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38451
의성김씨 제산종택 계미년 2월에 여서 이동영이 외고 무안박씨에게 올린 제문(祭文)[05148]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이동영사위 이동영(李東英)이 장모인 무안박씨(務安朴氏)의 첫 번째 제사에 참석하여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52
의성김씨 제산종택 갑오년 12월에 여서 유윤문이 외고 안동권씨에게 올린 제문(祭文)[05149]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유윤문사위 유윤문(柳允文)이 장모인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영연(靈筵)에서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53
의성김씨 제산종택 정해년 10월에 이광운이 백구에게 올린 제문(祭文)[05150]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이광운생질(甥姪) 이광운(李廣運)이 외삼촌인 문소(聞韶) 김선생(金先生)에 대하여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54
숙종(肅宗)18년(1692)에 국왕이 예조좌랑(禮曺佐郞) 최선(崔鍌)을 보내 죽은 예조판서(禮曹判書) 오모(吳某) 씨의 영전에 보살피게 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238455
의성김씨 제산종택 정해년 8월에 이우필이 외구에게 올린 제문(祭文)[05152]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이우필장인인 문소김공(聞韶金公)의 관을 매장할 때 사위 이우필(李宇弼)이 찬(撰)한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56
의성김씨 제산종택 정해년 8월에 제행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153]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제행영조(英祖) 43년(1767)에 김제행이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57
의성김씨 제산종택 임신년 4월에 재종손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154]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손영조(英祖) 28년(1752)에 재종조에 대한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58
의성김씨 제산종택 을묘년 12월에 시교소생 김진행이 고재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05155] / 기록자료>고문서 / 시교소생 김진행영조(英祖)11년(1735)에 문소(聞韶) 김진행(金晉行)이 통덕랑영희전참봉(通德郞永禧殿參奉) 벼슬을 한 고재(顧齋) 이선생의 영전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59
의성김씨 제산종택 경술년 11월에 재종조 김성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156]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조 성탁재종조 성탁(聖鐸)이 재종손 수재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60
의성김씨 제산종택 임자년 9월에 백부가 조카에게 올린 제문(祭文)[05157] / 기록자료>고문서 / 백부백부가 조카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61
의성김씨 제산종택 정축년 9월에 김○이 완산류공에게 올린 제문(祭文)[05158]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교생 김○영조(英祖) 23년(1757)에 문소김공(聞韶金公)이 완산유씨(完山柳氏)의 두 번째 제사에 참석하여 그를 생각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62
의성김씨 제산종택 문소김공(聞韶金公)이 모친 박씨를 위해 석불에 복을 비는 내용[0515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문소김공(聞韶金公)이 모친 박씨를 위하여 안동 임하현 대사동에 있는 석불에 복을 비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238463
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신년 10월에 정균이 손위누이에게 올린 제문(祭文)[05160]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정균김정균(金正均)이 손위누이의 두 번째 제사 때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64
의성김씨 제산종택 영조(英祖)19년(1743)에 안릉이씨(安陵李氏)에게 올린 제문(祭文)[0516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영조(英祖)19년(1743)에 광양(光陽)에서 죽은 안릉이씨(安陵李氏)를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초이다.출처 : 유교넷 -
238465
의성김씨 제산종택 경인년 11월에 종증손 헌운 등이 숙인 무안박씨에게 올린 제문(祭文)[05162] / 기록자료>고문서 / 종증손 헌운·조운종증손(從曾孫)인 헌운(憲運)과 조운(祚運)이 큰증조할머니인 무안박씨를 추모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66
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신년 10월에 이질 계운이 이모 안동권씨에게 올린 제문(祭文)[05163] / 기록자료>고문서 / 이질 계운계운(啓運)이 이모인 안동권씨(安東權氏)를 추모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67
의성김씨 제산종택 을유년 2월에 회운이 족형에게 올린 제문(祭文)[05164]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회운회운(會運)이 족형(族兄) 처사공(處士公)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68
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신년 10월에 시묵이 종숙모 안동권씨에게 올린 제문(祭文)[05165]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시묵종질 시묵(始默)이 종숙모 안동권씨(安東權氏)의 두 번째 제사 때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69
의성김씨 제산종택 정해년 8월에 득행이 백종형에게 올린 제문(祭文)[05166]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득행영조(英祖) 43년(1767)에 종제(從弟) 득행(得行)이 백종형(伯從兄)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70
의성김씨 제산종택 정해년 8월에 복행이 종형 구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05167]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복행영조(英祖) 43년(1767)에 종제(從弟) 복행(復行)이 종형(從兄)인 구사공(九思公)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71
의성김씨 제산종택 계사년 9월에 가제 인한이 백형에게 올린 제문(祭文)[05168] / 기록자료>고문서 / 가제 인한영조(英祖) 49년(1773)에 동생 인한(麟漢)이 백형(伯兄)인 처사공(處士公)의 종상(終祥) 때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72
의성김씨 제산종택 정해년 8월에 시태가 재종숙 구사헌선생에게 올린 제문(祭文)[05169]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 시태정해(丁亥)년에 재종질 시태(始泰)가 재종숙 구사헌선생(九思軒先生)의 영전에서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73
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진년 4월에 권규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170] / 기록자료>고문서 / 척종질 권규영병진(丙辰)년에 권규영(權奎永)이 의성김공(義城金公)의 영전에서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74
의성김씨 제산종택 정묘년 6월에 이익필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171]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익필자헌대부(資憲大夫) 전양군(全陽君) 이익필(李益馝)이 적소(謫所)에서 죽은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문소김공(聞韶金公)의 영구차가 섬강을 떠나 촉석루에 도착하여 낙동강변에 있는 하무당(霞騖堂)에 머물고 있을 때 통곡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75
의성김씨 제산종택 무인년 1월에 박유영이 외숙부에게 올린 제문(祭文)[05172]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박유영박유영(朴維寧)이 외숙주의 종상(終祥) 때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76
의성김씨 제산종택 계묘년 7월에 태중이 내한 학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05173] / 기록자료>고문서 / 족숙 태중김태중(金泰重)이 내한(內翰) 학사공(學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77
의성김씨 제산종택 무인년 1월에 이해영이 내구에게 올린 제문(祭文)[05174]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이해영생질 이해영(李海永)이 외숙 문소김공(聞韶金公)의 종상(終祥)때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78
의성김씨 제산종택 정해년 8월에 척기 유태제가 구사당 김낙행에게 올린 제문(祭文)[05175] / 기록자료>고문서 / 척기 유태제정해년 8월에 척기 유태제가 구사당 김낙행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출처 : 유교넷 -
238479
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자년 3월에 이해영이 장인 문소김공에게 올린 제문(祭文)[05176]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이해영사위 이해영(李海永)이 장인 문소김공(聞韶金公)의 하관 때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80
의성김씨 제산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17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출처 : 유교넷 -
238481
의성김씨 제산종택 정축년 5월에 김낙행이 처사 권공에게 올린 제문(祭文)[05178] / 기록자료>고문서 / 인제 김낙행김낙행(金樂行:1708~1766)이 처사권공(處士權公)의 두 번째 제사때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82
의성김씨 제산종택 기유년 11월에 김성탁이 종숙모 남양홍씨에게 올린 제문(祭文)[05179]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성탁종숙모 남양홍씨(南陽洪氏)의 영연(靈筵)에서 조카 성탁(聖鐸)이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83
의성김씨 제산종택 무진년 6월에 김낙행이 종군에게 올린 제문(祭文)[05180]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숙 낙행김낙행(金樂行:1708~1766)이 종군(宗君)의 영탁에 제물을 바치고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84
의성김씨 제산종택 경인년 11월에 서손 시정이 조부모의 묘를 이장하며 지은 축문[05181] / 기록자료>고문서 / 서손 시정서손자 시정(始政)이 이미 돌아가신지 수십년이 지난 조부모의 묘를 이장하여 합장하면서 신명께 고한 축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85
의성김씨 제산종택 정축년 2월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18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4구체로 지어진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86
의성김씨 제산종택 정미년 10월에 재령이씨에게 올린 제문초(祭文草)[05183] / 기록자료>고문서 / 문소 김○○재령이씨(載寧李氏)에 대한 제문초이다.출처 : 유교넷 -
238487
의성김씨 제산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18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5구체 7구체로 지어진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88
의성김씨 제산종택 정유년 9월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18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7구체로 지어진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89
의성김씨 제산종택 정유년 9월에 종제가 처사공 종형에게 올린 제문(祭文)[05186]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종형(從兄)에 대한 제문초이다.출처 : 유교넷 -
238490
의성김씨 제산종택 1738년에 김성탁이 기헌박공에게 올린 애사(哀辭)[05187] / 기록자료>고문서 / 김성탁1738년에 김성탁이 기헌 박공에게 올린 「대학생기헌박공애사(大學生畸軒朴公哀辭)」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출처 : 유교넷 -
238491
의성김씨 제산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18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출처 : 유교넷 -
238492
의성김씨 제산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18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출처 : 유교넷 -
238493
의성김씨 제산종택 경진년 3월에 김시전이 장모에게 올린 제문(祭文)[05190]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시전사위인 김시전(金始全)이 장모를 생각하면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94
의성김씨 제산종택 병자년 5월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191] / 기록자료>고문서 / 김내락고종(高宗)13년(1876)에 김내락(金內洛)이 형조참의(刑曹參議) 이상열(李象設)을 위해 4구체로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95
의성김씨 제산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19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4구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96
의성김씨 제산종택 1873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193] / 기록자료>고문서 / 김진성정와(訂窩) 김선생(金先生)에 대한 김진성(金鎭誠)의 4구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497
의성김씨 제산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19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출처 : 유교넷 -
238498
의성김씨 제산종택 을해년 3월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0519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 이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며 사별의 아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출처 : 유교넷 -
238499
의성김씨 제산종택 계해년 7월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草)[0519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영조(英祖)19년(1743)에 지은 4구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38500
의성김씨 제산종택 성리학 이념에 따른 덕치를 강조한 계초(啓草)[0519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주상에게 올바른 정치 실현과 민생 안정 및 유림들의 권익 옹호 등을 건의한 상소문(上疏文)이다. 이 문건에서는 성리학 이념에 따른 덕치를 강조하며 군왕의 도덕적인 각성을 촉구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