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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景晦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川上說에 대한 湖上의 설명을 베껴 보낸다고 했다. 자기의 처음 說은 오류가 많았다는 것을 깨달아 개정하였다고 하였다. 또 三貴說은 설명이 太高 太甚한 것 같으나 正意를 잃은 곳이 많다고 하였다. 이어서 龜潭의 모임에 대해 언급하였다. 別紙에서 逝者如斯 등의 경전 구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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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景晦(1769) 2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日知月無忘에 대한 자기의 설이 잘못되었고, 和靖이 말한 日新而不失이 바로 本意라고 하였다. 또 灑掃 應對가 다만 謹獨에 있다는 것도 盛論에 따르면 맞다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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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景晦(1771)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禮註를 勘校하였다고 했다. 현저하게 긴요하지 않은 것은 보이는 즉시 삭제하여 마음에 매우 미안하다고 하였다. 旬望에 끝낼 것 같다고 하였다. 그 후에는 溫理 涵養의 공부를 할 계획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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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景晦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우연히 『語類』를 보다가 한 단락이 마침 내 의향과 일치하였는데, 비밀로 하지 않고 써서 보낸다고 하였다. 그 내용은 말미에 첨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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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景晦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5월 이후 몸이 아파 文字공부를 소홀히 하였는데, 다만 『語類』의 訓人 一門만 이해하였으니 大賢의 사람됨의 진실하고 중요한 곳을 대강 보고 이해하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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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景晦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경회에게 뜻을 조작하지 말라고 했다. 여러 註說을 撿看하고는 결국 평범한 여러 사람들의 上說을 따른 것 같다고 했다. 성인의 說話도 淺粗하게 말한 곳이 있는데, 그것을 끌어와서 精深하게 하면 역시 독서법이 아니다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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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叔文道源(1786)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季氏와 伯胤의 근황을 전했다. 자기는 병 때문에 눈으로는 偲切의 이로움을 볼 수가 없고 귀로는 砭警의 가르침을 들을 수 없어 鈍滯枯落함을 느낀다고 하였다. 또 마음속에 있는 친구들은 각기 자기가 들은 것만 존중하여, 기꺼이 講討 一事로서 서로 대답함을 적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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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春宮의 禍變에 대해 언급했다. 큰 아이가 반평생 衰落하였다가 우연히 과거에 합격하여 마음에 위로가 된다고 했다. 吾輩는 늙고 쇠약해져 名物‧識該‧故事 등의 本源 공부에는 전혀 간여할 수 없으니, 四書‧『心經』‧『節要』 등의 溫習 공부를 더하여 玩索 涵泳함으로써 心地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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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叔遠長源(1796)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濂洛이 주장한 主靜의 뜻을 설명하고는 孔門의 敎法과 조금 다름이 있지만 사람을 위해 오히려 轉切한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또 外務는 멀리하고 공부에만 전념하되 오로지 朱門의 가르침에만 따르라고 당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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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遠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오로지 外務에만 신경을 쓰면 장차 독서하고 靜養할 겨를이 없을 것인데, 이것이 吾輩의 通病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喪禮에서 四種制를 논하였다. 別紙에서는 여러 경우의 服制를 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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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叔遠(1761) 3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悠久의 의미에 대한 다양한 설을 비교 설명하고, 兼內外의 뜻을 설명하였다. 이어서 悠字와 久字를 비교 설명하고 이것과 內外와의 관계를 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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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遠(1767) 4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吾契는 立地가 勤懇하고 思索이 精切하나 친구들의 수가 적은 것이 유감이고, 相從이 드물어 이로움을 얻을 수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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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遠(1790) 4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옆에 强輔가 없고 取質이 없으니 날은 저물고 도는 멀어 장차 枯落하려 한다고 했다. 비록 후배 한두 명이 간혹 알려주는 것이 있지만 循習이라 고무되어 일어서지 못한다고 하였다. 別紙에는 祧主代盡 仍奉別廟에 대해 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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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道彦宗德(1785)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率性이 道의 用이라는 데에 대해 반론을 하였다. 虎溪서원에 보관되어 있는 『西厓先生文集』 校勘處를 한 통 베껴 보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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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道彦(1786)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이것으로 미루어 저것을 窮究하고 仁으로 미루어 義를 아는 것은 곧 가까이 견주어 생각하여 유추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推致하여 각기 그 極處에 이르는 것은 곧 致曲이다. 만약 한쪽으로 치우친 것을 推極하면 각각의 造極에 이르지 못하니 誠이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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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道彦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선생의 문자를 재차 勘校했다. 各家에서 각자 보고 있어 기한이 없을 것 같지만, 각자 目力을 다하여 최고로 잘 보는 것이 吾輩의 책임이다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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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道彦(1787)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心經講錄刊補에 대해 언급하고 率性說에 대해 논하였다. 도를 彛倫과 日用 사이에서 발견한 것은 곧 性을 발견한 것으로 日用에 마땅히 행해야 한다. 이것을 率性이라고 하면 性의 用이고 道로서 말하면 道의 用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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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道彦別紙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率性에 대해 논하며 道와 性과의 관계를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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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道彦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講錄文字와 遺文字의 간행에 대해 언급했다. 率性에 대해 논했다. 문자에 疑礙處가 있는데도 번거롭게 할 수 없다하여 묻지 않는 것도 索性求益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別紙에서 率性에 대해 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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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道彦禮疑(1789)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魂帛의 入衾‧出衾과 혼백의 臥置‧立置에 대해 논하였다. 또 제사에서 主婦가 亞獻과 終獻을 맡는 문제를 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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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道彦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小山丈席의 근황을 전했다. 講討가 소홀함을 우려하고 그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말미에 『中庸』의 索隱行怪 문구를 풀이하고 率性을 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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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道彦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湖上의 輯遺書 교정에 대해 언급했다. 또 吾輩가 전날에는 問業 質疑에 다행히 處所가 있어서 경계함이 자주 있었는데, 지금은 집안에만 있고 쇠퇴하였으니 어찌 因循 墜墮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別紙에는 湖上 輯遺書를 考檢‧釐正하면서 결정을 못 내린 내용을 논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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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道彦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김도언이 役文한다고 주의를 주고 繁文이 폐단이라는 지적에 대해 변명했다. 이어서 禮에서는 恭敬 退讓의 뜻이 급하게 먼저 해야 할 것이지만 節文 度數도 역시 빠뜨려서 중요한 뜻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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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道彦景蘊宗發弘輔宗燮(1791)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大學』의 保赤子 뜻은 자네의 가르침이 처음에는 正意인 것 같았는데, 여러 달 연구해보니 종전의 해설을 버릴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였다. 이에 그 이유를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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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道彦景蘊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마을에 전염병이 번졌다. 堂下로 넘어져 다리에 중상을 입었다고 했다. 『性理大全』에 있는 仁說이 南軒의 것인지 朱子의 것인지에 대해 논했다. 南軒이 주자의 뜻을 취하여 立說한 것이지 주자가 南軒說을 인용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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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道彦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監役 어른의 사망을 전했다. 吾輩는 각자 쇠약해져 숨어 있으니 切磋講討의 이로움이 없다고 하였다. 別紙에서 『大學』 「明德章」의 虛靈不昧를 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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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道彦別紙(1792)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保赤子에 대한 견해가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다고 했다. 희로애락과 기와의 관계, 致知와 誠意와의 관계를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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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道彦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많은 선비들이 구름같이 모였는데 聖批가 優渥하니 여러 해 동안 가슴이 막혀 답답하던 大義가 세상에 밝게 드러났으니 吾輩에게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이어서 「明德章」과 「誠意章」을 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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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道彦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聖紹兄이 하루 밤 묵어갔다고 했다. 勘校에 대해 언급했다. 別紙에서 「誠意章」과 「保赤子章」 그리고 「仁說」에 대해 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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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道彦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김도언의 아이 병을 걱정했다. 趙聖紹 등 친구와 후배들의 사망에 대해 애통해 했다. 申子長이 하루 밤 묵어갔다고 하였다. 南淵의 期會에 가기 힘들다고 했다. 別紙에서 김도언이 下諭한 여러 문구를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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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道彦別紙 4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大學』 「誠意章」에 나오는 容著와 未消得十分의 뜻을 설명하고, 『中庸』의 不可離의 뜻을 설명하였다. 또 「鬼神章」과 「太極圖解」에 대해 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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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道彦(1793)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師門에 遺敎가 사라져 講討는 없어지고 執事는 혼자 틀어박혀 實工에만 힘쓴다고 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확실하게 알 때까지 반복하여 질문해야만 本義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知가 行에 도움이 안되면 眞知가 아니라고 했다. 또 平易‧卑近과 精微‧幽深의 관계를 논하고 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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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道彦別紙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귀신, 道와 性과의 관계, 희로애락과 心과의 관계 등에 대해 자기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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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道彦(1794)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반복해온 논의가 시작한 本意와는 멀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성현의 立敎는 확고한 樁管이 있으므로 의심해서는 안 되고, 施敎할 때는 각각 偏處와 病處에 따라 그 사이를 혹은 누르고 혹은 올리고 해야 大中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사색을 싫어하지 않고 講討를 게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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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道彦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봄에 임금에게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자는 의논이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혹 가을에 다시 하자는 논의가 있지만 東坡의 疏議가 이미 정해져 병행할 수 없다고 했다. 시세가 전과 달라 급박하니 정당하게 靜吉의 뜻을 준수하며 하늘이 복구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옳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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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道彦別紙(1795)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心經』에 나오는 說及受贓者怒形於言 구절을 가지고 성현의 기질을 논했다. 또 無適主一에 대해 논했다. 敬의 공부는 表裏‧動靜에 불과한데 무적주일이 표리‧동정에 일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 人臣의 進諫하는 도리에 대해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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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道彦問目(1796)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從祖叔父의 시양자가 된 둘째 아이가 종조숙모의 喪에 무슨 服을 입어야 하는 지에 대해 논했다. 本服說과 齊衰三年說이 있지만, 三年服은 너무 重하므로 齊衰朞年服이 마땅할 것 같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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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道彦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자제를 양육함에는 質直하고 振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학문과 思辨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入德의 문호는 오직 尊性‧問學 두 가지 뿐이라고 했다. 평생 『論語』에 종사하여 성인의 기상과 中和를 배우려고 하였다고 했다. 侍養된 자의 服制는 父命을 위주로 해야출처 : 유교넷 -
243939
答金道彦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屛翁의 문자에 대해 논했다. 全集은 도를 터득하는 문이고 덕을 이루는 근본이라고 하였다. 別紙에서는 父와 君을 섬기는 이치는 같고, 兄과 長을 섬기는 이치도 같고, 慈幼와 使衆의 이치도 같다는 『朱子大全』의 문구를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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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道彦 3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斯文에 공로가 많은 東巖이 사망하여 애통한데 그의 아들도 사망하였다고 했다. 師門에 聲響이 사라져 거의 학문한다는 것을 듣지 못하게 되었으니 吾輩의 수치이다 하였다. 別紙에서 人心‧道心‧明德의 뜻을 설명하고 질정을 구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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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道彦(1797) 4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敎席이 한번 철폐된 이후 동료들이 두루 보고 널리 생각하지 않고 각자 들은 것만 지키면서 문을 닫고 혼자 노력한다고 했다. 학문을 함에 不講‧不善‧不能改 이 세 가지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이어서 『論語』에 나오는 約之以禮의 約자의 뜻을 논하고, 問辨의 방법과 『語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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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申子長體仁(1785)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立作하는 자는 流徇하지 않는데 유순하지 않으면 혹 지나쳐 막히게 되고, 명쾌하고 白直하게 말하면 쉽게 드러나 涵養함이 적으니 이 모두 中正과 和樂을 양성하는 뜻이 아니라고 했다. 이어 健順의 뜻과 率性의 의미를 논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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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申子長(1786)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아이가 의외로 參名하였으나 因循에 빠져 廢墮할까 두렵다고 했다. 致曲의 뜻과 類推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師門의 문자의 繕寫와 讎校에 대해 언급했다. 또 改刊을 둘러싼 玉山의 擧措에 대해 언급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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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申子長(1787)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心之貞‧性之貞과 正與常과의 관계를 논했다. 心之貞을 常으로 性之貞을 正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고, 心의 收斂處가 곧 正而常者라고 하였다. 또 貞의 의미를 여러 가지로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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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申子長(1796)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語類』의 體用未備에 대해 설명했다. 또 義理에 대해 설명했다. 의리의 廣大함만 보고는 다시 그 精微함을 구하지 않거나 다만 溫故하는 것만 귀하게 여기고 새롭게 아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上達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하였다. 또 貞字의 뜻과 講學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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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秀夫(1791)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聖恩이 내린 것을 축하했다. 문집 간행에 대해 말했다. 또 유수부가 樂易하고 耿介한 마음을 보면 여유가 있지만 威重 측면에서 보면 매우 큰 불찰이다라고 지적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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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德仲龍普(1777)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賁趾선생 遺集 간행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분지선생 유집은 刊校는 하였으나 인쇄를 못하여 院中의 欠典이 되었다며, 尊家 선배가 일찍이 正寫하여 新帙을 만들었으니 登梓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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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中立道行(1791)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道를 아는 자가 많으면 도가 밝아지고 착한 사람이 많으면 풍속이 두터워진다고 했다. 또 南澗翁의 사망을 이야기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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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中立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玉山 문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元集에 姓諱를 追書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주로 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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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直甫宗敬(1760)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김직보가 지적한 자신의 偏倚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 親近資益과 四勿說에 대해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