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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44151

    答金聖得(177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이해 흉년이 들고 천연두가 점점 가까이 오고 있음을 말했고, 늙음에 외로움이 더욱 커지고 죽음을 앞둔 나이에 형제가 서로 이별하고 이처럼 외롭게 되었음을 한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44152

    答金聖得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자신이 쇠약해져 근근히 몸을 가누고 정신이 점차 희미해짐을 한탄하고, 김성득이 편지를 통해 {周易} 관련 복희와 문왕의 本旨에 대해 논한 것을 읽고 뒤늦은 공부에 험난함을 거쳐서 점차 훌륭한 경지에 이르고 있음을 알겠다고 칭찬했다
    출처 : 유교넷
  • 244153

    答徐舜輔(177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서순보가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것은 운수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위로했다
    출처 : 유교넷
  • 244154

    答申士觀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史生이 와서 申士觀 집안의 소식을 알려주기를 천연두의 기세가 극에 달했다고 했는데, 그처럼 경황없는 와중에서 간곡한 정을 담은 편지를 보내주어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44155

    答徐淸如問目(177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徐活(邁야:1761∼1838)이 질의한 유학관련 여러 문제에 대한 답을 적어 보낸 편지이다. 잠깐 살펴보면 {孟子}의 "흔히 세상에서 性을 말한 것은 곧 故를 가리키는 것이다"고 할 때의 "故"의 의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물음에 대해, {易}의 "마침내 천하의 故
    출처 : 유교넷
  • 244156

    上伯氏(17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29살 때 큰형에게 보낸 편지이다. 溪上 이참봉 댁에서 날마다 마주 앉아 배우며 강학을 통해 얻은 것이 도움이 되므로 이번 나들이가 헛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또 그럼에도 자신의 역량이 부족한데다 학문에의 굳은 의지로 분투함으로써 실효를 얻어내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출처 : 유교넷
  • 244157

    寄兒壽勳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과거시험 응시를 위해 객지로 떠난 아들 壽勳에게 객사에서의 태도와 마음가짐 등에 대해 당부하는 내용의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244158

    答兒壽勳壽華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앞의 편지에 이어 과거시험을 앞 둔 두 아들에게 과거시험과 관련된 준비사항에 대해 세세히 일러주는 내용의 편지이다. 과거시험이 임박했는데 답안지용 종이를 구입했는지를 묻고, 시험의 합격여부가 그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니까 굳이 최상품을 찾지 말라고 했다. 또한 종이
    출처 : 유교넷
  • 244159

    答兒壽勳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과거시험을 보고 돌아오는 중인 아들에게 보낸 답장이다. 서원에 들어가서 공부하겠다는 계획을 확정했는지 묻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44160

    答兒以復(176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산에 들어가 독서하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山房에서의 독서는 날이 갈수록 얻는 바가 있을 것이고 조용히 사색에 잠길 수 있어서 집에서와 다를 것이라고 평하고, 공부 틈틈이 자연 속을 노닐어 흉회를 맑게 함으로써 인격 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출처 : 유교넷
  • 244161

    寄復兒讀書所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산에 들어가 독서하는 아들에 보낸 편지이다. 혹독한 추위로 인해 건강을 해칠까 염려하면서도 그러한 어려움이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고 처한 바의 환경에 적응하도록 해 뜻을 확고히 세우는 바탕이 된다고 했다. 또한 1촌의 길이가 쌓여서 천리가 되고 가벼운 것이 모여서 1만
    출처 : 유교넷
  • 244162

    寄復兒(176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한참 동안 편지가 없었던 것을 보니 마음을 우울했던 것 같다며 집안 대소가의 평안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하는 편지이다. 권렴 자신은 立巖에 갔다가 큰 눈이 내려 3일을 갇혀있다 비로소 良洞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또한 딸이 무사히 해산했음을 전하고 마지막으로 조만간 조카
    출처 : 유교넷
  • 244163

    答復兒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蘇湖 유람을 가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蘇湖 여행에 함께 오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훗날을 기약하자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244164

    答復兒(176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지난번 큰 바람과 비로 젖은 흙더미가 무너져 내린 것을 수습하느라 병이 났을까 걱정하고, 매일 원근의 동료들을 만나느라 분주하여 조용히 있을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건강에 유의하고 출입을 신중히 해서 병이 나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또 분주한 가운데서도 사물
    출처 : 유교넷
  • 244165

    寄復兒(176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말과 행동에 신중을 기하고 좋은 벗을 가려 사귀며 밖으로 드나드는 것을 삼가고 나태해지 말아야 하며, 이와 같이 함으로써 정신을 수습하고 기력을 길러 초연한 경지를 잃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44166

    答復兒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반드시 일삼음을 지니되 잊지도 그렇다고 억지로 조장하지도 않는 것이 공부의 큰 요령이며 독서함에 있어서도 이 뜻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44167

    答復兒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사촌과 같이 절에 공부하러 들어간 아들이 보낸 편지에 답한 것이다. 산중이 조용하지 않아 안정된 분위기에서 독서를 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한해가 바뀌는 철에 절간이 시끄러울 것이니 사촌형과 같이 집으로 돌아오라고 권하고 있다. 또 사촌간에 산속에서 십여일 공부한 결과
    출처 : 유교넷
  • 244168

    寄諸子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아들들이 설사병에 걸린 중에 객지로 과거에 응시하러 간 것을 걱정하면서 보낸 편지이다. 雨裝을 준비하지 않아서 비에 젖지는 않을지, 겨우 차도가 있는 아들 以腹이 비바람을 맞아서 병이 깊어지지 않았는지 등을 물었다
    출처 : 유교넷
  • 244169

    寄復兒(177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과거 시험에서 세 사람이 가서 유독 아들 以復만이 합격하지 못한 것도 역시 운수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이어 15일깨 도성을 출발해 橫城에 도착해 며칠을 머물 것이라고 들었는데, 마음과 달리 수하에 사람이 없어서 환송을 갈 수 없음을 알리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44170

    答復兒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분주한 가운데서 병은 나지 않을지 공부가 중단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고 하고서, 마땅히 해야할 직분의 일을 처리하는 중에 자신을 반성하는 것도 공부임을 말했다. 그런 맥락에서 一動一靜의 모든 행위에서 그침이 없이 敬의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공부이지 꼭 책을 읽는 것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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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71

    無極而太極太極本無極說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太極圖說]의 "無極而太極", "太極本無極" 구절에 대해 논한 글이다. 우선 {周易}에 어떤 도리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면서 설명한 것이 있고, 아래에서 위로 소급해 가면서 설명한 것이 있는 것처럼, 易의 일종인 [太極圖說]도 그러하다고 밝히고 무극과 태극의 관계
    출처 : 유교넷
  • 244172

    菖蒲說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당시 조선에 도입되어 보급된 창포에 대해 논한 글이다.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昌陽이라고도 하는 창포는 귀한 식물로 처음 학봉 김성일이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올 때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옛 기록에 보면 창포에는 두 종이 있는데 잎에 칼등과 같은 모양이 있는 것 창
    출처 : 유교넷
  • 244173

    節朱子告周舜弼語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善惡의 기미를 잘 살펴 惡을 제거하는 修養의 문제를 논한 글이다. 놓인 마음을 구한[求放心] 후에 性의 善함을 알 수 있고, 사람이 스스로 마음을 풀어버리면 마침내 악으로 빠져들게 된다. 善惡은 陰陽에 비유할 수 있는데, 바람이 조화롭고 해가 따듯하면 만물이 발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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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74

    題阿榮朱書抄卷末(177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아들 阿榮이 1750년 朱子의 편지 몇 편을 가려서 베껴 적은 책의 題記이다. 어릴 때 일이라 생각도 깊지 않고 필력도 좋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안목을 가지고 가리지도 못했고 단지 퇴계의 {朱子書節要}의 체재를 본 따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왕 만든 것이니 잘 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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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75

    題自警篇卷末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요절한 아들이 남긴 글 [自警篇]의 題文이다. 아들이 20세에 손수 쓰고 권렴에게 교정을 부탁하고 아직 책으로 엮어지지 못하던 중 병이 들어 죽었다. 영민한 재능과 독실한 뜻을 지닌 아들이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은 것을 가슴아파 하면서도 이 책이 있기에 자식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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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76

    書明誠集覽卷末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자신의 {明誠集覽}에 적은 글이다. 늙어 학문함에 잊어버리기를 잘하지만 마음을 놓지 않고 간직해야 함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44177

    書硯匣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일삼음이 있는 곳에 天命이 존재하지 않음이 없고, 말 없는 가운데에서 道心이 자라난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44178

    書曆卷首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冊曆에 적은 글이다. 마음 중에 사욕이 없다면 성현이 되기에 어려움이 없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44179

    書座銘(177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말을 적게 하고 번다한 출입을 삼가고 재물 늘리기를 적게 한다면 事物에 얽매임을 벗어나고 학업에 도움이 되고 덕성을 기를 수 있다는 내용을 도표로 그린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244180

    錦水日錄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권렴이 29세이던 1729년 塔洞의 李元美와 처음 李栽에게 執贄하고 배움을 청했는데, 이 글은 당시 이재가 이들에게 들려준 학문에 가르침을 기록한 것이다. 이재는 권렴이 이미 {小學}을 읽었다면 {大學}, {心經}, {近思錄}, {大學或問} 등을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
    출처 : 유교넷
  • 244181

    新心錄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권렴은 파초를 좋아해 뜰에 파초를 심고 스스로 蕉파라고 호를 지었다. 그러던 중 69세 때(1770) 겨울에 파초를 잘못 갈무리하는 바람에 얼어죽었는데, 그후 꿈에서 활짝 핀 파초 한 그루를 얻었으므로 호를 夢蕉이라고 바꾸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일찍이 53세(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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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82

    玉溪遊錄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68세 되던 해 권렴과 그의 큰 형, 蘇湖(현재 안동시 일직면 소호리)의 李敬和, 李象靖, 송학서원의 申海尙, 金世翼 등 玉溪 유람을 함께 할 열 사람이 모여 유람 일정과 장소를 의논한 후 9일동안 松鶴書院에서 玉溪까지 다녀온 과정을 기술한 기행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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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83

    呈巡相闡揚權孝子文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永川 북쪽 立巖 마을의 이름난 효자 權穆의 효행에 대해 나라에서 표창할 것을 청하는 呈文이다. 권렴이 永陽士林을 대표해 지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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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84

    呈府伯闡揚節婦李氏文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권렴의 고향 靑松府 安德縣에 寓居한 선비 固城李氏 李世泰의 딸 이씨 부인의 효행과 정절에 대해 나라에서 褒恤해주기를 청하는 글이다. 이씨 부인은 가난한 살림 가운데에서도 시부모 봉양에 극진했고, 남편이 전염병으로 죽자 따라 죽었다. 권렴이 지역 사림을 대표해서 지었다
    출처 : 유교넷
  • 244185

    與新寧士林闡揚蔣孝子文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新寧의 뛰어난 효자 蔣元琥의 행적을 表揚하고 장원호가 지극한 효행으로 인륜을 고양시켰으므로 나라에의 표창할 수 있도록 힘을 쏟자는 내용의 글이다. 장원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봉향함에 지극한 정성을 기울였고 매일같이 깊은 산 속의 아버지 묘소에 찾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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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86

    龍溪祠事實後序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1717년(효종 8) 永陽의 李猶龍 부친이 지은 [龍溪祠事實]을 보고 지은 後序이다. 용계사는 生六臣의 한 사람인 李孟專(耕隱; 1392∼1480)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원래 그의 祠版은 그의 宗派가 사는 선산의 家廟에 봉안되어 있었는데, 후대가 끊김에 따라
    출처 : 유교넷
  • 244187

    五仙洞追遊錄序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일찍이 1615년(명종 10)에 李埈(蒼石:1560∼1635)이 권렴의 고향인 靑松府 安德縣을 방문해 여러 선비들과 노닐다 돌아갈 즈음 趙亨道(東溪:1567∼1637), 조형도의 동생 趙遵道(方壺:1576∼1665), 權翊(楓崖), 申楫(河陰:1580∼1639) 등이
    출처 : 유교넷
  • 244188

    藏菴續遊錄詩序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黃翼再(白華齋:1682∼1747)이 白華山 동쪽에 집을 짓고 그 산의 이름을 따서 白華齋라고 재명을 지었고 또 그 근처에 작은 집을 지어 藏菴이라고 이름지었다. 이후 그의 후손이 권렴에게 그가 지은 [藏菴錄]과 [白華錄] 두 책을 보여줌에 그것을 통해 황익재의 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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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89

    靑松府行鄕飮酒儀詩序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1750년(인조 8)에 靑松府에서 시행한 鄕飮酒禮 의식 관련 詩序이다. 나라가 세워진지 350년이 지난 당시 태평세를 구가하고 유학의 禮樂이 잘 보급되어 있었지만, 청송만은 궁벽진 곳에 있어서 "文化가 없는 杞나라 땅"이라는 속칭으로 불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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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90

    壽勳冠席次一郞壽夏詩序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아들의 나이 17세에 관례를 행하고 壽勳이라는 字를 주면서 지은 詩序이다. 비록 가난해서 예를 갖추고 벗들을 손님으로 모신 가운데 관례를 행하지 못하지만 요임금의 고사를 들어 수훈이라는 자를 지어준 것은 아버지로서 자식이 요임금과 같은 덕을 갖추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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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91

    明誠圖小序(175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아들 以復의 冠禮를 맞아 부단히 배움을 추구하여 덕을 향상하라는 취지에서 [明誠圖]를 그리고 쓴 서문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中庸}에서 "진실됨[誠]에 근거하여 밝게 이해하는 것[明]을 性이라 하고, 밝게 이해함으로써 진실됨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敎라고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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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92

    明誠圖後序(177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明誠圖]가 이루어진 이후 妻喪과 아들 以臨의 죽음을 당함에 비탄함에 젖어 있다가 [明誠圖]의 내용이 아버지 된 사람들이 우선은 자신의 수양에 참고하고 그리고 나서 아들을 면려하는 데 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시 左右의 圖에 관한 본문을 가려내고 의미가 가까운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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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93

    賀趙同樞壽席詩序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趙崍의 87세 祝壽燕에 부친 詩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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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94

    賀趙同樞壽席詩序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趙大河의 축수연에 부친 詩序이다. 조대하의 효성을 칭송하면서 나라로부터 2品의 승급과 위로 3세의 조상에게 추증이 내려지는 은전을 입고, 지금 건강하여 질병이 없고 두 아들이 옆에서 모시고 있으며 손자들이 번성한 것은 모두 그가 효성스런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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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95

    梅谷老人會詩序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1772년(효종 3) 여름 권렴의 고향 安德縣 사람들이 梅谷 口溪에서 개최한 老人會에 부친 詩序이다. 이 會는 권렴 큰형의 제안과 趙一謙의 주선으로 마련되었는데, 총 백여 명의 사람이 참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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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96

    龜巖書堂記(174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松山君 馬坪 마을 사람들이 산수가 수려한 이 마을에 서당이 없어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해 배울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서당을 세운 사실을 기린 글이다. 마평은 권렴이 만년에 옮겨가 산 곳으로 그의 아버지의 묘소가 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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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97

    紫岸擬居記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安德縣 부근 紫日山 北岸에 집 지을 터를 정하고 나서 이에 관해 쓴 글이다. 安德縣 남쪽 20리에 있는 普賢山 좌측의 紫日山의 한 갈래가 동쪽을 솟아 나와 층을 이루면서 물가 쪽으로 가파르게 끊긴 곳이 紫巖이다. 이 자암의 북쪽 연안은 집터로서는 편벽되지만 형세가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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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98

    池洞丘墓記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현재의 靑松君 安德의 池洞에 있는 안동권씨 선산에 대해 적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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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199

    慕洞취廬記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권렴이 慕洞(池洞)에 부모 생전에 못다한 효도를 안타까워하고 돌아가신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만년에 아버지의 묘가 있는 지동 남쪽 마을(馬坪)로 옮겨와 집을 짓고 살게된 경위를 적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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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200

    申君任哀辭 / 기록자료>고도서 / 권렴
    申重仁의 죽음에 부치는 애사이다. 권렴 자신이 신중인의 조부에 대해 어버이의 예로써 받들었고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형의 예로써 받들었으므로, 신중인이 자신에 대해 깎듯이 아들의 예로써 대했지만, 자신은 그은 畏友로 여겼다고 했다. 신중인의 사람됨에 대해서는 자기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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