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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이돈우가 김세호에게 보낸 행장(行狀)[01392] / 기록자료>고문서 / 이돈우김세호(金世鎬)의 묘갈명이다. 이돈우(李敦禹)가 작성한 것이다. 자손들이 조상 김세호의 업적을 기리고자 묘갈명을 부탁한 것에 대해 작성해 준 것이다. 김세호의 덕행과 학문 업적을 위주로 서술했다. 그리고 김세호의 여러 관력을 상세하게 서술했다. 이어 그는 문장과 도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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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이돈우가 김세호에게 보낸 행장(行狀)[01393] / 기록자료>고문서 / 이돈우묘갈명(墓碣銘)이다. 김세호(金世鎬)라는 이의 행장이다. 의성김씨(義城金氏)로 효종(孝宗) 연간에 태어나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벼슬은 지제교(知製敎)에 이르렀다. 이돈우(李敦禹)라는 이가 찬(撰)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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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김조수에게 보낸 행장(行狀)[0139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김조수(金祖壽)의 행적을 기록한 문건이다. 서두에서 의성김씨(義城金氏)의 가문 내력과 가계를 상세히 정리했다. 이어 그의 유년기 성장 과정 및 장년기의 삶의 여정을 서술했다. 특히, 미담과 일화 등을 중심으로 기술하여 그의 학문과 덕행이 빼어났던 점을 서술했다. 생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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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김세건이 창성조씨에게 보낸 행장(行狀)[01395] / 기록자료>고문서 / 김세건유인(儒人) 조씨부인(曹氏夫人)의 선대 가계 및 부인의 행적을 기록한 문건이다. 김세건(金世鍵)이 작성하였다. 서두에서 창성조씨(昌城曺氏)의 가문 내력과 선대들의 과거 벼슬 행적과 이력을 상세히 기록했다. 이어 부인의 생장 배경과 가문의 영향을 거쳐 현숙한 여성상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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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김계가 찬한 분황시고유문(焚黃時告由文)[01396] / 기록자료>고문서 / 김계분황시고유문(焚黃時告由文)이다. 관직이 추증(追贈)될 경우 그 교지 한 통을 노란 종이에 복사한 뒤 그 사유를 분묘에 가서 고하고 불태우는 일을 할 때의 사유서이다. 임진(壬辰)년 시월 십육일에 김계(金溪)가 찬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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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경인년 3월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소임록(疏任錄)(請雲川諡疏)[0139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시호소임록(諡號疏任錄)이다. 의성김씨(義城金氏) 운천(雲川) 김용(金涌)의 임진왜란시 의병활동을 기려 시호를 내려주기를 청하기 위하여 나라에 단체로 소를 올린 것을 기록한 문기이다.이 장에서는 소청집사(疏廳執事)로 장의(掌議)·소색(疏色)·제소(製疏)·사소(寫疏)·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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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729년에 예조에서 김세일에게 보낸 입안(立案)[01398] / 기록자료>고문서 / 예조이 문건은 입안(立案)이다. 입안은 관청에서 발급하는 공증서이다. 가옥이나 토지 및 노비 등을 매매하거나 양자를 들일 때에는 원칙상 관청에 신고를 하게 되어 있다. 이런 사안으로 백성들이 관청에 이 사실을 신고하면, 해당 관청에서 이런 부류의 공증서를 발급했다.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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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703년에 예조에서 종사랑 김세건에게 보낸 입안(立案)[01399] / 기록자료>고문서 / 예조이 문건은 입안이다. 입안은 관청에서 발급하는 공증서이다. 가옥이나 토지 및 노비 등을 매매하거나 양자를 들일 때에는 원칙상 관청에 신고를 하게 되어 있다. 이런 사안으로 백성들이 관청에 이 사실을 신고하면, 해당 관청에서 이런 부류의 공증서를 발급했다. 이 문건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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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891년에 주병이 족 대부에게 올린 제문(祭文) [01400]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주병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추모한 제문(祭文)이다. 죽은이의 행적을 추모하고 고결한 인품을 회상하며 슬퍼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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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834년에 손 치명이 고유인 완산유씨에게 올린 제문(祭文) [01401] / 기록자료>고문서 / 손 치명치명(致明)이 유인(孺人) 완산유씨(完山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서두에서부터 부인에 대한 그립고 애절한 심정을 곡진하게 묘사했다. 평소 부인이 베푼 어질고 겸손한 덕을 사모하며, 사별에의 아픔을 그려낸 제문이다. 개인적인 정회 묘사가 반영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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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850년에 용진이 고모 진성이씨에게 올린 제문(祭文) [01402] / 기록자료>고문서 / 종자 용진김용진(金龍鎭)이 고모 유인(孺人) 진성이씨(眞城李氏 )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부인은 진성이씨 집안의 가문 여열을 체득하여 어질고 고결한 인품을 구비했음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부인의 평소 덕행과 고결한 인품을 사모하며, 그리운 정서를 표현했다. 부인의 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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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834년에 종질자 정문이 당고모 전주류씨에게 올린 제문(祭文) [01403]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자 정문정문(鼎文)이 당고모 의인(宜人) 전주류씨부인(全州柳氏夫人)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부인을 애통해 하며 지은 장문의 제문이다. 평소 부인의 생장 과정에서 이룩한 미담과 덕행을 추모하면서, 그리운 정을 표현하였다. 부인의 일대기를 회고하면서, 부인의 어진 덕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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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768년에 현운이 족숙에게 올린 제문(祭文) [01404]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현운조카인 현운(顯運)이 친족 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인명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 일반 제문의 형식과 유사하다. 망자와의 생전 교분을 추억하면서, 사별의 아픔을 그려내고 있다. 망자가 자신과 가족에게 베푼 어질고 단아했던 면모를 회고하는 가운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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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796년에 중표질 이광현이 김공에게 올린 제문(祭文) [01405] / 기록자료>고문서 / 중표질 이광현일부 낙질의 제문(祭文)이다. 제문 작성 시기는 병진(丙辰)년 이월이다. 누이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며 지었다. 일부 내용이 누락되어 전체 문면을 통해 내용을 파악하기는 용이하지 않다. 말미에 망자에 대한 개인적 슬픈 정서 표현이 집약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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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818년에 형수가 백부에게 올린 제문(祭文) [01406] / 기록자료>고문서 / 종자 형수형수(亨壽)가 백부(伯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서두에서부터 망자와의 교분과 추억을 통한 슬픔을 절실하게 묘사했다. 망자의 생애를 회고하면서, 덕담과 미담을 연결하여 단아한 면모를 형상화했다. 그리고 망자의 학덕을 칭송하면서, 가족과 친지 및 많은 사람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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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817년에 래운이 백형에게 올린 제문(祭文) [01407]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래운래운(徠運)이 백형(伯兄)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형을 잃은 슬픔을 애타게 표현하였다. 대화체 형식을 빌어 형을 부르면서, 가슴에 담은 많은 슬픔을 토로하였다. 평소 형과의 절친했던 과거 추억을 회상하면서, 사별의 아픔을 묘사했다. 그리고 형의 평소 어진 형상을 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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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868년에 삼종손 주병이 삼종대부에게 올린 제문(祭文) [01408]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손 주병김주병(金疇秉)이 삼종대부처사김공(三從大父處士金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죽음으로 인해 가문과 사림(士林)들이 의지할 바를 잃었다고 하면서, 슬픈 심정을 표현하였다. 이와 함께 평소 망자가 베푼 은덕과 인자한 모습을 떠올리며, 그리운 심정을 완곡하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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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843년에 형수가 백부 성균생원 경구에게 올린 제문(祭文) [01409] / 기록자료>고문서 / 종형 형수형수(亨壽)가 친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계묘(癸卯)년 유월 계유 삭 십삼일 을유날에 하관하는 친구 성균생원(成均生員) 경술(景逑)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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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700년에 표질고자 권집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 [01410] / 기록자료>고문서 / 표질고자 권집권집(權集)이 처사김공(處士金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서두에서부터 애절한 슬픔을 표현했다. 평소 망자의 덕성이 순수하고 어질었던 점을 회고하면서, 그리운 심정을 표출하였다. 그리고 망자의 문예적인 특출성을 함께 제시하면서, 덕성을 회고하고 추모하였다.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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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882년에 이만인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 [01411] / 기록자료>고문서 / 부질 이만인이만인(李晩寅)이 의성김공(義城金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사람의 앞길을 예측할 수 없다고 하면서, 망자의 죽음을 슬퍼했다. 망자가 요절한 것을 비통해 하며, 추모의 정서를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와의 교분을 추억하면서, 사별의 아픔을 절실하게 그려낸 제문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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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임오년 12월에 안동교원 김홍제 등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통문(通文)[01412]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교원 김홍제 등 47인안동향교 유림과 인근 유림들이 합세하여 보낸 통문(通文)이다. 주요 사안은 선현의 행적을 공명정대하게 후대에 밝히는 것이 마땅하다고 전제하면서, 진주 촉석루에 게시된 시 가운데 삼장사(三壯士)의 시구를 『천파록(天破錄)』의 서문(序文)에 등재하는 과정에서, 시를 창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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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경인년 4월에 윤 모(某)가 경상도 사림에 보낸 통문(通文) [01413] / 기록자료>고문서 / 태학장의 윤(결)통문에 대한 답신이다. 주요 사안은 운천(雲川) 김선생의 시호 청원건에 대해 적극 동조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이다. 운천 선생의 시호 청원은 도리어 때 늦은 감이 있다고 했다. 경상도 사림들이 보낸 통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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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신묘년 1월에 김 모(某)가 영남소청에 보낸 통문(通文)[01414] / 기록자료>고문서 / 태학장의 김(결)통문에 대한 답신이다. 주요 사안은 운천(雲川) 김선생의 시호 청원건에 대해 적극 동조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이다. 운천 선생의 시호 청원은 여러 측면에서 합당한 조치이며, 도리어 때 늦은 감이 있다고 했다. 영남소청(嶺南疏廳)에서 보낸 답신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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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신유년 7월에 도도감 김진응 등이 작성한 임호서원중건시의 참여자명단[01415] / 기록자료>고문서 / 도도감 김진응 등임호서당중건시(臨湖書堂重建時) 여러 분야에서 역할을 맡은 인사들의 명단을 기록한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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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신유년 7월에 이 모(某) 등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파록(爬錄)[01416] / 기록자료>고문서 / 도도감 이(결) 등임호사당이건시(臨湖書堂移建時) 여러 분야에서 역할을 맡은 자들의 명단을 기록한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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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파록(爬錄)[0141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재실축성기이다. 운재(運材)·운와(運瓦)·동역(蕫役)에 동원된 사람의 명부가 모두가 김씨인 것으로 보아 그 집안의 어떤 건물을 축성하는데 동원된 인원을 기록한 문기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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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신유년 5월에 김영락 등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파록(爬錄)[01418] / 기록자료>고문서 / 도도감 김영락 등임호사당이건시(臨湖書堂移建時) 여러 분야에서 역할을 맡은 자들의 명단을 기록한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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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669년에 안동부사가 김세건에게 보낸 호적(戶籍)[01419]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사준호구(準戶口)이다. 안동부사(安東府使)가 안동부내 임하현(臨河縣)내 천전리(川前里)에 거주하는 유학 김세건(金世健)에게 1669년에 성적한 호구장적에 준거하여 등급한 준호구단자이다.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준호구는 요즘으로 말하면 호적등본에 해당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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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702년에 안동부사가 노씨에게 보낸 호적(戶籍)[01420]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사준호구(準戶口)이다. 안동부사(安東府使)가 안동부내 임하현(臨河縣)내 천전리(川前里)에 거주하는 고종사랑 김세건(金世健)처 노씨(盧氏)에게 1702년에 성적한 장적에 준거하여 등급한 호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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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711년에 안동부사가 김정하에게 보낸 호적(戶籍)[01421]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사준호구(準戶口)이다. 안동부사(安東府使)가 안동부내 임하현(臨河縣)내 천전리(川前里)에 거주하는 통덕랑 김정하에게 1711년에 성적한 장적에 준거하여 등급한 호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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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714년에 안동부사가 김정하에게 보낸 호적(戶籍)[01422]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사준호구(準戶口)이다. 안동부사(安東府使)가 안동부내 임하현(臨河縣)내 천전리(川前里)에 거주하는 통덕랑(通德郞) 김정하(金挺河)에게 1714년에 성적한 장적에 준거하여 등급한 호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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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771년에 안동부사가 김상설에게 보낸 호적(戶籍)[01423]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사준호구(準戶口)이다. 안동부사(安東府使)가 안동부내 임하현(臨河縣)내 천전리(川前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상열(金相說)에게 1771년에 성적한 장적에 준거하여 등급한 호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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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723년에 안동부사가 김정하에게 보낸 호적(戶籍)[01424]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사준호구(準戶口)이다. 안동부사(安東府使)가 안동부내 임하현(臨河縣)내 천전리(川前里)에 거주하는 통덕랑(通德郞) 김정하(金挺河)에게 1723년에 성적한 장적에 준거하여 등급한 호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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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729년에 안동부사가 김복하에게 보낸 호적(戶籍)[01425]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사준호구(準戶口)이다. 안동부사(安東府使)가 안동부내 임하현(臨河縣)내 천전리(川前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복하(金福河)에게 1729년에 성적한 장적에 준거하여 등급한 호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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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744년에 안동부사가 김상열에게 보낸 호적(戶籍)[01426]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사준호구(準戶口)이다. 안동부사(安東府使)가 안동부내 임하현(臨河縣)내 천전리(川前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상열(金相說)에게 1744년에 성적한 장적에 준거하여 등급한 호구이다. 김상열은 김복하(金福河)의 아들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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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765년에 안동부사가 김상열에게 보낸 호적(戶籍)[01427]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사준호구(準戶口)이다. 안동부사(安東府使)가 안동부내 임하현(臨河縣)내 천전리(川前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상열(金相說)에게 1765년에 성적한 장적에 준거하여 등급한 호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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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768년에 안동부사가 김상열에게 보낸 호적(戶籍)[01428]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사준호구(準戶口)이다. 안동부사(安東府使)가 안동부내 임하현(臨河縣)내 천전리(川前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상열(金相說)에게 1768년에 성적한 장적에 준거하여 등급한 호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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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816년에 안동부사가 김현운에게 보낸 호적(戶籍)[01429]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사준호구(準戶口)이다. 안동부사(安東府使)가 안동부내 임하현(臨河縣)내 천전리(川前里)에 거주하는 진사(進士) 김현운(金顯運)에게 1816년에 성적한 장적에 준거하여 등급한 호구이다. 김현운은 김상열(金相說)의 아들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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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822년에 안동부사가 김조수에게 보낸 호적(戶籍)[01430]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사준호구(準戶口)이다. 안동부사(安東府使)가 안동부내 임하현(臨河縣)내 천전리(川前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조수(金祖壽)에게 1822년에 성적한 장적에 준거하여 등급한 호구이다. 김조수는 김현운(金顯運)의 양아들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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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828년에 안동부사가 김조수에게 보낸 호적(戶籍)[01431]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사준호구(準戶口)이다. 안동부사(安東府使)가 안동부내 임하현(臨河縣)내 천전리(川前里)에 거주하는 생원(生員) 김조수(金祖壽)에게 1828년에 성적한 장적에 준거하여 등급한 호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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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834년에 안동부사가 김조수에게 보낸 호적(戶籍)[01432]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사준호구(準戶口)이다. 안동부사(安東府使)가 안동부내 임하현(臨河縣)내 천전리(川前里)에 거주하는 생원(生員) 김조수(金祖壽)에게 1834년에 성적한 장적에 준거하여 등급한 호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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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김용진이 안동부사에 보낸 호적(戶籍)[01433]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용진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이 문서는 부분 부분이 결락되어서 보이지 않으나 대강 유추해보면, 안동부내 임현(臨縣)내 천전리(川前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용진(金龍鎭)의 호구단자이다. 연대는 조선 말기로 보이며 종조모·종숙부·재종숙부·삼종형과 많은 노비들이 있는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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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김주병이 안동부사에 보낸 호적(戶籍)[01434]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주병(25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안동부 임하현(臨河縣)내 천전리(川前里) 제1통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주병(金疇秉)의 호구단자로 조선말기의 것이다. 종숙부·재종숙부·삼종형제와 많은 노비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넉넉한 가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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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717년에 김정하가 안동부사에 보낸 호적(戶籍)[01435] / 기록자료>고문서 / 통덕랑 김정하(29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임현(臨縣) 내 천전리(川前里) 팔통 제삼호에 거주하는 통덕랑(通德郞) 김정하(金挺河)가 1712년(丁酉) 유월에 관에 올리려고 하였던 호구단자이다. 관인이 없는 것으로 보아 관에 올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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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756년에 김복하가 안동부사에 보낸 호적(戶籍)[01436]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복하(67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임현(臨縣)내 천전리(川前里) 8통 제4호에 사는 유학(幼學) 김복하(金福河)가 관에 올린 호구단자이다. 주협무개인이 찍힌 것으로 보아 인구 변동사항은 없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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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김주병이 안동부사에 보낸 호적(戶籍)[01437]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주병(49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임현(臨縣)내 천전리(川前里) 제1통 제1호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주병(金周秉)이 관에 올린 호구단자이다. 많은 솔거노비 외거노비를 거느린 것으로 보아 가세가 넉넉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조선말의 문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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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김주병이 안동부사에 보낸 호적(戶籍)[01438]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주병(37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안동 임현(臨縣)내 제2 천전리(川前里)리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주병(金疇秉)이 37세에 관에 올린 호구단자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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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김주병이 안동부사에 보낸 호적(戶籍)[01439]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주병(40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안동 임현(臨縣)내 제2 천전리(川前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주병(金周秉)이 40세에 관에 올린 호구단자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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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672년에 안동부사가 김세건에게 보낸 호적(戶籍)[01440]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사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앞부분이 결락되어 누가 올린 호구단자인지 알 수 없다. 02는 앞장과 이어진 문서로 부사의 수결이 있으며 창준(唱準)한 사람의 이름도 보인다. '창준'이란 호적을 등급할 때 불러주면서 교정을 보는 사람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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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김용진이 안동부사에 보낸 호적(戶籍)[01441]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용진(40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안동부 임현(臨縣)내 제2 천전리(川前里) 제일통 오호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용진(金龍鎭)이 40세에 관에 올린 호구단자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