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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김용진이 안동부사에 보낸 호적(戶籍)[01442]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용진(43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임현(臨縣) 내 제2 천전리(川前里) 제1통 5호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용진(金龍鎭)이 43세에 관에 올린 호구단자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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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711년에 김정하가 안동부사에 보낸 호적(戶籍)[01443] / 기록자료>고문서 / 통덕랑 김정하(23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안동부 임하현(臨河縣) 내 제2 천전리(川前里)에 거주하는 통덕랑(通德郞) 김정하(金挺河)가 1711년 5월에 관에 올린 호구단자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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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안동부사에 보낸 호적(戶籍)[01444] / 기록자료>고문서 / 결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앞부분이 결락되어 언제 누가 올린 호구단자인지 알 수 없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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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김용진이 안동부사에 보낸 호적(戶籍)[01445]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용진(37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안동부 임하현(臨河縣) 내 천전리(川前里)에 거주하는 생원(生員) 김용진(金龍鎭)이 올린 호구단자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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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825년에 안동부사가 김조수에게 보낸 호적(戶籍)[01446]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사준호구(準戶口)이다. 1825년에 안동부 임하현(臨河縣) 내 천전리(川前里)에 거주하는 생원(生員) 김조수(金祖壽)에게 1825년에 성적한 장적에 준거하여 등급한 호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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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김주병이 안동부사에 보낸 호적(戶籍)[01447]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주병(28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안동부 임현(臨縣) 내 제2 천전리(川前里) 제1통 제5호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주병(金疇秉)이 28세에 관에 올린 호구단자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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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김주병이 안동부사에 보낸 호적(戶籍)[01448]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주병(31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임현(臨縣) 내 제2 천전리(川前里) 제1통 제3호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주병(金疇秉)이 31세에 관에 올린 호구단자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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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김주병이 안동부사에 보낸 호적(戶籍)[01449]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주병(34세)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안동부 임현(臨縣) 내 제2 천전리(川前里) 제1통 제4호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주병(金疇秉)이 34세에 관에 올린 호구단자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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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590년에 발급자미상이 김용에게 내린 교지(敎旨) 紅牌[0145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관작(官爵)·시호(諡號)·자격(資格), 토지나 너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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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609년에 발급자미상이 유학 김시주에게 내린 교지(敎旨) 白牌[0145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관작(官爵)·시호(諡號)·자격(資格), 토지나 너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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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613년에 발급자미상이 생원 김시주에게 내린 교지(敎旨) 紅牌[0145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관작(官爵)·시호(諡號)·자격(資格), 토지나 너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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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826년에 발급자미상이 유학 김조수에게 내린 교지(敎旨) 白牌[0145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관작(官爵)·시호(諡號)·자격(資格), 토지나 너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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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649년에 발급자미상이 김용처 숙부인 이씨에게 내린 교지(敎旨) 贈識[0145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1651년 12월 17일에 김용(金涌)을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함에 따라서 처(妻)도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거하여 숙부인이씨(淑夫人李氏)에서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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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567년에 이조에서 김수일에게 내린 교패(敎牒)(承仕郞)[01457]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교첩(敎牒)이다. 융경(隆慶) 원년(1567) 시월 삼십일 효력부위(效力副尉) 김수일(金守一)을 승사랑(承仕郞)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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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615년에 이조에서 김시주에게 내린 교패(敎牒)(奉訓郞行承政院주書兼春秋館記事官)[01458]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관작(官爵)·시호(諡號)·자격(資格), 토지나 너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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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574년에 이조에서 김수일에게 내린 교패(敎牒)(宣敎郞)[01459]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건은 교첩(敎牒)이다. 교첩은 왕이 5품 이하의 관리를 임명할 때 발급하는 사령장이다. 5품 이하의 관리는 대간의 서경을 거친 후에, 이조(吏曹)와 병조(兵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임명했다. 선조 7년(1574)에 4월 8일에 이조에서 무공랑(務功郞) 김수일(金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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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574년에 이조에서 김수일에게 내린 교패(敎牒)(務功郞)[01460]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건은 교첩(敎牒)이다. 교첩은 왕이 5품 이하의 관리를 임명할 때 발급하는 사령장이다. 5품 이하의 관리는 대간의 서경을 거친 후에, 이조와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임명했다. 선조 7년(1574)에 4월 4일에 이조에서 봉교통사랑(奉敎通仕郞) 김수일(金守一)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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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583년에 이조에서 김수일에게 내린 교패(敎牒)(宣務郞自如道察訪)[01461]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교첩(敎牒)이다. 만력(萬曆) 십일년(1583) 삼월 선무랑(宣務郞) 김수일(金守一)을 선무랑자여도찰방(宣務郞自如道察訪)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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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609년에 이조에서 김시주에게 내린 교패(敎牒)(從仕郞)[01462]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교첩(敎牒)이다. 만력(萬曆) 삼십칠년(1609) 칠월 이조(吏曺)에서 학생(學生) 김시주(金是柱)를 종사랑(從仕郞)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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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609년에 이조에서 김시주에게 내린 교패(敎牒)(承仕郞)[01463]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교첩(敎牒)이다. 만력(萬曆) 삼십칠년(1609) 칠월 이조(吏曺)에서 종사랑(從仕郞) 김시주(金是柱)를 승사랑(承仕郞)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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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616년에 이조에서 김시주에게 내린 교패(敎牒)(通善郞行承政院注書兼春秋館記事官)[01464]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교첩(敎牒)이다. 만력(萬曆) 사십사년(1616) 유월 초이일 이조(吏曺)에서 봉직랑행승정원주서겸춘추관기사관(奉直郞行承政院注書兼春秋館記事官) 김시주(金是柱)를 통선랑행승정원주서겸춘추관기사관(通善郞行承政院注書兼春秋館記事官)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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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 [0146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추모한 만사(輓辭)이다. 죽은이의 행적을 추모하고 고결한 인품과 덕행을 히고하며 슬퍼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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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 [0146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가선대부이조참판(嘉善大夫吏曹參判)을 역임한 진성이공(眞城李公)의 영전에 바친 만사이다. 4언으로 망자에 대한 추모와 슬픔의 정서를 집약해서 표현하였다. 망자의 가문 여열과 빼어난 문학적 감성을 바탕으로 이룩한 행적 등에 대해 언급하였다. 문예적 미려함과 애상감이 함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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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 [0146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만사(挽詞)이다. 회재 이언적의 죽음을 애통해 하면서 지은 만사이다. 망자의 도덕과 학문 및 인품을 추모하면서 그리운 심정을 표현했다. 망자의 평소 행적 추모를 통해, 그리움과 애절한 심정을 그려내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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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 [0146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만사(挽詞)이다. 특정 인물에 대한 만사이다. 문면에 특정인의 명세서는 없지만, 모두 4수 형식으로 이루어진 만사이다. 4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문학적 정감과 애상의 표현을 통해 망자에 대한 죽음을 미적으로 승화시킨 가운데 추모와 슬픔의 정서를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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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무자년 6월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 [0146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통정대부용양위부호군(通政大夫龍驤衛副護軍)을 역임한 김공의 영전에 올린 만사이다. 장편 4언으로 망자의 행적과 고결한 인품을 회고하는 가운데, 슬픔과 그리운 정을 절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망자의 생애를 일대기식으로 정리하면서, 추모와 애상의 정조를 집약해서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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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동원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01470] / 기록자료>고문서 / 동원친척 숙부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이다. 망자가 노닐던 곳을 추억하면서 망자를 그리워하는 심정을 표현했다. 망자의 평소 기상과 의협심 등을 강조하면서 그에 대한 그리움과 사별의 아픔을 그려내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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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이탁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 [01471] / 기록자료>고문서 / 척제 이탁만사(挽詞)이다. 친척 숙부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이다. 이탁(李鐸)이 지은 만사이다. 망자의 영남 유림에서의 위상을 강조하면서, 망자를 잃은 영남 유림의 슬픔을 고조시켰다. 그리고 평소 망자의 어질고 고결한 인격미를 회고하는 가운데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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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응노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 [01472]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응노친척 숙부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이다. 김응로(金應魯)가 지은 만사이다. 서두에서부터 망자에 대한 사별의 아픔을 곡진하게 묘사했다. 강산과 자연은 여전하지만, 망자는 떠나고 없다고 하였다. 유한한 인생의 단면과 무한한 자연의 영구성을 대비하여, 망자에 대한 추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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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유학 김상열(42세)이 기록한 명지(名紙)[01473]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상열(42세)벼슬하지 않고 지낸 김상열이 42세 때의 친족 명세를 기록한 명지(名紙)이다. 본관과 직계 가족 명세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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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유학 김세건(36세)이 기록한 명지(名紙)[01474]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세건(36세)벼슬하지 않고 지낸 김세건이 89세 때의 친족 명세를 기록한 명지(名紙)이다. 본관과 직계 가족 명세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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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유학 김조수(39세)이 기록한 명지(名紙)[01475]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조수(39세)벼슬하지 않고 지낸 김조수가 89세 때의 친족 명세를 기록한 명지(名紙)이다. 본관과 직계 가족 명세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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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유학 김상설(54세)이 기록한 명지(名紙)[01476]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상설(54세)벼슬하지 않고 지낸 김상열이 54세 때의 친족 명세를 기록한 명지(名紙)이다. 본관과 직계 가족 명세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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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유학 김현운(30세)이 기록한 명지(名紙)[01477]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현운(30세)벼슬하지 않고 지낸 김현윤이 80세 때의 친족 명세를 기록한 명지(名紙)이다. 본관과 직계 가족 명세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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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유학 김현운 (30세)이 기록한 명지(名紙)[01478]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현운 (30세)벼슬하지 않고 지낸 김현윤이 30세 때의 친족 명세를 기록한 명지(名紙)이다. 본관과 직계 가족 명세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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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결(缺)에 숙부인 이씨이 김시주 등에게 보낸 분재기(分財記)(分矜文記)[01479] / 기록자료>고문서 / 재주 숙부인 이씨일부 낙질의 문건으로 분급문서이다. 자식들에게 노비와 재산 일부를 나누어주며 증거물로 작성해 둔 문건이다. 노비의 신상명세를 적고, 분급 대상자별로 분급물을 기록해 두었다. 자식은 모두 일곱명인데 아들이 다섯 명이고 딸은 두 명이다. 딸 자식에게도 재산 분배를 공정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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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611년에 발급자미상이 이안도 처 등에게 보낸 분재기(分財記)(和會文記)[0148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화회문기(和會文記)이다. 화회문기는 재주(財主)가 사망한 뒤 3년 상을 마치고, 자녀들이 화목하게 모여 합의하여 유산을 분배하고 작성한 문건이다. 광해군 3년(1611) 4월 1일에 작성한 문건이다. 선조가 남긴 재산인 땅과 밭, 산지, 묘토, 위토, 노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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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1577년에 생원 김진이 자녀에게 보낸 분재기(分財記)(親給)[01481] / 기록자료>고문서 / 생원 김 진자손들에게 특정 전지나 노비 및 재산상의 분배 과정에서 죽기 전에 상세하게 말한 내용을 명문으로 남긴 문건이다. 만력 5년 정축년 윤 8월 17일에 작성한 문건이다. 여러 양태의 전지와 소속 노비를 공정하게 자손들에게 분급하는 과정을 기록했다. 이미 생전에 자손들에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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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병진년 2월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비답(批答)[0148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병진년 2월 24일의 기록이다. 상소문에 대한 비답이 적힌 기록이 있다. 우국의 심정이 담긴 상소문의 내용을 담당자들과 협의하여 처리하겠다고 기록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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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건륭 신사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상량문(上梁文)[0148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건륭(乾隆) 신사(辛巳) 삼월 이십일일 신시 입주(立柱) 상량(上樑)'의 상량문으로 유학 김낙행이 찬하고 유학 김상열이 썼다. 학문으로서 반드시 친우를 모으고 학업은 마음을 오로지함이 귀중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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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도광 갑신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상량문(上梁文)[0148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도광(道光) 갑신(甲申) 삼월 초일일 입주(立柱) 초구일 신시(申時) 상량(上樑) 아, 이 집이 영조 신사년에 세웠으니 지금 갑신년에서 벌서 육십 사 년 전의 일이라, 동우가 이미 기울어져 새로 수리하여 영구히 도모하고저 한다'는 내용의 상량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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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상량문(上梁文)[0148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특정 건물을 상량(上梁)한 이후에 작성한 문건이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의 변화가 심한 것을 언급했다. 이와 함께 두 선현의 유업을 받들어 세운 이 건물의 역사성과 그 의의를 강조했다. 이와 함께 후학들이 그분들의 유지를 이어 면학과 연찬을 통해, 알찬 선비 정신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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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올린 상소(上疏)(疏草) 請金涌贈賜諡[0148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상소문(上疏文)이다. 시호를 하사해 주기를 간청한 상소문이다. 서두에서 사림의 숭상을 받고, 정신적 표상이 되는 인물 입전과 표상의 역사적인 의의를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사업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선조조에 선무원종공신이며, 병조참의를 역임하여 이조참의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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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올린 상소(上疏)(疏草) 疏草改本(請金涌贈賜諡)[0148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상소문(上疏文)이다. 시호를 하사해 주기를 간청한 상소문이다. 서두에서 사림의 숭상을 받고, 정신적 표상이 되는 인물 입전과 표상의 역사적인 의의를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사업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선조조에 선무원종공신이며, 병조참의를 역임하여 이조참의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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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올린 상소(上疏)(疏草) 疏草改本(請金涌贈賜諡)[0148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상소문(上疏文)이다. 선조조에 선무원종공신이며, 병조참의를 역임하여 이조참의로 증직된 김용(金涌)의 업적과 공덕을 참조하여, 시호를 내려달라고 간청한 상소문이다. 사림의 숭상을 받고, 정신적 표상이 되는 인물 입전과 표상의 역사적인 의의를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사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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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올린 상소(上疏)(疏草) 疏草改本(請金涌贈賜諡)[0149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상소문(上疏文)이다. 선조조에 선무원종공신이며, 병조참의를 역임하여 이조참의로 증직된 김용(金涌)의 업적과 공덕을 참조하여, 시호를 내려달라고 간청한 상소문이다. 그는 사림의 숭상을 받고, 정신적 표상이 되는 인물임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러한 인물의 입전과 표상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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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경상도 유생 이정순 등이 올린 상소(上疏)(疏草) 疏草改本(請金涌贈賜諡)[01491] / 기록자료>고문서 / 경상도 유생 이정순 등상소문(上疏文)이다. 경상도 유생 이연순(李延淳) 등이 연서하여 올린 상소문이다. 영남 선비 정신과 유림의 역할에 대해 강조하였다. 이어 다룬 주요 사안은 선조조의 선무원종공신이며, 병조참의를 역임하여 이조참의로 증직된 김용(金涌)의 업적과 공덕을 참조하여, 시호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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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올린 상소(上疏)(疏草) 疏草改本(請金涌贈賜諡)[0149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상소문(上疏文)이다. 선조조의 선무원종공신이며, 병조참의를 역임하여 이조참의로 증직된 김용(金涌)의 업적과 공덕을 참조하여, 시호를 내려달라고 간청한 상소문이다. 그는 사림의 숭상을 받고 있으며, 정신적 표상이 되는 인물임을 강조했다. 그에 대한 입전과 표상의 역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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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올린 상소(上疏)(疏草)[0149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상소문(上疏文)이다. 경상도 유생들이 연서하여 올린 상소문이다. 서두에서 국가에서 이러한 사업을 추진하는 당위성과 그 역사적 의의를 강조했다. 이어 영남 선비 정신과 유림의 역할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이어 다룬 주요 사안은 선조조의 선무원종공신이며, 병조참의를 역임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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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운천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올린 상소(上疏)(疏草)[0149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상소문(上疏文)이다. 안동 인근의 유생들이 올린 상소문이다. 인재의 창고인 안동의 역사적인 배경을 강조했다. 그리고 안동의 교육적인 측면과 사림 양성 및 유학의 자양지로서의 역할과 그에 대한 의의를 강조했다. 후학을 양성하고, 학문 연찬에 주력해 온 특정 정사(精舍)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