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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43551

    丹山世蹟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丹山 權氏의 「丹山世稿」에 대한 서문이다. 丹山 權氏는 남도의 큰 문벌로서 安分堂선생에서 시작되었으며, 丹山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 考亭 朱氏의 紫陽印章 고사에서 취한 것이다. 그 집안의 相直이 서문을 청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52

    芝塢文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芝塢 安璜遠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본관은 廣州이고 孝誠과 好學으로 이름이 높았다. 李定軒·許性齋의 문하에 종유하였다. 서적을 모으는데 많은 투자를 하였는데, 동방의 현인들의 문집을 수 천 권이나 모아 摹宬이라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53

    五汕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五汕 李鼎和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이정화는 아버지는 左海, 할아버지는 愼巖이니 가정교육이 보통 선비와 달랐다. 손자가 되는 李台爀이 유문 2책을 갖고 와서 서문을 청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54

    臨湖書堂契案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李乖庵의 후손들의 계안에 대한 서문이다. 이괴암은 河陽 출신으로 천품이 영민하고 행동거지가 준정하였으며 나이 17세에 이미 의병에 참여하였고 40세에 성균관에 유학하였다. 인근 사림들이 그를 배향하기 위해 臨湖祠를 세웠다. 괴암의 후손들이 하양에 있는 臨湖書堂에서 계
    출처 : 유교넷
  • 243555

    沙月亭契案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忠烈 姜公이 수양하고 독서하던 정자인 沙月亭에서 선비들이 계안을 작성하고 저자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충렬공은 전란이 터졌을 때 몸바쳐 싸움으로 인하여 열성조에서 시호를 내렸고, 홍약천·이성호 등이 그의 충절을 글로써 기렸다
    출처 : 유교넷
  • 243556

    曉山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저자가 독서 수양하던 曉山亭에 대한 기문이다. 효산정이란 이름은 옛사람의 “山月曉仍在”라는 시에서 취하였다고 한다
    출처 : 유교넷
  • 243557

    德遠齋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退休堂선생 朴公이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던 곳이다. 宜春의 修誠洞에 있는데, 德遠이라고 齋名을 붙인 것은 박공의 효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243558

    遯庵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遯庵은 소백산 아래 沙川村에 있는 집으로 遯庵선생이 명명하고 자호로 삼았다. 황폐화된 지 60여년이 되어 이곳에 세거하는 후손들이 개축하여 堂 1칸, 房 2칸을 덧붙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59

    羅湖精舍重建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羅湖精舍은 본래 羅山과 屛水 중간에 있었다. 친구인 崔駿鎬의 선조로서 司成벼슬을 지낸 이가 당파싸움을 피하여 낙향하여 지은 정사이다. 세월이 지나 폐허가 된지 3백여 년이 지난 후 후손들이 세거하는 곳에 다시 지은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243560

    敬慕齋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敬慕齋은 咸安 趙氏가 제사를 모시는 곳으로 살아계시는 것처럼 공경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方丈山의 신령함이 있어 대대로 현손이 끊이지 않았으니, 漁溪·南溪선생 등이 그들이다
    출처 : 유교넷
  • 243561

    武山書堂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武山書堂은 신재 주세붕의 후손과 유림들이 세운 서당이다. 주세붕의 德淵書院이 훼철된 후 섭섭함을 갖고 있던 후손과 유림들이 무산서당을 세우고 가묘에 봉안되어 있던 주세붕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62

    五思齋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五思齋는 司空씨 집안에서 정조 때의 선조인 梅園公을 기리기 위하여 그 무덤 아래 지은 재실이다. 매원공은 효성으로 천거되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수양에 힘썼는데, 그의 무덤은 老梅村 뒤에 있다
    출처 : 유교넷
  • 243563

    景賢堂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景賢堂記는 西川선생 洪公이 그 산수를 좋아하여 수간의 모옥을 짓고 독서하던 곳이다. 赤羅에서 서쪽으로 10리쯤 鳳凰洞에 있다
    출처 : 유교넷
  • 243564

    龜南齋重修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龜南齋는 태종조에 松窩 李선생이 河陰伯으로 온 후 손자인 龜山君이 산 아래에 복거한 이래 그 후손들이 선조를 기리기 위하여 지은 재실이다. 龜山과 龍山이 만나는 곳에 있다
    출처 : 유교넷
  • 243565

    望岵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望岵亭은 赤羅 남쪽으로 20리경 不老村에 있는 정자로서 幸州 殷氏 成馹이 지었다. 조부인 찰방공이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여 독서 수양하던 곳이다
    출처 : 유교넷
  • 243566

    東湖觀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東湖觀은 興州군에서 십리쯤에 梧峴에 있다. 옛날 국자감 생원 徐在正이 재실을 짓고 東湖觀이라 편액하였다. 그 이름은 주자의 시에서 따왔다
    출처 : 유교넷
  • 243567

    枕泉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枕泉亭은 崔竹軒이 세거하던 곳에 후손들이 지은 정자이다. 周房과 玉溪는 남도의 명승으로 최죽헌이 정자를 지으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그 후손들이 陟彼齋와 水月軒을 짓고 합쳐서 枕泉亭이라 편액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68

    感慕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感慕亭은 선조 때에 虛齋 孫公과 處士 辛公이 정치적 박해를 피하여 몸을 숨긴 곳에 양가의 후손들이 지은 정자이다. 장소는 낙동강 동쪽의 渭江 중간에 있는 望巖이다. 3백여 년이 지난 지금 유적은 황폐해지고 흔적이 없게 되자 이에 정자를 세운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243569

    天山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天山亭은 靑福의 경계에 있는 정자이다. 그 땅에 은거하며 수양하던 본래 주인은 정자를 짓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 후손 圭漢이 유업을 계승하여 정자를 이루고 저자에게 기문을 청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70

    追遠齋重建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追遠齋는 羅湖에 있는 재실로 謙齋 朴公을 추념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부친 柳村선생이 임란 때 창의했을 때는 가정을 수호하였고, 금나라 오랑캐가 침략했을 때는 직접 의병을 일으켰으며 이후에 벼슬을 마다하고 梧峰선생을 사사하여 도학에 전념하였다. 후손들이 재실을 짓고
    출처 : 유교넷
  • 243571

    伴鶴堂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伴鶴堂은 태백산이 서쪽으로 뻗은 곳에 있는 月峰에 西峴선생 金公이 지은 정자이다. 김공은 임란 때 임금을 호종한 공로로 누차 지방관을 역임하였는데, 도성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산수가 아름다운 이 곳에 집을 짓고 은거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72

    杜村先生李公德山書杜尙忠祠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杜村先生 李公을 德山書杜 尙忠祠에 모시고 지은 기문이다. 이공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백면서생으로 집안의 노복을 비롯하여 25인을 이끌고 울산으로 가서 西生浦 義陣에 참여하였다가 전사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73

    孤山書堂重建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孤山書堂은 퇴계선생을 제향하는 서당으로 慶山에 소재하고 있다. 당 이름을 孤山이라 하고 문 이름을 求道라 한 것이 모두 퇴계의 명에 의한 것이다. 임란 때 소실된 후 鄭燮成이 중건을 창의하여 숙종 16년(1690)에 완공되었고 鄭愚伏 文莊公을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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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74

    屛巖亭移建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屛巖亭은 저자의 선조 屛巖公이 가학을 닦던 곳으로 西翠屛에 있는 屛巖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병암공의 죽음과 함께 황폐화되었다. 1927년에 중건을 논의하였는데 본래 있던 곳이 험하고 협소하여 종손이 살고 있던 곳이 좋겠다고 하여 이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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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75

    高麗平海郡事孝子文公旌閣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南平 文氏 載道의 정려각으로 평해군에 있었다. 문재도는 여말의 인물로서 그의 집안은 고려조에 누대에 걸쳐 벼슬을 하였으나 후대에 와서 거의 묻힐 뻔 하였던 것을 비석과 현판을 들판에서 찾아내어 1718년에 비각을 세우고 저자에게 기문을 청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76

    澗翠堂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澗翠堂은 침랑 鄭英壎이 그 조부를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사당이 있는 곳은 산수가 뛰어나고 어진 선비가 가끔 태어난 곳이라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77

    鹿洞書院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鹿洞書院은 始興群 松鹿洞에 위치한 서원으로 1930년에 완공되었다. 소수서원은 대원군 때 훼철을 면했으나 지방에 위치하여 배우는 사람이 찾기에 불편하다 하여, 安珦의 후손인 安敎煥이 녹동서원을 세우고 저자에게 기문을 청하였다. 송록동과 녹동서원의 이름이 겹친 것은 우
    출처 : 유교넷
  • 243578

    定省齋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定省齋에 대한 기문이다. 정성재는 定省齋 琴公을 제향하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금공은 강론을 통하여 수많은 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뛰어난 언행으로 스승으로부터 직접 재호를 받았다. 사문록과 읍지에 기록되었고, 후손들은 그를 추모하여 재실을 짓고 저자에게 기문을 청
    출처 : 유교넷
  • 243579

    岐隱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岐隱亭은 岐隱處士 張公을 기리어 지은 정자이다. 장공은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은거하였다. 정자를 지어 노년을 보낼 생각도 했으나 남에게 현시하는 것으로 비칠까 보여 포기하였다. 그가 죽은 후 후손 師國이 정자를 지었다
    출처 : 유교넷
  • 243580

    虎溪精舍重建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虎溪精舍는 李虎溪가 학문을 익히고 강론하던 곳으로 옥산서원에서 10여리 떨어진 虎鳴村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자리가 오래 동안 황폐화되어 있어 1932년 봄에 중건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81

    棣樂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棣樂亭은 榮德 葛山洞에 있었다. 갈산동은 冶城 宋氏들이 세거하던 곳으로 奎煥·台煥 형제가 함께 공부하였는데 우애가 그지없었다. 규환이 세상을 떠나자 태환은 체락정을 짓고 형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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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82

    病栢堂重建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病栢堂은 水酉에서 북쪽으로 10여리 되는 金谷洞에 있으며, 病栢堂 朴公이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공은 일찍이 퇴계문하에 들었고 나중에 월천의 문하에 종유하였다. 박공이 죽은지 3백여 년 만에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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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83

    臥龍齋重建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柳氏 문중 재사인 臥龍齋 중건에 대한 기문이다. 昌原에서 漆原으로 가는 중에 臥龍이 있는데, 산수가 아름답다. 성종·중종조의 청백리공이 이곳에 복거하다가 묻힌 이래 후손들이 모두 여기에 산소를 정하면서 그 아래 재실을 지었던 것을 다시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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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84

    文岡齋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文岡齋는 漆源에서 안동으로 이주해 온 주세붕의 후손들이 자식 교육을 위해 지은 재실로서 1920년에 시작하여 3년 만에 완공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85

    寓慕齋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寓慕齋는 청도군 安莊山 아래에 있는 鐵城氏 문중의 墳庵으로 1916년에 지었다. 墳庵은 墓祭를 위한 것으로 어느 시대에 시작된 것인지를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극히 세밀하게 정해져 있다
    출처 : 유교넷
  • 243586

    碧山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盈州의 선비 金正鍊의 부탁으로 쓴 기문이다. 碧山亭은 김정련의 당숙 在烈이 세운 정자로서 저자에게 기문을 부탁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243587

    九苞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九苞亭은 菊堂·益齋 양선생이 세상을 버리고 群鷄 가운데 봉황처럼 홀로 우뚝하게 서서 세상을 잊고자 하여 지은 정자이다. 여기서 공은 후진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았는데, 주자와 퇴계의 글을 위주로 가르쳤다. 훼손되었다가 1934년 증손 柄夏씨에 의해 중건되었다
    출처 : 유교넷
  • 243588

    追遠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隱軒 崔公이 九龍山 學溪에 땅을 골라 臺를 쌓고 옆에는 집을 지어 은거하여 수양하던 곳이다. 세월과 더불어 훼손되자 유림들과 후손들이 1921년에 중건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89

    方山齋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영양군 方山에 있는 方山 李末孫이 은거 수학하던 집이다. 산 이름이 方山이 된 것도 이말손이 방산으로 자호하고 재명을 방산재로 지은데 연유한다. 임란을 거치면서 무너진 것을 공의 아들 晩岡公이 중건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3590

    鼇淵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密城(밀양)에서 동쪽으로 5리쯤에 시내가 있는데 이름이 鄒川이고 못이 있는데 이름이 鼇淵이다. 명종 때 持平 孫선생이 강학 수양하던 곳이다. 따라서 호를 鄒川이라 하고 정자 이름을 鼇淵亭이라 하였다. 이 오연정에 대한 기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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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91

    愚直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九川을 따라 몇 걸음 내려오면 愚直洞이 있는데, 산이 둘러싸고 땅이 막혀 은거하기에 좋은 곳이다. 全秉烈이 그 동네 이름을 좋아하여 자호로 삼고 그곳에 정자를 지어 수양의 장소로 삼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그 손자 在洙 대에 와서 작은 정자를 세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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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92

    永慕齋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安東 權氏 寢郞公은 花山에서 赤羅 杏洞으로 이주하여 온 사람으로 거기에서 터전을 잡았다. 3백 년이 지나서 후손들이 침랑공의 산소에 제사를 모실 때 齋舍가 없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永慕齋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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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93

    屛巖亭移建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병암정은 원래 嘉味 아래 錦江 상류에 있었다. 鄭公이 그 위에 조상의 산소가 있고 해서 모옥을 짓고 독서하고 학문을 닦는 곳으로 삼았다. 1878년에 錦谷의 남쪽에 개축하였으나 장소가 너무 외진 곳이라 하여 松亭 遺址로 이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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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94

    靈湖影閣講堂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文忠公 李益齋선생의 후손들이 선생의 영정을 모신 廟宇와 正堂, 齋室 등을 짓고 기문을 저자에게 청했다. 그 사람을 존숭하는 것은 그의 도를 밝히는 것이고, 그의 도를 밝히는 것은 그의 학문을 강론하는 것이라 하여 講堂에 대한 기문을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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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95

    寒泉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惠山 李公이 지은 정자이다. 정자는 丹邱에서 동쪽으로 가서 汶川 상류의 寒泉谷에 있다. 이곳은 이공의 조고인 覺圃公이 묻힌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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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96

    望嶽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望嶽亭은 桃木村 龜湖里에 있는 정자로 선조 때 浙林 辛慶益이 은거 수양하던 곳이다. 세월이 흘러 훼손되자 후손들이 1917년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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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597

    追遠齋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金海 許氏의 조상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宜寧의 石溪에 은거하였던 許義先, 飛稚異常의 전설을 남긴 許福 등이 있었다. 후손들이 典祀屋이 없음을 안타까이 여겨 1906년에 추원재를 지었다
    출처 : 유교넷
  • 243598

    永慕齋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三嘉 陸洞은 鄭氏들이 세거하였고 宜寧 華陽으로 옮겨온 지도 오래되었다. 조상들의 자취가 모두 鴨谷洞에 남아있지만, 典祀屋이 없음을 안타까이 여겨 1906년에 추원재를 지었다
    출처 : 유교넷
  • 243599

    四宜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固城에 살았던 金元柱 4형제의 우애를 기리기 위하여 그 후손들이 지은 정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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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3600

    愼庵先生文集跋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저자의 스승인 愼庵 李晩慤(1815~1874)의 문집에 대한 발문이다. 안으로는 大祖(퇴계)의 학문을 가학으로 이어받았고 밖으로는 定齋 柳致明의 의발을 전수받았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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