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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조카인 김원(金源)이 망자 모씨(某氏)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김방김방(金埅 : 1706∼1779)이 죽은 이의 평소 아름다운 행적을 그리워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는 영남 유림 사회에서 역할이 많았다고 하면서 그리움과 슬픔의 심정을 담았고 망자를 잃고 난 뒤의 허전함과 서러운 정서를 집약하여 표현하였으며,출처 : 유교넷 -
243352
김경희(金慶熙)가 예안 고을의 경작지 소송건에 대해 예안(禮安) 관(官)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경희억울한 사정이나 하소연 할 사안을 올린 소지(所志)인데, 이 문건은 영천의 동면 신기리에 사는 유학(幼學 : 벼슬을 하지 않은 남자의 칭호) 김경희(金慶熙)가 올린 것이다. 예안 고을 경작지 소송에 관련한 해당 인물을 잡아 들여 아직 해결되지 못한 사안에 대해 성주의출처 : 유교넷 -
243353
노비 만용이 세금 납부가 투명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다며 풍기(豊基) 관(官)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생원가노 만용억울한 사정이나 하소연 할 사안을 올린 소지(所志)인데, 이 문건은 김생원 댁의 노비 만용(萬龍)이 풍기 고을 원님에게 올린 것이다. 노비 만용은 자신이 납부해야 할 세금을 이미 납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금 납부가 투명하게 처리되지 않아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출처 : 유교넷 -
243354
김낙화(金樂和) 등이 조상 산소 묘에 투장한 일에 대해 순흥성주(順興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낙화·김휘기·김정규 등억울한 사정이나 하소연 할 사안을 올린 소지(所志)인데, 이 문건은 영천의 유학(幼學 : 벼슬을 하지 않은 남자의 칭호) 김낙화(金樂和 : 1811∼?), 김휘기(金輝夔 : 1812∼1895), 김정규(金鼎奎 : 1838∼1891) 등이 순흥 고을 원님에게 올린 것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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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 11월 김한련(金漢鍊) 등이 조상 산소 묘에 투장(偸葬)한 일에 대해 안동성주(安東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한련·김강련·김여련 등억울한 사정이나 하소연 할 사안을 올린 소지(所志)인데, 이 문건은 영천의 김한련(金漢鍊 : 1734∼1784), 김강련(金江鍊 : 1738∼1807), 김여련(金汝鍊 : 1747∼1808) 등이 무오년 11월에 안동 고을 원님에게 올린 것이다. 조상 산소 근처에 몰출처 : 유교넷 -
243356
김한련(金漢鍊) 등이 조상 산소 묘에 투장(偸葬)한 일에 대해 안동성주(安東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한련·강련·여련 등억울한 사정이나 하소연 할 사안을 올린 소지(所志)인데, 이 문건은 영천의 김한련(金漢鍊 : 1734∼1784), 김강련(金江鍊 : 1738∼1807), 김여련(金汝鍊 : 1747∼1808) 등이 안동 고을 원님에게 올린 것이다. 지난 번에 소지를 올린 사실을 언급하출처 : 유교넷 -
243357
김휘경(金輝京) 등이 자신의 산에 침범하여 벌목하는 일에 대해 관(官)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휘경·김낙규·김낙후 등억울한 사정이나 하소연 할 사안을 올린 소지(所志)인데, 이 문건은 영천의 김휘경(金輝京 : 1806∼1874), 김낙규(金樂奎 : 1805∼1855), 김낙후(金樂後)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이다. 정가가 남의 산을 침범하여 자신의 산이라고 우기며 자신들의출처 : 유교넷 -
243358
김정현(金正鉉) 등이 투장(偸葬)에 대해 순흥성주(順興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정현 등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김정현(金正鉉 : 1849∼1882) 등이 순흥(順興) 성주(城主)에게 억울함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인데, 자신들이 대대로 지켜 온 영천의 수식면(水息面) 당동(唐洞)에 있는 조상 대대로 물려 받은 땅에 경오년에 불한당이 자기출처 : 유교넷 -
243359
김정현(金正鉉) 등이 투장(偸葬)에 대해 순흥성주(順興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정현 등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김정현(金正鉉 : 1849∼1882) 등이 순흥(順興) 성주(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인데, 자신들이 대대로 지켜 온 영천의 수식면(水息面) 당동(唐洞)에 있는 조상 대대로 물려 받은 땅에 불한당이 자기 아출처 : 유교넷 -
243360
김휘경(金輝京) 등이 선조인 서윤공(庶尹公)의 무덤이 있는 것에 투장(偸葬)한 일에 대해 관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휘경·김낙의·김대규김휘경(金輝京 : 1806∼1874), 김락의(金樂義), 김대규(金大奎 : 1876∼1929) 등이 순흥(順興) 성주(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인데, 자신들의 선조인 서윤공(庶尹公)의 무덤이 순흥의 감천면 방길산에 있는데, 불한당이 밤을 틈타서 몰출처 : 유교넷 -
243361
김한련(金漢鍊) 등이 선조 대대로 물려받은 산에 투장(偸葬)한 일에 대해 관(官)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한련·강련·여련 등김한련(金漢鍊 : 1734∼1784), 김강련(金江鍊 : 1738∼1807), 김여련(金汝鍊 : 1747∼1808) 등이 성주(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인데, 자신들의 선조 대대로 물려 받은 산에 같은 고을에 사는 김채문이란 자가 아내의 무덤을 몰출처 : 유교넷 -
243362
투장(偸葬)에 대해 관(官)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훼손된 문건으로 자신의 친척 산소 근처에 불한당이 몰래 산소를 만들어 민폐를 끼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억울함을 조속히 해결해 달라고 요구한 소지(所志)이다. 말미에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성주의 판결문과 관인이 날인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243363
김현규(金顯奎 : 1845∼1915)가 예안성주(禮安城主)에게 지난 해 12월 달에 자신의 선조 무덤 주변에 몰래 무덤을 만든 불한당을 처분해 달라고 올린 사안이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점을 들어 이번에는 이 사건을 마무리되게 해달라고 부탁하며 간청한 소지(所志)이다출처 : 유교넷 -
243364
무자년(1948) 11월 김상규(金象奎)가 선조 무덤 근처의 투장(偸葬)에 대해 예안성주(禮安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상규김상규(金象奎 : 1893∼1966)가 무자년(1948) 11월에 예안성주(禮安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면서 조속히 해결해 달라고 요청한 소지(所志)이며 소지는 백성들이 원님에게 문서로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는 문건이다. 김상규의 선조 무덤 10여 보 근처에출처 : 유교넷 -
243365
무오년 9월 김사련(金泗鍊)이 선조 무덤 근처의 투장(偸葬)에 대해 안동성주(安東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사련 등김사련(金泗鍊) 등이 무오년 9월에 성주(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면서 조속히 해결해 달라고 요청한 소지(所志)이며 소지는 백성들이 원님에게 문서로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는 문건이다. 김사련의 선조 무덤 근처에 불한당이 몰래 무덤을 만든 것에 대해 억울함을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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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 10월 선조 무덤 근처의 투장(偸葬)에 대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무오년 10월에 성주(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면서 조속히 해결해 달라고 요청한 소지(所志)이며 소지는 백성들이 원님에게 문서로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는 문건이다. 이 문건의 주인공은 선조 무덤 근처에 뜻하지 않게 불한당이 몰래 무덤을 만든 것에 대해 억울함을출처 : 유교넷 -
243367
무오년(1798) 11월 김강련(金江鍊) 등이 선조 무덤 근처의 투장(偸葬)에 대해 관(官)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강련·김여련·김사련김강련(金江鍊 : 1738∼1807), 김여련(金汝鍊 : 1747∼1808), 김사련(金泗鍊)이 무오년(1798) 11월에 성주(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면서 조속히 해결해 달라고 요청한 소지(所志)이며 소지는 백성들이 원님에게 문서로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는출처 : 유교넷 -
243368
갑인년 2월 산송(山訟)에 관해 관(官)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갑인년 2월에 작성한 것으로 산에 관한 소송을 다룬 문건이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산을 같은 고을에 사는 정가와 박가란 놈이 행패를 부려 주인 행세를 하는 억울한 일을 당하여 성주(城主)에게 그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면서 조속히 해결해 달라고 요청한 소지(所志)이며출처 : 유교넷 -
243369
계사년(1893) 12월 김병현(金秉鉉) 등이 투장(偸葬) 건에 대해 이장의 조치가 내려졌으나 이행하지 않아 예안성주(禮安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병현·김석현 등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김병현(金秉鉉 : 1874∼1914)과 김석현(金奭鉉 : 1868∼1945) 등이 계사년(1893) 12월에 예안성주(禮安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이다. 자신들의 5대조 산소가 예안 고을의 봉수산 아래에 있출처 : 유교넷 -
243370
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김목규(金穆奎)와 김석현(金奭鉉 : 1868∼1945) 등이 갑오년(1894) 2월에 예안성주(禮安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이다. 자신들의 5대조 산소가 예안 고을의 봉수산 아래에 있는데, 근처에 몰래 무덤출처 : 유교넷 -
243371
계사년(1893) 11월 김진현(金晉鉉) 등이 투장(偸葬) 건에 대해 이장의 조치가 내려졌으나 이행하지 않아 예안성주(禮安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병현·김진현 등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유학(幼學 : 벼슬하지 않은 남자의 칭호) 김병현(金秉鉉 : 1874∼1914)과 김진현(金晉鉉) 등이 계사년(1893) 11월에 예안성주(禮安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이다. 자신들의 5대조 산소가 예안 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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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1876) 3월 김석규(金碩奎)가 선조 무덤 근처의 투장(偸葬) 건에 대해 예안성주(禮安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석규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김석규(金碩奎 : 1826∼1883)가 병자년(1876) 3월에 성주(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이다. 자신들의 조상 산소 근처에 몰래 무덤을 만들고 종적을 감춘 불한당의 소행에 대해서 관청에서 그 무덤을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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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유학(幼學 : 벼슬하지 않은 남자의 칭호) 김정현(金正鉉 : 1849∼1882)이 을해년(1875) 9월 23일에 예안성주(禮安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이다. 자신들의 5대조 산소가 예안 고을의 봉수산 아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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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유학(幼學 : 벼슬하지 않은 남자의 칭호) 김현규(金顯奎 : 1845∼1915)가 정해년(1887) 7월에 예안성주(禮安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이다. 자신들의 5대조 산소가 예안 고을의 봉수산 아래에 있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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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김현규(金縣奎)가 을해년 9월에 예안성주(禮安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이다. 자신들의 고조부 산소가 예안 고을의 봉수산 아래에 있는데 근처에 몰래 무덤을 만든 사건이 발생하여 관청에 신고하여 이장의 조치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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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金慶熙)가 예안 고을의 경작지 소송건에 대해 예안(禮安) 관(官)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석규병자년 7월 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김석규(金碩奎)가 예안성주(禮安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이다. 자신들의 조상 산소가 예안 고을의 봉수산 아래에 있는데 근처에 몰래 무덤을 만든 사건이 발생하여 관청에 신고하여 이장의 조치가 내려출처 : 유교넷 -
243377
을해년 6월 김규채(金奎采)가 재산 소유권에 대해 관(官)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규채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김규채(金奎采)가 을해년 6월에 예안성주(禮安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이다. 자신은 지난 해 12월에 영천 고을의 금가의 땅을 사들였는데 이듬해에 이들이 다시 그 이웃 사람에게 그 땅을 팔아 버려 재산 소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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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 11월 김규채(金奎采)가 소작자가 세금을 내지 않은 건에 대해 관(官)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규채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김규채(金奎采)가 을유년 11월에 성주(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이다. 자신이 소유한 땅을 경작하는 자가 봄 농사를 짓고 난 이후 세금을 내지 않아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분명하게 밝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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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1888) 10월 김휘봉(金輝鳳) 등이 재산권 행사에 관해 관(官)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휘봉·휘기·정규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유학(幼學 : 벼슬하지 않은 남자의 칭호) 김휘봉(金輝鳳), 김휘기(金輝夔 : 1812∼1895), 김정규(金鼎奎 : 1838∼1891)이 무자년(1888) 10월에 순상(巡相)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이다. 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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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1888) 5월 김휘기(金輝夔) 등이 재산권 행사에 관해 관(官)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휘기·김휘태·김한규 등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유학(幼學 : 벼슬하지 않은 남자의 칭호) 김휘기(金輝夔 : 1812∼1895), 김휘태(金輝兌 : 1817∼1889), 김한규(金翰奎) 등이 무자년(1888) 5월에 순흥성주(順興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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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1888) 5월 김휘기(金輝夔) 등이 재산권 행사에 관해 관(官)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휘기 등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유학(幼學 : 벼슬하지 않은 남자의 칭호) 김휘기(金輝夔 : 1812∼1895), 김휘태(金輝兌 : 1817∼1889), 김한규(金翰奎) 등이 무자년(1888) 5월에 순흥성주(順興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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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1887) 9월 김휘기(金輝夔) 등이 재산권 행사에 관해 관(官)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휘기·세규 등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유학(幼學 : 벼슬하지 않은 남자의 칭호) 김휘기(金輝夔 : 1812∼1895), 김세규(金世奎) 등이 정해년(1887) 9월에 순흥성주(順興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이다. 김휘기를 비롯한 이들의 선대 10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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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1887) 10월 김휘기(金輝夔) 등이 재산권 행사에 관해 관(官)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휘태·김휘기 등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유학(幼學 : 벼슬하지 않은 남자의 칭호) 김휘기(金輝夔 : 1812∼1895), 김휘태(金輝兌 : 1817∼1889) 등이 정해년(1887) 10월에 순흥성주(順興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이다. 김휘기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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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1875) 11월 김휘기(金輝夔) 등이 재산권 행사에 관해 관(官)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휘기·김휘구·김정규 등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유학(幼學 : 벼슬하지 않은 남자의 칭호) 김휘기(金輝夔 : 1812∼1895), 김휘구(金輝九), 김정규(金鼎奎 : 1838∼1891) 등이 을해년(1875) 11월에 순흥성주(順興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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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1885) 5월 김휘기(金輝夔) 등이 재산권 행사에 관해 관(官)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휘기·김정규·김용규 등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유학(幼學 : 벼슬하지 않은 남자의 칭호) 김휘기(金輝夔 : 1812∼1895), 김휘구(金輝九), 김정규(金鼎奎 : 1838∼1891) 등이 을유년(1885) 5월에 순흥성주(順興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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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1739) 10월 김방(金埅)이 무덤의 이장 조치를 이행하지 않아 순흥성주(順興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방 등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김방(金埅 : 1706∼1779) 등이 기미년(1739) 10월에 순흥성주(順興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이다. 김방을 비롯한 이들과 민진산(閔鎭山)의 소송건에 대해 원님의 척결 명령을 내려 준 점에 대해 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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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1739) 10월 김방(金埅)이 여씨 성을 가진 자의 투장(偸葬)에 대해 순흥성주(順興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방 등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김방(金埅 : 1706∼1779) 등이 기미년(1739) 10월에 순흥성주(順興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이다. 김방을 비롯한 이들의 고조모(高祖母) 묘소가 순흥의 수식면(水息面) 당동(唐洞)에 있는데,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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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규(金碩奎)가 고조부 묘소 근처의 투장(偸葬)에 대해 예안성주(禮安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석규영천(榮川 : 지금의 경북 영주) 주민인 김석규(金碩奎 : 1826∼1883)가 예안성주(禮安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이다. 김석규는 예안의 봉수산 아래 자신의 고조부 묘소가 있는데 그 근처에 사는 불한당이 몰래 무덤을 만들어 많은 피해를 받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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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련(金漢鍊)이 선조 대대로 물려받은 산에 투장(偸葬) 건에 대해 관(官)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김한련(金漢鍊 : 1734∼1784)이 성주(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 소지(所志)인데, 자신들의 선조 대대로 물려 받은 산에 같은 고을에 사는 불한당이 아내의 무덤을 몰래 만든 것에 대해 원통함을 호소하였다. 이러한 불의에 대해 빠른 시일 안에 해결해 달라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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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康熙) 16년(1677) 6월 김만주(金萬柱)에게 승의랑(承議郞)의 벼슬을 내린다는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강희(康熙) 16년(1677) 6월에 선교랑(宣敎郞) 김만주(金萬柱 : 1653∼1710)에게 승의랑(承議郞)의 벼슬을 내린다는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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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康熙) 16년(1677) 6월 김만주(金萬柱)에게 선교랑(宣敎郞)의 벼슬을 내린다는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강희(康熙) 16년(1677) 6월 8일에 무공랑(務功郞) 김만주(金萬柱 : 1653∼1710)에게 선교랑(宣敎郞)의 벼슬을 내린다는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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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康熙) 16년(1677) 6월 김만주(金萬柱)에게 통사랑(通仕郞)의 벼슬을 내린다는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강희(康熙) 16년(1677) 6월 3일에 종사랑(從仕郞) 김만주(金萬柱 : 1653∼1710)에게 통사랑(通仕郞)의 벼슬을 내린다는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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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康熙) 16년(1677) 6월 김만주(金萬柱)에게 무공랑(務功郞)의 벼슬을 내린다는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강희(康熙) 16년(1677) 6월 5일에 통사랑(通仕郞) 김만주(金萬柱 : 1653∼1710)에게 무공랑(務功郞)의 벼슬을 내린다는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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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康熙) 16년(1677) 6월 김만주(金萬柱)에게 봉직랑(奉直郞)의 벼슬을 내린다는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강희(康熙) 16년(1677) 6월 15일에 승의랑(承議郞) 김만주(金萬柱 : 1653∼1710)에게 봉직랑(奉直郞)의 벼슬을 내린다는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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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康熙) 16년(1677) 6월 김만주(金萬柱)에게 통덕랑(通德郞)의 벼슬을 내린다는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강희(康熙) 16년(1677) 6월에 봉직랑(奉直郞) 김만주(金萬柱 : 1653∼1710)에게 통덕랑(通德郞)의 벼슬을 내린다는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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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력(萬曆) 15년(1587) 11월 김우익(金友益)의 품계를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올려 주면서 발급한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만력(萬曆) 15년(1587) 11월에 김우익(金友益)의 품계를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올려 주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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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력(萬曆) 43년(1615) 1월 20일에 이조(吏曹)에서 선무랑행성균관학정(宣務郞行成均館學正)으로 있던 김우익(金友益)의 품계를 선교랑행성균관학정(宣敎郞行成均館學正)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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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吏曹)에서 천계(天啓) 2년(1622) 3월 12일에 김우익(金友益)의 품계를 통훈대부행병조좌랑(通訓大夫行兵曺佐郞)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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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吏曹)에서 숭덕(崇德) 3년(1638) 6월 22일에 김우익(金友益)의 품계를 통훈대부행한성부서윤(通訓大夫行漢城府庶尹)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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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吏曹)에서 강희(康熙) 32년(1693) 6월 24일에 김만주(金萬柱 : 1653∼1710)의 품계를 00대부행병조좌랑(00大夫行兵曺佐郞)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