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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均進士栢後殷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栢後 殷成馹의 행장이다. 본관은 幸州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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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均進士老隱朴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성균진사 老隱 朴儁의 행장이다. 자는 士仰, 본관은 密陽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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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山申公行錄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夢山 申敦植의 행장이다. 자는 敬安, 본관은 平山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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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山先生南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退山 南敬智의 행장이다. 자는 貫初, 본관은 英陽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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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愚金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白愚 金載璐의 행장이다. 자는 聖錫, 본관은 義城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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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訓大夫社稷署參奉溪西李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사직서 참봉 溪西 李誠弼의 행장이다. 자는 聖庸, 초명은 誠淵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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靜隱申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靜隱 申元福의 행장이다. 자는 仲綏, 본관은 鵝洲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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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善大夫梅惺全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梅惺 全大憲의 행장이다. 자는 應文, 본관은 完山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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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陵參奉族君行錄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영릉 참봉 李載經의 행록이다. 자는 成五, 본관은 眞寶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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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考行通政大夫刑曹參議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總府副總管潢臯府君家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저자의 조부 潢皐 李彙廷의 家狀이다. 자는 際亨, 본관은 眞寶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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伯考嘉善大夫行吏曹參判兼同知經筵義禁府春秋館事五衛都總府副總管雙翠府君家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저자의 백부 雙翠 李晩運의 家狀이다. 자는 文五, 본관은 眞寶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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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考通政大夫府君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저자의 부친 李晩逌의 유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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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妣淑夫人聞韶金氏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저자의 모친 義城 金氏의 유사이다. 승지 龍洛의 여식이며 학봉선생의 후손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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伯從兄芝山公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저자의 종형 芝山 李中建의 유사이다. 자는 君範, 본관은 眞寶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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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從兄通德郞公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저자의 종형 통덕랑 李中近의 유사이다. 자는 君憲, 본관은 眞寶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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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저자의 遺事로 장남 悳鎬이가 썼다. 府君의 휘는 中轍이고 자는 仲圓이며 호는 曉庵이다. 본관은 眞寶인데, 진보 이씨는 성균생원 碩을 시조로 한다. 그 아들 子脩가 軍功으로 松安君에 봉하여졌고, 3대를 내려와서 진사 繼陽이 宣城의 입향조가 되었다. 후손 退陶 文純公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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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저자의 行狀으로, 權相圭가 썼다. 선생의 휘는 中轍이고 자는 仲圓이며 호는 曉菴이다. 父는 晩逌이고 母는 義城 金氏이며 학봉의 후예로서 1848년(헌종 14) 무신 3월 12일 선생을 낳았다. 7세에 族父인 愼庵선생 晩慤에게 나아가 배웠다. 조부 潢皐공 彙廷의 교육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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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誌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저자의 묘지명이다. 金鴻洛이 썼다. 아! 선생이시여. 하늘이 내린 뜻을 저버리지 아니하니 마음먹은 대로 하니 법칙이 되었네. 그 바탕을 또한 얼마나 아름다웠으며, 효성과 우애는 또 어떠하였던가. 장중하고 경건하게 공부하였네. 도산의 샘물은 주야로 마르지 아니하니,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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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저자의 묘갈명이다. 예안에 살았던 金東鎭이 썼다. 높고 높은 도산이여 동국의 주자여! 이어받아 조술하니 학문은 온전하고 덕성은 완성되었네. 한 줄기 천명은 어디서 꽃피었나. 은자의 자리 굳게 지켜 세상의 어리석음 깨우쳤네. 수많은 말을 남겼으니 옛사람들이 일깨워준 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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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효암집의 발문이다. 저자의 문인 金浩直이 썼다. 정축년(1937)에 선생이 하세하고 맏아들인 悳鎬가 遺文을 수습하여 왔는데 수십만 언이나 되어 규모가 크고 절목이 상세하였다. 내가 선생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므로 나에게 발문을 쓰라고 하였다. 선생의 문장은 도에 근본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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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발문이다. 1962년에 저자의 손자인 源定이 썼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26년이나 되었는데, 遺文이 그대로 남아있어 장남 悳鎬가 수집하고 교정하여 약간 권을 얻었으나 간행하지 못하고 죽었다. 손자되는 源定도 상자에 보관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1962년 봄에 문중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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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산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后山 李宗洙의 문집. 18권 9책. 각 권별 내용을 보면 권1은 詩이고 권2부터 권11까지는 書이다. 또 권12부터 권15까지는 雜著이고, 권16은 序‧跋‧上樑文‧祝文‧祭文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권17에는 哀辭‧行狀이 수록되어 있다. 권18은 역시 행장이 수록되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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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龜湖陪丈席分韻得淸字癸亥,伏日遊白雲亭,崔公普周鎭以詩留別忘拙攀和戊辰,立春和陶有懷權景晦炳寫寄求報庚午,己未冬宗洙以總角來棲蓮寺適値丈人攜一二學子靜夜禪臺霜月皎潔時則有遣興之作小子輒道準繩川流之句蓋願學也自後二十餘年偸惰汨沒志業不振每懷靈芝未就之慨伏讀賜詩尤增感歎敬步以獻,奉別權景晦戊寅,和李景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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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大山先生(1742)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병이 완쾌되지 않아 책을 보아도 괴롭고 하는 일이 방만하여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古人을 본받아 成己之功에 힘쓰겠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필자는 내가 종사하는 것이 비록 고인과 일치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天職으로 여기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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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1744)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振作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지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드러남이 沈潛하는 것만 못하고 가볍게 뛰어남이 무겁게 우둔함만 못하다는 말을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用力이 慢泛해지고 기상이 膠滯되어 조금의 진전도 없으니 스승의 가르침이 두렵다고 하였다. 지금 당장 힘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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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전번의 답장에 潛緩을 쓴 것에 대한 오해에 변명을 했다. 이어서 항상 振作하려고 하고 매사에 謹密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또 圖解한 動靜의 뜻은 대강 믿음이 가고, 四德의 뜻은 조금 알겠으나 그 실체를 모르겠다고 했다. 琴溪 權炳甫가 寓居한 山堂에 수일간 있었더니 志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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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仁義는 설명이 상세하여 점차 진실을 알 것 같으나 문자로 설명하지 않아 조금은 어렵다고 했다. 사색은 반드시 많이 볼 필요는 없고 博考 이후에 가능하다고 했다. 理氣가 모두 무한하다는 뜻은 잘 알 수 없다고 했다. 이에 理가 무한하면 氣 역시 無限‧無量이다. 그러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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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先生(1746)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종전의 견해에서는 정밀하고 미세한 곳을 알지 못했으나 겨울이 오면서 점차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가르쳐주신 反己‧體驗‧操守‧兢惕 8자는 매우 합당한 것으로 지금 따르고 있다고 했다. 학문을 하는 도리에는 規模가 있어 節度와 條目을 따르지 않을 수 없지만 역량에 따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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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先生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전에 올린 疑義에는 잘못이 많았고, 權生과 疑義에 대해 문답을 했으나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하여 다시 질문을 한다고 했다. 종전의 견해는 多學만 중요하게 생각하여 모르는 사이에 雜駁함에 빠져버렸다고 했다. 이에 학문은 선후‧완급의 구분이 있으니 博學만 하고 그 요지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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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온갖 병이 몰려와 쉬고 있다고 했다. 또 지난달에 朱書 5권 日再遍을 읽으니 高妙하고 심원한 논지가 日用과 操持에 매우 간절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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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1747)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어제 스승을 뵙고 돌아와 밤에 灑掃‧應對‧精義‧入神의 뜻에 대한 가르침을 두루 생각하였으나 集註와 語類의 諸說을 확실히 깨달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에 의심이 드는 부분을 別紙에 적어 질문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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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일전에 師靖 형이 글을 보내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였고, 『中庸』을 다시 읽어보니 별다른 의심이 가거나 분명하지 않는 것이 없어 완전히 이해하였다고 했다. 操存의 뜻으로 며칠사이 警省하고 있다고 했다. 刊補의 疑義를 검토하니 간혹 四傍點이 있는 곳이 여럿 있으나 諸說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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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先生(1748)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金溪質疑』 한 책에 몰두하였으나 쉽게 가르침을 청하기는 어려움이 있는데, 평소에 독서를 대충하여 하나의 큰 의문을 가지고 是正을 구할 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은 학문을 함에 高遠 上達하고 煩細 碎한 뜻에만 마음을 두고 切己하고 平實한 의미는 조금 멀리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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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우연히 朱子의 글을 보고는 의문이 있으면 반드시 물어보아야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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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先生(1752)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世間事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기력을 내어 古人의 影象과 塗轍을 보니 실용 공부를 해야겠다고 하였다. 스승이 반복해서 가르치신 灑掃‧應對를 『論語』와 『近思錄』에서 참고하여 생각하니 盡性知命 一條가 겨우 조금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석연치 않는 곳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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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1752)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일전에 한 말과 행동이 모두 잘못되었으므로 夫子의 嚴密이라는 가르침을 따라 두문불출하고 있다고 했다. 집이 좁고 시끄러워 墳山 근처에 오두막을 짓고 공부할 예정이라고 했다. 內外之分은 마땅히 알아야 하고 本末之序는 문란하게 할 수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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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先生(1757)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점차 因循에 빠져 析理도 평이하게 되고 檢身도 잘 안되어 언행이 한결같지 못하여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러나 산에 들어온 이래 世交를 거의 하지 않고 또 스스로 勅勵하여 옛 모습을 찾았다고 하였다. 이외에 독서 방법, 戱笑 경계, 朋友간의 의리 등에 대한 내용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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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先生(1758)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靑坪의 문제는 두문불출하며 반성하고 있는데, 가훈을 지키지 못하여 부친이 싫어하는 것을 저지르고 말았다고 했다. 집안의 후생들이 한결같이 학문을 잊고 단지 摘句 공부만 한다고 한탄했다. 이외에 內外와 人己의 구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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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1760)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或問을 어제 겨우 다 읽었다고 했다. 「論語問義」를 읽어 볼 계획이라고 했다. 그리고 別紙에다 傳 九章 恕說부터 治平까지의 의문점을 箚錄하여 가르침을 바라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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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朱門의 敎法은 敬을 위주로 하는데, 우연히 사람을 가르치는 곳에 가보니 항상 涵養 進學 이 두 下說로 끝을 맺었으니 차이가 있다고 했다. 또 朱門에서 경을 위주로 한 그 실질은 尊德性‧道問學이다고 했다. 이어서 尹和靖, 胡家 家學, 五峯先生, 文定公의 敎法을 설명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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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尊德性‧道問學은 敬의 공부로서 이 둘을 조절하여 계속 행하면 問學 중에 德性을 높이게 된다고 했다. 이어서 문학과 덕성과의 관계를 설명했다. 또 和靖‧胡家‧文定公의 敎法이 程門과 다른 점을 설명했다. 또 崔君과 金溪 權戚의 공부에 있어 잘못된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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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1761)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敬의 공부는 굳게 지킬 것과 지키지 않을 것을 가리고, 있는 곳을 잊도록 마음을 한데 모으는 것이니 오늘 이후 內外를 깨달을 것이라고 했다. 外面이 느슨하고 게으른데 中心이 스스로 경계하여 깨달은 자는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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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1762)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어제 급히 외출하였다가 돌아왔다고 했다. 지난번에 가르침을 받았지만 심부름하는 아이가 없어 오늘에야 글을 보낸다고 했다. 스승의 가르침은 본인과 가문의 큰 은혜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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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先生(1764) 2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제사를 지낸 후라 여가가 있었지만 공부는 게을리 하였다고 했다. 최근 며칠 사이 『論語』를 보았다고 했다. 종전에는 마음이 들떠 힘써 공부할 수 없었고, 무기력하여 가지런하지 않았음을 알았다고 했다. 이어서 논어를 보면서 생경했던 부분과 자기의 의견을 別紙에 적어 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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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趙相觀이 타지에서 얻어온 鶴峯 유적 몇 건이 첨부된 海槎錄을 베껴 보낸다고 했다. 해사록은 시대의 大節目이라고 하였고, 신의를 지켜 영구히 잊지 않으려는 뜻이 글 사이에 넘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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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전에는 깨달아 알지 못하였던 문학을 이제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에 가르쳐주신 涵養主靜의 뜻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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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別紙(1770)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族叔의 初祥이 이 달 19일인데 마침 장조카가 감옥에 있으니 練祭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문의를 했다. 退行해야 할지 아니면 主喪이 멀리 있는 예에 따라 仲哀가 대신해야 할지 여부를 질문하였다. 이에 대한 스승의 답변이 뒤에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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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1774)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제목을 알 수 없는 책 편찬을 둘러싼 교정 문제, 다른 내용 삽입 문제, 마을의 갈등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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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1776)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평소에 같고 다름을 考校하는 것은 진학에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알았다고 했다. 대충 알면서도 스스로 의문이 없을 정도로 환히 깨달았다고 착각하는 것은 잘못이니, 의문이 있으면 즉시 기록하여 물어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또 공부와 독서 그리고 刊補의 출처에 대한 자기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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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 4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雲洞의 兪兄은 志氣가 굳고 간절하니 아마 학문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므로 수일간 했다. 함께 하면서 얻은 것을 듣고 싶지만 무더위로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전에 가르쳐주신 廖書의 뜻은 아직도 잘 이해되지 않는 한 구절이 있다면서 의문 나는 것을 질의했다. 또 최근에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