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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안규면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87]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안규면안규면(安圭冕)이 망자의 죽음을 애석해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가문과 문장과 덕행을 강조하면서, 애석한 심정을 표현하였다. 망자의 죽음 앞에 놓여진 자연의 고운 모습을 표현하면서, 망자와 사별의 아픔을 절실하게 그려내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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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이관기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88]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이관기이관기(李觀基)가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어진 덕성과 죽음 앞에 슬픔을 토로하였다. 망자의 죽음과 함께 슬프게 묘사된 자연 환경에 빗대어 슬픔을 묘사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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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김용락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89]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용락김용락(金鏞洛)이 망자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가문의 유풍을 계승하여, 어질고 고결한 인품을 소유했던 점을 회고하였다. 그리고 망자 무덤 주변의 자연 배경을 묘사하면서, 그리움의 심정을 표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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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지상부제 김병서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90] / 기록자료>고문서 / 지상부제 김병서김병서(金炳西)가 망자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를 영영 떠나보내면서 사별의 아픔을 묘사하였다. 그리움과 슬픔의 심정이 절실하게 그려진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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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안승만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91]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안승만안승만(安承萬)이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오십 평생을 회고하면서, 인품과 덕행을 그리워하였다. 망자 가문의 전통과 시서(詩書)를 익힌 영향 등에 대해 강조하였다. 그리고 질병을 이기지 못한 망자의 슬픈 신세를 애석하게 여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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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지상척제 홍사국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92] / 기록자료>고문서 / 지상척제 홍사국홍사국(洪思國)이 망자의 죽음을 애석해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죽음과 대조적으로 자연의 정경을 묘사하여 슬픔의 표현을 극대화했다. 그리고 망자의 충효와 우애 정신을 강조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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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무인년 8월에 우영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93]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우영이 문건은 족종(族從) 우영(友永)이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추모한 만사(輓辭)이다. 죽은이의 행적과 인품을 추모하며 사별해야 하는 아픔을 표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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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김용한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94]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김용한김용한(金龍漢)이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망자의 이른 죽음을 애통해하는 정서를 절실하게 표현하였다. 말미에 진산강씨(晉山姜氏) 가문의 배경과 여열을 강조하면서, 그리운 정을 표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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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지상정우 홍기헌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95] / 기록자료>고문서 / 지상정우 홍기헌홍기헌(洪起憲)이 망자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빼어난 문예적 업적을 회고하면서, 그와의 교분을 회고하고 추모의 정념을 그려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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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김시림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96]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김시림김시림(金蓍林)이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죽음에 따른 슬픔을 자연 형상물에 빗대어 슬프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망자의 학문과 덕업을 추모하면서, 그리운 정회를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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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세가정우 변태균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97] / 기록자료>고문서 / 세가정우 변태균변태균(邊台均)이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 가문의 전통과 유풍의 여열을 강조하였다. 망자의 효우 정신과 우애가 독실했던 점을 회고하면서, 추모의 정서를 집약해 표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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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손우 이증노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98] / 기록자료>고문서 / 손우 이증노이증로(李曾魯)가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하늘에 달빛처럼 춘추대의가 빛난다고 했다. 그리고 자연 사물에 빗대어 망자와 사별의 아픔을 절실하게 그려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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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성재중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099] / 기록자료>고문서 / 인하생 성재중성재중(成在中)이 망자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죽음과 빗대어 자연 대상을 묘사하였다. 그런 가운데 망자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의 정서가 곡진하게 그려졌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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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세우 박종금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100] / 기록자료>고문서 / 세우 박종금박종금(朴宗錦)이 망자의 죽음을 애석해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죽음 앞에 애통한 심정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자연 대상의 적절한 비유와 함께 망자의 죽음을 애절하게 그려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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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심교우 안장환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101] / 기록자료>고문서 / 심교우 안장환안장환(安章煥) 망우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망자와의 교분과 우정이 담긴 추억을 회고하면서, 그리움과 추모의 정서를 표현하엿다. 망자와의 사별에 따른 아픔을 그려내며 아쉽고 서러운 정을 표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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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김병운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102] / 기록자료>고문서 / 김병운김병운(金炳運)이 망자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태백산의 깊은 곳에 상여가 떠나는 장면을 그리면서, 망자의 덕업을 추모하였다. 망자의 근검과 순수한 자태를 추모하면서, 그리운 심정을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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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배병주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103]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배병주배병주(裴炳周)가 지은 만사이다. 망자의 고결한 인품과 아름다운 덕행을 추모하며 계절적 감각에 맞게 표현한 만사이다. 망자를 그리워 하며 추모의 심정을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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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병술년 6월에 박병두와 강경희 사이에 작성된 명문(明文)(墓地賣渡証書)[01104] / 기록자료>고문서 / 박병두묘지매도증서(墓地賣渡証書)이다. 매도인은 박병두(朴炳斗)이며 매수인은 강경희(姜敬熙)이다. 계약 조건에 따라 묘터를 매도한다는 내용의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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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802년 3월에 강필경과 족숙 강락 사이에 작성된 명문(明文)(田畓賣買文記)[01105] / 기록자료>고문서 / 강필경전답 매매 문서이다. 논 소유자는 강필경(姜必敬)이며, 필경이 소유한 논을 전문 2냥을 받고, 친척 숙부인 강락(姜樂)에게 영영 방매한다는 문건이다. 말미에 강필경의 수결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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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768년 3월에 생원 숙과 종제 강윤 사이에 작성된 명문(明文)(田畓賣買文記)[01106]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 생원 숙전답 매매 문서이다. 논 소유자는 강숙(姜潚)이며, 강숙이 소유한 논을 전문 65냥을 받고, 삼종 아우인 집의 강윤(姜潤)에게 영영 방매한다는 문건이다. 말미에 강숙의 수결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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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경자년 5월에 노도백과 노근준 사이에 작성된 명문(明文)[01107] / 기록자료>고문서 / 노 도백토지 매매 문서이다. 토지를 120냥을 받고 원구댁 노비 근준(根俊)에게 영영 방매한다는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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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882년 3월에 발급자미상과 노석인 사이에 작성된 명문(明文)[0110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산매매문기이다. 광서8년 임오년 3월18일에 중촌 홍원댁 노 석인에게 산주인 와란댁이 흉년에 빌어쓴 미곡과 돈을 갚지못하여 금산으로 대신한다는 문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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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913년 5월에 하셩경과 양인 이평셩 사이에 작성된 명문(明文)(계약서)[01109] / 기록자료>고문서 / 하셩경계약서이다. 대정 이년(1913) 음력 5월 2일에 전답매매 계약 위반으로 계약주 하성경이 벌금 이천원을 증급하였다는 문기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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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갑술년 1월에 발급자미상과 강생원댁 노 사이에 작성된 명문(明文)[0111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토지매매 문서이다. 김입석댁에서 강생원댁에게 토지를 매매하면서 기록해 둔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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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898년 2월에 강홍원댁 노 대천과 상전댁 사이에 작성된 명문(明文)(田畓賣買文記)[01111] / 기록자료>고문서 / 강홍원댁 노 대천전답매매문기(田畓賣買文記)이다. 토지 소유자는 강씨댁 노비 대천(大千)이며, 증인은 김씨이다. 전문 200냥을 받고, 영영 방매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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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갑신년 8월에 권대룡과 강준흠 사이에 작성된 명문(明文)(標文)[01112] / 기록자료>고문서 / 권대룡표문(標文)이다. 표주는 권대룡(權大龍)이며, 갑신(甲申)년 팔월 십오일에 기록한 문건이다. 법전(法田) 강생원 준흠(儁欽)의 선영에 투장한 불한당에 대해 의법조치하고 명문으로 남긴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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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박영수 등과 강홍원댁 사이에 작성된 명문(明文)(標文)[01113] / 기록자료>고문서 / 박영수 등17인토지매매문기이다. 기미(己未)년 일월 이십이일에 아마도 신학방동 동민들이 채무를 갚기 위하여 동에서 공동소유한 토지의 일부를 법전리 강홍원댁에게 방매하고 좌상(座上)과 동장(洞長) 등이 성표를 한다는 문기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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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632년 3월에 김도화가 작성한 은홍열의 묘갈명(墓碣銘)[01114] / 기록자료>고문서 / 김도화김도화(金道和)가 찬(撰)한 통훈대부사간원정언겸춘추관기사관(通訓大夫司諫院正言兼春秋館記事官)을 역임한 화음은공(華陰殷公)의 묘갈명(墓碣銘)이다. 서두에 신주(辛州) 은씨의 가계를 상세하게 정리했다. 이어 그의 직계 조상 이력을 정히 하였다. 이어 은공의 행적을 술회하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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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안장기(安葬記)[0111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장례 절차 및 관련 사안을 기록한 안장기(安葬記)이다. 장례 때의 일정과 절차 및 기피 사안을 기록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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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무신년 1월에 김병원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01117] / 기록자료>고문서 / 김병원김병원(金炳源), 이종악이 연서하여 보낸 통문이다. 서두에서 정중한 인사를 올리며 유교적 이념을 제시하였다. 그리운 정회를 표현하고 추향에 대해 언급하며 이에 따른 회신을 부탁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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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무신년 1월에 발급자미상이 태학 사복에게 보낸 통문(通文)[0111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통문이다. 정회를 표현하며 특정 유림을 추숭하기 위해 협의하며 의견 교환을 희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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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0111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도산서원에서 보낸 통문이다. 유교를 숭상하고 선비를 대우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영남의 유림역할을 강조하면서 의리 정신과 위정척사 운동 등을 강조하였다. 이에 따른 유림들의 동조와 호응을 부탁한 통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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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0112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통문이다. 성리학 이념의 고수를 강조하면서 유학의 진흥과 발전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을 부탁하였다. 유림관련 사안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협조를 부탁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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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0112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통문이다. 유림 관련 사안에 대해 언급하며 관련 유림기관에 호소한 문건이다. 선비 정신을 숭상하고 유림의 역할을 강조했다. 당면 현안에 따른 협조를 부탁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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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선비유인풍천임씨(先妣孺人豐川任氏)의 행장(行狀)[0112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선비유인풍천임씨의행장(先妣孺人豐川任氏行狀)이다. 망자의 가계와 선대 조상에 대해 서두에서 상세하게 기록해두었다. 이어 망자의 어질고 순수한 자태와 고운 행실을 추억하면서, 제문이나 만사 같은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망자의 고결하고 순수한 인품과 부덕을 칭송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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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풍천임씨에게 보낸 행장(行狀)[0112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풍천임씨행장초(豐川任氏行狀草)이다. 풍천 임씨 부인의 행장을 처음 작성한 원고이다. 이후에 작성된 행장에 비해 조금 내용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말미에 부인의 현 직계 자손에 대한 기록이 장황하게 서술되었는데, 실제의 행장에는 이 부분이 삭제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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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0112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특정 인물의 평생을 기술하며 그 가운데 특기할 사안을 중심으로 기술함으로써 그의 행적을 후세에 기리기 위한 행장(行壯)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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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843년에 강두환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호적戶籍)[01125] / 기록자료>고문서 / 강두환(63세)강두환이 72세 때에 작성한 호적단자(戶籍單子)로, 이 문건은 3년마다 작성하여 1부는 관청에 제출하고 1부는 개인이 보관했다. 이 문건에는 처족, 외족, 본가 일족의 신상 명세 및 노비 소유 형태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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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753년에 강두환의 호구단자(戶口單子)[01126] / 기록자료>고문서 / 강두환(72세)강두환이 72세 때에 작성한 호적단자(戶籍單子)로, 이 문건은 3년마다 작성하여 1부는 관청에 제출하고 1부는 개인이 보관했다. 이 문건에는 처족, 외족, 본가 일족의 신상 명세 및 노비 소유 형태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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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753년에 강완의 호구단자(戶口單子)[01127] / 기록자료>고문서 / 강완(40세)강완이 40세 때에 작성한 호적단자(戶籍單子)로, 이 문건은 3년마다 작성하여 1부는 관청에 제출하고 1부는 개인이 보관했다. 이 문건에는 처족, 외족, 본가 일족의 신상 명세 및 노비 소유 형태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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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855년에 강두환의 호구단자(戶口單子)[01128] / 기록자료>고문서 / 강두환(75세)강두환이 75세 때에 작성한 호적단자(戶籍單子)로, 이 문건은 3년마다 작성하여 1부는 관청에 제출하고 1부는 개인이 보관했다. 이 문건에는 처족, 외족, 본가 일족의 신상 명세 및 노비 소유 형태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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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858년에 강전이 행부사에게 보낸 호적(戶籍)[01129] / 기록자료>고문서 / 강전(23세)강전이 23세 때에 작성한 호적단자(戶籍單子)로, 이 문건은 3년마다 작성하여 1부는 관청에 제출하고 1부는 개인이 보관했다. 이 문건에는 처족, 외족, 본가 일족의 신상 명세 및 노비 소유 형태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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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873년에 강전의 호구단자(戶口單子)[01130] / 기록자료>고문서 / 강전(38세)강전이 38세 때에 작성한 호적단자(戶籍單子)로, 이 문건은 3년마다 작성하여 1부는 관청에 제출하고 1부는 개인이 보관했다. 이 문건에는 처족, 외족, 본가 일족의 신상 명세 및 노비 소유 형태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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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777년에 강윤이 행부사에게 보낸 호적(戶籍)[01131] / 기록자료>고문서 / 강윤(67세)강윤이 67세 때에 작성한 호적단자(戶籍單子)로, 이 문건은 3년마다 작성하여 1부는 관청에 제출하고 1부는 개인이 보관했다. 이 문건에는 처족, 외족, 본가 일족의 신상 명세 및 노비 소유 형태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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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783년에 강한이 행부사에게 보낸 호적(戶籍)[01132] / 기록자료>고문서 / 강한(65세)강한이 65세 때에 작성한 호적단자(戶籍單子)로, 이 문건은 3년마다 작성하여 1부는 관청에 제출하고 1부는 개인이 보관했다. 이 문건에는 처족, 외족, 본가 일족의 신상 명세 및 노비 소유 형태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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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813년에 강집의 호구단자(戶口單子)[01133] / 기록자료>고문서 / 강집(61세)강집이 61세 때에 작성한 호적단자(戶籍單子)로, 이 문건은 3년마다 작성하여 1부는 관청에 제출하고 1부는 개인이 보관했다. 이 문건에는 처족, 외족, 본가 일족의 신상 명세 및 노비 소유 형태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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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822년에 강집의 호구단자(戶口單子)[01134] / 기록자료>고문서 / 강집(70세)강집이 70세 때에 작성한 호적단자(戶籍單子)로, 이 문건은 3년마다 작성하여 1부는 관청에 제출하고 1부는 개인이 보관했다. 이 문건에는 처족, 외족, 본가 일족의 신상 명세 및 노비 소유 형태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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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816년에 강집의 호구단자(戶口單子)[01135] / 기록자료>고문서 / 강집(64세)강집이 64세 때에 작성한 호적단자(戶籍單子)로, 이 문건은 3년마다 작성하여 1부는 관청에 제출하고 1부는 개인이 보관했다. 이 문건에는 처족, 외족, 본가 일족의 신상 명세 및 노비 소유 형태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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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819년에 강집의 호구단자(戶口單子)[01136] / 기록자료>고문서 / 강집(67세)강집이 67세 때에 작성한 호적단자(戶籍單子)로, 이 문건은 3년마다 작성하여 1부는 관청에 제출하고 1부는 개인이 보관했다. 이 문건에는 처족, 외족, 본가 일족의 신상 명세 및 노비 소유 형태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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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기헌고택 1786년에 강완이 행부사에게 보낸 호적(戶籍)[01137] / 기록자료>고문서 / 강완(73세)강완이 73세 때에 작성한 호적단자(戶籍單子)로, 이 문건은 3년마다 작성하여 1부는 관청에 제출하고 1부는 개인이 보관했다. 이 문건에는 처족, 외족, 본가 일족의 신상 명세 및 노비 소유 형태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