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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43501

    與族弟廣初(中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족제 李中業에게 보낸 편지이다. 認篇은 틈틈이 읽어 이제 막 읽기를 끝냈다고 하면서, 문장의 궤범이 실로 쉽지 않는 경지이고 말하는 것도 평소 나에게 권하던 내용이라고 하였다. 교감도 극히 정밀하여 감복하였다고 하고, 다만 몇 군데 표시한 것은 내용에 손을 대려고 하
    출처 : 유교넷
  • 243502

    與族兄士極(寅和)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족형 李寅和에게 보낸 편지이다. 수십 일 안에 친가 외가 합쳐 3번의 초상을 당했다고 하고 그저 조심하고 있다고 했다. 堂韻은 지어 보내니 한번 보라고 하고, 記文은 金範初가 근자에 문장이 괜찮은 편인데 다시 저자에게 구할 것이 무엇인가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03

    與族弟士準(和聖)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족제 李和聖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식이 회갑을 맞은 까닭에 주위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고 하였다. 朴世基가 그간 하지 못했던 간행 사업을 주관하고 있는데 편차하고 책을 묶는 일이 모두 그의 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였다. 또 책의 끝에 들어가는 글을 지은 것은 큰
    출처 : 유교넷
  • 243504

    答族姪左兼(弼鎬)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족질 李弼鎬에게 답한 편지이다. 東巖선조에게 제사를 모시는 일은 대강 들었는데 추향하는 것으로 거의 확정되었다고 하니, 신중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며 감히 자기 의견을 내세워서는 안 될 것이라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05

    與族弟美卿(中爀)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족제 李中爀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침랑이 며칠 묵고 갔다고 하면서, 그 사람됨이 간소하고 장중하여 부품하거나 교만한 구석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가 글을 부탁하였는데 인척 관계가 있어 거절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06

    與族弟元甫(善和)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족제 李善和에게 보낸 편지이다. 동생의 글을 읽고 탄복하였다고 하고 그것은 가정의 훈도 덕분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저자는 병이 더하여 꼴이 말이 아닌데, 조카아이가 또 비참한 꼴을 당했다고 하는데 알고 있는지 물었다
    출처 : 유교넷
  • 243507

    答族姪聖天(象鎬)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족질 李象鎬에게 답한 편지이다. 선조의 문집을 어떻게 새로 간행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반질하여 주어 고맙고, 권마다 읽어가며 옛사람의 사상을 해석하니 탄복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08

    答族姪世卿(炳國)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족질 李炳國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를 보니 전에는 애매하던 것도 이제 명확하게 되었음을 알겠다고 하고, 저자가 병이 들수록 후진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09

    與族姪仲弘(炳轍)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족질 李炳轍에게 보낸 편지이다. 水山集의 발문은 사양할 수 없어 써서 주었는데 잘못된 점이 많을 것이라 하고, 근자 國望峰志 1책을 묶어 저자에게 발문을 부탁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10

    答族孫應文(在敎)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족손 李在敎에게 답한 편지이다. 아침에는 주자서를 읽고 저녁에는 퇴계서를 읽으면서 한 가지로 연결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이재교의 호소에 대해, 족손뿐만 아니라 옛 선현들도 모두 그러하였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243511

    答族姪允顯(世鎬)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족질 世鎬에게 답한 편지이다. 족질의 입지가 굳음과 학문이 많이 나아갔음을 알겠다고 하였다. 선조가 남긴 서적을 읽고 집안의 명예를 지키는 일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하며 함께 노력하자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243512

    答龍鎬麒鎬兩姪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龍鎬·麒鎬 두 조카에게 답한 편지이다. 따로 나가 공부하고 있는 조카들에게 식구들과 떨어져 적적하겠지만 형제끼리 의지하고, 음식이 거칠더라도 따뜻한 방과 아름다운 소나무로 위안을 삼으라 하였다. 질의에 대한 답을 써 보내면서 질문도 좋지만 스스로 공부도 중요하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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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13

    答曾鎬姪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조카 曾鎬에게 답한 편지이다. 공부 성과를 칭찬하였다. 雲石·櫟庵 두 사람의 문집을 책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읽으면 작자의 법도를 알게 될 것이고 얻는 것도 많으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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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14

    寄兒悳鎬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장남 悳鎬에게 쓴 편지이다. 15세 된 아들이 처가에 가게 되었는데 처음으로 집밖에서 생활하게 되어 행동거지를 조심하라고 당부한 내용이다. 이제 너를 어린 아이라고 하지도 않고 몽매한 사람으로 생각하지도 않을 것인데, 만약 실수라도 하면 영원히 천한 사람으로 여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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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15

    玉圈子說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저자의 집안에는 고조부, 증조부, 조부를 거쳐 백부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쳐 전해져 오는 매화 모양의 옥권자가 있는데, 그것으로 문호의 번영과 임금의 은혜를 알 수 있다 하였다. 「정재선생문집」에 「옥권자설」이 있어서 선배들의 인품과 덕망을 서술하여 후배들로 하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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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16

    忌題祔祭單合設無異辨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제사를 지냄에 있어 진설하는 예법에 관한 논변이다. 忌題와 祔祭에는 원래 의절에 있어 차이가 없는데, 어떤 사람은 기제에는 단설하고 부제에는 합설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주자와 퇴계의 예설을 근거로 논변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17

    酬姜彝晦(秉熙)求言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姜秉熙가 자문을 구하므로 이에 답변한 글이다. 西山선생이 이미 誠자로써 강병희의 당호로 삼았으니, 誠이란 진실무망을 이른다고 하면서 오직 몸을 정성스럽게 하여 스승의 무거운 기대를 저버리지 말 것을 주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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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18

    書示兒姪及諸孫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자식과 조카 그리고 손자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사람의 도리, 사람과 금수가 다른 점, 부모를 섬기는 도리, 제사를 모시는 도리, 자식 교육 등 일상적 도리에 관하여 간략하게 설명하여 생활 지침으로 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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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19

    呈巡營狀(代陶山儒林作)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홍수가 나서 퇴계의 산소와 인근 민가가 손상을 입자 안찰사에게 보수를 위한 지원을 탄원한 글로써, 도산서원의 유림을 대표하여 지은 글이다. 과거에 雲石 趙상공이 안찰사로 있을 때도 수해 보수를 지원했던 사례를 들어서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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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20

    追慕錄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저자의 조부 潢皐공 彙廷의 추모록에 대한 서문이다. 저자의 동생들과 조카들이 경비를 갹출하여 재원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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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21

    月瀾亭同遊錄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月瀾亭에서 모임을 갖고 시를 지어 遊錄을 만들었는데 이에 대한 서문이다. 金선생의 후예들이 백리 밖에 살므로 만나기 어렵고 서로가 늙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겠기에 더욱 반가웠다고 한다. 1871년 신미년에 모이고 31년 만에 다시 회합을 가졌는데 모인 사람은 5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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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22

    伯兄兼山翁周甲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1901년 12월 8일 저자의 백씨인 兼山翁이 회갑을 맞이하여 쓴 서문이다. 이 때 저자의 부친은 나이가 81세였으나 기력이 여전하고 총기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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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23

    洛厓先生權公實紀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權洛厓의 實紀에 대한 서문이다. 洛厓선생은 정유재란 당시 창의했던 인물이다. 충효가 독실하여 광해군 때에는 두문불출하였고, 인조 때에는 과거에 나아가지 않았으나 남한산성의 소식을 듣고는 사재를 풀어서 창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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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24

    重陽契帖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함안군 防丈山에서 重陽契를 맺고 서문을 지었다. 重陽이란 표현은 생육신 가운데 한 사람인 漁溪 趙先生의 칠언율시에서 따온 표현으로 그의 충절을 기린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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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25

    淸庵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伯夷山 아래에 사는 趙淸庵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조청암은 박학한데다 격물치지의 공부를 더하였고, 독실한 행실로 칭송이 있는 위에다 충효를 더하였으니, 실로 우리 유가에서 드물게 보는 사람이라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26

    陽玉契案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景玉선생은 저자의 15대조에서 분파된 선배로 그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西坡 柳必永의 발의로 계를 만들고 서문을 지었다. 景玉을 陽玉으로 바꾼 것은 이 고을의 자연을 잘 아는 사람이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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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27

    養眞堂曺公實紀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養眞堂 曺公의 實紀에 대한 서문이다. 양진당은 무신년에 흉도들이 난리를 일으켰을 때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선비의 도리를 지켰다. 저자는 그간의 자세한 사정이 양진당 조공이 지은 戊申日記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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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28

    晩覺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晩覺公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晩覺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경사자집에 두루 통하였으나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초야에 묻혀 심성수양에 힘썼다. 특히 관상과 점에 능하였다. 공의 증손인 祉澤이 선조의 글을 모아 1책을 이루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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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29

    五休堂安公文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선조 때 인물인 安五休堂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재종숙인 玉川공에게 배웠고 한강 정구와 여헌 장현광의 문하에도 출입하였다. 임란이 발발하자 군무에 협찬한 바 있어 전후에 누차 조정에서 불렀으나 오휴정을 星巒 아래에 짓고 사서와 심경을 공부하였다. 15대손 厦鎭의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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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30

    養眞庵契案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저자의 증조부가 세운 養眞庵의 옛터에서 후손들이 모여 계를 맺고 서문을 썼다. 양진암은 東巖 옆에 터만 남아 있는데, 그것이 세워진 것은 명종 병오년(1546)이었다. 을사년(1905)에 계를 만들자는 의론이 있어 고을의 원로들과 외지에 나가 있는 약간명이 계를 맺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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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31

    敬庵先生金公實紀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광해군 때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묻혔던 金敬庵의 실기에 대한 서문이다. 저자는 경암선생이 智仁勇 삼 달덕을 갖추었다고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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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32

    南平文氏族譜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南平 文氏의 족보가 저자가 살던 당시까지 5개 파보로서 존재해 왔는데, 이때 대동보를 만들기로 하고 저자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숙종 신해보와 고종 경오보 등 여러 족보가 다 소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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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33

    南岡遺稿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裵南岡의 遺稿에 대한 서문이다. 남강은 박학하고 신실하며 특히 기개가 남달랐다고 하며, 총명하여 10세 이전에 이미 賦를 지어 사람을 놀라게 했다 한다. 남강의 아들인 祥奎가 선고를 수습하여 저자에게 서문을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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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34

    求友堂金公實紀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고려말 선비인 求友堂 金柱의 실기에 대한 서문이다. 여말에 국운이 다한 것을 예감하고 山陰에 求友亭을 짓고 세월을 보냈다. 후손 應周가 시문을 약간 모으고 후대에 지은 狀碣 몇 건을 합쳐서 실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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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35

    屛湖世稿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屛湖世稿는 肅齋·屛窩·湖隱 3대의 세고이다. 赤羅(군위)의 남쪽에 사는 柳善溫이 후손으로서 세 사람의 유문을 합쳐 세고를 만들고 저자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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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36

    朴武一金剛錄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朴麟祚·洪載翊·洪轍佑가 금강산을 유람하고 나서 行錄 1통을 썼는데, 여기에 서문을 쓴 것이다. 행록에는 출발하는 날부터 지나간 곳을 72조목의 글을 남겼으며 오언율시와 칠언율시가 또한 30여 수 이상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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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37

    海隱張公實紀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정조·순조 때 영남지방 영일현에 海隱 張仁酆의 실기에 대한 서문이다. 장인풍은 지극한 효성으로 갖가지 일화를 남겼으며, 후에 고종은 정려비를 세워 효성을 기리라는 명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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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38

    丹邱遺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黃丹邱은 재기가 준정하고 의론이 출중하여 주자문하의 陳同甫에 못지않았다. 황공은 향시에는 연이어 합격하였으나 회시에 실패하여 늘 스스로 죄인으로 자처하였다. 나이 81세에 사마시에 합격하니 조정에서 東部郞에 제수하였다. 당시 權荷塘·蒼雪·晴沙 제공은 사실을 기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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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39

    愚溪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崔愚溪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최공은 이미 2백여 년 전의 인물이다. 그의 후손 奎煥이 유문을 갖고 와서 서문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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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40

    質庵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崔質庵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공은 정조 때의 인물로서 소과와 대과에 연이어 합격하여 이름을 크게 떨쳤으나 물러나기를 구하여 독서에 힘썼다. 공의 종현손 鉉埰가 와서 서문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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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41

    谿樓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李谿樓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저술에 朱節箚錄, 道統圖說 등이 있었으나 모두 흩어지고 시문과 잡저 약간 편이 남았을 뿐이다. 嗣孫 鳳鎬가 서문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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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42

    槐窩逸稿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槐窩처사 權德明의 일고에 대한 서문이다. 권덕명은 한 때 과거시험으로 문명을 떨쳤으나 후에는 산림에 묻힌 처사로서 이름이 났다. 아들인 寧河가 유문을 간행코자 서문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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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43

    一愚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張一愚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스스로는 무능한 사람으로 자처하였으나 남들은 그를 유능한 사람으로 알았다. 백가의 학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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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44

    洛北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李洛北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李敬庵·李古溪·柳溪堂·柳竹林 등이 모두 그와 함께 도의를 강마하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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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45

    豊山柳氏三綱錄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豊山 柳氏 宗介의 忠·孝·烈을 기록하고 그 서문을 썼다. 유종개의 행적은 晩湖公이 쓴 글과 葛峰·丹邱 두 분이 쓴 만시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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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46

    復初堂遺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金復初堂의 유집에 대한 서문이다. 김공은 예안에 살던 명문가의 후손인데,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물러나 독서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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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47

    朴烈婦鵝洲申氏實紀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朴烈의 며느리 鵝洲 申氏의 실기에 대한 서문이다. 효성과 열녀로서 이름이 났다. 후손 魯允이 狀·碣·傳·頌 등 몇 가지 문자를 모아서 실기를 엮고 저자에게 서문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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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48

    遯叟朴公實紀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朴遯叟의 실기에 대한 서문이다. 遯叟公은 龍巖선생의 현손이다. 一善에 사는 선비 朴明鎬가 숙부의 편지를 갖고 찾아와서 서문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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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49

    小溪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朴小溪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소계공은 문예와 실천을 겸비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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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50

    品山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權品山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품산공은 德과 言을 겸비한 선비라고 하였다. 문헌의 집안에서 태어나 예를 갖춘 마을에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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