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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44051

    答族弟學求宗栻(1787)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學求는 資才가 뛰어나 장차 門戶를 맡길 만한데 분발하여 전진하지 않고 이미 성취한 것에 안주하는 것은 평소 바라던 것이 아니라고 했다. 墓道文字는 곧 小山 어른에게서 찾아와 주겠다고 했다. 別紙에는 內艱을 당한 지 7일만에 또 妻喪을 당한 경우의 喪服을 논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44052

    答族弟德應宗運(1784)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독서에서 다만 誦貫에만 힘쓰면 記誦과 다름이 없어 큰 이로움이 없다고 하였다. 이어서 讀究의 의미, 操心說, 赤心說 등을 논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4053

    答德應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오늘날 사람들이 독서를 좋아하지 않아 독서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고 했다. 그러나 독서에서 善讀하지 않으면 헛되이 힘을 쓸 우려가 있으니 반드시 熟讀하고 精思하는 공부를 더해야 한다고 하였다. 操心說과 赤心說에 대해 보충설명을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4054

    答德應別紙(1785)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知性과 盡心, 存心과 養性을 설명하고 이것들과 공부와의 관계를 논했다. 또 性과 理氣, 仁과 道와의 관계를 논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4055

    寄兒宇綱(1786)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城 안에 들어가 있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244056

    寄宇綱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타지에 나가 있는 아들에게 보낸 글이다. 기분이 좋음을 틈타 경솔해질까 염려되니 威儀를 신중하게 하고 語笑를 簡黙하게 하라고 당부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4057

    答姪敬綱(1784)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산 속에 가 있는 아들에게 보낸 글이다. 건강 조심, 밤 산길 조심 등을 당부하고 독서 방법을 일러주었다. 독서는 熟讀하되 精思를 더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하였다. 만약 정사하지 않고 투철하게 되면 이는 記誦일 뿐이라고 하였다. 잡념으로 번거롭게 하지 말고 항상 읽되
    출처 : 유교넷
  • 244058

    答敬綱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存心‧致知는 尊德性‧道問學의 實事라며 이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4059

    記聞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記聞」은 말 그대로 저자가 살아오면서 다양한 부문에 걸쳐 들은 것을 정리해 기록한 일종의 비망록이다. 연대순으로 기록하였으며 문답형식으로 기록한 경우도 있다.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李先生‧退溪‧栗谷‧寒岡‧張敬堂‧崔立夫‧九思堂‧韓南塘‧南賁趾 등 특정인의 일화도 소개
    출처 : 유교넷
  • 244060

    記聞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유교 경전이나 성리학 관련 여러 글에 나오는 문구를 문답 형식으로 해석을 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中庸』 뜻풀이, 天地之功用 造化之迹 해석, 性情功效 해석, 天地之道와 聖人之道의 관계 설명, 旣明且哲 以保其身 해석, 夫婦之別 설명, 道 해석
    출처 : 유교넷
  • 244061

    箚記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箚記는 책을 읽다가 마음에 깨달은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수시로 적어 모은 것을 말한다. 연대순으로 정리하였으며, 문답 형식으로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太虛 해석, 말과 心體와의 관계 설명, 潛究黙玩 설명, 存養 해석, 천지의 發‧未發
    출처 : 유교넷
  • 244062

    自省錄(1741)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자기 자신을 반성하기 위해 기록한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학자의 治身은 마땅히 자책으로 해야 한다. -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은 하늘을 닮으려는 것이다. - 나의 마음이 周全하지 못하고 欠闕이 있는 것은 氣質 物欲의 질곡 때문이다. - 하늘의 이치는 곧
    출처 : 유교넷
  • 244063

    大學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다른 사람의 설을 인용 소개하기도 하고 스스로 해석하여 설명하기도 하였으며, 또 자기가 질문한 것에 스승과 친구들이 답한 것을 정리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서문의 十五而入大學에서 『大學』의 의미 해석, 外極內盡 설명, 대학 책의 성격 설명,
    출처 : 유교넷
  • 244064

    論語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學而時習章 集註의 學者將以行之也 해설, 及人而樂者順而易 成德者能之 설명, 孝弟章 集註의 仁者愛之理 心之德也 해설, 朱子의 仁兼義 설명, 주자의 心之德 是統言愛之理 해석, 三省章 集註의 有則改之 無則加勉 설명, 以忠信爲傳習之本 해석, 道千乘章
    출처 : 유교넷
  • 244065

    中庸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제1장 章句 天以陰陽五行의 天字 해설,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설명, 제16장 章句의 性情功效 해석, 제17장 昭穆 해석, 高祖有時而在穆 설명, 제27장 溫故而知新 敦厚以崇禮 해설, 제30장 장구의 皆兼內外該本末而言 설명, 小德川流大德敦化 章
    출처 : 유교넷
  • 244066

    魯院講義太極圖說(1771)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魯院에서 「太極圖說」에 대해 강의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강의 주제를 보면 다음과 같다. 朱子의 胡氏太極圖序 又何以加於此에 대한 설명, 太極生陰陽理生氣也에 대한 해설, 藏頭物事에 대한 해설, 道有定位에 대한 해설, 是理動靜에 대한 해설, 不正當尖斜太極에 대한 설명, 理
    출처 : 유교넷
  • 244067

    太極圖說考證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太極圖說」에 대한 고증은 『性理大典』에 매우 상세하게 실려 있다고 하였다. 필자의 고증은 『西銘』에 의거하였다. 필자가 고증한 내용을 대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解剝圖體 水陰盛火陽盛 金陰穉木陽穉를 「啓蒙傳疑圖解」에서 고증했다. 天下之故常感通乎寂然不動之中을 『易大
    출처 : 유교넷
  • 244068

    西銘箚錄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朱子가 풀이를 하였고 退溪가 고증을 붙였다고 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題註訂頑砭愚를 考證을 소개하고 一說을 인용하여 설명했다. 乾稱父坤稱母를 易大傳을 인용하여 설명했다. 予玆藐焉乃混然中處를 柳子厚의 「天論說」을 이용하여 설명했다. 解位乎中을 「易大傳」을 참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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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69

    近思錄葉註箚疑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近思錄』 葉註에 의문이 있는 부분을 정리하고 해설과 고증을 붙였다. 해설에는 주자‧퇴계‧伊川‧勉齋‧자기 스승‧친구 등의 설을 인용하였고, 또 『語類』‧『논어』‧『중용』‧『맹자』‧『소학』 등의 관련 서적을 참고하기도 하였다. 한편 틀렸다고 생각되는 글자를 바로잡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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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70

    春秋胡氏傳箚疑集解括例附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春秋 胡氏傳의 過當한 부분에 대해 필자가 설명을 한 글이다. 또 필자는 陳氏의 集解도 다만 傳의 해설에만 의거하여 절충하는 의미가 없다고 하여 필요한 곳에서는 같이 검토하였다. 그리고 필자는 춘추 호씨전에 의문이 있는 글을 재검토하는 데에는 朱子의 斷案에 따른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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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71

    禮疑箚錄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禮疑라고 하였으나 거의 전부 喪禮의 의문점에 대해 여러 사람들의 설을 참고하여 설명하였다. 간혹 문답 형식으로 설명하기도 하였다. 간단하게 다루고 있는 내용을 보면 喪服, 虞杖, 祔杖, 대소렴, 晨謁之禮, 辭神, 改題, 埋安, 初終哭, 香, 飯含, 銘旌, 襲用幅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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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72

    讀曹芝山考證論深衣續袵鉤邊 3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深衣의 모양에 대하여 논했다. 楊氏 附註와 衣圖說이 같지 않음에 의문을 가지고 또 鄭註의 鉤邊之說에 의문을 나타내었다. 이에 朱子의 설명을 인용하여 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鉤邊이 무엇을 지칭하는지에 대해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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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73

    自警說(1760) 3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講說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여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학문을 함에 講을 하지 않으면 학문을 하지 않는 것이니 講說은 학문의 시작이다. 반면에 體驗은 학문의 끝이니 체험하지 않고 어찌 君子라고 하겠는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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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74

    誠意章圖說 4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誠意章」을 圖解하고 설명을 붙인 글이다. 誠意의 공부는 단지 毋自欺 세 자에 있고 自慊의 공부는 반드시 毋自欺로부터 시작되니 愼其獨은 毋自欺하는 것이다. 如惡惡臭 이하는 반드시 自慊하고 毋自欺 할 것을 말하는 것이고, 閒居爲不善 이하는 毋自欺할 수 없음이 심함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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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75

    山居課法(1741) 5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필자가 산 속에서 공부할 때 하루의 일과를 기록한 글이다. 그 내용을 보면 四更에 일어나 의복을 정제하고 독서를 했다. 質明에 세수를 하고 독서를 했다. 飯後에 글씨 쓰기, 食下에 독서, 저녁이 되면 古書를 보되 板數를 정하여 作課했다. 食下에 독서, 밤이 되면 溫習
    출처 : 유교넷
  • 244076

    書與宇兒四字符(1793) 5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아들 宇에게 整齊嚴肅이라는 四字符를 써 주면서 그 내력을 설명한 글이다. 이 四字符는 경자년 2월에 필자가 先師先生에게 요청하여 받은 것으로 항상 생각하여 잊지 않고 이것으로 자신을 繩檢해왔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4077

    山居課法後序(1741)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필자가 산 속에서 공부할 때 하루의 일과를 기록한 山居課法을 제정한 후에 쓴 서문이다. 성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공부에서 독서를 귀하게 여겨야 하고, 독서에는 법이 있어야 하므로 山居課法을 정했다고 하였다. 독서는 精熟을 귀하게 여기고 많이 읽는 것을 귀하게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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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78

    龍巒處士權公遺集序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용만처사 권공은 호가 松巖이고 陶山 문하로 필자와는 師友간이다. 그는 抱負志業을 알아주지 않아도 괴로워하지 않았다고 하며, 『權氏譜』‧『永嘉志』 등을 편찬하였다고 한다. 公의 仍孫 權潤身의 부탁으로 서문을 쓴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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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79

    魯林文會題名後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院事를 맡은 小山 李公이 典學 李夢靖과 상의하여 7월 을묘에 講會를 개최했다. 원근에서 모인 자가 70여 명이었는데 8일 동안 「太極圖說」을 읽었다고 했다. 강회가 끝난 후에 李東伯 寅炯에게 부탁하여 성명을 쓰게 하였고, 李象辰이 시를 지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4080

    書農工說後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農工說」은 필자가 자칫하면 退蹙한다고 하여 金退甫가 써준 것이다. 김퇴보는 선비가 학문을 함은 농부와 장인이 農工을 하는 것과 같으니 숨기고 꺼리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또 하늘이 백성을 만들었음에 각기 그 직분이 있는데, 그 직분을 맡는 것을 부끄러워
    출처 : 유교넷
  • 244081

    書烈婦鵝洲申氏事蹟後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신씨는 南重吉의 처이다. 중길이 龍宮 관아에 갔다가 옥에 갇혀 사망했다. 初終 후에 신씨는 자살할 마음을 먹었으나 시부모의 저지로 계획을 미루다가 女兄 집에 가는 길에 雲山에서 스스로 물에 투신하여 죽었다. 결혼한 지 겨우 1년이 되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4082

    書錦春堂姜訓導遺事後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강훈도는 退陶선생의 시 鳴玉臺에 등장하는 인물로 退翁이 만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독서를 할 때에 따르던 자이다. 강훈도의 후손 姜善煥의 부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4083

    題學習(1772)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湖上의 선생이 공자 이후 博約과 공부에서 극치를 이룬 자는 朱子이고, 주자를 잘 배운 자는 退陶선생 만한 자가 없다면서 오로지 주자와 퇴도를 準的으로 한 이후에야 大中至正한 門路를 잃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주자와 퇴도의 글을 보니 학문을 하는 大槩를 學習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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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84

    書齋居學令後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大山書堂 학령이다. 大山이 만년에 齋居할 때 학도들을 훈계하기 위해 정한 율령이라고 하였다. 출입과 언행 관련 두 조목은 龜潭 學規로 보충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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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85

    書與駜孫古訓要語後(1793)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駜은 금년 14세로 小學을 배워 養正할 때이다. 그러나 資性이 俗習을 따르는 것을 좋아하여 점차 과장하고 競躁하는 습속에 물들어간다. 빨리 주의를 시킴이 마땅한 바 遜弟하고 保養하는 방법을 반드시 가르쳐야 했다. 이에 글을 써서 그에게 준다고 하였다. 朱夫子의 齋居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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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86

    書贍學規約後(1794)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집을 남쪽으로 옮긴 후 家塾의 제도와 敎義의 방향이 갖추어지지 않아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이에 제사 비용에서 남은 것으로 약간의 土田을 營置하여 贍學이라 하고는 松洞의 구석진 곳에 집 한 채를 구입했다. 올해 겨울부터 학문을 배우려는 선비는 그 곳에서 居食하되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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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87

    羅道杖銘幷序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羅道杖은 叔祖 近仁公이 필자가 병으로 쇠약해졌다고 해준 것이다. 나무는 吾亦栗인데 몸체가 奇崛하고 흰색과 흑색의 무늬가 있어 멀리서 보면 용과 같았다고 했다. 近仁公은 그 기이함을 좋아하여 움직일 때에는 반드시 짚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름을 羅道杖이라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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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88

    鵲山精舍上樑文(代先生作)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倉山洞 골짜기는 侍郞公의 墓域인데 廟宇를 건립하고 춘추로 제사를 지내왔다. 그러나 齋가 없어 항상 탄식해 왔는데 이에 왼쪽 기슭에다 터를 잡고 出財 募工하여 精舍를 건립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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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89

    先廬移建上樑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조상 대대로 147년간이나 살아온 집을 남쪽 高山으로 옮겨 지으면서 지은 상량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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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90

    龍溪社告由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潭菴 金用石을 追享할 때 쓴 告由文으로 惟一齋 金彦璣가 告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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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91

    鶴巖社追享梅牕鄭公士信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梅牕 鄭士信을 추향할 때 쓴 고유문이다. 매창은 島寇가 침입하였을 때 募兵을 하여 적을 捕斬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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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92

    竹皐社竹湖尹公涉奉安文(爲末孫作)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竹湖 尹涉을 봉안할 때 末孫을 위해 써준 봉안문이다. 윤섭은 祖訓을 지키면서 과거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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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93

    龜巖精舍五友堂金公近奉安文(爲本孫作)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오우당 김근을 구암정사에 봉안할 때 本孫을 위해 써준 봉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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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94

    익화군 김인찬과 익성군 김이갱을 尼谷 別廟에 봉안할 때 本孫을 위해 써준 봉안문이다. 그들은 이성계를 따라 위화도에서 回軍하여 공을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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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95

    茅山丘隴神告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書舍를 丘隴에 너무 가까이 건립하였기 때문에 재앙을 내려 居民이 편안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들이 있었다. 이에 丘隴神에게 알리는 告文을 지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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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96

    靖平孫公遺墟碑閣開基告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靖平 孫公의 유허비각을 건립하기 위하여 터를 닦을 때 쓴 告文이다. 정평은 고려시대 때 다섯 왕을 섬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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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97

    高山講堂開基告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高山 講堂의 건립을 위해 터를 정비할 때 쓴 告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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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98

    祭霽山金公聖鐸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김성탁은 필자와 함께 蘇湖에서 공부하였으며 서로 여러 說을 주고받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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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099

    祭屛谷先生權公榘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병곡선생은 자질이 훌륭하고 문장이 뛰어났으며, 깊이 생각하여 眞知를 구하였고 의리를 실천하였다고 했다. 이에 병곡선생은 殉道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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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00

    祭九思堂金公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수
    필자가 弱冠에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의문을 밝히기 위해 문답을 할 때면 각각에 대해 그 뜻을 다 밝혔으며, 그의 얼굴을 보면 德氣에 감화되어 말을 하지 않아도 志意가 솟아나 거친 마음과 들뜬 기분을 사라지게 하였다고 한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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