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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直甫(1771)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수개월 동안 禮註를 校勘하였는데 上達 공부에 무익함을 깨달았다고 했다. 또 高山에 집 짓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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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復初一春(1797)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4冊의 책 校勘 관련 내용이다. 象數 관련 내용은 어려워 쉽게 손댈 수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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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仲志得行(1796)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근래 人家의 父兄들이 제멋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여 自由自止하니, 역시 古人의 뜻이 아니므로 强聒을 좋아함에 유념해야 한다고 했다. 『九思先生文集』 간행을 마쳤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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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內弟金敬之柱衡(1797)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輯遺의 謄寫와 勘校에 대해 이야기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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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君楫光濟(1784)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구체적으로 알 수 없는 어떤 일을 둘러싸고 벌어진 읍내의 갈등을 이야기했다. 여기에는 陶院과 宣城이 관계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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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君楫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공부를 위해 茅山에 와서 머물고 있는 金君楫 아들의 敎科 과정과 자질에 대해 이야기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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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君楫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김군즙 아들의 성품과 교육과정에 대해 이야기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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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君楫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서재 앞을 가리는 것이 없어 대나무를 심으려고 하니 서원 뒤 담에 많이 자라는 대나무를 캐 보내달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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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君楫(1789)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임금이 학문을 권장한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상소를 하고 또 각 서원에서는 講誦 규정을 마련하였다고 했다. 講誦을 위한 모임과 강독할 책자 선정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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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君楫(1791)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만년의 공부는 한 책을 精熟하는 것이라며 『朱書』를 읽고 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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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君楫(1797)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더욱더 振勵하여 스스로 부지런히 힘써 남은 여생을 보내는 것이 가장 좋은 계책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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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崔公普周鎭(1785)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이전에 논의한 月會法‧日會法은 要解를 조사해보니 자신이 틀린 것 같으나, 霽翁의 註解를 참고해보면 謬妄한 말은 아닌 것 같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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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崔公普(1750)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心經』을 공부하고 있으나 習勝때문에 事奪이 나 중단하고 말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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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崔公普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학자는 知得 行得을 막론하고 단지 意思와 好時만으로도 6‧7분의 위치를 차지하는데, 풍속이 소란하여 평온하지 못하니 吾輩 중에는 가끔 옛 모습을 지키지 못하는 자가 있다고 했다. 『朱子節要』와 『心經』 공부를 하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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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崔公普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보내온 글의 諄悉함에 감사하고, 『朱書』를 한번 읽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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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其天思浩(1786)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九思翁이 남긴 문자는 蘆厓 형제가 모두 수정하였다고 했다. 본인도 이전에 恩厚를 입었지만 보답할 길이 없어 애태우고 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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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善述述靖(1799)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再朞 후 祔事를 행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에 대해 密庵‧黃龍岡‧尹明齋의 설을 인용하여 논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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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善述(1796)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한번 敎席이 무너지자 일대의 風聲이 거의 사라져 근심이다라고 했다. 과거시험 공부는 사실 급선무는 아니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다. 이어서 젊은이들이 과거시험 공부를 하는데 따르는 폐단을 이야기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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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善述(1797)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川沙兄의 사망을 애도했다. 수업을 받을 때 의문이 있으면 箚錄하여 스승에게 질의하고 同志와 토론하여 투철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근래 道敎의 폐단에 대해 언급했다. 人‧物性의 同異를 논하고 아울러 物은 惻隱之心이 있는가 없는가를 논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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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穉春㙖(1789)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祔事가 忌日과 겹칠 때 新位의 제사 문제, 發引時 遣奠하는 의식, 賓朋의 奠酹 등을 설명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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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穉春(1790)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練祭의 예절 문제, 子婦의 虞卒哭 시 주관 문제, 忌祀時 配祭 문제 등을 설명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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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穉春(1792)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講會가 停罷된 것을 우려했다. 한두 가지 원만하지 않는 일 때문에 강회를 停罷한 것은 선배들의 뜻을 遵循하는 것도 아니고 또 후생들의 의지를 勉勵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이에 律令을 수정하여 강회가 오래 지속되도록 하자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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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子野㙆(1789)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講會가 열리지 않고 있다고 한탄하였다. 강회는 마침 面內와 本院에 많은 일이 있어 지금까지 한 번도 열리지 못하였는데, 지난번에 柯亭에게 가서 稟議하여 잠깐 朔望의 강회가 열렸지만 다시 열리지 않고 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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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子野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우연히 외출하였다가 烈風을 맞아 오래된 기침병이 발작하여 음식을 전혀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한 달만 있으면 70살이니 헛된 일생이 부끄럽다고 하였다. 보내준 偉文에 대해 논평을 하고, 고쳐 바로잡아야 할 곳은 標箚하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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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子野(1791)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喪禮를 논했다. 祔廟‧祔祭時 告辭에 대해 설명하였다. 初朞에 이미 退行한다는 것을 告辭하였는데 퇴행 때에 또 기한에 앞서 告由한다면 再告가 된다는 의문이 있다고 하였다. 喪이 끝난 후 祔廟할 때 家禮에 告辭한다는 말이 없는 것은 장례 후 祔祭 때 이미 入廟 사실을 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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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子野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高山의 논의는 僉議를 따라 결정해야 했다. 기한이 급박하다고 하여 兩院의 글을 都下에 가서 배포하면 당초의 정중한 뜻이 아니다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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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幼觀瀾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어제 學士君의 葬禮를 지냈다고 했다. 아이로부터 자네가 龜尾 沙村을 지나갔다고 들었는데 만나지 못해 한스럽다고 하였다. 또 龜潭에서 초청이 왔으나 갈 수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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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徐明胤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연말 연시에 遺文字를 讎校하는 일로 서당과 山寺에 가 머물렀다고 했다. 이미 완성된 책이라 類例와 規模를 쉽게 商量할 수 없어 잘못된 글자와 번거롭거나 누락된 곳을 바로잡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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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徐 3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책자의 訂校와 添損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 笏記 작성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맡아 있는 책자가 이미 완성된 책이라 가볍게 손을 대어 분별할 수는 없지만, 평소 정분으로 보아 도외시할 수 없어 漏落處와 未安處를 訂校하고 添損하였다고 했다. 笏記는 小山丈에게 보였더니 『家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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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致道埦(1760)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요사이 『大學或問』을 보았으나 專一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理學과 관련된 책 여러 권을 읽어보니 조금 경각심이 생긴다고 했다. 이에 서찰‧語類 등에 산재해 있는 교훈을 모으면 針箚가 많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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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致道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근래 독서를 하려고 하여 시작했지만 끝낸 것이 없고 다만 종전에 너무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여러 進士兄들이 乘興하러 간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옛 학자들은 오로지 性情을 기르는 데에만 힘썼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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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致道(1764)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병이 차도가 있어 『論語』를 공부하였다고 했다. 吾契는 이 좋은 세월을 맞이하여 공부에 매진함으로써 極處에 이르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서서히 自得하기를 기다린다면 세월이 가는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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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致道(1783)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公而以人體之 구절이 명료하지 않다면서 公과 仁의 관계 그리고 人體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私意를 완전히 버려 조금의 人欲도 없는 것이 公이라고 하였다. 또 公이 사람의 신체에 분명하게 나타날 때 仁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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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致道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體之爲仁說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어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했다. 쌍방의 논의가 각기 한쪽 면만을 주장하였으나 모두 의리가 있어 병행해도 무방할 것 같다고 하였다. 자기의 설은 伊川에 근본을 두고 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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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致道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문집 9책을 교정보았다고 했다. 公而以人體之 구절은 여러 어류를 참고해보았지만 지난번의 자기 생각에 변화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직 분명하게 깨닫지 못한 부분은 別紙에다 적어 문의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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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致道別紙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여러 語類와 여러 사람의 설을 참고하여 公而以人體之의 의미를 설명했다. 公의 뜻, 公과 仁의 관계, 仁과 人體와의 관계 등에 대해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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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致道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道의 體用에 대해 논했다. 道에는 본래 體用이 있는데 靜時에는 靜時의 道가 있으니 곧 이는 道의 體이고, 動時에는 動時의 道가 있으니 곧 이는 道의 用이라고 하였다. 性道를 가지고 體用을 나누면 道의 體는 곧 性이며 不偏不倚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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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致道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지금까지의 논쟁에 대한 회고이다. 지금까지 쌍방의 논의가 각기 이전의 說을 근거로 했기 때문에 잘 이해할 수 있었지만, 서로 상대방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 논의가 계속되면서 競辨이 되고 말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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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致道(1784)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率性의 의미와 道의 體用에 대해 다양한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였다. 또 或問‧語類 등 여러 서적에 보이는 솔성과 도의 체용에 관한 程朱의 가르침을 別紙에 기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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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致道(1785)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天命之性과 率性之道를 논했다. 性은 體이고 道는 用이라 했다. 道의 體는 만물에 구비되어 있고 이것을 가리켜 率性之道라 한다고 하였다. 또 몸과 사물은 內外와 體用의 다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하고, 내외로서 체용이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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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致道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해결할 수 없는 의문은 학문을 함에 해로우니 논쟁을 정지하고 각자 完養하고 涵泳하여 서서히 쌍방의 融釋을 기다리자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張敬堂遺集』의 性‧道 관련 논의를 첨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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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致道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옛 사람들은 시간을 다투어 짧은 시간에도 급급하였지만 오히려 잃을까 두려워한 것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에 있었다. 이에 行身 制事에 勤謹和緩하라고 하였고 또 바쁜 후에는 잘못된다고 하였다 한다. 이외 編年 문자의 修寫에 대해 언급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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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弘輔宗燮(1786)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평생에 의문이 있으면 질의하고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기를 바라는 것을 다시는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을 듯이 하였다고 했다. 別紙에 학문의 道는 放心을 구하는 것이라는 맹자의 말을 설명하고, 朱子와 호남 諸公의 中和書를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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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弘輔 4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先師가 노력한 것은 朱子의 의리를 절충하는 것이었으니 定論이 아님이 없다고 했다. 이에 吾黨의 사람은 傳習하여 持循함에 다른 논의가 없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 別紙에서 放心을 구하는 세 가지 설 등을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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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季周訪(1767)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시를 짓고 글을 쓰는 것 모두 進學에 무익하고, 소일거리 技藝는 학업에 대한 뜻을 상실케 하여 上達에 방해가 된다고 했다. 또 『周易』을 읽고 있다고 했다. 자식의 文氣가 너무 委弱해 한 달간 外傳 문자를 읽도록 하였는데 지금은 『中庸』을 읽고 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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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汝明有白(1793)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이여명의 질의로 喪禮를 논했다. 祔祭 儀節, 過葬 儀節 등을 설명하였다. 구체적으로 보면 承重服을 입은 자가 變除 참여 시 입어야 할 服, 祔祭時 出主 문제, 再朞祝을 祥禫祝으로 사용하는 문제, 葬所와 新居가 하루 밤을 지내야 할 거리일 때 故居에서 虞祭 返哭하는 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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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子厚墩(1790)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집에 와 머물고 있는 김자후 仲胤의 德性과 見解를 보니 미완의 大器라 장래에 가망이 있다고 했다. 이에 자식들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하였다. 조만간 故山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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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仲進在淵(1770)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정중진의 질의로 喪禮의 服制를 논하고 또 神主에 이름을 쓰는 의례를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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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景勤逸濟(1774)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喪中에 先代의 제사가 있을 때 그 절차와 의례를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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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景勤(1774)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國喪 중에 禫祭를 지내는 의식을 논하였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