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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47] / 기록자료>고문서 / 부질 박교진부질(夫姪 : 조카) 박교진(朴嶠鎭 : 본관 咸陽)이 계유년(癸酉年) 2월 20일에 숙모(叔母) 무안박씨(務安朴氏)를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숙모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어진 여성의 면모를 일찍부터 갖춘 분으로 시집 온 이래 시댁을 위해 알뜰하고 부지런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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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48]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박삼진족제(族弟 : 친척 아우) 박삼진(朴三鎭 : 본관 咸陽)이 무자년(戊子年) 12월 22일에 유인(孺人 : 벼슬하지 않은 일반 선비의 부인) 한양조씨(漢陽趙氏)를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부인은 생전에 따뜻하고 착한 덕과 맑은 모습으로 가족 및 친척들에게 기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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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49] / 기록자료>고문서 / 척손 이재곤척손(戚孫 : 친척 손자뻘의 사람) 이재곤(李在崑 : 본관 載寧)이 정미년(丁未年) 11월 27일에 척조(戚祖 : 친척 할아버지) 함양(咸陽) 박공(朴公)을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박공 집안과 자기 집안은 조상들이 대를 이어 서로 친하게 지냈던 관계라고 하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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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50] / 기록자료>고문서 / 종손서 신세현종손서(從孫壻 : 사촌 손자뻘의 사위) 신세현(申世賢 : 본관 寧海)이 계유년(癸酉年) 2월 20일에 빙종대모(聘從大母 : 처 사촌 뻘의 할머니) 유인(孺人 : 벼슬하지 않은 일반 선비의 부인) 무안박씨(務安朴氏)를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신세현이 이 집안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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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51] / 기록자료>고문서 / 부종자 해진부종자(夫從子 : 조카뻘의 사람) 해진(海鎭)이 임신년(壬申年) 2월 20일에 백모(伯母 : 큰 아버지의 부인) 무안박씨(務安朴氏)를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부인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어질었고 시댁 여러 가족을 지성으로 섬기고 온화하게 대했다고 했다. 친척 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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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52] / 기록자료>고문서 / 부재종제 박주목부재종제(夫再從弟 : 남편의 6촌 동생) 박주목(朴周穆 : 본관 咸陽)이 계유년(癸酉年) 2월 종수(宗嫂 : 형수뻘 되는 여성) 유인(孺人 : 벼슬하지 않은 일반 선비의 부인) 무안박씨(務安朴氏)를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부인의 아름답고 고운 행실과 후손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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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53] / 기록자료>고문서 / 십삼대손 성식십삼대손(十三代孫) 성식(成植)이 기미년(己未年) 8월 7일에 13대 조부모(祖父母)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조부의 관직은 통정대부(通政大夫)이며 조모는 평해황씨(平海黃氏)이다. 조부는 재주가 출중하고 효심이 깊었으며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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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54] / 기록자료>고문서 / 십일대손 성식십일대손(十一代孫) 성식(成植)이 임자년(壬子年) 10월 18일에 통훈대부(通訓大夫) 및 울산부사(蔚山府使)를 역임한 선조고(先祖考 : 선대의 조상)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선조는 재주가 총명하여 당대에 명성이 자자했고 외직으로 나가 백성들을 어질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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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55] / 기록자료>고문서 / 가제 박영진통가제(通家弟 : 조상 대대로 서로 알고 지낸 아우뻘의 사람) 박영진(朴永鎭 : 본관 咸陽)이 정유년(丁酉年) 8월에 남공(南公)을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두 집안 조상들이 서로 친교를 깊이 하면서 오랫동안 사귀어 온 관계임을 강조하고 공이 특출한 재주를 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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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59]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박영진족질(族侄 : 조카) 박영진(朴永鎭 : 본관 咸陽)이 임오년(壬午年) 11월 8일에 족숙(族叔 : 숙부) 처사(處士 : 벼슬하지 않고 살다 간 선비) 함양(咸陽) 박공(朴公)을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집안 조상들이 비교적 오래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점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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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60] / 기록자료>고문서 / 계제 박영진계제(契弟 : 아우뻘의 사람) 박영진(朴永鎭 : 본관 咸陽)이 신축년(辛丑年) 5월 13일에 처사(處士 : 벼슬하지 않고 살다 간 선비) 영양(英陽) 남공(南公)을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남공은 우수한 가문의 후예로서 재주가 빼어나고 문학으로 대를 이어온 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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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61]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박○사제(査弟 : 사돈 사이) 박○(朴○)가 신축년(辛丑年) 3월 23일에 평산(平山) 신공(申公)을 추모하며 지은 사언체(四言體) 형식의 제문(祭文)이다. 신공의 초상 때 문상을 하지 못해 죄송했는데 이제야 제문을 지어 올리며 명복을 빈다고 했다. 공은 훌륭한 평산 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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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62]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제 이병극친가제(親家弟 : 친 아우) 이병극(李秉極 : 본관 載寧)이 임인년(壬寅年) 11월 19일에 자씨(姉氏 : 누나)이며 함양(咸陽) 박공(朴公)인 망자(亡者 : 죽은 이)를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남동생이 죽은 누이와 사별한 이후 혈육을 잃은 슬픔을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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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63]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제 세진삼종제(三從弟 : 육촌 아우) 세진(世鎭)이 무신년(戊申年) 11월 27일에 삼종형(三從兄 : 6촌 형님) 처사공(處士公 : 벼슬하지 않고 살다 간 선비)을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형은 우리 가문의 10대 종손으로 가문의 번영과 후손들의 평화를 위해 다방면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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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64] / 기록자료>고문서 / 손녀서 신덕용손녀서(孫女壻 : 손녀의 남편) 신덕용(申悳容 : 본관 平山)이 정미년(丁未年) 11월 27일에 함양(咸陽) 박공(朴公)을 추모하며 올린 제문(祭文)이다. 박공이 자신을 버리고 저 세상으로 떠난 지 이미 일년이 지났다고 하며 향리에서는 공이 남긴 덕을 추모하는 이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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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65] / 기록자료>고문서 / 십이대손 성식십이대손(十二代孫 : 12대 후손) 성식(成植)이 임자년(壬子年) 10월 18일에 통정대부(通政大夫)이셨던 조고(祖考 : 친척 할아버지)를 추모하며 올린 제문(祭文)이다. 조부께서 생전에 남기신 업적이 매우 훌륭하여 당세에 칭송을 받았지만 후손들이 미약하여 조상을 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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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66]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남영태여서(女壻 : 사위) 남영태(南永泰 : 본관 英陽)가 경술년(庚戌年) 1월 25일에 빙부(聘父 : 장인) 처사(處士 : 벼슬하지 않고 살다 간 선비) 함양(咸陽) 박공(朴公)을 추모하며 올린 제문(祭文)이다. 장인의 3년상(喪)이 끝나고 탈상(脫喪 : 3년상을 모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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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67]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동원질자(侄子 : 조카) 동원(東源)이 무자년(戊子年) 12월 22일에 백모(伯母 : 큰 어머니) 한양(漢陽) 조씨(趙氏)를 추모하며 지어 올린 제문(祭文)이다. 하늘이 최근에 자기 집안에 내린 재앙이 이보다 더 심할 수 없다고 했다. 할머니와 사촌형의 죽음에 이어 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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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68] / 기록자료>고문서 / 부질 해진부질(夫侄 : 조카) 해진(海鎭)이 갑술년(甲戌年) 2월 12일에 백모(伯母 : 큰 어머니) 무안(務安) 박씨(朴氏)를 추모하며 지어 올린 제문(祭文)이다. 인생에서 살고 죽는 것은 하늘이 정한 운명이라고 하며 큰어머니는 훌륭한 인품과 착한 행실로 가족과 친척을 섬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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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69] / 기록자료>고문서 / 구대손 영진구대손(九代孫 : 9대 손자) 영진(永鎭)이 경인년(庚寅年) 9월 9일에 조고(祖考 : 친척 할아버지뻘이 되시는 분) 여러분들을 추모하며 지어 올린 제문(祭文)이다. 전란을 당해 모든 것이 위급한 상황이라고 하며 그동안 모시던 조상들의 신주(神柱 : 조상의 위패)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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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70]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남영태여서(女壻 : 사위) 남영태(南永泰 : 본관 英陽)가 갑진년(甲辰年) 1월 3일에 빙모(聘母 : 장모)를 추모하며 올린 제문(祭文)이다. 자신이 사위가 되었지만 넉넉하지 못해 대구에 살면서 자주 찾아 뵙지 못한 채 불효만 일삼았다고 하며 지난 시절을 회고하니 죄송스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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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71] / 기록자료>고문서 / 손녀부 박성균손녀서(孫女壻 : 손녀의 남편) 박성균(朴晟均 : 본관 錦城)이 을해년(乙亥年) 5월 28일에 외대고(外大姑 : 아내의 할머니) 영양(英陽) 남씨(南氏)를 추모하며 올린 제문(祭文)이다. 박성균은 이 집안으로 장가를 오니 이미 작년에 이 분이 돌아가셨다고 했으며, 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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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72] / 기록자료>고문서 / 부종제 주기부종제(夫從弟 : 남편의 사촌 동생) 주기(周璣)가 갑술년(甲戌年) 2월 20일에 백종수(伯從嫂 : 사촌 맏형의 아내) 무안박씨(務安朴氏)를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부인은 타고난 성품이 곱고 착했으며 양반 가문에서 유교 교양을 철저하게 익힌 분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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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73] / 기록자료>고문서 / 인량리인량리(仁良里) 주민들이 기묘년(己卯年) 7월 3일에 상제신(上帝神 : 하늘의 신)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몇 달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온 고을의 산천초목이 시들고 짐승과 사람의 생명마저 위협을 당한다고 했다. 하늘의 신께서 이 점을 불쌍히 여겨 흡족하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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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74] / 기록자료>고문서 / 손녀서 이민영손녀서(孫女壻 : 손녀의 남편) 이민영(李玟榮 : 본관 安陵)이 계축년(癸丑年) 10월 26일에 처사(處士 : 벼슬하지 않고 살다 간 선비) 함양(咸陽) 박공(朴公)을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이 별세하여 집안의 큰 시련이라고 하며 사위로서 공에 대한 추모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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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75]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제 병모친가제(親家弟 : 친동생) 병모(秉謨)가 병오년(丙午年) 5월 18일에 자씨(姉氏 : 누이)를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누이는 영양 남씨 집안으로 시집을 갔는데 질병에 걸려 여러 좋은 병원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했지만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며 슬퍼했다. 지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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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76] / 기록자료>고문서 / 처질 조직기조직기(趙織基 : 본관 咸陽)가 정미년(丁未年) 11월 고숙주(姑叔主 : 고모의 남편)를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하늘이 시샘을 하여 공을 이 세상에 오래 살지 못하게 했다고 하며 사별의 아픔을 토로했다. 공은 양반 가문 후손답게 어질고 겸손한 선비로서 가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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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77] / 기록자료>고문서 / 계하생 신헌기계하생(契下生 : 사돈 사이) 신헌기(申憲基 : 본관 平山)가 무신년(戊申年) 11월 27일에 사장(査丈 : 사돈 어른) 처사(處士 : 벼슬하지 않고 살다 간 선비) 함양(咸陽) 박공(朴公)을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사돈 어른은 영남의 명문가 후손으로 태어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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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78]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손 노윤족종손(族從孫 : 친척 손자)인 노윤(魯潤)이 무신년(戊申年) 11월 27일에 족증조(族曾祖 : 증조부뻘의 친척분)를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이 분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특출하고 영리하여 문장을 빨리 해석하였으며 논리가 정연했다고 하였다. 성품도 어질고 착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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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7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친척이 김군(金君)을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김군이 죽은 지 1년이 되었다고 하며 늘 다정하고 호감을 지닌 채 자기를 도와준 은혜에 대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고 했다. 김군이 채 50년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어 안타깝고 애석하다고 했다. 평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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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80] / 기록자료>고문서 / 부재종질 승중부재종질(夫再從侄 : 6촌 조카)인 승중(承重)이 무자년(戊子年) 12월 2일에 재종숙모(再從叔母) 유인(孺人 : 벼슬하지 않은 남편의 부인) 한양(漢陽) 조씨(趙氏)를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부인이 세상을 떠난 지 일년이 되었지만 잊을 수 없다고 하며 부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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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81] / 기록자료>고문서 / 질녀서 남영태질녀서(侄女壻 : 질녀의 남편) 남영태(南永泰 : 본관 英陽)가 정미년(丁未年) 11월 27일에 처사(處士 : 벼슬하지 않고 살다 간 선비) 함양(咸陽) 박공(朴公)을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남영태는 이 집안으로 장가를 든 지 30여 년이 지났다고 하면서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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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82]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정서학사제(査弟 : 사돈 사이인 자)인 정서학(鄭瑞學 : 본관 奉化)이 임인년(壬寅年) 1월 22일에 사형(査兄 : 사돈 사이인 사람) 함양(咸陽) 박공(朴公)을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하늘이 공에게 어질고 착한 인품과 훌륭한 재주를 주었지만 오래 사는 복까지 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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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83] / 기록자료>고문서 / 종자 동원종자(從子 : 조카)인 동원(東源)이 정미년(丁未年) 11월 27일에 백부(伯父)를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백부께서 세상을 떠난 지 만 1년이 되어 슬픔이 다시 솟아난다고 하며 무덤의 풀도 다시 자라났다고 하였다. 자연은 예전처럼 변함이 없지만 공이 세상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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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84]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제 봉상친가제(親家弟 : 친 동생) 봉상(鳳翔)이 경인년(庚寅年) 4월 24일에 죽은 자씨(姉氏 : 누이)를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손자가 질병을 앓기 때문에 공에게 제대로 문병도 못갔다고 하며 평소 공에게 입은 덕을 갚지 못해 안타깝고 슬프다고 했다. 누이와는 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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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85]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 이관호소제(少弟 : 나이가 어린 동생뻘의 사람) 이관호(李觀浩 : 본관 載寧)가 무신년(戊申年) 11월 27일에 처사(處士 : 벼슬하지 않고 살다 간 선비) 함양(咸陽) 박공(朴公)을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공은 명성이 높은 명문 집안 후손으로 태어나 좋은 교양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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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제문86] / 기록자료>고문서 / 종외손 신영육종외손(從外孫 : 외가쪽 친척) 신영육(申榮六 : 본관 平山)가 정미년(丁未年) 11월 27일에 외종대부(外從大父) 처사(處士 : 벼슬하지 않고 살다 간 선비) 함양(咸陽) 박공(朴公)을 추모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박공은 연세가 들수록 정신이 온전하고 기상이 굳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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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행장1(소호공[신지]유사)] / 기록자료>고문서 / 오대손 세유오대손(五代孫 : 5대 후손) 세유(世維)가 신유년(辛酉年)에 오대조(五代祖 : 5대 선조) 소호공(小湖公) 박신지(朴身之 : 본관 咸陽, 字 履卿 :1629-1705)의 평생 행적을 회고하며 지은 [유사(遺事)]이다. 서두에서 함양 박씨의 유래가 신라 때부터 시작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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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행장2(통훈대부울산도호부사택옹[신지]행장)] / 기록자료>고문서 / 김정모김정모(金正模 : 본관 聞韶)가 임인년(壬寅年)에 통훈대부(通訓大夫) 울산도호부사(蔚山都護府使)를 역임한 택옹(澤翁) 박신지(朴身之 : 본관 咸陽, 字 履卿 :1629-1705)의 평생 일대기를 정리한 [행장(行狀)]이다. 글의 앞머리에서는 신라 때부터 시작된 함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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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기타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조상들의 혼령 앞에 기원하며 올린 글인데, 조상들이 후손들을 보살펴 주어 농사도 잘 되고 자손들이 번영을 이루고 장수하며 오래오래 살아가길 기원한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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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함양박씨 소호종택 [기타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조상들의 혼령 앞에 기원하며 올린 글인데, 조상들이 후손들을 어여쁘게 보살펴 주어 농사도 잘 되고 자손들이 번영을 이루며 복을 받고 오래오래 살아가길 기원한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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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법산 영천최씨 시청당 [교지1(충청북도관찰부주사)] / 기록자료>고문서 / 의정부의정부(議政府)에서 광무(光武) 6년(1902) 9월 1일에 최우동(崔禹東 : 본관 영천)을 충청북도관찰부주사(忠淸北道觀察府主事)로 임명하며 발급한 교지(敎旨 : 임명장)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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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법산 영천최씨 시청당 [명문1(임대차계약증)] / 기록자료>고문서 / 최성동최성동(崔成東 : 본관 영천)이 1958년 9월에 곡물을 최후곤(崔厚坤 : 본관 영천)에게 판 사실을 증명하며 작성해준 임대차계약증(賃貸借契約證)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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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법산 영천최씨 시청당 [명문2(토지매도증)] / 기록자료>고문서 / 김판석김판석(金判石)이 1960년에 성주군(星州郡) 수륜면(修倫面) 남은동(南隱洞)에 있는 본인 소유의 밭 419평을 최후곤(崔厚坤 : 본관 영천)에게 판 사실을 증명한 토지매도증(土地賣渡證)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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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법산 영천최씨 시청당 [명문3(대지매도증)] / 기록자료>고문서 / 최태곤최태곤(崔泰坤 : 본관 영천)이 1956년 7월 9일에 성주군(星州郡) 수륜면(修倫面) 남은동(南隱洞)에 있는 본인 소유의 땅 376평을 최후곤(崔厚坤 : 본관 영천)에게 판 사실을 증명한 대지매도증(垈地賣渡證)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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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법산 영천최씨 시청당 [명문4(토지매도계약서)] / 기록자료>고문서 / 최석곤최석곤(崔錫坤 : 본관 영천)이 1959년 3월에 성주군(星州郡) 수륜면(修倫面) 남은동(南隱洞)에 있는 본인 소유의 밭 419평을 백미(白米 : 쌀) 10두(斗 : 말)를 받고 김판석(金判石)에게 판 사실을 증명한 토지매도약서(土地賣渡契約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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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법산 영천최씨 시청당 [명문6(토지매도계약서)] / 기록자료>고문서 / 최성준최성준(崔性駿 : 본관 영천)이 무자년(戊子年) 3월 18일에 성주군(星州郡) 수륜면(修倫面) 남은동(南隱洞)에 있는 본인 소유의 논 644평을 박임동(朴林東)에게 판 사실을 증명한 토지매도계약서(土地賣渡契約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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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법산 영천최씨 시청당 [명문7] / 기록자료>고문서 / 최영권최영권(崔永權 : 본관 영천)이 1954년 4월에 성주군(星州郡) 수륜면(修倫面) 남은동(南隱洞)에 있는 본인 소유의 밭 856평과 인접한 최후곤(崔厚坤 : 본관 영천)의 땅을 서로 명백한 경계지로 삼는다고 하며 이를 문서로 명시해 둔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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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법산 영천최씨 시청당 [간찰1]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기동제(弟 : 아우 뻘인 자) 김기동(金基東)이 신○년(辛○年) 12월 12일에 보낸 간찰(簡札 : 편지)이다. 날씨가 춥고 세모가 다가오는 시절에 가내 평안한지 묻고 세월이 이처럼 빨리 지나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도리상 상대방 조상을 추모하는 만사(輓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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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법산 영천최씨 시청당 [간찰2]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정원식시생(侍生 : 문하생) 정원식(鄭元植)이 무신년(戊申年) 3월 29일에 보낸 간찰(簡札 : 편지)이다. 상대방이 보내준 간찰(簡札 : 편지)을 반갑게 읽고 소식을 알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어제 대구에서 보낸 전보를 받았는데 재판 일자가 5월 3일로 확정되었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