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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의 제문초(祭文草)[0499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누가 언제 작성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제문의 초안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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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경신년 7월에 기헌 박상룡에게 올린 제문(祭文)[04998] / 기록자료>고문서 / 누인 김○○기헌(畸軒) 박상룡(朴相龍)의 영전에 바치기 위해 작성한 제문의 초안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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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제문(祭文)[0499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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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임자년 1월에 송진수가 표숙모 함양박씨에게 올린 제문(祭文)[05000]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송진수1852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여산송씨(礪山宋氏)인 송진수(宋鎭洙)가 외숙모(外叔母) 유인(孺人) 함양박씨(咸陽朴氏)의 대상(大祥) 때 영전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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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계축년 1월에 외종손 이광주가 제문(祭文)[05001] / 기록자료>고문서 / 외종손 이광주1853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안릉이씨(安陵李氏)인 이광주(李光周)가 외종조(外從祖)인 처사김공(處士金公;聞韶金氏)의 초상(初喪) 때 영전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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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자년 3월에 종손서가 제문(祭文)[05002] / 기록자료>고문서 / 종손서병자(丙子)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처사김공(處士金公;聞韶金氏)의 초상(初喪) 때 종손서(從孫壻)인 안동권씨 권□가 영전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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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임자년 4월에 시굉이 종숙부에게 올린 제문(祭文)[05003]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시굉임자(壬子)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처사김공(處士金公;聞韶金氏)의 초상(初喪) 때 종질(從侄)인 김시굉(金始宏)이 영전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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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제문(祭文)[0500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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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갑진년 8월에 제종숙부지평문 등이 제문(祭文)[0500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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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임자년 1월에 부재종질 김진문이 재종숙모 함양박씨에게 올린 제문(祭文)[05006] / 기록자료>고문서 / 부재종질 김진문1852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의성김씨(義城金氏) 가의 종부인 함양박씨(咸陽朴氏)의 대상(大祥) 때 재종질(再從侄)인 김진문(金鎭文)이 영전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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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진년 2월에 연수가 족종에게 올린 제문(祭文)[05007] / 기록자료>고문서 / 연수1856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김연수(金鍊壽)가 족종조(族宗祖)인 처사김공(處士金公;聞韶金氏)의 대상(大祥) 때 영전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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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을묘년 2월에 김중진이 족숙에게 올린 제문(祭文)[05008]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김중진1855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김중진(金重鎭)이 족숙(族叔)인 처사김공(處士金公;聞韶金氏)의 소상(小祥) 때 영전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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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진년 2월에 진호가 족숙부에게 올린 제문(祭文)[05009]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진호1856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김진호(金鎭氵+皐)가 족숙(族叔)인 처사김공(處士金公;聞韶金氏)의 대상(大祥) 때 영전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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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을묘년 2월에 사종제 김도수가 사종형에게 올린 제문(祭文)[05010]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제 김도수1855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김도수(金鍍壽)가 사종형(四從兄)인 처사김공(處士金公;聞韶金氏)의 소상(小祥) 때 영전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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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진년 2월에 종생자 권수호가 내종구에게 올린 제문(祭文)[05011] / 기록자료>고문서 / 종생자 권수호1856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권수호( 權秀浩)가 내종구(內從舅)인 처사김공(處士金公;聞韶金氏)의 대상(大祥) 때 영전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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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신해년 1월에 사위인 신용석이 장모인 함양박씨에게 올린 제문(祭文)[05012]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신용석신해년 1월에 사위인 신용석(申龍錫)이 장모인 함양박씨(咸陽朴氏)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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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임자년 1월에 정대유가 외고, 성양박씨에게 올린 제문(祭文)[05013]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정대유1852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의성김씨(義城金氏) 가의 종부인 함양박씨(咸陽朴氏)의 대상(大祥) 때 생질인 정대유(鄭大裕)가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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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신해년 1월에 부족질 김진호가 유인박씨에게 올린 제문(祭文)[05014] / 기록자료>고문서 / 부족질 김진호1851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의성김씨(義城金氏) 가의 종부인 함양박씨(咸陽朴氏)의 소상(小祥) 때 족질인 김진호(金鎭澔)가 영전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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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임자년 4월에 정운이 족조에게 올린 제문(祭文)[05015]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정운임자(壬子)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처사김공(處士金公;聞韶金氏)의 초상(初喪) 때 족손(族孫)인 김정운(金正運)이 영전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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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을묘년 4월에 김시형이 진곡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05016]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손 김시형1855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진곡선생(振谷先生)의 초상(初喪) 때 김시형(金始亨) 등이 영전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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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갑인년 3월에 조운이 족종 사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017] / 기록자료>고문서 / 족숙 조운1854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처사김공(處士金公;聞韶金氏)의 초상(初喪) 때 족숙(族叔)인 김조운(金祚運)이 영전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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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무인년 3월에 삼종손 관수가 삼종숙조에게 올린 제문(祭文)[05018]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손 관수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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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갑인년 1월에 시명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019]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손 시명1854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처사김공(處士金公;聞韶金氏)의 초상(初喪) 때 재종질(再從姪)인 김시명(金始鳴)이 영전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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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자년 3월에 치운이 족숙에게 올린 제문(祭文)[05020]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치운병자(丙子)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처사김공(處士金公;聞韶金氏)의 초상(初喪) 때 족질(族姪)인 김치운(金致運)이 영전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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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자년 3월에 외종손 이현발이 내종대부에게 올린 제문(祭文)[05021] / 기록자료>고문서 / 외종손 이현발이 문건은 이현발(李顯發)이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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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오년 12월에 남이 종형에게 올린 제문(祭文)[05022]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남(결)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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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무인년 1월에 송규철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023]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 송규철무인(戊寅)년에 작성된 제문으로 송규철(宋奎喆;여산송씨)이 처사김공(處士金公;聞韶金氏)의 소상(小祥) 때 영전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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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경술년 3월에 부 김윤수가 고실 성양박씨에게 올린 제문(祭文)[05024] / 기록자료>고문서 / 부 김윤수1850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종손(宗孫)인 김윤수(金潤壽)가 망처인 함양박씨의 소상(小祥) 때 영전(靈前)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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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진년 2월에 박용부이 내구주에게 올린 제문(祭文)[05025]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박용부1856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내앞[川前] 김씨 가의 종손인 김윤수(金潤壽)의 대상(大祥) 때 생질(甥姪)인 박용복(朴容復)이 영전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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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진년 2월에 유치임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026] / 기록자료>고문서 / 계가시생 유치임1856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내앞[川前] 김씨 가의 종손인 김윤수(金潤壽)의 대상(大祥) 때 계가(契家)인 완산유씨가(完山柳氏家)의 유치임(柳致任)이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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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무신년 9월에 부강복종질 김성로가 종숙모 안동권씨에게 올린 제문(祭文)[05027] / 기록자료>고문서 / 부강복종질 김성로이 문건은 김성로(金聲魯)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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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자년 3월에 헌운이 재종숙부에게 올린 제문(祭文)[05028]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 헌운무신(戊申)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의성김씨(義城金氏)인 김헌운(金憲運)이 종숙모(從叔母) 안동권씨(安東權氏)의 담제(禫祭) 때 작성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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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진년 2월에 진모가 족숙에게 올린 제문(祭文)[05029]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진모1856년에 작성된 제문(祭文)으로 내앞[川前] 김씨 가의 종손인 김윤수(金潤壽)의 대상(大祥) 때 족질인 김진모(金鎭模)가 영전에 바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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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무인년 1월에 삼종질 직운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030]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질 직운삼종조카 직운(稷運)이 집안어른인 대부의 제사 때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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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기미년 6월에 외종제가 내형김공에게 올린 제문(祭文)[05031] / 기록자료>고문서 / 외종제 루인김외종제가 내형(內兄) 처사 김공의 별세후 두 번째 제사에 참석하여 고인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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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기축년 10월에 오대손 병락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032] / 기록자료>고문서 / 오대손 병락오대손(五代孫) 병락(丙洛)이 조상의 묘에 제사를 지내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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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오년 1월에 시흠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033]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시흠조카 시흠(時欽)이 숙부의 영연(靈筵)에서 고인의 덕을 그리며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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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자년 3월에 이우계가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034] / 기록자료>고문서 / 계가자 이우계이우계(李宇啓)가 의성김씨 관 앞에서 통곡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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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자년 3월에 삼종질 정운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035]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질 정운조카 정운(正運)이 삼종숙부 운구 앞에 제물을 바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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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무인년 1월에 도운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036]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도운도운(道運)이 몸이 늙어서 쇠약하여 종숙부의 마지막 제사를 지낼 수 없게 되자 아들 응수(應壽)로 하여금 대신 참여케 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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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자년 3월에 선운이 재종숙에게 올린 제문(祭文)[05037]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 선운조카 선운(善運)이 재종숙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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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갑인년 3월에 김갱수가 족제사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038]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김갱수갑인(1854)년 족종(族從) 김갱수(金鏗壽)가 집안 동생인 사상(士尙)의 장례 시에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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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진년 2월에 응수가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039]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응수응수(凝壽)가 재종형의 묘를 가꾸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344
의성김씨 제산종택 계축년 1월에 시묵이 종숙부에게 올린 제문(祭文)[05040]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시묵조카 시묵(始默)이 종숙부의 두 번째 제사에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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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자년 3월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04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문소김공(聞韶金公)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346
의성김씨 제산종택 무인년 1월에 유문춘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042]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유문춘풍산유씨(豊山柳氏) 유문춘(柳文春)이 죽은 문소(聞韶) 김처사(金處士)의 마지막 제사에 참석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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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모년에 연갑이 자씨에게 올린 제문(祭文)[05043]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연갑김연갑(金淵甲)이 매씨(妹氏)인 김씨의 대상를 치르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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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기사년 4월에 권하생 송이석이 제산에게 올린 제문(祭文)[05044] / 기록자료>고문서 / 권하생 송이석송이석(宋履錫)이 제산선생(霽山先生)의 마지막 제사 때 그의 학행을 추모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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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정묘년 6월에 문우 송하징이 제산에게 올린 제문(祭文)[05045] / 기록자료>고문서 / 문우 송하징송하징(宋夏徵)이 동문수학한 벗 제산선생(霽山先生) 김공의 영전에서 음식을 올리며 정성스럽게 제를 지내며 지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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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제산종택 정묘년 4월 에 척손문하생 송학렴이 제산에게 올린 제문(祭文)[05046] / 기록자료>고문서 / 척손문하생 송학렴귀양지에서 죽은 제산선생(霽山先生)의 운구가 돌아오기 하루 전날 문하생 송학렴(宋學濂)이 제산의 영연(靈筵)에 제물을 갖추어 놓고 그의 학행을 기리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