 여러 명이 올리는 등장이 있고 이들 소지류에 대한 관(官)의 다짐이 있으며, 산형도(山形圖)도 있으나 찢겨나간 부분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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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소지(所志)(草)[0106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상소문이다. 지방 유력자인 강역(姜櫟)·강집(姜木+集) 형제의 횡포가 너무 심하므로 형인 역(櫟)은 구축(驅逐) 하향(下鄕)하게 하고 아우인 집(木+集)은 출패(出牌)하여 즉시 관(官)에 내현(來現)하게 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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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786년 12월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소지(所志)(草)[0106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교서(敎書)이다. 건륭(乾隆) 오십일(1786)년 십이월 이십이일에 모반을 꾀한 자들을 토벌한 자들에게는 훈작 등을 수여하고 모반자들은 주살 내지 도류부처(徒流付處) 한다는 내용의 문기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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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소지(所志)(草)[0106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발사(跋辭)이다. 모반자에 대한 토역을 적은 글로서 앞부분이 떨어져 나갔으며 왕에게 올리는 장계의 끝에 붙이는 발사인 듯 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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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신대응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68] / 기록자료>고문서 / 신대응신대응(申大膺)이 지은 만사이다. 망자의 어진 덕행과 아름다운 선비의 기상을 회고하였다. 망자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의 심정이 절실하게 표현된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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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이원일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69] / 기록자료>고문서 / 이원일이원일(李源一)이 강공(姜公)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빼어난 재주와 문예적 역량을 애석해 하면서, 그와의 사별에 따른 아픔을 절실하게 그려낸 만사이다. 가문적인 전통과 충효 정신을 강조하면서, 애도의 심정을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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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권욱연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70]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권욱연권욱연(權頊淵)이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빼어난 학문 정신과 어질고 고결했던 면모를 문학적으로 형상하면서, 추모와 애도의 심정을 표현한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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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신욱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71]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신욱신욱(申煜)이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평생을 자신과 이웃에 살며 지냈던 추억을 떠올리며 슬픔의 정념을 토로했다. 그리고 독서와 학문 정신을 강조하면서, 그가 남긴 시문이 후세에 전해져 정신 지향을 알려준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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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필부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72]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제 필부강필복(姜必復)이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죽음으로 인해 가문의 위기가 닥쳤다고 할만큼 슬픔이 극진함을 표현했다. 그리고 망자의 고결한 인격과 지조 정신을 강조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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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7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망자와의 교분과 추억이 담긴 지난 시절을 회고하는 가운데 슬픔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순수한 면모와 어진 성품을 회고하면서, 그리운 정념을 절실히 표현한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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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홍사철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74]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홍사철홍사철(洪思哲)이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경세제민(經世濟民) 정신과 기개 및 출중한 학덕을 기리고 강조하였다. 망자를 그리워하는 심정이 후반부에 절실하게 그려져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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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족생 형수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75] / 기록자료>고문서 / 족생 형수형수(馨秀)가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자태와 고결한 인품을 그리워하며 애절한 심정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망자가 가문의 여열과 유풍을 계승한 점을 칭송하며, 슬픔을 함께 그려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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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화의인 김재정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76] / 기록자료>고문서 / 화의인 김재정김재정(金載珽)이 망자의 죽음을 애석해 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서두에서부터 망자와의 사별에 따른 아픔의 정서를 절실하게 토로했다. 생사의 기로를 설정하고 죽음을 더욱 슬퍼하는 수법으로, 망자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집약해 표현한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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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지상우 송태수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77] / 기록자료>고문서 / 지상우 송태수송태수(宋泰洙)가 망자의 죽음을 애석해 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와의 사별에 따른 아픔을 문학적 정감의 표현으로 절실하게 그려내었다. 삼성과 상성처럼 떨어진 사별의 슬픔을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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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서형열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78] / 기록자료>고문서 / 척말 서형열서형열(徐馨烈)이 망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빼어난 정신 자태와 교분을 회고하는 가운데 그리움과 애도의 심정을 표현한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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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신현대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79]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신현대신현대(申鉉大)가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태백산을 배경으로 하여 자연 배경과 함께 무한한 자연과 유한한 인생의 모습을 대조하면서, 사별에의 아픔을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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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김민수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80] / 기록자료>고문서 / 김민수김민수(金敏洙)가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태백산의 오인 가운데 한 사람인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었다. 망자의 단아한 문재와 충효 정신을 추모하면서, 그리운 정서를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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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박제긍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81]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박제긍박제긍(朴齊兢)이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단아한 면모를 추억하면서, 빼어난 기상과 고결한 선비 정신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추억을 회고하는 가운데 추모의 정서를 표현한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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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아제 김휘철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82] / 기록자료>고문서 / 아제 김휘철김휘철(金輝轍)이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비교적 이른 나이에 태백산에 은둔해 살면서, 어진 덕성을 수양하며 고결한 인품을 지녔던 점을 회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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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지상정계 이한추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83] / 기록자료>고문서 / 지상정계 이한추이한추(李漢樞)가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서두에서부터 그리운 정념을 절실하게 표현하면서, 망자에 대한 애틋한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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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임일재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84] / 기록자료>고문서 / 계제 임일재임일재(任一宰)가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학문과 덕업의 빼어남을 표현하면서, 가문의 여열과 유풍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망자가 어진 덕성을 구비하여 가족과 이웃 사람들에게 어질었던 면모를 추억하면서, 그리움과 추모의 심정을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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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지상제 김하규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85] / 기록자료>고문서 / 지상제 김하규김하규(金夏圭)가 망자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인간적인 향기와 풍채를 표현하면서, 그리운 심정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망자의 충효 정신과 덕업을 회고하면서, 그리운 정회를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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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역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86]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역족종(族從) 역(湙)이 망자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죽음과 고결한 인품을 회고하면서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하였다. 망자가 중병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운명하게 된 점을 애석해 하였다. 그리고 망자의 죽음과 무관하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함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